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로게이머 연습생 (5)
정명은 졸린 눈을 비비며 경기장에 도착했다.
사실 경기장이라고 해 봐야 PC방이다. 리그 진행을 위해 개점휴업 상태인 피시방에는 손님은 없고 리그 관계자들만 있어, 낮 시간대 치고는 상당히 한산했다.
‘조금 일찍 왔나?’
PC방에서는 예선전이 한창이었다. 예선전을 치르는 사람들은 중학생부터 회사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예선을 치르고 있었다.
우승을 노린다기 보다는 참가 그 자체에 의의를 두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팀이 있었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팀 [용사 파티]였다.
‘용사 파티’는 어제 NPG와의 연습 경기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던 ‘상산고5인방’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여자들이라서 못 할 줄 알았는데, 꽤 잘 하는군.”
“상대팀인 고등학생들이 잘 못 하는 거 아냐? 기껏해야 골드나 플래티넘 리그 수준이겠지.”
“멍청아, 저 움직임이 어떻게 골드리그 수준이냐? 딱 봐도 마스터 리그는 되겠는데.”
경기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둘의 매치를 구경하며 쑥덕대기 시작했다.
정명은 NPG와 연습경기를 했었던 상산고5인방이 이기길 응원했지만, 용사파티의 실력이 만만치 않아 조금 힘든 경기가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전부 자신들을 구경하고 있는데도 전혀 긴장한 것 같지도 않고.’
확실히 여성으로만 구성된 팀의 효과는 대단했다. 용사파티의 사람들이 킬을 딸 때마다 환호성이 들렸으니까. 반대로 상산고 5인방이 활약할 때에는 PC방이 도서관이라도 된 것 마냥 침묵이 감돌았다.
‘이거 꽤 길어지겠는데. 그동안 뭐라도 사 먹고 올까?’
정명은 출출하여 김밥이라도 사먹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런 정명에게 말을 거는 한 사람이 있었다.
“혹시 NPG 팀에 계시지 않으세요?”
정명이 뒤를 돌아 남자를 돌아보니, 어딘가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어? 이동호 해설....?”
말을 건 사람은 은퇴한 프로게이머이자 해설자로 전직한 이동호 해설이었다.
이동호 해설은 작두라도 탄 것 마냥 선수의 다음 행동을 콕콕 맞추는 것으로 유명한 해설자였다.
그것에 더해 정확한 발음과 센스있는 해설은 그가 레전드 오브 히어로의 가장 유명한 해설 중 한명이 되게끔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이동호 해설은 정명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제가 해설자 준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잘 안 되면 창피할까봐 아직 아무에게도 말 안 한 건데.”
‘아....’
이동호 해설을 다시 보니, 확실히 얼굴이 상당히 젊어보였다.
정명은 자신이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동호 해설이 해설로 정점에 오르는 것은 2년 뒤였지 아마? 나도 모르게 헷갈렸군.’
정명은 능청을 떨며 변명했다.
“아, 평소에 해설자를 하시면 잘 하실 것 같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가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 정말 해설자로 전향하시나봅니다?”
“네. 은퇴는 했는데 이곳을 떠나기는 싫고...그래서 준비하게 됐어요. 하하, 근데 이거 비밀로 해주세요. 아직 준비중이라.”
머쓱하게 웃은 이동호는 자신이 해설자를 준비한다는 것을 비밀로 해 달라 했고, 정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용사파티와 상산고5인방의 경기가 절정에 달했다.
한 번의 한타로 경기가 끝날 상황. 종종 환호성을 내뱉던 사람도 지금만큼은 침묵을 지켰다.
이동호와 정명은 팔짱을 끼고 그들의 경기를 품평하듯 지켜보았다.
“용사파티도 제법이네요. 솔직히 여자들로만 구성된 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외이긴 합니다만.”
“앞으로 여성 프로게이머의 진출이 더 활발해질 테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는 거죠.”
동호는 정명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 딱히 여자들에게 불리한 요소도 없지 않습니까. 저기 저분들이 하는 것을 보면요.”
용사파티와 상산고5인방의 경기는 이제 마무리 단계로 가고 있었다.
3억제기를 밀어버린 용사파티는 남작 버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넥서스로 돌진하고 있었다.
정명은 음료수를 홀짝 마시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이스포츠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고, 더욱 많은 여성들이 프로게이머 시장에 뛰어들겠죠. 무엇보다 돈이 되니까.”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남성 프로게이머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다.
남자들 천지인 이곳에서 만약 용사파티가 1부리그 끝자락에라도 갈 수만 있다면 리그 상위권에 있는 팀과 비교될 만큼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닐 것이다. 그렇게 관심을 받는 만큼 돈이 될 것이고.
이동호는 정명의 말에 일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만약 용사파티가 이변을 일으켜서 1부리그에 들 수만 있다면 스폰서를 해주겠다는 기업이 줄을 설 겁니다. 물론 1부리그를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아마 될 겁니다. 1년 이내로요.”
왜냐하면 과거에 그랬으니까.
용사파티의 성공은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것을 기회삼아 이스포츠계는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었다.
동호는 그런 정명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씩 웃었다.
“그거 상당히 구체적인데요? 앞으로 기억해 두겠습니다.”
정명은 이제 자신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가야만 했고, 동호는 자리를 뜨려는 정명에게 번호 교환을 제의했다.
물론 정명의 입장에선 앞으로 4년 뒤에는 정상급의 해설자가 될 사람의 번호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정명은 기쁘게 번호를 교환했다.
“NPG의 예선 상대는...회사원 팀이군요. 예선 통과 미리 축하드립니다.”
“뭐, 그 다음부터가 진짜니까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이제 정명도 경기 준비를 해야 했다.
정명이 넓은 피시방을 슥슥 둘러보니, 팀 NPG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보여 그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 특히 코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정명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냐고? 당연히 있지.”
코치는 팔짱을 끼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어제 연습 도망갔지?”
“예?”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놀란 표정을 하고 있어, 새끼가. 너. 오늘이 경기인데도 어제 일찍 도망갔잖아. 할 말 있어?”
“도망갔다뇨? 어제는 이만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찍 간 겁니다.”
코치는 짜증이 깃든 목소리로 정명의 말을 잘랐다.
“한 게 뭐 있다고 쉬어 새끼야. 리그 전날인데 쉬긴 뭘 쉬어? 누구 마음대로? 니 마음대로?”
“다들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 이야기에 따랐을 뿐입니다.”
“이놈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 연습실 가보니까 4명밖에 없어서 물어보니까 너 혼자 튀었다고 하더만.”
그 말에 정명이 고개를 확 돌려 팀원들을 쳐다봤지만, 팀원들은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정명은 갑자기 NPG가 연습생을 한 명 더 뽑기로 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레 머릿속에 어떤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이놈들이...날 희생양으로 던지기로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