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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71화 (171/175)

171화

오리지널(09)

피와 살이 된 인영과 달리 BZ-08의 장군검은 멀쩡한 모습으로, 천강의 기세를 유지한 채 동굴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동굴을 나오며 그 장군검을 받아드는 자는 BZ-08이다.

망할 놈이 어검술을 사용해 돌무더기를 뚫은 것이다. 그리고 초극 한 명을 시켜 그 뒤를 쫓아 나가게 한 것이다.

우린 어검의 기세에 그 뒤로 딸려오는 초극 나부랭이를 BZ-08로 찰떡같이 믿었고 말이다.

젠장!

상황을 파악한 즉시 사제에게 방수를 뻗어 허리를 감는다.

그리고 바닥을 박차 몸을 뒤로 날리며 드러눕는다.

콰콰콰쾅!

순간, 추력을 내뿜으며 피풍의를 펼친다.

콰뢋!

내가 뒤로 날기 무섭게 살벌한 궤적이 나와 사제가 서 있던 공간을 휩쓴다.

볼 것도 없다. BZ-08이다.

헛 칼질을 하기 무섭게 놈은 바닥을 박차고 나를 따라붙는다.

“급속 충전!”

여기서 칼로 한 방 먹이고 놈이 주춤하면 바로 끝장낸다.

- 현 위치에서 급속 충전 시 발생하는 전격에 벌레 3할의 손실이 예상됩니다.

“젠장!”

되는 일이 없다.

어쨌든 놈의 몸이 잠시라도 멈춰야 뭘 할 수 있다.

거기다 동굴 안 초극 고수들의 눈을 가려야 했다.

방수를 움직여 알몸의 사제를 허공으로 던졌다.

- 입구를 무너트려 놈들이 못 나오게 막아!

사제에게 전음을 날린다.

BZ-08은 동굴을 향해 던져지는 사제는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쫓기 여념 없다.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몸을 바로 세운다.

몸을 세우니 날아가던 속도가 급속도로 줄고 BZ-08의 공격이 들이닥친다.

천도공을 활용하여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지만, 약발이 떨어지고 배터리도 비어 버린 몸으로는 천강의 공격을 받아치는 것은 무리.

그러니 피하는 수밖에 없다.

= BZ-10의 데이터 활용.

농꾼의 인도대로 발이, 몸이 움직인다.

둘의 무공 계열이 같으니 수확된 BZ-10의 데이터로 BZ-08의 움직임을 예측해 그 공격을 피하는 것이다.

휘잉!

장군검이 허공을 갈랐다. 아니 허공을 가르는 즉시 다시 내 움직임을 쫓아온다.

BZ-08은 천강답게 농꾼이 인도하는 내 발의 방향과 내 몸의 무게 중심을 보고 내 움직임을 예측했다.

바로 장군검의 궤도를 비틀어 내 목을 노린다.

휘익!

농꾼의 예측 섞인 몸놀림을 간파하고 움직인 장군검이 다시 허공을 가른다.

당연했다.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내 팔다리의 전신 근육만이 아니다.

농꾼이 등과 종아리, 허리에 달린 방수를 움직인다. 그러니 내 몸을 보고 내 움직임을 예측한 공격은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통하는 것도 잠시다. 천강의 체내에 자리 잡은 나노 머신이 숙주의 예측이 어긋나는 원인을 파악해 직감으로 알려 줄 게 뻔하니 말이다.

하지만 더는 위험하게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콰콰콰쾅!

사제가 아홉 초극 고수들이 동굴 밖으로 기어 나오기 전에 동굴 입구를 무너트린 것이다.

물론, 동굴 입구를 막은 돌무더기야 초극 고수의 강기 몇 방이면 사라질 것들이다.

하지만 통신 장비를 가진 그 아홉의 시야가 지금은 차단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뒈져!”

내 외침과 동시에 왼손이 BZ-08을 가리킨다.

내 손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내 손이 가리킨 BZ-08의 머리에는 불이 붙었다.

“헛!”

깜짝 놀란 BZ-08이 급히 몸을 낮추며 뒤로 물러난다.

순식간에 삼 장을 물러나는 그의 발이 막 땅에 닿으려는 순간, 왼쪽 허벅지에 불꽃이 피어오른다.

파학!

그리고 그대로 허벅지를 태워 버린다. 살과 근육만이 아니라 뼈마저 순식간에 타서 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순식간에 한쪽 다리를 잃고 외다리가 된 BZ-08이 놀란 눈이 되어 나를 바라보지만….

