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오리지널(06)
시간이 없는 상황이지만 아직 상대해야 할 천문위가 넷이나 남았고, 거기에 천강일 가능성이 큰 오리지널도 있다.
뭐든 전력을 강화할 방법이 필요한 상황. 그러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개구단과 화원단을 털어 넣고 삼킨다.
우웅!
천도공이 약력을 터트리니, 전신 기맥으로 기운이 질주한다. 넘쳐흐르는 기운을 유사 기맥이 뽑아 올리고, 전신 곳곳에서 침들이 대가리를 내밀며 도기를 뿜어낸다.
파자자작!
넘쳐나는 약력이 만들어낸 도기에 전압이 걸리고, 유사 강기가 만들어지니.
오올!
스피커의 울림에 전신이 백광으로 물든다.
거기에 천문위의 감각으로 흐름을 만든다. 발끝에서 시작한 흐름이 발목을 타고 정강이를 휘감고 무릎을 지난다. 허벅지를 맴돌아 허리를 휘감고, 몸통, 어깨, 팔꿈치, 팔목을 거쳐 칼로 모여드니….
화라라락!
2초의 시간이 지나자 칼에 모인 힘들이 덧없이 사라졌다.
“이게 되네?”
칼에 모여든 기세는 천문위가 부리는 파괴의 결정, 환강 아래가 아니었다.
“도연아, 파머 노형과 이야기를 좀 할까 하는데?”
사부의 말이다. 사부가 할 이야기는 뻔하다.
“예.”
= 안면 금속 코팅. 음성 패턴 13번.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 예, 리퍼.
내 문자질에 농꾼이 바로 반응해 얼굴을 금속 이온이 뒤덮는다.
“말하지.”
“이들 모두 노형을 노리고 온 자들이오?”
사부가 널브러져 있는 천문위의 시체를 둘러보며 묻는다.
뭐, 사부에게 숨길 일이 아니다. 오리지널과 그 수하들을 처리하려면 사부와 사제의 도움이 필수.
“그래. 그리고 지금 금정산에 다섯이 더 있지.”
“다섯이 더 있다? 천문위가 말이오?”
내 대답에 사부가 인상을 쓴다.
“넷은 천문위, 하나는 천강일 가능성이 크지.”
“젠장,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또 다른 ‘나’라고 보면 되네.”
“무슨 소리요?”
내 말에 사부가 화들짝 놀라 묻는다.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닌 존재라 보면 돼.”
“노형 같은 존재가 또 있단 말이오!”
“있더군.”
“세상은 과연 넓구려. 그런데 그 다섯이 금정산에 몰려 있는 이유는 무엇이오? 노형을 헤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 같이 몰려올 법도 한데?”
“금정산의 내 공방이 목적이지.”
“노형의 공방이라면, 그 온갖 물건을 토해내는 그 신기한 구덩이 말이오?”
“그래.”
“그럼, 노형을 이렇게 공주 부도로 불러들일 이유가 없지 않소? 우리 청도방에서 천문위 한 놈이 난리 친 이유는 아무리 봐도 노형과 한몸인 도연이 놈을 불러들이기 위함인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공방이 목적이라면 굳이 나를 근처로 불러들인 다음 공방을 공격할 이유가….
아니지. 나는 제대로 된 스페어가 아니다. 엄마가 모정으로 슬그머니 끼워 넣은 계획 외의 존재.
오리지널 이 새끼, 자신과 동일한 전문가를 상정하고 일을 꾸민 것이다.
제 놈이 공방 해킹을 시도할 때, 내가 멀리 있으면 공방과 연계해서 해킹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제 놈이 해킹으로 공방의 제어권을 강탈한다 해도 내가 살아 있으면, 제 놈이 했듯 나도 똑같이 해킹으로 공방을 재강탈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래서 나를 공주 부도로 불러들여 천문위 여섯으로 나를 공격하게 만들고, 그 사이에 해킹을 시작한 거다.
천문위 여섯이면 나를 죽이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지금쯤은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오리지널의 손에서 공방을 지켜내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공방이 위험하다는 거네. 공방이 놈에게 넘어가면 나는 물론, 자네와 자네 제자까지 위험해져.”
“그 말은 우리가 노형의 일에 끼어들어도 된다는 말이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나만의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 코팅 해제, 음성 원복.
