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2화 (12/226)

3. SAO (5)

‘북미팀은 연습을 게을리 한다’는 선입견과 달리, 프로게이머 생활은 역시나 고됐다.

연습, 그리고 또 연습.

SAO 팀원들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마냥 반복적인 일과를 보내야만 했다.

의외로 감독이나 코치 같은 것은 없다.

북미에서도 한국의 시스템을 따라서 감독이나 코치를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려는 시도는 있었는데, 잘 안 됐다고 한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던 것이다.

감독과 코치가 말 하는 것이 강제성이 없으니 콧대 높은 1군 선수들은 말을 잘 듣지 않았고,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북미에서는 전력 분석팀이나 매니저는 있을지언정 감독 같은 것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감독이나 코치를 고용할 여유가 없는 SAO팀 또한 어지간한 것은 선수들이 알아서 한다.

정명은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오늘의 일정표를 읽었다.

“어디 보자...오늘은 또 뭐냐.”

[일정표]

6:00 기상

8:00 아침운동

11:00 ~ GTEC팀과의 연습경기 예정13:00 ~ SPO팀과의 연습경기 예정....

20:00 저녁 운동

‘요즘은 어쩐지 연습게임이 많이 잡혀있네.’

정명이 SAO팀에 들어 온지 이 주 정도.

처음에는 연습경기가 잡히지 않는 날에는 솔로랭크를 돌리고는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연습경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 없어져버렸다.

SAO팀과 연습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팀이 점점 늘어난 탓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거실의 칠판에 아주 잘 적혀 있었다.

[연습게임 히스토리]

5월 20일 - 유니콘즈 승

5월 21일 - 하모니 승

5월 22일 - GTEC 승

.....

5월 2주차 승률 75%

....

지난 시즌에서 SAO는 보통 연습게임 승률 50%를 기록했다. 평범한 수치다.

정명이 들어온 다음부터는 승률이 60%를 넘었다.

그리고 1주일 전 부터. 승률은 75%를 넘어섰다. 단 한 명의 미드라이너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정명은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며 살짝 고민했다.

‘이젠 피지컬 말고 다른 능력에도 신경을 써 볼까. 이제는 피지컬을 올리기 위한 포인트량이 좀 많네.’

[현재 능력치]

피지컬 (50/100)

정신력 (50/100)

오더 (25/100)

판단력 (37/100)

일주일 전에 정명은 피지컬 능력을 49에서 50으로 올릴 수 있었다. 드디어 십의 자리 숫자가 4에서 5로 변한 것이다.

그 때부터였다. 정명이 라인전에서 더 이상 지지 않게 된 것은.

최소한 비기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겼다.

한 명이 라인에서 무조건 이기니, 승률이 펄쩍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부리그 팀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퍼지자, 연습경기 요청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연습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효율을 내기 위하여 실력 좋은 팀과 연습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었으니까.

‘그래도 아직 부족해...실력을 더 끌어올리려면 무엇이 더 필요하지? 계속 피지컬을 올려야 하나?’

정명이 생각하기에 앞으로 승률이 70%대를 넘어서 80, 90%로 가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좋은 팀으로 이적한다, 같은 망상은 제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한다면 다른 스탯을 올리는 것이 그 해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정명은 당분간 포인트를 쓰지 않고 모아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늘의 연습 경기를 위하여 거실로 나왔다.

.......

“아....답이 없네. 일단 버텨보기로 할까?”

오늘의 첫 번째 연습 경기.

다른 팀원들이 라인전에서 지는 와중에도 정명은 혼자 꾸역꾸역 본인의 역할을 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황이 안 좋아지자, 오더를 내려야 하는 새비조차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일단 버티자’ 와 같은 두루뭉실한 말을 하고 있었다.

결국 SAO는 2부리그 최상위권 팀 스콜피온즈에게 지고 말았다.

경기에서 졌으므로 포인트는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명은 경기가 끝난 뒤 눈앞에 뜬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

[반복된 경기로 인하여 ‘키리비’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키리비]의 숙련도 등급 : 수습 마법사숙련도 LV 1 : 해당 캐릭터를 플레이할 시 피지컬이 1 보정됩니다.

한 캐릭터만 10판 넘게 했을 때, 갑자기 이러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피지컬이 1 보정된다면 그 캐릭터를 할 시에는 현재 50인 정명의 피지컬이 51로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LOH의 세계에서는 한 캐릭터만 파는, 그 캐릭터의 장인과도 같은 사람이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북미 GLG의 싱글리프트는 구르미. 중국 TE의 미다야는 카드맨.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은 특별히 잘 하는 챔피언을 하나씩 갖고 있었고, 상대팀은 그 캐릭터를 고르지 못하게 망설임 없이 밴 하고는 했다.

‘앞으로는 챔피언 폭을 늘리기보다는 소수의 몇 개만 파는 것으로 해볼까?’

정명은 한 캐릭터의 ‘장인’이 된다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임에서는 졌지만, 그것은 수많은 연습경기중 하나일 뿐이다.

SAO팀은 개막전의 승리를 위해 계속해서 연습을 이어나갔다.

......

개막전 당일.

정명은 팀원들과 함께 개막전이 펼쳐지는 경기장에 도착했다.

다른 팀원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먹을 것을 찾는다며 어디론가 가버렸고, 정명은 초 챙과 둘이 남겨졌다.

