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섬서행(11)
조유덕을 짊어진 마원과 합류했다. 피풍의를 접고 남궁화청의 등에서 내렸다. 상 노개도 내가 받아들었다.
= 상 노개의 상태는?
- 골절뿐만 아니라 내장의 상처가….
상 노개는 조유덕보다 상처가 더 심했다. 분진 폭발 덕이다.
= 나노 머신 추가 투입해.
마원의 등판에 상 노개를 올리며 농꾼에게 명한다.
= 놈들의 합류 예상 시간은?
육가장의 두 노괴가 합류하기 전에 가능하면 기련신마를 정리해야 했다. 아니면 그 수하들만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천문위 셋 이상을 감당할 전력이 있어야 해볼 만한 집단이 되어 버린다.
개방의 두 고수가 깨어나 합류한다 해도 상대하기 버거워지는 것이다,
- 411초 이내입니다.
예상보다 몇 백 초나 줄었다.
= 700초 이상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대답 대신 한쪽으로 밀어놓은 지도가 눈앞 정중앙으로 당겨진다.
그 지도엔 기련신마와 그 일당들의 위치가 표시되는데, 그 표시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달려오는 두 노괴를 향해서 말이다.
서로를 향해 내달리고 있으니 시간이 팍 줄 수밖에 없다.
하긴 잡아 둔 개방 인사들을 우리에게 죄다 뺏긴 상황. 육가장의 두 노괴를 가만히 앉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저건 왜 못 잡아?
지도를 보니 짝퉁 매 한 마리가 아직 육가장 두 노괴의 근처를 날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기에 물었다.
- 당장 잡기는 힘듭니다. 매를 더 동원할까요?
= 놀고 있는…. 아니 놔둬.
생각해 보니 당장은 놈들이 짝퉁 매를 운용해 우리 움직임을 아는 것이 낫다.
“이제 어쩔 건가?”
남궁화청이 물었다.
“두 노괴의 손에 잡힌 둘을 구해야지요. 일단 거리를 두고 따라붙을 겁니다.”
짝퉁 매를 통해 우리가 적당한 거리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 호장우와 양연곤의 피를 빨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럼 다시 달려야겠군.”
남궁화청이 내게 등을 내보였다. 나는 냉큼 남궁화청의 등에 올라타 피풍의를 펼쳤다.
내가 업히기 무섭게 남궁화청이 내달린다. 두 사람을 짊어진 마원이 그 뒤를 따른다.
“어느 정도까지 따라붙는 게 좋겠나?”
남궁화청이 자신의 눈앞에 뜬 지도를 살피며 묻는다.
“대충 일천 장 정도의 거리를 두면 될 듯 합니다.”
천 장이면 대략 3,030m. 100초 내외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육진성이 둘 중 하나의 피를 빨기 시작하면 덮치기 좋은 거리고, 놈들이 우리를 쫓으면 도망가기도 쉬운 거리.
남궁화청은 그 거리가 될 때까지 열심히 발을 놀렸다.
- 기련신마 일당과 육가장의 두 천문위가 합류했습니다.
농꾼의 보고에 옆으로 밀어 놓은 화면을 눈앞으로 돌린다.
“설마, 신마께서는 창 걸개와 장 걸개 둘 다 놓치신 거요?”
육진성이 기련신마와 일당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육가의 두 분께서는 둘이나 잡으셨구려. 이거 면목 없소이다. 하아!”
기련신마가 육진성과 육진정이 내려놓는 둘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벽력응주라는 놈, 장주의 말보다 더한 놈이었소. 창 걸개는 놈들에게 빼앗겼고, 장 걸개는 그놈의 수작에 숨이 끊어졌소.”
“그럼, 장 걸개의 시체는 어디 있소?”
기련신마의 말에 육진성이 물었다.
“죽으면 성혈을 뽑아낼 수 없다 하지 않았소.”
“혹, 놈들이 챙겨 갔소?”
기련신마의 말에 육진성이 다시 물었다.
“챙겨 가더이다.”
기련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살아서 덤벼드는 장 걸개를 조만간 보겠구려.”
육진성이 인상을 썼다.
“숨이 끊어지고 심장이 멎은 것을 확인했소만?”
기련신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혈을 가지면 그 상태에서도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이다.”