손가락을 까닥이자 얼굴의 금속 코팅이 벗겨진다.
“사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도연이냐?”
“예, 상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지요.”
그렇게 사부와 사제를 재촉해 일단 금정산을 향해 내달린다.
셋 다 피풍의를 펼치고 날듯이 달린다.
“노형의 공방을 뺏겠다고 설치는 놈은 도대체 누구냐?”
사부가 물었다. 아까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을 내게 묻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오리지널에 대해 제대로 해 줄 말이 없다.
“그저 노사와 같은 방법으로 탄생한 존재로, 노사와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나노 머신 소유자를 상대할 때 주의할 점들을 늘어놓는다.
“목을 자르고 머리를 박살내 뇌를 곤죽으로 만들기 전에는 죽은 것처럼 보여도 죽은 것이 아니다?”
“예.”
“나와 철상이 저놈도 그런 것이고?”
“예.”
“쉽지 않겠군.”
사부의 말대로다.
그냥 천강과 천문위도 아닌 나노 머신을 가진 천강과 천문위다.
바로 끝장을 내지 못하면 다시 회복해서 달려들 상대들. 막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 놈들은 여전히 동굴 안에 있나?
- 예, 리퍼.
= 동굴 안에서 동굴 밖의 공방을 공격하고 있으니 동굴을 막아 버리면 신호가 끊기지 않을까?
- 동굴 안쪽으로 공방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괜히 놈들이 동굴 안에 들어앉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공방의 기능을 정지시키면 어떻게 되지?
성혈문도들의 나노 머신 강탈을 막았던 방법이다.
- 회수 코드도 무력화시킨 오리지널입니다. 공방이 기능을 멈추더라도 공방 자체를 손에 넣은 상태면 기능 정지된 공방을 활성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 그래도 여차하면 시간은 끌 수 있다는 말이군.
- 공방 공격에서 가늠할 수 있는 오리지널의 역량이면 공방의 기능 정지도 4,000초 이내에 해결할 겁니다.
= 위험하다 싶으면 기능 정지시켜. 그 전에 데이터베이스의 데이터 죄다 삭제하고.
- 예, 리퍼.
그렇게 금정산을 향해 내달리는 와중에 최소한의 대비책을 세웠다.
공방과 직선거리로 대강 4km쯤 남았을 때다.
- 리퍼, 전파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놈들이 금정산 인근에 펼쳐 놓은 감시망에 내가 걸렸다는 소리다.
- 공방을 공격하던 BZ-08, 10의 신호가 사라졌습니다. 방어 가능 시간이 4,283초에서 5,086초로 변경됩니다.
공방에 다가서는 우리들에 대응하기 위해 BZ-08, 10이 공방 공략에서 빠졌다는 소리.
그 말을 증명하듯이 공방 인근을 찍고 있는 영상에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중년인 둘의 모습이 보였다.
굵직한 장군검을 든 둘이다.
오리지널이 우리가 천문위 여섯을 처리한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저 둘만 동원한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우리는 피풍의를 펼치고 숲 위를 날듯이 달리고 있는 상황.
동굴 앞 공터의 그들이 우리를 보지 못할 리 없다. 둘 다 장군검을 꺼내든다.
“사부님과 사제가, 왼쪽을!”
사부와 사제에게는 개구단과 화원단을 다시 세 쌍씩 준 상태. 각기 유심조를 세 번은 쓸 수 있다.
그렇게 BZ-10을 둘에게 맡기고, 나는 BZ-08을 목표로 계속 내달린다.
- 10, 9…
농꾼의 초읽기를 들으며 입안에 두 쌍의 영약을 털어 넣는다.
그리고 그중 한 쌍을 삼킨다.
- 6, 5…
우웅! 파자자작!
전신이 유사 강기로 휩싸이고.
콰콰콰쾅!
분진 폭발의 추력을 타고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오올!
전신이 어둠을 태우는 백광을 뿜는다. 아니 발치에서 시작한 흐름이 백광을 잡아먹으며 내달린다.
순식간에 전신 곳곳의 백광을 잡아먹은 흐름이 내가 쥔 칼까지 흐르고, 나는 내 의지를 따라 그 칼로 목표를 그었다.
콰자작! 쿠콰쾅!
