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오리지널(10)
= 내가 신호하면 오리지널부터 처리….
아니 오리지널을 죽여도 천강이 둘이나 남는다.
BZ-08과 10도 따로 떨궈서 처리한 것이 우리다. 그런데 그보다 강한 BZ-03과 05를 동시에 상대한다?
오리지널이 죽은 것에 눈 뒤집혀서 달려들 게 뻔한데?
그 둘을 상대로는 도망가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거기에 BZ-08과 10의 데이터를 보면 BZ-03과 05는 경공도 남다르다.
나야 피풍의의 엔진을 사용하면 그 둘의 경공 실력이 어떻든 도망가는 데 문제없다.
하지만 피풍의에 엔진이 없는 사제는? 기막으로 분진 폭발의 폐쇄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근접 상황에서 천강이 기막 형성을 방해하면 답이 없다.
그러니 오리지널부터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 첫발로 오리지널을 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 예, 리퍼.
내 명에 농꾼이 바로 답했다.
- 사제.
- 할 말 있으면 하시오.
내 전음에 바로 사제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려 있다. 하나도 상대하기 힘든 천강이 셋이나 접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 첫발은 놈들의 수장을 노릴 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제에게 내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 놈들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소리잖소.
- 그렇지.
- 망할 사형…. 믿겠소.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수천수만의 통신 벌레들이 내 계획에 따른 공격 대형을 만든다.
작디작은 그들의 다리에 매달린 것은 한 방울의 물방울.
렌즈 대용으로 써먹을 것들이다.
두 천강을 때려잡은 방법은 별것 없다. 근본은 태양 빛과 렌즈를 이용한 불장난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벌레 하나가 가진 물방울 렌즈로 낼 수 있는 화력은 종이 하나에 그을음이나 남길 정도의 미약한 화력이다.
하지만 그 열기 수천수만을 겹치면 천강도 순식간에 태워 죽이는 고열선 병기가 되는 것이다.
오리지널이 걸어오는 와중에 우리 둘을 한 번 쓰윽 훑어보더니 입을 연다.
“어째 기본 프로그램만 다룬다 했더니 두 번째는 프로그램 전문가가 아니라 전투 전문가였을 줄이야. 천문위도 되지 못한 몸으로 다수의 천문위들을 때려잡고 천강마저….”
오리지널의 말 따위 들을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놈의 위치. 놈이 공격 가능 포인트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뒈져!!”
따사로운 태양 빛이 물방울 렌즈를 통과해 따갑게 변하고, 그 따가운 열선 수천수만이 그대로 오리지널의 머리에서 겹쳐졌다.
오리지널의 머리에 불이 붙는 순간, 녀석의 몸이 뒤로 튕기듯 물러난다.
동시에 BZ-03과 05가 나와 사제를 향해 달려든다.
남은 영약은 이미 입안으로 죄다 털어 넣은 상태. 거기에 오리지널이 입을 열 때 그중 한 쌍을 삼켜 놓았다.
우웅!
바로 천도공으로 약력을 터트리며 전신을 섬광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칼날로 섬광을 몰아가며 발로는 바닥을 박찬다. 그런 발의 움직임을 따라 내 몸이 뒤로 크게 물러난다.
뒤로 물러나는 나를 BZ-03이 바싹 따라붙으며 장군검을 휘두르니. 계획대로 섬광이 몰려 있는 칼날을 내밀어 맞받을 수밖에 없다.
쾅, 카콰쾅!
힘과 힘의 격돌.
내 몸이 사정없이 뒤로 밀려난다.
BZ—08과 10을 물러서게 했던 섬광의 폭풍은 BZ-03을 상대로는 검격을 막아내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잠시라도 BZ-03을 묶어 두는 것이 원래 목적.
그 잠시는, 물방울 렌즈가 만들어낸 수만의 빛줄기들이 BZ-03의 머리에 몰려들어 하나의 점에 집중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파핫!
BZ-03의 뒷머리 절반이 사라지며 그 신형이 허물어진다.
이에 바로 고개를 돌려 사제 쪽을 살핀다.
콰르르릉! 콰쾅!
그 와중에 하늘에서 벽력이 떨어져 내 몸을 때린다. 급속 충전으로 배터리가 꽉 찼다.
사제 쪽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 잃은 몸뚱이 하나가 바닥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몸통에서 떨어진 머리는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다.