‘2부 리그인데도 규모가 꽤 크네...’

정명이 보기에 미국은 그냥 뭐든지 다 컸다.

먹을 것도, 자동차도, 사람도, 그리고 대회가 펼쳐지는 경기장의 건물도.

정명은 얼떨떨하게 입을 열었다.

“규모가...마치 용산 스타디움을 보는 듯 하네요. 2부리그인데도...”

“영산이요?”

“용산이요. 한국에서 1부리그가 치러지던 곳이요.”

“아하. 영산이라...궁금하네요. 세계 최고의 리그가 펼쳐지는 곳이 어떤지.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뭐,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도 좋겠지. 실제로 보면 무척 실망할 테지만.’

정명이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자, 정명이 긴장했다고 생각한 초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정명. 긴장돼요?”

“괜찮습니다. 문제없어요. 그냥 신기해서 좀 바라봤을 뿐이에요.”

“음...혹시 한국에서 오프라인 대회를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한국의 2부리그도 요즘은 다 오프라인 대회거든요. 여러 번 나갔죠.”

집에서 하는 것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은 그 느낌이 무척 다르다.

거기에 더해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면?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프로가 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겪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무대 공포증.

솔로랭크에서 잘 한다는 평가를 받던 유망주들이 오프라인 예선전에서 하나같이 죽을 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결국 이런 안타까운 일을 보다 못한 주최 측에서 전격적으로 모든 대회를 오프라인으로 바꿔버렸다. 남들의 시선에 좀 익숙해져 보라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무척 성공적이었고, 정명 또한 그러한 훈련에 적응하여 대회장에서도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초와 함께 경기장 안으로 들어 간 정명은 관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팬들을 보자 놀라버렸다.

‘한국 같으면 2부 리그 경기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팬들 중 한 사람은 오늘 SAO의 상대인 유니콘즈의 팬인지, 뿔이 달린 말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명의 시선이 유니콘즈의 팬에게 향해있는 것을 눈치 챈 초는 손가락으로 다른 곳을 가리켰다.

“기죽지 마세요. 저기 우리의 팬도 있잖아요?”

초 챙이 가리킨 곳을 보자, 새비처럼 보이는 사람이 유니콘을 발로 차고 있는 그림을 든 사람이 보였다.

조잡한 그림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웃음이 났다.

“저 사람은 새비의 팬인가보죠?”

“네. SAO 팀에서는 새비가 인기가 제일 많거든요. 후후.”

“아, 그래요?”

그 말에 정명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팀에서 홍일점인 초가 인기가 제일 많아야 할 텐데, 그것이 아니라니?

정명은 남녀차별적인 어조로 들리지 않게 주의하며 물었다.

“초. 이런 얘기가 실례가 될지 모르겠는데, 왜 새비의 인기가 제일 많나요? 제 생각으로는 초의 인기가 제일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머. 그거 칭찬이죠?”

“그럼요.”

정명이 보기에 초의 외모가 썩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오히려 평균 이상이었기에, 저런 빡빡머리 아저씨 새비가 인기가 더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초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음...제가 인기가 있어본적이 없어서 제 의견이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인터뷰 때문인 것 같아요.”

“인터뷰...기자와의 인터뷰 말이죠?”

“네. 저는 쑥스러워서 인터뷰를 소극적으로 했거든요. 그에 비해 새비는 완전 전투적으로...아시죠? GLG의 싱글리프트도 마찬가지고요.”

“아하.”

한국의 선수들의 인터뷰는 사실 재미가 없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등등...겸손하게 보이는 말 뿐이다.

왜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차게 까이니까.

그 일례로, ‘그 선수요? 당연히 제가 이겨요.’ 라고 말했던 한 선수는 바로 당일. LOH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태도가 불량하다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특히 지목된 선수의 팬 측에서 아주 강력하게 비난하였는데, 그 이후로 선수들의 인터뷰는 하나같이 열심히 하겠다는 말 정도에서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선수들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고, 팬들 또한 그것을 또 하나의 재미요소로 받아들인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맞붙게 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정명은 만약 자신이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근데 굳이 저렇게 안 해도 확실한 실력을 보여준다면 인기는 자연스레 오를 것 같기도 한데.’

이른 시간에 찾아온 팬들은 오늘 경기에서 누가 이길지 얘기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정명이 팬들에게서 눈을 떼고 대기실로 가려던 그 순간.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다.

[팬클럽 퀘스트]

팬클럽 LV 1

당신의 팬을 [500]명 만드십시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특별한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됩니다.

현재 팬 수 [5]명

‘특별한...사람?’

정명은 퀘스트가 갑자기 나타난 것 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자신에게 팬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마도 친구나 가족들이겠지.’

가슴이 뭉클해진 정명은 혼자 감동에 취해 우뚝 멈춰섰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깨듯 근처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SAO가 새로 미드라이너를 구하고 나서 분위기가 무척 좋다던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 SAO의 새로 온 미드라이너요? 붙어 본 적은 없지만... 별 볼일 없지 않겠어요? 우리 팀에 오려다 거절당한 사람인데.”

“오오? 그게 무슨 말이죠?”

“저번에 구단주가 그러더라고요. 프로가 되고 싶어 하는 한 워너비가 우리쪽에 오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가 SAO로 갔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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