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SAO (1)
북미 리그는 전체적으로 실력이 떨어진다.
세계 리그가 열리면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북미 등등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팀들이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 중 북미팀은 항상 하위권에 머무르곤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메일을 확인해본 정명은 만만치 않은 현실을 마주하자 얼굴을 찌푸렸다.
-현재 새로운 선수를 뽑을 예정은 없는 관계로...
-언어의 문제가 우려되기에 다른 지역의 선수를 뽑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선수만 선발합니다.
-모험을 하는 것은 싫습니다.
‘GLG...는 북미지역 1위팀이니 얘네는 기대도 안 했고, 유니콘즈? 얘네가 나를 깠단 말이야? 나 참. 어이가 없네.‘
확률이 낮을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전멸일 줄이야.
정명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과거의 사례를 보자면, 지금 시점 이전에 북미로 진출한 프로게이머는 몇 사람 있긴 했다.
당시 북미 팀들은 한국 사람들이 세계대회에서 보여주었던 플레이를 기대하며 경쟁적으로 한국 사람들을 영입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들인 돈에 비해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는 팀 게임이다. 그것도 다섯 명 씩이나 같이하는 게임.
선수들은 게임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계속해서 정보를 주고받고, 의견을 교환한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은 그게 안 됐다.
결국 한국 선수들은 언어의 장벽, 그리고 문화의 장벽이 생각보다 크다는 선례만 남기고 비참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북미의 구단들은 그 이후로 한국 사람을 영입하는 것에 굉장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되었고 말이다.
‘거절, 거절, 거절....당연히 1부리그 팀은 싹 다 거절이고 2부리그 팀 중에서는...거절, 거절, 거...어?‘
딱 한 곳. 정명에게 관심을 보이는 팀이 하나 있었다.
SAO라는 2부리그에서 활동하는 팀이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영입할 의사가 있다고 메일을 보내왔던 것이다.
“당연히 되지. 내가 영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정명은 전생에서 프로게이머를 하다가 실패한 뒤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게임하는 것처럼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 라는 말이 진짜 가능한 것임을 증명해냈다.
프로게이머의 재능이 없었을 뿐이지 그가 노력하는 시간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있어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정명은 배운 영어를 활용하여 초, 중학교 영어 강사로 그럭저럭 벌어먹고 살 수는 있었다.
때문에 정명은 영어 면접에는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SAO라는 생소한 이름의 팀이 멀쩡한 팀이기만 하면 OK다.
정명이 바로 SAO라는 곳에 대해 검색하자, 여러 가지 정보가 주르륵 떴다.
-창설 이래 1부리그로 간 적이 없는 팀-최근 팀원간의 불화로 미드라이너가 다른 팀으로 이적-IT기업 SAO가 스폰서 중.
‘평범한 기업이군. 나쁠 거 없겠어.’
성적이 좋지는 않지만, 나쁜 소문은 돌지 않는 팀이다.
정명이 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답장을 보내자, 화상채팅이 가능하겠냐는 물음이 담긴 답장을 보내왔다.
물론 된다. 정치, 경제적 이슈처럼 어려운 단어를 동반해야하는 대화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신을 브라운이라고 소개한 팀 관계자는 화상채팅으로 정명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플레이했던 리플레이를 보내줄 수 있냐, 영어는 어디서 배웠냐, 처음에는 연봉이 적을텐데 괜찮겠냐?’ 등등의 말이 오고간 뒤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정명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계약을 서둘렀는데, 혹시나 SAO의 관계자가 마음이 변할까봐서였다. SAO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모두 거절당했으니까.
결과적으로 SAO가 제시한 조건은 이랬다.
연봉 25000$
거기다 연습과는 별개로 일주일에 의무적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이용한 스트리밍 방송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기간은 1년짜리 단기 계약.
1년이라고는 해도, 실제로 뛸 수 있는 것은 스프링, 섬머, 윈터 딱 세 번의 리그일 것이다.
‘상관없어. 1년 안에 1부 리그로 이적할만한 커리어를 쌓는다.’
그렇게 정명은 북미 2부리그 팀SAO의 새 미드라이너가 되었다.
......
사람들이 북적이는 인천공항.
정명은 부모님과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부모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을 버리지 못했다.
프로게이머가 된다고 했을 때도 걱정하셨던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으로 나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 했다.
“꼭 미국으로 가야하는 거니? 네가 그랬잖아. 한국 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라고.”
“네. 맞아요.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는 리그죠. 하지만 대우까지 최고인 것은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코리안 스타일.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가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인 말이었다.
감독과 싸우고 쫓겨났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댄 것이었다.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정명은 확신이 있었다.
프로게이머로써 성공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NPG를 물 먹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정명은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
NPG의 연습실.
정명이 떠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연습실의 분위기는 훨씬 안 좋아졌다.
새로 온 정글러인 형철은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말투로 오더를 내렸다.
