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오리지널(07)
이기어도가 대단한 수법이기는 하지만, 한계가 명확하기도 했다.
시전자의 의지와 내기로 움직이는 것이니 발휘되는 거리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움직이는 만큼 열심히 내달려 거리를 줄이려는 두 천강을 보면 확실했다.
그러니 속도를 올려 그 거리를 만들어내면 그뿐이다.
콰콰콰쾅!
피풍의 안에서 연신 분진 폭발이 일어나며 그 추력을 뿜어내니, 순식간에 이기어도 두 자루와 거리가 벌어진다.
“사부님은?”
이기어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물었다.
“저쪽으로 먼저 피하셨소.”
사제가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고, 농꾼은 눈앞으로 지도를 띄웠다.
피풍의를 펴고 내달리고 있는 사부의 위치와 내 위치가 지도에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사부님과 합류한다.”
내가 활공 방향을 사부 쪽으로 트는 순간,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린다.
- 미등록 전파 신호 감지…. 다수의 초극 고수를 감지했습니다.
지도 위에 갑자기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이 나타났다.
응 시리즈의 감지망에 걸려들지 않다가 갑자기 튀어 나오는 꼴이 오리지널의 부하들이 분명했다.
망할 놈들! 어째, 다섯 명만 있다 했다.
“사형, 사부가 위험하오!”
사제 말대로 사부는 열여덟이나 되는 점들 사이에 있었다. 움직임이 멈춘 것이 포위된 것이다.
“나도 보고 있다!”
콰쾅, 콰콰쾅!
답과 동시에 분진 폭발을 연신 일으켜 추력을 더한다.
저들이 일반적인 초극 고수라면 피풍의를 펼친 상태의 사부가 그냥 떨쳐내고 내달릴 수 있었을 터다. 사부의 발이 멈춘 것을 보면 최소한 천문위를 앞둔, 상 노개 급의 고수가 끼어 있는 게 분명했다.
천도공을 사용하는 사부라면 천문위를 앞둔 고수를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싼 초극 고수가 많다 해도 피풍의를 활용하는 경공, 의익행을 사용한다면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지금 포위당한 사부를 향해 BZ-08과 BZ-10, 망할 놈의 천강 둘이 달려오고 있다는 거다.
-20, 19…
“영약은 남아 있냐?”
두 천강이 사부에게 당도할 시간을 살피며 사제에게 물었다.
“입안에 한 쌍 남았소.”
사제의 대답.
문제는 배터리다.
= 사제도 급속 충전이 되나?
사제도 배터리를 죄다 소모했으니 채워야 했다.
- 가능합니다.
= 그럼 같이 해.
콰르르릉, 콰쾅!
벼락이 떨어져 내리며 전격이 나와 사제를 한 번에 감쌌다.
“이건?”
“섬전을 채운 거다.”
사부가 적들과 싸우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멀리서 울창한 나무 위로 날 듯 달려오는 천강의 고수 둘도.
- 11, 10…
“포위망을 뭉개고 사부님과 함께 몸을 피해. 저 둘은 내가 막을 테니.”
“알겠소!”
사제가 대답하기 무섭게 그의 허리를 묶고 있는 방수를 풀어낸다.
사제가 사부를 둘러싸고 있는 놈들을 향해 떨어진다.
칼 한 자루 들고 알몸으로 떨어지던 사제의 전신이 금속으로 뒤덮인다 싶더니 순식간에 백광으로 물든다.
초극 고수들을 상대로 2초간은 무적일터.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운용하고 있으니 2초면 포위망에서 사부를 빼내는데 충분하다.
그러니 나는 달려오는 두 천강에게 눈을 돌린다.
나무 위를 내달리는 그들과 허공을 활강하는 내 사이의 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둘의 발이 완전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을 노려.
“비수 난사!”
유사 기맥에 공력을 쏟아 넣는다.
방수가 쥔 비수가 강기를 토하고.
끼요옷!
내 양 옆구리에서 스피커가 울부짖는다.
호거술로 강화된 강기를 품은 비수들이 빛살이 되어 쏟아진다.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비수의 폭격에 두 천강은 장군검을 쳐들어 머리 위로 원을 그린다.
카콰쾅, 콰쾅!
장군검이 그리는 방어막을 강기 품은 비수들이 굉음을 토하며 두드린다.