“허, 빨리 낫고 잘 죽지 않는 것이 다가 아니었구려. 다시 살아난다니! 정말 대단하구려! 그런데, 언제쯤 시작할 생각이시오?”
기련신마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 자리에서 이것들의 성혈을 뽑아 신마께 부여하고 싶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소.”
“놈들이 근처에 있는 거요?”
기련신마의 물음에 이때껏 가만히 있던 육진정이 입을 열었다.
“일천 장. 딱 일천 장 거리에서 우리를 살피고 있소.”
더 볼 것도 없기에 놈들을 살피는 화면을 옆으로 치운다.
= 혹시라도 흡혈을 시작하면 바로 보고해.
- 예, 리퍼.
우리가 응 시리즈로 놈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놈들도 짝퉁 매로 우리를 보고 있다.
근처에서 우리가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을 인식시켰으니 더는 우리 쪽을 보여 줄 필요 없다.
= 사냥해!
- 예, 리퍼.
매 사냥은 길게 끌지 않았다. 한쪽에서 덮치는 것이 아닌 사방에서 응 시리즈가 움직이니 짝퉁 매는 도망갈 곳이 없어진다.
그렇게 몰려 무기의 사정거리에 들어서고 순식간에 사냥 당했다.
- 일당들이 움직입니다.
화면이 눈앞으로 떠오르며 놈들이 내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두 노괴가 왔던 길을 다시 되짚듯 움직이는 것이 서안으로 가는 모양이다.
“놈들이 움직이니 우리도 이만 움직이지요.”
“그러지요.”
남궁화청의 말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앉아서 눈을 부라리는 인영이 있었으니.
“조 대협!”
다름 아닌 개방 창 걸개 조유덕이다.
“놈들을 따라가야 합니다.”
남궁화청의 재촉에 조유덕이 몸을 일으켰다.
“젠장, 상 사숙이 성혈문 일에 왜 열을 올리나 했더니 열을 올릴 수밖에 없잖아!”
치료가 끝나고 정신을 차린 조유덕에게 놈들을 쫓는 응 시리즈 한 마리와 시야를 공유시켰던 것이다.
“성혈을 지닌 자 한 명으로 이런 매, 수백 마리를 만들 수 있다니! 성혈문 놈들이 번성하면 우리 개방은 진짜 빌어먹는 수밖에 없게 되겠어.”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발을 움직인다. 놈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피풍의를 펼칠 정도는 아니기에 나도 내 두 발로 움직인다.
그렇게 거리를 조절하며 놈들의 뒤를 따르고 있자니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린다.
- 마*카*투 델타와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상 노개의 호신강기가 회복되었다는 말, 정신을 차렸다는 소리다.
“상 노개 정신이 듭니까?”
“크, 자네의 그 수법에 죽는 줄 알았네.”
내 물음에 상 노개가 마원의 등짝에 묶인 상태로 투덜거렸다.
“사숙, 살았으니 된 거 아닙니까?”
“유덕이냐? 다행히도 무사하구나.”
조유덕의 말에 상 노개가 그를 보고 웃었다.
“안 죽고 살아 있습니다. 그나저나 안 불편하십니까?”
조유덕이 상 노개를 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 노개는 마원의 등 위에 배를 대고 얹힌 상태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꽁꽁 묶여 있는 상태다. 거기다가 마원은 우리와 보조를 맞춰 달리고 있는 상태. 그러니 상 노개는 절대 편안할 리 없다.
“알면 와서 좀 풀어 보지 그러냐?”
상 노개가 툴툴댔다.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 풀어 줘.
입으로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움직여 농꾼에게 명을 내린다.
상 노개를 얽어맨 방수들이 스르륵 그의 몸에서 미끄러지듯 물러선다.
“어차.”
몸의 자유를 찾은 상 노개가 마원의 안장 위로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째 자네들뿐인가? 정안각의 다른 인원들은?”
“사숙과 저를 구하려 서두르다가 뒤통수를 맞았답니다. 합공의 중추인 둘이 잡힌 탓에 다른 넷은 피신을 시켰다는군요.”
나와 남궁화청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조유덕이 먼저 답한다.
“성혈문 놈들이 섬서에 판을 깔고 기다린 게군. 정안각 인원들 전원이 성혈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를 잡아들일 속셈인 거야.”