“거기 탑 뭐 합니까. 맵 리딩 좀 해요. 정글 갈 데가 탑 밖에 없는 거 뻔히 아는데, 좀 사리지.”
“....그래. 주의할게.”
“그리고 영진이형. 대체 솔로 킬을 몇 번을 당하는 거예요? 나 참. 내가 브론즈랑 팀 짜서 게임하고 있는 건가?”
“.....”
형철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을 상대로 거침이 없었다.
오더 또한 원래는 종호가 맡고 있었으나, 믿을 수 없다는 형철의 말에 오더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월등한 실력 때문이다.
형철은 왜 그가 아직 연습생인지 의아할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한국에 200명밖에 없다는 그랜드마스터 리그에 발을 담그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가 열심히 돌아다녔음에도, 연습게임에서 무참히 패하자,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게임 도중에 컴퓨터를 꺼 버렸다.
“아 씨. 딴 팀으로 옮기던가 해야지 이건 뭐, 주말에 나와서 연습하면 뭐 해. 지기만 하는데.”
형철의 막말에도 NPG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바닥은 실력이 깡패다. 그리고 형철은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형철은 뭔가 자신의 마음에 안 들 때마다 다른 팀으로 옮길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겼고, 그 때마다 감독과 코치는 형철을 우쭈쭈 달래기에 바빴다.
연습생에게는 하늘과도 같은 감독과 코치가 저러는데, 연습생 신분인 종호나 영진이 기분나쁜 말 들었다고 뭐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대는 법이다.
형철을 제외한 NPG의 팀원들은 재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저번에도 그랬듯, 종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우리 컨디션이 안 좋은가봐. 그냥 오늘은 이만 연습 접고 좀 쉬는 게 어떨까? 오늘 주말이기도 하니까.”
종호는 형철이 ‘실력이 그 모양이면서 쉴 생각이 드느냐’고 비난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형철은 의외로 순순히 승낙했다.
“그래요? 에휴, 맘대로 해요. 연습해봤자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고.”
형철은 바로 자신의 개인 키보드와 마우스를 차곡차곡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의아한 듯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가자면서요. 집에 안 가요?”
“어. 우리도 곧 갈 거야. 먼저 가.”
형철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별 말 하지 않고 먼저 연습실을 나섰다.
형철이 나가자, 남은 네 명의 팀원들은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아오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위아래도 없어, 저게.”
“차라리 정명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걔는 그래도 남 탓은 안 했잖아요.”
“맞아, 맞아. 차라리 정명이가 낫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연습생들은 이미 미국으로 떠난 정명을 그리워하며 서로 쑥덕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연습생들은 새로 온 정글러를 엿 먹이기 위해 함정을 팠고, 형철이 그대로 걸려든 것이다.
뒤늦게 온 코치는 정명 때와 마찬가지로 화를 내며 나갔다.
팀원들은 자신들의 장난이 성공했다며 기뻐했다.
그런데...
“네? 내일 안 나와도 된다고요? 왜요?”
-몰라서 묻냐? 너희들 성적이 너무 안 좋잖아. 그게 이유야.
그날 저녁. 갑자기 걸려온 코치의 말은 영진에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NPG 연습실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받은 것이다.
영진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와중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다른 사람들은요? 종호 형이나...”
-미안하지만 걔네들도 마찬가지야. 너희 실력은 너희가 가장 잘 알 테니 할 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무슨 하지만이야. 우리도 멀쩡한 사람 붙잡고 연습생으로 인생 낭비하게 했다는 말 듣기 싫거든? 내가 볼 때, 너희들에게는 재능이 없으니 딴 일 알아봐. 그럼 끊는다?
영진은 건들건들 말 하는 코치의 목소리 사이로 형철의 웃음소리가 살짝 들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 내어 물음을 던졌다.
“잠깐, 잠깐만요....형철이는 어떻게 됐어요? 걘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걘 2군으로 올라갈 거야. 연습생으로 있기에는 아까우니까.
영진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형철은 LOH 실력뿐만 아니라 ‘정치능력’까지 자신들보다 몇 수는 앞서 있다는 것을.
영진의 생각대로 지금 형철은 감독, 코치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중이었다.
형철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팀원들이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연습생들을 볼 때마다 정명과 싸웠던 일이 생각 나 기분이 나빴던 감독은 이때다 싶어 연습생 모두를 해고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고작 이런 일로 프로게이머를 포기하려 했다면 1년 동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고된 팀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팀으로 들어가 보려 면접을 봤다. 하지만...
“안 되겠는데. 나이가 22살이면 더 이상 피지컬이 늘어나지도 않을 거고, 지금 실력도 우리가 데리고 있는 연습생하고 비슷하잖아. 그리고 걘 지금 17살이라고.”
실력을 테스트해본 여러 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그들은 1년간 프로게이머 생활에 대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프로게이머 생활을 끝맺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