수십 개의 비수가 날아갔지만, 둘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못했다.
다만, 내달리는 그 둘의 속도를 완전히 죽이고 땅 위로 처박았을 뿐.
“사형!”
사제의 외침이 아련히 들려온다. 이미 사부와 자신은 몸을 빼 내달리고 있으니, 나도 어서 내빼라는 소리다.
그런 소리 안 해도 나는 이미 두 천강의 머리 위를 지나 활강하고 있다.
콰콰쾅, 콰쾅!
그리고 두 천강의 공격을 대비해 추력을 더해 고도도 높인다.
두 천강은 사부와 사제 대신 나를 쫓아올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과 다른 둘이 해킹을 진행하고 있는 동굴을 향해 내가 날아가고 있는 탓이다.
사부와 사제의 도주는 순조롭다. 알몸의 사제가 피풍의를 펼친 사부를 업고 열심히 내달리니, 여타 초극 고수들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콰콰쾅!
추력을 더해 열심히 쫓아오는 천강 둘과의 거리를 넉넉히 벌린다.
BZ-08, 10이 천강이었으니 오리지널과 다른 둘도 천강으로 봐야 한다.
나노 머신을 보유한 천강이 다섯이다. 이건 아무리 고민해도 지금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것들로는 답이 안 나온다.
천강을 상대로 손이라도 써 보려면, 일단 해 뜰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해 뜨려면 얼마나 남았지?”
- 15,423초 남았습니다.
4시간 하고 좀 더 남았다는 소리. 공방의 해킹은 1시간 좀 넘게 걸리니, 공방을 일단 오리지널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소리다.
“오리지널을 상대하기 위해 최근에 만든 물품들. 거기에 대한 모든 데이터들 지금 삭제해. 오리지널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가능하지?”
- 예, 리퍼.
“거기에 공방이 가진 생체 드론의 제어권 죄다 박탈해.”
오리지널이 공방을 손에 넣은 다음 제일 먼저 할 일은 나를 잡아 죽이는 일이다.
- 예, 리퍼. 실행합니다.
공방에 생체 드론의 제어권이 남아 있으면 죄다 나를 잡는데 동원될 것이 뻔하니 미연에 방지한다.
“젠장,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으니 한 방은 먹여야지. 금속 분말 하나 준비해.”
내 명에 방수가 움직여 금속 분말 주머니 하나를 꺼낸다.
“동굴에 던지고 터트려!”
농꾼이 피풍의를 조작해 공방을 향해 급강하한다.
BZ-08과 10이 뒤에서 기를 쓰고 달려오지만, 그 둘과의 거리는 9초 차.
당장 신경 쓸 필요 없다.
초극 고수들이 튀어 나와 동굴 앞을 막지만, 그들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치워!”
유사 기맥에 공력을 때려 박고.
오올!
증폭 영역을 만드니, 방수가 도기 어린 비수를 던진다.
피피피피피피핑!
가진 비수를 다 털어내듯 일거에 쏟아낸다.
콰쾅, 카콰카콰쾅!
호거술의 증폭 영역을 통과해 유사 강기를 머금은 비수들과 초극 고수의 강기가 격하게 충돌한다.
그리고 그 충돌로 동굴까지 이어지는 한 가닥 길이 생기니.
휘이익!
금속 분말 가득 든 주머니 하나가 그 길을 따라 먼저 날아가고, 그 뒤를 푸른 전격이 뒤따랐다.
하나가 동굴로 들어가고, 하나가 그 뒤를 곧 뒤따르니.
쿠콰콰콰쾅!
굉음이 터지며 동굴이 무너졌다.
그 광경을 확인하기 무섭게 피풍의로 추력을 내뿜으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초극 고수들이 내던진 비수와 단검들이 대거 날아온다.
하지만 내 등에 달린 네 개의 방수에는 유사 강기를 내뿜는 소도가 쥐어져 있어 그 모든 것들을 거뜬하게 막아냈다.
놈들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고도까지 치솟기 무섭게 묻는다.
“오리지널과 안의 놈들은?”
- 해킹 공격에 어떤 변화도 없는 것이,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듯합니다.
젠장, 해킹을 위해 호신 강기를 해제하고 있으니 살짝이나마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천강이라 초극이나 천문위랑은 다르다는 건가.
