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로게이머 연습생 (完)
정명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빡침이 차올랐다.
아무리 퇴출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고는 해도, 어떻게 팀에서 가장 열심히 하고 실력이 좋던 자신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가?
코치는 정명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며 말했다.
“거기다 정명이 너. 영진이한테 요즘 기어오른다고 하던데, 다 들었다. 네가 아무리 나이가 더 많아도 영진이는 네 선배야 선배. 군대 같았으면 넌 뒤졌어 임마.”
“....죄송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해 봐야 좋을 게 없는 것을 안다.
정명은 얌전히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코치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징계의 의미로, 이번 리그에서는 널 빼기로 했다. 감독님도 허락하신 거야.”
“예? 그러면 이번 리그는...”
“대신 이 녀석이 들어갈 거야. 형철아.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새로 온 연습생 김형철입니다.”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정명은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1부리그 상위권 팀에서 정글러로 활약했던 김형철.
정명이 알기로 그는 상위권 팀이었던 ‘랏데’에서 연습생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위권 팀인 NPG의 연습생이 된 것으로 과거가 바뀐 것이다.
정명뿐만 아니라, 형철도 만만찮게 미래가 꼬인 듯 했다.
“이렇게 되면 정글러는 두 명이 되지? 그러니까 하는 것 봐서 잘 하는 놈을 출전시킬 거라 이 말이야. 알아들었어?”
‘하....’
말이 경쟁이지, 정명의 출전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선수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계속 써먹을 선수에게 이따위로 대접할 리가 없으니까.
팀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영진이 아니라 정명으로 바뀐 것이다.
‘하긴, 전생에서는 연습시간까지 줄여가며 선배라는 놈들 수발드느라 바빴으니까.’
정명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미래가 바뀐 원인은 자신이 ‘사내정치’에 무관심 했던 게 원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이 세상에는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가뜩이나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 날씨도 더운데, 습도까지 높은 날이었다.
이 높은 습도와 기온은 성녀도 짜증을 내게 만들 정도로 괴악한 날씨임이 분명했다.
거기다 우연이 겹쳐, PC방에 에어컨이 고장났는데도 아직 고쳐지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정명은 화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정명의 마음 어딘가에서 그의 이성을 제어하던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아이 씨....”
“뭐? 씨? 너 방금 뭐라고했어?”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PC방의 다른 사람들마저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미필 새끼가 군대놀이를 하더니 이번에는 공익나온 새끼가 군대놀이를 하네. 기분 더럽게 씨발...”
“뭐, 뭐?”
물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는 것이 흠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군대같았으면’, ‘위계질서’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김상태 코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코치는 고장난 기계처럼 ‘뭐? 뭐?’ 만 반복하고 있었고, 정명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엿듣던 사람들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상태 코치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은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미래에서는 김상태의 불법도박 연루 때문에, 경찰조사에서 밝혀져 널리 알려진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김상태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개소리 하지 마 이, 이 미친놈아!”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아주 개판이었다.
정명과 코치는 서로 분을 이기지 못해 주먹다짐을 벌였고, 경찰서까지 가서 서로를 고소한다며 소리를 바득바득 질렀다.
그러던 중, 팀 NPG의 감독이 이야기를 듣고 허겁지겁 경찰서에 도착했다.
“아이고, 상태야! 얼굴 부은 것 좀 봐. 아니, 무슨 연습생 따위가 대들어 대들긴? 이거 미친 놈 아냐?”
감독이 삿대질을 해 가며 정명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정명에게 감독은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정명에게 감독이란 사람은 그저 동네 아저씨일 뿐이었다.
“아니, 아저씨는 뭔데 저를 ‘연습생 따위’라고 불러요? 이거 미친 사람 아냐?”
“거기 두 분. 싸우지 마십쇼.”
경찰은 두 사람을 말리며 합의를 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정명과 감독은 마지못해 이 일을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었던 정명은 여기서 더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고, 감독 또한 이 일이 외부에 퍼지거나 스폰서가 알게 되는 것을 무척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정리될 때 까지, 정명은 다른 네 명의 팀원들을 만날 수 없었다.
정명은 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정신적으로 너무 몰렸기 때문에 휴식이 간절했으니까.
그리고 한숨을 쉬며 오늘 있었던 일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좆됐다 씨발...”
......
정명의 사정을 알게 된 이동호 해설이나 프로게이머 판을 조금 아는 정명의 친구들은 정명에게 어떻게든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실력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언젠가는 NPG에게 통쾌하게 복수해줄 수 있을 거라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받아줄 팀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한국 프로게이머 세계는 참 좁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당시 PC방에서는 일반인은 없고 프로게이머 관계자만 있었기에 모두들 쉬쉬하고 있어서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론화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로게이머 ‘관계자들’ 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연습생과 코치가 한판 붙었다는 소식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식이 되었을 거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잘못했고 누가 원인 제공을 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연습생이 감독과 싸웠다는 것 그 자체이다.
목이 뻣뻣하신 감독님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 연습생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실력을 보여준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것은 당장은 힘들다.
거기다 이미 전생에서 노력은 할 만큼 하고, 실패도 맛 봤던 정명이었다.
전생과 똑같은 길을 밟아봐야 똑같이 실패할 뿐이다.
‘연습생 신분으로 연습하는 것 보다는 경기를 나가야 해. 나한테는 그게 더 좋아.’
정명은 대회 전날 나타났던 퀘스트를 떠올렸다.
[퀘스트 발동]
-챌린저스 리그의 예선을 통과하시오.
보상 : 200 포인트
결과 : 실패
자신에게 보이는 특별한 상점의 연장선이라고 생각되는 이 퀘스트는, 코치랑 싸우며 NPG에서 방출되는 순간 결과가 실패로 바뀌었다.
200포인트면 연습실에서 하루 내내 연습해야 벌 수 있는 포인트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예선만 통과해도 준다?
챌린저스 예선은 통과하기 꽤 쉬운 편이다.
재미를 위해서 참가한 팀도 많고, 신청만 하고 막상 경기장에는 나오지 않아서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곳을 통과하기만 해도 200포인트를 준다니.
이것을 본 정명의 결론은 딱 하나였다.
‘대회에 나가서 결과를 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
일주일 뒤. 정명은 긴장한 표정으로 컴퓨터에 앉았다.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명은 최근 일주일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여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를 접속도 하지 않았으니까.
컴퓨터를 켠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정명은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정명이 메일을 보낸 사람들 중 1/2은 답장을 했고 1/4은 무시, 나머지 1/4은 읽었으면서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레드닷컴] : 답신
[GLG] : 답신
[런던 5] : 미확인
[엣지] : 답신
[TSB] : 미확인
..........
메일을 보낸 곳은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의 북미 팀들이었다.
정명은 메일의 답장을 천천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