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로게이머 연습생 (1)
“윽...허리야...”
정명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잠깐 시선을 돌리니,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자신의 집이라고 하기엔 그의 뚱뚱한 고양이 ‘설렁이’도 없고, 벽에 자랑스레 걸어놓은 프로게이머의 사인도 없다.
이 좁고 삭막한 방에는 컴퓨터만 달랑 하나 있을 뿐이었다.
정명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여기 있다. 어디...2005년 10월 28일....?’
어쩐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정명은 핸드폰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2005년. 어제로부터 딱 10년 전이기도 하고, 정명이 한창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엄청나게 옛날 모델이다. 액정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는, 그야말로 완전 똥폰.
하지만 가난했던 프로게이머 시절 애용했던 폰이기도 했다.
‘내가....과거로 돌아왔다고?’
정명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급하게 떠올려봤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어떤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였나?’
그 이상은 아무리 떠올려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기는커녕 고민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릴 뿐이었다.
‘일단...조금만 더 자자. 죽었다 살아나기라도 했나, 왜 이리 피곤하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던 정명은 고민하는 것을 포기한 채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
.....Up in the sky, Nostalgic emotions. fill my eyes..........
“어....뭐야....”
핸드폰에서 예전에 유행했던 음악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듦과 동시에 벨소리가 뚝 멈췄다.
[부재중 전화 8건]
[새로 온 메시지 17건]
“뭐냐 이건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기인이라도 된 것일까?
정명은 얼떨떨한 마음으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명아. 너 어디냐? 왜 연습실에 안 와?]
[너 연락도 안 받고 무슨 일 있냐?]
[너 그러다 큰일 난다. 일단 전화 받아.]
[야이새끼야. 오늘 다른 팀이랑 연습게임 약속 잡혀있는 거 몰라? 빨리 튀어 와!]
처음에는 좋게 타이르듯 말했으나, 갈수록 입이 험해진다.
정명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는 어렸을 때의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한창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던, 꿈 많던 그 시절로 말이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정명이 멍 하니 있는 사이에도 전화는 계속 울렸다.
잠시 갈등하던 정명은 일단 팀 연습실로 향하기로 했다. 10년 만에 가는 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정명이 활동하고 있는 팀은 N.P.G라는 1부리그 만년 하위권을 도맡아 하고 있는 팀이다.
하지만 그런 별 볼일 없는 팀임에도 정명은 주전 선수가 아니었다.
심지어 2군 선수도 아니다.
정명은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흔하디 흔한 연습생 중 하나였다.
‘진짜 오랜만이네.’
연습실에 도착한 정명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었다.
10년 만에 들어온 연습실은 어색하기도 하고, 낯이 익기도 했다.
정명이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자, 고함 소리가 정명을 맞이했다.
“야 임마! 지금이 몇 신데 이제야 기어들어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짜증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엄청난 일이 있었지만, 변명거리로는 도저히 쓸 수가 없다. 때문에 정명은 얌전히 사과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뭐? 요? 야 이 새끼야, 여기서는 말끝을 다, 나, 까로 끝내라는 것 못 들었어? 너 오늘 한번....”
씩씩거리던 남자가 일어서서 정명에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를 제지했다.
“그만! 일단 연습게임부터 바로 시작하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앉아.”
“하지만 형. 이런 거 다 봐주면 나중에 애들이 기어오른단 말이에요. 내가...”
정명은 그 소란 속에서 상황 파악을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저 놈은....예전 프로게이머 시절에 같은 팀이었던 김영진?’
군기를 잡는다며 정명에게 소리쳤던 사람은 NPG에서 미드 포지션을 맡았던 김영진이었다.
더러운 성격 치고는 매번 상대편 라이너에게 솔로 킬을 당했기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팀에서 방출되었던 녀석이었는데, 아무리 연습생이라지만 어떻게 1부리그 팀에 들어왔나 신기할 정도로 하찮은 실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영진, 종호, 민혁, 승진...이제는 얼굴도 기억 안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10년 전으로 회귀하였지만, 과거의 기억은 온전했다.
정명은 자신에게 욕을 해대는 영진을 뒤로하고 컴퓨터를 켰다.
‘기적적으로 찾아온 또 한 번의 기회...난 이번에야말로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형편없는 재능으로 회귀해 봤자...’
이번에는 더 열심히?
그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에도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모니터 앞에 앉은 정명의 고민이 깊어졌다.
“다들 들어왔나?”
“정명이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우리 정글러양반 어디 가서 코 박고 죽었나? 왜 안 들어오지?”
정명은 자신을 찾는 팀원들의 말에 잡념을 지웠다.
“죄송합니다!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정명은 마우스를 까딱까딱 움직였다.
상당히 오랜만에 게임을 하는 것이었지만 어색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매일같이 마우스를 붙잡고 살아서 손목의 상태가 상당히 나빴던 그 때처럼 말이다.