“일단 사부님과 합류한다.”
내 말에 농꾼이 피풍의를 조작해 활공의 방향을 바꾼다. 그렇게 나는 일단 금정산을 벗어났다.
***
사부와 사제를 만나 청도방 총타로 간다.
물론 청도방 총타로 가기 전에 유진장이 죽어 나자빠진 곳으로 가서 그 시체를 가져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하들에게 유진장의 시체를 보여주며 청도방의 주인이 아직 사부임을 인식시켰다.
알몸의 사제는 자신의 거처에서 옷을 챙겨 입었다. 여분으로 만들어 둔 피풍의가 한 벌 있어 다행이다.
입고 있는 옷은 또 날아갈 것이 뻔했기에 여분의 옷을 챙겨 마원에 실었다.
“나도 금주법의 시술을 받았어야 했어.”
사부가 쓰지 않고 남은 개구단과 화원단 두 개씩을 건네며 툴툴거린다.
금속 이온을 체내에 축적하지 않은 사부다. 체내 배터리가 없으니 섬광격 자체를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섬광을 전신으로 물들이는 것도 무리. 오리지널을 비롯한 천강들에게 개량형 유심조가 통하지 않으니 사부는 싸움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
가진 영약의 숫자가 한정된 탓이다.
“이번 일 끝나면 시술을 받으시지요.”
“몇 달 정도만 고생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내 말에 상철이 놈이 한 마디 보탠다.
“어쨌든 나는 도연이 말대로 피해 있을 테니, 끝난 다음에 보자꾸나.”
사부는 놈들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길안부로 흘러가는 공수에 몸을 담갔다.
수중으로 들어가 일차로 놈들의 추적을 피하고, 수중에서 마*카*원 알파를 움직여 얼굴을 바꾼다.
나노 머신을 발신 정지 상태로 만들고, 공력을 억제해 호신강기를 해제하면 놈들의 감시망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사부에게 돌려받은 것들까지 쳐서 내게 남은 영약은 개구단과 화원단 각기 열두 개씩이다.
“받아라.”
하나씩 여섯 쌍을 만들어 사제에게 넘겼다.
“천강이 다섯인데, 우리끼리 되겠소?”
사제가 영약을 받으며 인상을 쓴다.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비기를 쓰더라도 천강을 한 번 떨쳐낼 수 있을 뿐이다.
“날 샐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날이 새면 천강의 고수들이라도 달려오는 것이오?”
내 말에 사제가 물었다.
“천강이라도 끝장낼 수 있는 지원이 오지.”
천강을 상대로 통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뭐, 사형이 그렇다 하니 믿겠소.”
사제에게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혹시라도 사제가 놈들에게 잡혔을 때를 대비해서다.
오리지널이 사제를 잡으면 사제의 나노 머신 마*카*원 베타를 해킹할 것이 뻔하다. 상세한 설명을 했다가 그 내용을 오리지널이 알게 되면 좋을 게 없는 것이다.
- 리퍼, 공방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농꾼의 보고. 이제 놈들이 움직이기까지 대략 4,000초 남은 건가?
“사제, 그럼 움직여 보자고.”
“예, 사형.”
사제와 함께 피풍의를 펼치고 부도 서쪽으로 내달린다. 강을 건너고 산을 오른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올라 놈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4,000초라 해봐야 대략 1시간 하고 6분에서 좀 더 되는 시간.
- 공방 신호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공방과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통신 주파수를 변경한 듯합니다.
공방이 놈들 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래도 당장 오리지널이 공방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 당장 할 일은 자기 본거지로 공방을 옮기는 일이겠지.
- 미등록 전파 다수 감지.
오리지널이 부리는 생체 드론들이 더는 숨어 있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생체 드론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공방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아낄 필요 없다 그건가?
- BZ-08과 10이 초극 고수 스물과 함께 움직입니다.
저 둘이 오리지널과 떨어져 움직이는 이유는 뻔하다.
오리지널이 공방을 수습해 옮길 동안 나를 잡겠다는 거다.
“사형, 놈들이 움직이고 있소.”
생체 드론을 통해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사제가 말했다.
“금정산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삼각쯤 걸리니 천천히 준비하자고.”
다섯이 같이 움직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