“그런데, 솔직히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일을 벌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련신마가 대단하고 육가장의 두 천문위가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 개방이나 정도 팔가의 셋에 멸왜단까지 있는 정의맹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습니까?”
조유덕의 말대로다. 당장 육가장두 노괴가 한 짓만 해도 불가침 조약을 깨는 짓이다.
멸왜단을 비롯한 절강 무림이 육가장을, 아니 정의맹이 강남 흑도맹을 후려칠 명분을 주는 짓 아닌가.
기련신마도 마찬가지다. 개방의 핵심 인사 둘이 죽어 나가면 개방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기련신마가 창 걸개와 장 걸개를 죽여도 개방이 나서지 못할 만한 확고한 명분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개방 십대 고수 중 천문위가 다섯이다. 창 걸개를 빼더라도 넷이고, 그중 둘이 수확 대상자다.
정의맹이 강남 흑도맹을 후려치면 육가장의 두 노괴는 남직례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기련신마는 홀로 개방을 상대해야 한다.
“뒷감당이 안 될 것도 없지.”
상 노개의 말이다.
“예?”
“상 노개,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숙, 놈들이 무슨 수로 뒷감당을 한단 말입니까?”
모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마원 위에 올라탄 상 노개를 볼 수밖에 없다.
“자네가 죽으면 자네가 빌려 준 매들은 어떻게 되나? 자네가 제공한 영단이 떨어지면 연결이 해지되지 않나?”
상 노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뻔했다.
“제가 매로 절강 민심을 잡았듯, 성혈문 놈들도 매를 내밀어 저의 대신이 될 수도 있다. 그 말씀입니까?”
“멸왜단은 무림 세력이라기보다는 절강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자경단에 가깝지 않나? 그러니 왜구가 준동한다면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네.”
왜구에게 오랫동안 시달린 절강 입장에서는 거부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게 멸왜단이 뒤로 빠지면? 황보세가는 세가의 배신자를 처치한다는 목적을 이미 이뤘네. 혈족 둘의 희생? 정안각의 둘은 솔직히 황보세가에서 껄끄럽게 생각하는 인물들 아닌가. 거기에 남직례 흑도를 후려친다 해도 큰 이권을 얻기 힘드니 정의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네.”
황보세가는 뭐 나도 크게 기대가 안 된다.
“자, 그럼 남는 건 남직례의 남궁세가와 신창양가 두 곳이네. 먼저 신창양가는 내란을 겪어서 전대 가주가 다시 복권했을 정도네. 피해 복구가 덜 된 상태지. 이런 상태에서 남궁세가와 연합해 강남 흑도맹을 후려친다? 강남 흑도맹을 이긴다 해도 그 뒤를 생각하면?”
강남 흑도맹의, 남직례 흑도의 이권을 남궁세가와 양분한다 해도 지킬 혈족이 부족할 상황이다.
구민신창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결국에는 남궁세가 좋은 일밖에 안 된다 생각하고 뒤로 빠질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남궁세가 하나 남는데, 남궁세가가 단독으로 매를 부리는 천문위 둘이 있는 강남 흑도맹과 전쟁을 하려 들까? 매를 부리는 자네도 없는데 말이야.”
“정의맹은 그렇다 치지요. 그런데 본방은, 우리 개방은 어떻게 침묵시킨다는 겁니까?”
조유덕이 물었다.
“우리 개방은 일이 너무 많아. 그냥 놈들이 잘난 매를 써서 피해 다니면 그만이야. 기련신마를 확실히 잡자면 천문위 둘은 동원해야 하는데, 천문위 둘이 기련신마 하나에 얼마나 매여 있을 수 있을까?”
“그렇기는 하네요.”
상 노개의 설명에 조유덕은 인상을 썼지만 끝내 수긍하는 표정이다.
“그러니, 벽력응주. 지원을 요청하게.”
“예?”
“뭘 들었나? 자네가 놈들에게 잡혀 죽으면 정의맹은 끝장나고 절강 무림은 놈들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네. 강남 흑도맹과 멸왜단이 놈들 뜻대로 움직인다 생각해 보게. 신창양가, 남궁세가는 무사할 것 같나? 그러니 천문위 하나 더 보내 달라 하게.”
상 노개 이 양반, 이 말을 하려고 그렇게 길게 입을 놀렸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