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오리지널(03)
“좋게 해결할 일을 꼭 피를 보게 만들어.”
이마에서 볼까지 눈 사이를 가로지르는 칼자국이 인상적인 노인이 쓰러져 있는 사제와 사부를 보며 히죽 미소를 짓는다.
장소는 청도방의 총타. 쓰러져 있는 것은 사부와 사제만이 아니다.
청도방의 핵심 인물들 상당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사부와 사제 둘뿐이다.
거기에 칼자국 노인의 동료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 청도방에 난입하여 저 꼴을 만들었다는 소리.
= 뭐 하는 놈이야?
이제 초극이 된 사제다. 그동안 천도공에 익숙해져 잠시나마 초극의 극에 달한 위력을 낼 수 있다.
그런 사부와 사제를 상대하면서 별 상처가 없었다는 것은 최소 천문위라는 소리.
천문위 정도 되는 자가 청도방 정도의 흑도 방파에 저리 난입하는 일은 드물다. 고로 오리지널이 보낸 놈일 가능성이 크다.
- 해당 인물에 대한 데이터가 없습니다.
농꾼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인물이라면 무림에서 알려진 인물은 아니라는 소리.
오리지널이 데이터와 영약으로 비밀리에 키운 천문위일 가능성이 커진다.
= 무공 계통은?
내 질문에 영상이 떠오른다.
청도방의 핵심 인사들을 제압하는 모습이다. 무력 차이가 큰 탓인지 본신 무공을 드러내지 않고도 쉽게 제압한다.
그리고 사제와 대결. 천도공을 끌어올려 칼을 휘두르는 사제를 상대로 놈은 양손을 움직여 대응하는데 본 적이 없는 장법이다.
사제 혼자서 무리라는 것을 알기 무섭게 사부까지 나섰다. 사부 역시 천도공을 사용한다.
사부와 사제가 휘두르는 칼이 연신 벼락을 그리며 놈을 압박했지만, 전신을 강기로 둘러싸고 움직이는 천문위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커헉!
사제의 입에서 갑자기 피가 튄다. 천도공의 유지 시간이 끝난 것이다.
천도공이 끝나기 무섭게 칼이 동강 나며 사제가 튕겨 났다. 그리고 사부는 홀로 십여 초를 견디다 사제와 같은 꼴이 되었다.
- 오십 년 전 사라진 절강 공손세가의 풍인결(風刃決)과의 유사성이 94%입니다.
마교의 무공이 아니다?
= 감시망에 놈이 걸려든 것은 언제지?
- 열흘 전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놈의 행적이 떠오른다.
오리지널이 보낸 놈이라면 태호의 놈처럼 호신강기를 해제해 이쪽의 탐지를 피했을 텐데?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열흘간 놈은 하오문을 통해 청도방의 정보를 모으고 확인하는 듯했다.
감시망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저렇게 움직일 리 없다.
거기에 살피는 정보도 이상했다. 사부와 사제나 청도방 핵심 인사들의 자세한 정보보다는 청도방의 수익 규모에 관심이 더 많았다.
어째 하는 행동이 독행강호하던 거마가 느긋한 말년을 위해 적당한 흑도 방파 하나를 삼키려는 모양새 같지 않은가?
상대가 천문위만 아니라면 흑도 방파 어디서든 일어날 만한 일인 것이다.
“알아서 찍는 게 좋을 텐데?”
현장 상황에 그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놈이 준비한 문서를 흔들면서 사부에게 수결을 강요하고 있다.
“왜? 내가 손을 잘라주기를 원하는 것이냐?”
사제가 놓친 칼을 주워 들은 놈이 웃으면서 사부의 손에 칼날을 들이민다.
사부의 상처는 마*카*원 알파에 의해 치료가 진행되는 상태. 나노 머신에 대해, 성혈에 대해 알고 있다면 지금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젠장, 오리지널의 수작이면 그냥 일행들과 함께 달려가서 놈을 때려잡으면 그만이다. 놈을 때려잡고 뭐라도 오리지널에 대한 정보를 토해내게 만들면 되니깐 말이다.
사부와 사제? 잠시 모른척하면 될 뿐이다. 그저 놈들의 수작에 엮인 피해자로 만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오리지널의 수작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행을 끌고 가 처리한 뒤 오리지널의 수작으로 위장한다?
