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173화 (173/175)

173화

오리지널(11)

2초 거리면 충분히 어검술의 사정거리 안이다.

추력을 더해 놈을 떨쳐낼 수 있다면 어검술은 별 위협이 안 되지만, 오리지널은 강기로 만든 엔진 덕에 분진 폭발의 힘을 그대로 추력으로 옮길 수 있다.

따라붙으며 어검술을 써서 계속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상태면 따라잡히는 것도 금방이다.

열선 공격마저 통하지 않는 상태에 도망가기도 어렵다.

그런데 상대가 대화를 원한다?

이건 시간을 벌 기회다. 시간이 있다면 공방 없이도 벌레를 늘려 열선 공격 횟수를 늘릴 수 있다.

= 나노 머신 BZ-08과 10, 확보하고 있지.

- 예, 리퍼.

BZ-03과 05는 끝장낸 뒤 시간이 없어 해킹도 못했지만, BZ-08과 10은 수확까지 마치고 나노 머신 자체를 온전히 손에 넣었다.

= 그 두 개체를 몽땅 투입해서 벌레를 만들면 열선을 몇 발까지 늘릴 수 있지?

- 20발 이상 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공방이 없기에 벌레 개체 수를 확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 그거야 적당한 서식지를 찾으면 해결될 일 아냐.

- 그렇긴 합니다만, 벌레들의 대규모 서식지를 찾아도 최소 72시간이 필요합니다.

= 공주부 생체 드론들 죄다 동원해서 서식지를 찾아.

- 예, 리퍼.

= BZ-08과 10 두 개체는 사제 쪽으로 이동시켜.

그렇게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오리지널이 1초 거리까지 따라붙었다.

어검은 여전히 대화를 원한다는 한글을 그리고 있는 상태.

= 농꾼, 방수를 움직여 대답해줘. 대화에 응하겠으나 조건이 있다고.

유사 기맥에 공력을 불어 넣는다. 검기를 반짝이는 소도를 쥔 방수가 내 후방까지 길게 풀려나 한글을 그린다.

- 조건은?

농꾼이 어검의 움직임을 읽고 그 뜻을 내게 전한다.

= 대화는 땅 위에서, 그 전에 당장 100m의 안전거리를 원한다.

내 뜻을 방수가 움직여 전한다.

오리지널이 거리를 벌린다. 정확히 100m다.

- 이제 대화를 위해 같이 고도를 내리는 것이….

= 두 번째, 내 일행이 떠나는 것을 막지 말 것.

지금 사제가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되는 상황. 그러니 먼저 보내 사제의 안전을 확보한다.

사제가 없으면 내 안전은 지금보다는 나아진다. 나 혼자라면 좀 무겁더라도 오리지널을 떼어 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 막지 않겠다.

오리지널의 대답에 사제를 향해 입을 연다.

“사제. 아무래도 너 먼저 가야겠다.”

“무슨 소리요?”

“놈이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더군. 사제가 떠나는 것을 막지 않을 거다.”

“그 소리를 믿소?”

“지금 상황이라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 해 줄 일이 있다.

말을 끝내며 전음을 날린다. 동시에 사제가 해야 할 일들을 데이터 통신으로 넘긴다.

- 이걸 하면 저놈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오?

내가 넘긴 계획을 보며 사제가 물었다.

- 천강의 머리를 날린 수법, 현재는 세 번밖에 못 쓰지만 네가 계획대로 움직이면 한 번에 스무 번 이상을 쓸 수 있어.

- 젠장, 파머 그 마귀의 짓거리는 이해할 수가 없구려. 이런 벌레가 천강의 머리를 날리는 수법과 연관이 있다니.

- 부탁한다.

- 최대한 빨리 해보겠소.

사제의 대답이다.

허리를 감고 있는 방수가 풀려나기 무섭게 사제는 피풍의를 펼쳤다. 그리고 그런 사제의 등 뒤로 강기로 만든 원통이 생성된다.

뒤에 노즐까지 달린 것이 오리지널 놈이 만든 것과 같다.

콰콰콰쾅!

강기 노즐로 추력을 뿜으며 사제가 잽싸게 멀어져 간다.

사제와 나도 그냥 저걸 만들어서 추력을 더해 튀는 게 더 나았으려나?

아니다. 나나 사제가 저걸 만들어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다. 기껏해야 천도공을 운용할 수 있는 시간 정도?

하지만 천강인 오리지널은….

아나, 생각해 보니 나 혼자가 되어도 도망가기는 그른 건가?