뒷머리에 열선을 맞은 BZ-03과 달리 목덜미에 열선을 맞고 머리가 잘린 것이다.
콰작!
사제의 칼이 잘린 머리통 위로 떨어져 뇌를 박살냈다.
그렇게 뒷마무리까지 마친 사제는 벗어 둔 피풍의를 걸치며 알몸을 가렸다.
고개를 돌리니 죽어라 내달리는 오리지널의 뒷모습이 보였다.
영문 모를 수법에 천강 둘이 죽어 나자빠지자 바로 몸을 뺀 것이다.
“바로 안 쫓을 거요?”
사제가 물었다.
“천천히. 준비가 다 되면 쫓는다.”
통신 벌레의 다리에 렌즈로 쓸 물방울이 죄다 증발한 상황.
당장 뒤쫓아 가도 우리에게 오리지널을 공격할 수단 따위는 없다.
통신 벌레의 다리에 물방울을 다시 단 뒤에야 쫓아갈 수 있는 것이다.
- 리퍼, 렌즈 재장착이 끝났습니다.
아니 쫓아갈 필요도 없었다.
열심히 도망치던 오리지널 놈이 다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온다.
“도망가던 놈이 왜 다시 오는 거요?”
사제가 물었다.
“내 수법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세웠다는 거지. 사제 한 번 남았지?”
“아직 한 개씩 남았으니, 한 번은 쓸 수 있소.”
내 말에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는 한 방 후려치면 바로 뒤로 빠져서 매를 이용해 상황만 살펴. 절대 나설 생각하지 말고.”
“내가 빠지면 사형 혼자 놈을 감당할 수 있겠소?”
“안되면 바로 튈 거야. 사제도 봐서 알잖아. 이것만 있으면 도망가는 건 문제 없다고.”
내가 피풍의를 두드리며 웃자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우리 둘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영약을 머금고 놈을 기다렸다.
놈은 우리와 백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발을 멈췄다. 공격 포인트 밖이다.
= 공격 범위를 알아낸 건가?
- 그런 듯합니다.
= 그게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건가?
- 통신 벌레에 대한 데이터가 있기에 태양광과 통신 벌레를 이용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태양의 현재 위치를 살펴 계산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시간을 끌어야 하나?
해가 높이 뜨면 뜰수록 공격 범위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모를 상대가 아니지 않나.
- 움직입니다.
놈이 천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 공격 포인트에 들어서면 공격해!
공격 범위를 몇 장 앞두고 놈이 발을 멈췄다. 아니 멈추는 순간 놈의 손이 크게 움직였다.
쾅, 콰콰쾅, 쾅쾅!
놈의 손에서 뻗어 나간 장력이 땅을 연신 후려치며 흙먼지가 잔뜩 일어난다.
휘이이잉!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흙먼지를 전신에 휘감고 우리를 향해 내달린다.
먼지로 햇빛을, 열선의 초점을 흐리는 것이다. 수천수만 열선이 정확하게 중첩되어야 호신강기를 뭉개고 천강의 육체를 단숨에 태울 수 있는데, 저렇게 먼지를 휘감으면 놈의 육체에 정확한 초점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오리지널의 대책이 저것뿐이라면 내 승리다.
- 피풍의 펼쳐!
= 지져!
전음과 손으로 내린 명령에 사제가 피풍의를 펼치고 농꾼이 방수를 움직여 전격을 날린다.
덮쳐드는 먼지 폭풍에 전격이 닿는 순간.
콰쾅, 콰콰쾅!
격한 폭발이 일어나며 사제와 나를 허공으로 날리고 놈을 감싼 먼지 폭풍을 날려 버린다.
놈이 먼지 폭풍을 두르기 위해 기막을 형성했기에 분진 폭발을 일으킬 조건이 맞춰진 것이다.
어쨌든 먼지라는 보호막을 잃은 놈을 향해 렌즈의 초점이 맞춰진다.
허엉!!!!!!!!
순간 놈의 입에서 음량의 폭탄이 터진다.
허공에 밀려난 내 몸을 울리다 못해 근처의 공간마저 울리는 음량이다.
화르르륵!
순간 녀석의 머리와 어깨 가슴에서 불길이 슬쩍 치솟다가 사라진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공간의 울림에 초점이 흔들렸습니다. 열선을 하나로 집중시키지 못해 호신강기를 깨지 못한 겁니다.