모니터를 보니 상대 팀은 2부리그 팀인 파이어폭스.
1부리그 팀의 연습생들 vs 2부리그 팀의 주전.
연습생들은 주전이래봤자 2부리그 팀이니 할 만 하다고 떠들어댔지만, 정명의 생각은 달랐다.
‘나중에는 1부리그까지 올라가 좋은 성적을 거뒀던 팀...이었지 아마? 매너가 엄청 더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조금씩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자신과 연습생 시절을 같이했던 팀 NPG 연습생들.
게임보다는 정치를 더 잘하는 미드라이너, 항상 티격태격하는 봇 듀오, 상황이 어찌 흘러가든 무조건 탑만 오라고 하는 탑 라이너.
그리고 팀이 지는 날은 팀원들의 남 탓 때문에 탈모가 올 것 같다고 느끼는 정글러 유정명.
한번 이겨보자고 으쌰으쌰해도 쉽지 않은 판국에 서로 남 탓만 하고 있으니 2군으로 올라갈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그 연습생 팀은 5명 중 3명이 군대를 가는 바람에 금방 해산되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 최선을 다 해 봐야지.’
열 명의 사람들이 비밀 방에 들어왔다.
정명 때문에 이미 약속 시간은 훨씬 지나간 상황.
지체할 것 없이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모니터가 검은 색으로 칠해지며 익숙한 로딩 창이 생겨난다.
그런데 못 보던 글자가 정명의 눈 앞에 나타났다.
“어? 이게 뭐지?”
“유정명? 뭐야 또?”
“아, 아닙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봅니다.”
“아오 꼴통새끼. 좀 집중해 임마!”
죄송하다 고개를 꾸벅 숙인 정명은 눈을 비비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앞에 보이는 이상한 글씨는 여전했다. 정명은 눈앞의 글씨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프로게이머 도우미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구매하실 물건을 선택해주세요.]
1. 능력치 상승
2. 특수능력 구입
상식 밖의 일을 많이 경험하여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자존심 상하게도 정명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이미 과거로 돌아온 기적을 경험한 마당에 뭐가 그리 이상하겠는가. 그렇게 마음먹으니 놀라움 다음에는 강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능력치 상승? 이걸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거지?’
정명이 능력치 상승 탭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마음먹으니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건만 정명의 눈앞에 떠올랐던 글씨가 바뀌었다.
[능력치 상점으로 들어갑니다.]
피지컬 (40/100)
정신력 (50/100)
오더 (25/100)
판단력 (37/100)
‘뭐? 내 피지컬이 이렇게 약하다고?’
정명은 발끈했지만 어쩐지 이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전생에서 2부리그 선수로 프로게이머 인생을 마감할 때, 자신은 게이머 재능이 별로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으니까. 손목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고 말이다.
오더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은 오더를 맡은 적이 없으니 이해가 가는 수치였다.
잠깐 고민하던 정명이 피지컬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그에 반응하듯 머릿속에 글자가 떠올랐다.
[피지컬 능력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300 포인트
잔여 포인트 : 1000
‘진짜로 피지컬을 올릴 수 있는 건가?’
이 상점이 진짜라면 부족한 재능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몰랐다. 재능을 뛰어넘어 1부리그 주전으로, 어쩌면 그 이상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
다만, 그렇게 대단한 상점이니만큼 올리는 것은 신중해야했다.
정명은 당장 피지컬을 올리는 것은 보류하고, 다른 것도 둘러보기로 했다.
[특수능력 상점으로 이동합니다.]
[수확하는 농부]
-미니언 막타를 놓칠 확률이 급감합니다.
(피지컬 50, 정신력 45 이상)
[5:5 확률이 아니다]
-재빠른 강타활용으로 오브젝트 스틸을 당할 확률이 급감합니다.
(피지컬 75, 정신력 75 이상)
[기적의 딜 교환]
-1대 맞으면 2대 친다.
딜교환에서 이득을 볼 확률이 급상승합니다.
[적절한 포지션]
-격렬한 한타에서 가장 적절한 포지션이 눈에 들어옵니다.
[체크는 서폿이]
-상대방의 스킬, 서머너 스펠의 쿨타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킬 각]
-스킬 데미지를 계산하여 킬 각을 정확히 잡을 수 있습니다.
[???]
-???
.....
아무래도 특수능력은 당장 구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올릴 수 있는 것은....
“새꺄! 뭘 멍때리고 있어. 집중 안 해?”
“아, 예! 죄송합니다!”
자신보다 어린놈에게 욕을 얻어먹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리고 팀 NPG는 원래 이런 곳이라는 것 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1군, 2군 선수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상점을 잠깐 구경했던 정명은 시간이 부족하여 포인트로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회귀 후 첫 게임을 치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