손아귀에 거센 저항감이 느껴지는 순간, 칼에 몰린 백광의 결정이 터져 나갔다.
“크흑!”
억눌린 신음과 함께 뒤로 밀려나는 BZ-08이 보였다.
“이걸 막아?”
그것도 구겨진 얼굴 말고는 별다른 피해도 없어 보인다.
콰자작, 콱!
어이없어하는 내 귀에 들려오는 소음. 자연스레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검을 세워 굳건하게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BZ-10이 보였다.
사부와 사제는 공격이 막히기 무섭게 바닥을 굴러 몸을 피하고 있었다.
한 방에 천문위의 사지 하나는 끊어내던 개량형 유심조가 쌍으로 펼쳐졌는데 죄다 막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천강이다!”
사제의 외침과 동시에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렸다.
-급속충전합니다!
콰르르르릉!
마원이 쏘아낸 전격이 내 머리 위로 내려꽂히며 순식간에 배터리가 차오른다.
바로 입안의 영단들을 삼킨다.
우웅!
약력이 터지고 전신으로 흘러넘치는 기운이 유사 기맥을 타고 도기가 된다. 그리고 그 도기는 전압을 먹고 호거술에 걸려 다시 어둠을 태우는 섬광이 된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칼에 전신을 싣고 BZ-10을 덮친다.
콰자작! 쿠콰쾅!
BZ-08이 힘에 밀리는 것을 본 탓일까? BZ-10은 밀어붙이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뒤로 물러난다.
- 리퍼.
농꾼이 경고하지 않아도 천문위의 전투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그냥 옆으로 구르라고!
바로 감각을 따라 바닥을 구르니, 내가 있던 자리로 굵직한 장군검이 빛을 터트리며 지나간다.
BZ-08이다.
내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장군검이 날아든다.
이에 일차적으로 방수가 대응하고, 그 뒤를 이어 내 칼이 움직이지만.
콰카카캉!
굉음과 함께 전해지는 격한 충격에 자연스레 바닥을 구른다.
검격 자체는 어떻게 막았지만, 그 힘에 완전히 밀려 버린 것이다.
“사형!”
철상이 녀석의 손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금속으로 뒤덮인다. 순간 녀석의 옷이 찢겨 나가며 전신으로 백광을 터트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검을 내려치려는 BZ-08을 향해 날아든다.
전신의 백광을 어느새 칼로 몰아가며 말이다.
쿠콰쾅!
철상이 녀석의 도격에 BZ-08이 BZ-10을 본뜨듯 부드럽게 밀려난다.
옷이 죄다 찢겨 나가 알몸이 된 사제의 전신은 금속으로 뒤덮여 있었다.
전신에 침 빼곡하게 박을 필요도 없이 저걸 저렇게 쓰네.
“튑시다!”
콰콰콰쾅!
외침과 동시에 금속 분말을 털고 분진 폭발을 일으키는 사제다.
알몸인 주제에 금속 분말은 또 따로 챙겨놨다는 소리다.
콰콰쾅!
나도 사제를 본받아 피풍의로 불꽃을 뿜으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나보다 먼저 허공으로 뛰어올랐지만, 알몸인 사제다. 나노 머신이 제어하는 피풍의가 없으니 공중에 오래 머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사제 잡아!”
방수를 길게 뻗어 다시 떨어져 내리는 사제를 잡아당긴다. 그리고 방수 하나로 사제의 허리를 감싸고 전신을 바싹 밀착시킨다.
사제의 등판에 붙은 모양새가 되기 무섭게 피풍의를 펼쳐 활공을 시작하는데.
위잉! 윙!
강기에 물든 비도 두 자루가 날아든다.
순간 내 몸이 옆으로 한 바퀴 회전하니, 두 자루 비도가 나와 사제의 코앞을 훑듯 지나갔다.
그렇게 비도를 피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등 뒤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세.
다시 활공하는 몸이 뒤집어진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내리꽂듯 지나가는 한 자루의 비도.
아니 몸의 회전은 멈추지 않는다. 또다시 한 자루의 비도가 지나간다.
지나간 비도가 다시 되돌아와 나를 노린 것이다.
아니 내가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활공하는 도중인 것을 생각하면….
“사형, 이기어도(理氣御刀)요!”
사제가 기겁하며 외쳤다.
어째 두 놈이 비수 하나씩만 던진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