내가 저걸 만들어 추력을 더한다 해도 오리지널은 천문위도 아닌 천강이다. 천강의 심후한 공력으로 저걸 몇 개나 더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천천히 고도를 낮추겠다. 초당 3m씩.

놈의 뜻을 따라 서서히 활공하며 지상으로 내려섰다.

=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여전히 방수를 움직여 검기로 허공에 한글을 쓴다.

- 통신으로 이야기하는 게 편하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프로그램 전문가에게 미쳤다고 통신 채널을 열어 줬다가는 해킹당할 지도 모른다.

= 불가.

- 그렇다면 이 상태로 이야기를 하지.

그나저나 놈이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궁금했다.

- 나와 손을 잡지 않겠나?

= 무슨 소리지?

- 내 목적은 중원 정복. 네 목적은 무공 수확. 목적이 다른 우리가 싸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니 오리지널이라면 연구소에서 나름 심층 테스트를 거쳐 뽑은 프로그래머잖아. 도대체 저딴 소리를 하는 인간을 아무 대책 없이 이 시대로 던졌다니 울 엄마지만 진짜 너무한다.

프로젝트 책임자잖아!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혹시 저 인간도 나 같은 경우인가? 연구소 누구의 인척으로 은근슬쩍 끼워 넣은?

아니 나는 스페어라 그게 가능한 거지, 저건 오리지널이잖아. 프로젝트의 메인인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 대답하기에 앞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 물어봐라.

= 우리가 파견한 오리지널 본인이 맞는 건가?

- 눈치가 빠르군.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나오는 대답이 이따위라니.

내가 원인인가? 엄마가 나를 끼워 넣는다고 한눈팔아서 다른 사람이 같은 짓을 하는 것을 잡아내지 못한 건가?

- 나는 너희들이 파견한 강상혁이 아니다. 그 기억을 가진 무림인이지.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아니 이쪽에 기억 데이터를 원활하게 이식하려면 나처럼 갓난아기 때 나노 머신을 주입하거나, 최소한 자아가 확고히 성립되지 않은 나이를 대상으로 하는 게 정석이잖아?

- 내 외형이 특이했던 탓이 크지. 배신당해 상처 입어 호신강기를 유지할 수 없던 초극 고수를 무공에 재능 있는 열 살 미만의 아이로 착각한 거지.

젠장, 리퍼의 육체를 선정하는데 얼마나 대충 처리했으면 그딴 일이 일어나!

연결이 끊어진 이유도 뻔하네. 나노 머신의 치료 기능으로 초극 고수의 상처를 치료했으니 호신강기가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잖아.

나노 머신이 주입한 오리지널, 강상혁의 기억은 그냥 이 시대의 노회한 무림인에게 21세기의 지식을 줘 버린 격이 된 것이다.

- 대답은?

= 오리지널 본인이 아니라면 누군지는 밝혀야 하는 게 예의라 보는데?

- 이번에 새로이 백련교의 무상(武相)이 된 천망(天網) 송한이 바로 이 몸이지.

역시 십만대산에서 온 마교 놈이다. 그나저나 별호가 천망이라니 자신과 원한 맺은 놈들은 놓친 적이 없다는 건가?

= 내가 송한 당신과 손을 잡아서 얻는 게 뭐지?

- 자네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거지. 내가 지속적인 무공 수확을 보장하지.

= 어떻게? 백련교가 중원을 장악한다면 우리가 수확의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정파는 망할 것이 분명한데?

- 수확 대상자만 살려 놓으면 될 일 아닌가? 어디 섬 같은데 몰아넣고 나노 머신들을 손봐서 말이야. 증강현실을 잘 덮어씌워 제 놈들끼리 싸우게 만들면 놈들의 무공도 늘 테고, 장기적 수확에 큰 문제가 없을 텐데.

순수하게 무공 수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 원한다면 수확 대상자들을 몰아넣을 장소는 내가 알아봐 줄 수도 있네.

이게 놈이 내게 손을 내민 까닭인가?

중원 제패에 앞장서야 할 자들, 그동안 힘들여 키웠을 게 분명한 천강과 천문위들이 하루 사이에 내 손에 떼 몰살당했다.

공방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데이터는 죄다 삭제된 상태,

21세기의 기억이 있다지만 이 시대 무림인이 기본 베이스라 제대로 활용을 못 한다.

기껏 공방을 돌려 뭔가를 만들어낸다 해도 카피 매와 같은 생체 드론 일부일 게 뻔하다.

마교의 전력에 생체 드론이 더해지면 중원 정복도 꿈은 아니다.