화르륵, 파학!

다시 불꽃이 일며 머리가 터져 버렸다.

콰콰쾅!

무너진 동굴 입구를 다시 뚫고 초극 고수가 튀어 나왔지만, 그 앞에서는 알몸에 칼을 든 사제가 대기하고 있었다.

초극 고수들이 튀어 나오는 족족 사제의 칼이 강기를 번뜩이며 뇌성을 일으키니 순식간에 둘이 죽어 나자빠졌다.

남은 일곱이 감히 동굴 밖으로 튀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

사제가 그렇게 동굴 앞을 확실히 틀어막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력을 억제해 호신강기를 해제한다.

- BZ-08 해킹을 시작합니다.

농꾼이 열심히 일하는 증거인 문자열이 눈앞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 문자열 너머로 사제의 전신이 금속 코팅되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리고 전신에 치솟는 도기.

오올!

섬광이 아닌 전신에 유사 강기를 두른 사제가 동굴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배터리가 없어도 초극 고수들을 상대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아니 솔직히 저 정도의 적들을 상대하는데 약 먹을 필요가 있나?

분진 폭발로 합공과 협공을 방해하면 천도공 단독으로 운용할 수 있는 어설픈 천문위의 전투 감각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쓸 데 많은데….”

약 낭비하는 사제의 모습에 슬쩍 불만이 생긴다.

그런데, 사제는 아주 느긋하게 굴 안의 초극 고수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약력은 순간적인 것. 그런데 사제의 몸을 물들인 유사 강기는 굴 안의 초극 고수들을 모조리 해치울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

못해도 수십 초가 유지된 것이다.

사제가 동굴 안에서 나와 피풍의를 걸치고 내 곁에 섰다.

“영약을 다 털어 넣은 거냐?”

수십 초 동안 전신을 유사 강기로 뒤덮었으니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저 정도 놈들 상대하는데 영약을 소모할 이유가 있소?”

“영약을 안 먹었다고?”

“다 가지고 있소.”

사제가 입을 벌려 입 안에 남은 영약을 보여준다.

“어떻게 한 거야?”

“혹시 싶어 그냥 천도공을 사용해 써봤소. 그러니 됩디다.”

“환강처럼 모으는 것도?”

내 물음에 사제가 피풍의를 벗었다. 해보려는 것이다.

사제의 전신이 금속으로 뒤덮이고 뒤이어 전신에 도기가 치솟는다.

오올!

도기가 유사 강기가 되는 순간, 전신을 뒤덮은 유사 강기가 칼을 향해 몰려들었다.

우우웅!

그리고 사제의 칼에 심상치 않은 기세를 피어 올리는 영롱한 빛이 몇 초간 머물다 사라진다.

“오래 유지는 안 되는군.”

사제가 툴툴거렸다.

“약 없이 그냥 섬광격도 해봐.”

콰르르릉!

급속 충전을 한 사제의 몸이 다시 금속으로 물들었다.

오올!

백광이 전신을 뒤덮고 순식간에 칼로 모여든다.

콰르릉!

그리고 모여들기 무섭게 터져 나간다.

영약이나 유심조를 쓰지 않아도 천문위를 상대로 충분히 써먹을 만한 방법이다. 하지만 당장 상대해야 하는 적들이 천강이다.

“약 안 먹고 천강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군.”

“내 생각도 그렇소.”

이걸 믿고 천강에게 덤벼들 수는 없는지라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

- BZ-08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사제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농꾼이 해킹을 끝내고 BZ-08을 수확했다.

= BZ-08은 이번 공격을 어떻게 해석했지?

한 방에 머리를 당한 BZ-10과 달리 BZ-08은 머리가 멀쩡한 상태에서 두 번이나 공격을 받았다.

- BZ-08의 숙주는 심검(心劍)의 일종으로 착각한 듯하고, BZ-08은 공격 부위가 타오르는 열기만을 데이터로 남겼을 뿐 딱히 분석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 오리지널에게 데이터가 넘어갔을까?

- 오리지널과 그 일행이 금정산을 떠난 이후 호신강기를 해제한 인원은 없습니다.

데이터베이스가 있어 BZ-08과 10의 데이터를 받아 저장해 놓았을 수는 있다.

허나, 그런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해도 아직 그 데이터에 오리지널이 접촉하지는 않았다는 소리.

최대한 빨리 쫓아가서 해치워야 한다는 소리다.