“그게 말이 돼?”
- 공기 중 수증기의….
농꾼 녀석이 뭔가 잔뜩 설명하는 꼴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소리다.
“시간차 공격을 하던 어쨌든 남은 두 발로 어떻게 해봐!”
- 세 발 다 쏟아 부었습니다.
“젠장!”
뭔가 시도라도 해보려면 150초 뒤에야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러니 당장은 도망가야 했다.
“사제, 튀어!”
당장 오리지널을 뒤로 한 채 활강한다.
- 리퍼, 오리지널이 양력에 대해 떠올린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니 놈도 옷자락을 날개처럼 펴서 내달리고 있었다.
하긴 놈도 21세기의 현대인. 어떻게 보면 눈치 채는 게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쾅, 콰콰쾅!
뒤에서 폭음이 들린다.
젠장, 놈이 분진 폭발을 사용해 속도를 올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사제, 잡아!”
바로 옆에서 활공하고 있던 사제를 향해 방수를 길게 뻗는다.
사제가 방수를 잡기 무섭게 바로 피풍의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켜 추력을 내뿜는다.
“저거 저렇게 쫓아오게 둘 거요.”
사제를 내 쪽으로 바싹 끌어당기자, 사제가 전신을 피풍의로 감싸며 물었다.
“수가 없잖아?”
“뇌정을 충전할 때 쓰는 벽력이라면, 놈의 옷 정도는 태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제의 말대로 마원의 전격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천강의 고수, 옷이 아니라도 기막으로 날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니 기막으로 날개를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천강이 아니라 초극만 되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괜히 마원으로 벽력을 떨궜다가는 놈이 마원을 먼저 처리하려 할 수 있다.”
“하긴 마원이 없으면 뇌정을 채울 수 없으니….”
젠장, 사제와 이야기하다 보니 놈이 6초 거리까지 쫓아왔다.
= 어떻게 된 거야?
- 오리지널이 강기로 폐쇄 공간을 유지, 폭발의 힘을 죄다 추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젠장, 내가 피풍의 안에 인공 근육들로 만든 엔진을 오리지널은 강기로 형성했다는 소리다.
영상을 보니 오리지널 등판에 강기로 만들어진 노즐이 형성되어 뒤로 불꽃을 뿜고 있었다.
나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속도다.
= 어떻게 저렇게까지 속도를 낼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금속 분말을 쓰는 나보다 더 큰 추력을 얻기 힘들 텐데?
- 리퍼 쪽의 체중이 몇 배나 무겁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젠장, 나 혼자도 아니고 사제까지 같이 있으니 당연하다.
몇 마디 떠들지 않았는데 4초 거리까지 줄어 있다.
하지만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걸린다. 150초가 지난 탓이다.
땅 위에 있을 때보다 이렇게 허공을 날고 있으니 지형 따위 상관없어진다.
열선으로 맞추기 더 쉽다는 말.
= 시간차 공격을 해서 끝장내.
- 예, 리퍼.
잠시 후, 오리지널의 몸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치솟다가 그의 전신을 강기가 둘러싸 버렸다.
콰쾅, 쾅!
굉음과 함께 강기가 깨지며 오리지널의 몸이 잠시 아래로 떨어졌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 비행을 계속한다.
“뭐야?”
- 기막입니다. 기막을 넓게 펼치고 있다가 열을 감지하기 무섭게 강기로 전환해 인체에 닿는 빛을 차단한 겁니다.
그렇게 되면 초점을 다시 잡아야 한다. 아니 렌즈로 사용하면 물방울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그리고 한 방으로는 저 녀석을 잡을 수 없다.
“지금 세 발 다 쓴 거야?”
- 예, 리퍼.
태양광을 이용한 열선은 동시에 세 발밖에 쓸 수 없는데, 세 발로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이걸로는 놈을 잡을 수 없다는 소리가 된다.
젠장, 뭔가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2초 거리까지 거리를 줄인 오리지널로의 품에서 비수가 하나 튀어 나온다.
어검술로 공격하려는 건가?
아니 비수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대신 오리지널의 몸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 야, 저거 아무래도 한글 같지?
- 예, 리퍼. ‘대화를 원한다.’라고 쓰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