내가 여기저기에 뿌려 놓은 생체 드론들이 없다면 말이다. 아니 내가 뿌린 것은 생체 드론만이 아니다. 그것들을 다루는 방법도 뿌렸다.

서로 같은 패를 지녔으니 일방적인 싸움이 아니라 머릿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수확 대상자인 천강 넷이 살아 있다면 그들을 움직여 생체 드론을 다루는 자들, 나노 머신 보유자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넷은 내게 모두 죽은 상황.

그래서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정파 무림의 핵심 전력이 되어 버린 수확 대상자들을 한 번에 치울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좋을 게 없는 제안이다.

진짜로 놈이 무림을 장악해서 수확 대상자들을 섬에 몰아넣어 증강현실의 환상 속에 가둬 버리는 일이 성공하면 나는 놈의 최대 위험 요소가 되어 버린다.

수확 대상자들을 증강현실 속에서 꺼내 줄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놈이 나를 어떻게 할지 뻔한 일이다.

= 나에게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수확 대상자들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일에 협조하라는?

일단 장단을 맞춰 준다. 내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니 말이다.

- 그렇지.

= 그래서, 내 개인에게 돌아올 이득은?

관심이 있는 척 묻는다.

-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보장하지.

놈이 뻔한 소리를 지껄인다.

= 일인지하 만인지상? 그보다는 강서와 절강이 좋을 것 같은데?

중원 정복 운운하는 놈의 수준에 맞게 놀아 준다.

- 중원 13개 성 중 두 곳의 패권을 원한다?

= 백련교에 대항할 것이 뻔한 정파의 수확 대상자들을 싸그리 정리하는 일인데, 그 정도는 받을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놈의 어검에 움직임이 없다. 고민하는 것인가?

잠시 뒤 어검이 한글을 그린다.

- 좋다.

놈의 수락에 나도 손가락을 움직인다.

= 두 달, 그쯤 뒤에 수확 대상자들을 이끌고 찾아가지. 그전까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놓도록 해.

두 달 뒤는 개뿔, 벌레 생산이 끝나면 바로 찾아갈 거다.

- 그럼, 이제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성의를 보여줬으면 하는데?

= 성의?

- 자네가 수거해 간 BZ-08과 10의 반환을 원한다.

젠장. 잘 나가다가 왜 지랄이야!

= 먼저 강탈해 간 공방을 돌려준다면야.

놈이 들어줄 리 없는 조건을 내건다.

- BZ-10의 절반을 먼저 넘기면 확인 뒤 공방의 4분의 1을 넘기지.

뭐야, 이 새끼? 그 지랄해서 빼앗은 공방을 돌려주겠다고?

- 대답이 없군. 설마,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 그건가?

아니 잠시 늦었다고 그걸 또 바로 알아채냐? 하긴 천강에 나노 머신 보유자니 100m 거리를 격하고 내 안색을 살피는 건 어렵지도 않다.

- 먼저 보낸 일행에게 들려 보냈다는 건가? 두 개체의 나노 머신을 이용해 천강을 해치운 광학 병기를 늘리려고?

내 눈에도 놈의 얼굴에 서리는 미소가 분명히 보인다.

- 역시, 그랬군. 그 망할 광학 병기는 연구소에서 보낸 물건이 아니라 네가 자체 제작한 거였어!

갑작스레 광학 병기가 튀어 나오니 연구소가 직접 개입한 줄 알고 쫄아서 대화를 신청한 거였어?

- 그 말은 연구소의 물리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말이지? 게이트의 물리적 연결이 불안하다는 말! 네 놈만 죽으면 내 앞길을 막을 자가 없다 그거군!

그러다가 내 반응을 보고 그게 아닌 걸 눈치 챈 거고.

씨발!

바로 몸을 돌리고 피풍의를 펼친다.

콰콰콰쾅!

분진 폭발의 추력을 내뿜으며 솟아오른다.

눈앞의 화면에 놈의 전신이 강기로 뒤덮인다. 강기로 만들어진 원통 노즐이 여기저기 생성된다.

아나, 씨발! 저건 너무하잖아! 완전 로켓 수준이잖아!

-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봐라!

어검으로 크게 글자를 그려 나를 비웃는다. 천강이라 공력이 넘쳐난다 그거냐?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놈이 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줄인다.

하지만 빠르다고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거든.

콰콰쾅!

추력을 토해 한층 더 치솟기 무섭게 놈이 내 발밑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화악!

놈의 몸에서 강기로 만든 날개가 치솟는다. 그리고 강기로 만든 원통 몇이 사라진다.

아니 기본 베이스가 무림인인 주제에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건 왜 저리 빠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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