= 놈들의 위치는?

- 현재 신풍 현도 부근을 지나고 있습니다. 놈들의 이동 속도와 리퍼의 이동 속도를 봤을 때, 지금 광동 남웅부(南雄府) 시흥(始興) 현도를 목표로 달린다면 어렵지 않게 놈들과 마주칠 수 있을 듯합니다.

“사제, 그만 가지.”

농꾼의 말에 바로 출발하려 했으나.

“옷 좀 입고요!”

사제가 마원이 던져 준 여분의 옷을 주워 입느라 몇 분이 소모되었다.

여기서 시흥현까지 거리는 대략 삼백 리.

마원을 불러내려 타고 내달린다.

이미 말이라는 생물의 한계를 벗어난 마원인지라 일반 장정의 배로 무거운 나나 사제가 함께 타도 내달리는 데 문제가 없다.

그렇게 마원을 타고 내달리며 BZ-08과 10의 데이터를 살핀다.

같이 초극 고수라 분류해도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듯 천강도 마찬가지.

오리지널과 다른 둘의 무력 수준이 BZ-08과 10과 비슷하면 다행이지만, 나이 차가 있으니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수확한 둘의 데이터를 뒤지니 BZ-03, 05와 오리지널의 무력에 대한 데이터가 제법 나온다.

그렇게 나온 데이터는 당연히 사제와도 공유한다.

“이거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들이오?”

BZ-08과 10이 우리 공격에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만한 공격을 받아본 경우가 숱한 것이다.

우리가 영약의 힘을 빌리는 등, 갖은 편법으로 짜내야 하는 위력을 오리지널과 BZ-03, 05는 평타로 날리고 있었다.

“솔직히, 사제와 나의 무력을 따지면 천강 하나 상대하는 것도 무리지. 하지만 오늘 우리는 천강을 둘이나 잡았어.”

“그 둘을 처리했듯, 남은 셋도 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래.”

“알겠소.”

그렇게 마원을 타고 이백 리쯤 갔을 때다.

- 리퍼, 오리지널 일당이 이동 방향을 틀었습니다.

농꾼의 보고와 함께 오리지널 일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화면이 떠오른다.

“들켰군.”

화면을 보니 놈들이 방향을 틀고 있는 방향이 우리 쪽이다.

바로 내달리는 마원을 세운다.

“싸우기 적당한 곳으로 이동한다.”

내 말에 농꾼이 재빨리 주위 지형을 훑는다.

그냥 무공으로만 싸운다면 아무 곳에서나 싸우면 되지만, 천강을 상대로는 무공으로만 안 되니 최적의 지형을 찾아야 했다.

농꾼이 알맞은 지형을 찾기 무섭게 마원이 움직인다.

- 증강현실로 포인트 공유합니다.

공격 가능 포인트들을 찾아낸 농꾼이 그 지형들을 파란빛으로 표시한다.

“아까도 그렇고, 마귀의 종자가 보여주는 이것들은 뭐요?”

사제가 물었다.

“놈들의 사지(死地).”

제일 넓은 포인트에서 마원을 멈춰 세운다.

- 벌레들 공격 대형으로 배치하겠습니다.

= 이번에는 급속 충전에 문제없게 배치하라고.

- 예, 리퍼.

= 마원 올려 보내.

나와 사제가 내려서자 마원이 피풍의를 활짝 펴며 내달린다.

콰콰쾅!

그리고 그 거체가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 높이 올라간 마원의 거체가 곧 시야에서 사라진다.

스텔스 모드로 주변과 동화된 것이다.

“영약은 몇 개 남았냐?”

“두 개씩 남았소. 사형은 몇이나 남았소?”

내 물음에 답한 사제가 반문한다.

“나는 세 개씩 남았다.”

사제는 두 번, 나는 세 번.

그게 우리가 잠시나마 천강과 맞설 수 있는 횟수다.

일 각쯤 지났을까?

BZ-03과 05 두 명의 천강을 양옆에 거느리고 오리지널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느긋하게 걸어오는 것이 당장 덤벼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꼴을 보니 대화라도 해보자는 모습이다. 물론, 나는 거기에 응할 생각이 없다.

생각해 봐라. 난데없이 쳐들어온 놈들에게 공방을, 수확의 핵심 지원 시설을 뺏긴 게 내 상황이다.

그뿐인가? 사부와 사제의 목숨까지 위협 받았다.

그러니 내가 할 대응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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