힘든 일이다. 개방의 상 노개는 이런 일의 전문가다. 괜히 수작질을 부리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내 신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 신용이 흔들리면 천문위를 모아서 오리지널을 때려잡는다는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상대는 천문위 하나다. 그 정도면 나 혼자라도 어떻게든 해볼 만하지 않나.
아니 사부와 사제를 무사히 빼내기만 한다면, 우리 사도 셋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 사부에게 연결해!
- 예, 리퍼.
내 요구에 바로 농꾼이 움직인다. 사부와 연결되기 무섭게 바로 입을 움직인다.
- 사부. 체면이 상하시겠지만, 제자를 위해 그냥 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요.
- 도연이냐?
- 예.
- 근처에 있는 것이냐?
내 대답에 사부가 바로 내 위치를 묻는다.
- 오늘 안에 도착합니다.
- 알겠다.
화면 속의 사부는 굳은 얼굴로 놈이 내미는 증서에 수결을 남겼다.
“그럼, 관부에 들러 마무리를 해볼까?”
놈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 상황 계속 주시해.
- 예, 리퍼.
농꾼에게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말고삐를 잡아당긴다.
선두의 내가 말을 멈춰 세우자 뒤따르던 일행들 역시 분분히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운다.
“무슨 일인가?”
상 노개가 물었다.
“사문의 일로 잠시 따로 움직여야겠습니다.”
“같이 가면 안 되는 일인가?”
“예.”
상 노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홀로 움직여야 함을 강조했다.
“지금 상황에 자네 홀로 떨어진다는 것은 놈들의 표적이 되기 딱 좋아.”
“상 노개의 말씀대로입니다. 각주, 이제 적들도 매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상 노개와 남궁화청이 우려를 표했다.
“여차하면 도망가면 될 일이지요.”
다른 건 몰라도 도망가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우리는 소림에서 기다리겠네.”
“며칠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일행들과 헤어졌다.
공주 부도까지 직선으로 내달린다면 550km 남짓. 마원을 타고 내달리면 세 시진이면 충분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마원의 피풍의가 펼쳐진다.
콰콰콰콰쾅!
분진 폭발이 꽁무니에서 일어나며 그 힘을 추진력으로 삼은 마원의 거체가 하늘을 날아오른다.
***
공주 부도 인근의 산중에 내려섰다. 내가 마원을 타고 달려오는 동안 놈은 공주 부도 관부에 들러 청도방의 모든 자산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렇게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니 신원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진장?”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이름 석 자와 북직례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잖아.”
오는 도중에 감시망에 걸려든 그간의 행적을 훑었어도 딱히 일당이랄 수 있는 작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과 사제는?”
- 청도방 총타의 뇌옥에 감금된 상태입니다.
“연결해.”
- 예, 리퍼.
눈앞으로 두 사람의 영상이 뜬다.
“사부,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까?”
- 따로 제압당한 상태는 아니다.
나노 머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나노 머신에 대해 알고 있다면 최소한 공력을 제압해 놓았을 것이다.
“사제는?”
- 나도 멀쩡하오. 사형은 지금 어디요?
“부도 동쪽의 마조산이다.”
- 지척이구만.
- 어떻게 할 생각이냐?
사부가 물었다.
“놈을 해치우고 없던 일로 만들어야지요.”
놈에게 다른 패거리가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걸릴 것이 없다.
- 나와 둘째가 쓸 칼이나 챙겨 오거라.
사부와 사제가 쓰던 칼은 놈에 의해 부러진 상태. 아무 칼이나 들고 오라는 소리가 아니니 공방에서 들고 와야 했다.
“그럼, 반 시진은 족히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만?”
- 천문위의 고수를 상대하는데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잖느냐?
뭐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지요.”
그렇게 대답하는 동시에 손을 움직여 농꾼에게 묻는다.
= 공방에 여분의 칼이 있던가?
- 예, 리퍼.
= 두 자루만 들고 와.
- 45분 정도 소요됩니다.
칼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니 커다란 독수리가 칼 두 자루를 떨궈 준다.
그렇게 떨어지는 칼을 낚아채 둘러메고 강을 건넌다.
이미 해가 떨어진 지는 오래. 어둠에 물든 성벽을 타 넘는다.
그렇게 청도방의 총타로 조용히 발을 옮기는데….
- 리퍼, 다수의 전파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농꾼의 경고가 귀를 울린다.
- 새로운 초극 고수 반응 다수.
그리고 눈앞으로 펼쳐지는 지도 곳곳에서 점들이 표시된다.
공주 부도 남쪽 산에서 달려오는 점이 둘. 북쪽 물길에서 솟아오른 점이 하나. 그리고 내가 막 건너온 동쪽 물길에서도 둘이 솟아올라 부도의 성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내달리는 속도가 초극 고수라 볼 수 없다.
속도만 보면 죄다 천문위다. 천문위 다섯을 동원해서 나를 잡으려고 할 만 한 자는 하나밖에 없다.
오리지널!
빌어먹을 모든 게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오리지널의 함정이었다.
바로 피풍의를 펼치며 성벽을 박찬다.
“사부에게 연결!”
- 예, 리퍼.
“사부, 사제와 바로 빠져나오세요!”
- 무슨 소리냐?
“저를 잡기 위한 함정입니다.”
북쪽을 향해 내달린다. 사부와 사제에게 합류할 수 없다. 내가 사부와 합류하면 나를 쫓는 천문위 다섯도 우진장과 합류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도 셋이 천문위 여섯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만약 포위라도 당하면 끝장이다.
그러니 그냥 내가 다섯을 끌고 가는 게 낫다. 사부와 사제라면 우진장을 상대로 도망은 칠 수 있을 것 아닌가.
- 전방 105m.
농꾼의 경고에 바로 천도공을 일으키고 유심조를 펼친다.
파파파파팍!
내 다리를 대신해 방수들이 열심히 땅을 후려치고 땅에 박아 넣고, 몸을 당긴다.
백이 넘는 거리가 삼 초 만에 사라지며 상대와의 거리가 0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유심조의 도격이 터져 나오며 호쾌한 궤적을 그리지만.
콰캉!
강기로 휩싸인 인영은 피를 뿌리며 동강 나는 대신 그저 뒤로 밀려날 뿐이다.
빠드득.
개방 개구단과 형산 화원단을 쌍으로 씹어 삼킨다.
우웅!
비어 있는 단전이 가득 차다 못해 힘이 흘러넘친다.
- 200 하나, 320 둘, 450 둘!
내 뒤를 쫓는 세 무리와의 간격을 농꾼이 토해낸다.
다시 유심조를 펼치며 단호한 궤적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몸을 뒤집으며 바닥을 박찬다.
“터트려!”
콰쾅,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피풍의가 불길을 토하며 내 몸이 뒤쫓던 하나를 향해 쏘아진다.
200의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하나의 궤적이 그려진다.
촤아악!
도가의 연단술과 거지의 비전이 만들어낸 영약의 힘이 어우러진 칼질에 강기에 휘감긴 인영의 다리가 잘려 나간다.
다시 개구단과 화원단을 쌍으로 씹어 삼킨다.
우웅!
천도공으로 약력을 격발시켜 단전을 채우는 즉시, 그 모든 공력을 양손에 때려 박는다.
파자자작!
내 손의 하나와 방수의 넷, 총 다섯 개의 칼날에 도기와 전압이 걸리는 순간.
오올!
다섯 개의 칼날은 빛을 뿜으며 다리를 잃은 인영을 향해 휘둘러졌다.
카캉, 카카카카쾅!
다리를 잃은 인영이 어떻게든 그 공격을 막아내지만 막을 수 있는 것은 방수가 휘두른 네 자루뿐이다.
도가의 연단술과 거지의 비방이 만들어낸 약발을 빌어 일순간이나마 온전한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발휘하는 내 칼질을 막기에는 무리다.
콰자자자작!
내 손에 들린 칼이 순식간에 틈을 파고들어 벽력을 그리니, 다리를 잃은 인영은 전신으로 피를 뿌리며 튕겨 날 수밖에 없다.
그런 놈을 뒤쫓아 마무리를 하려는데….
- 가속합니다.
콰콰콰콰쾅!
농꾼의 경고와 함께 내 전신이 굉음을 타고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다.
“놈!”
“서라!”
320m 밖에 있던 둘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