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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51화 (151/175)

151화

섬서행(06)

- 허, 자네 재주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건 도대체….

눈이 휘둥그레진 황학약의 얼굴이 보인다. 갑작스레 떠오른 내 얼굴, 화상 통신에 정신이 팔려 내가 한 말을 못들은 듯하다.

= 도주, 천강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무공이 있는데 관심 없으십니까?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해 준다.

- 무슨 말인가?

커진 눈을 한층 더 크게 뜬 황학약이 묻는다.

= 말 그대로입니다.

- 천강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무공이라니….

믿기 힘들다는 눈초리다. 그럼 믿게 만들어 주면 된다.

= 유심조라 합니다. 무당 장문인께서 보증하셨고 검수하셨습니다.

- 청진 진인께서?

= 예.

-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 건가?

황학약이 물었다. 천문위에게 다음 경지를 경험할 방법을 공짜로 넘겨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급하지 않으면 황학약이 아니라 진우탁에게 유심조를 넘겼을 것이다. 그러면 대환단에 비견되는 영단을 내놓으라고 밀당을 시도할 수도 있는데, 어쩌겠나. 당장 급한 건 난데.

= 모든 일을 다 제쳐놓고 유심조에 매달리십시오. 그게 조건입니다.

- 진짜 그거면 되는가?

= 예.

- 나에게 이걸 전하는 이유가 뭔가? 나보다는 멸왜단의 진 사제가 더 편할 텐데?

= 강남 흑도맹 때문에 단주께서 지금 무공에 집중할 시간이 없습니다.

- 내가 이걸 익히는 것이 아주 급한 일이라는 말이군. 알겠네.

= 그럼, 구결을 불러드리지요.

유심조 구결은 물론, 무당 장문인이 알려 준 운기법도 전했다.

= 앞엣것이 유심조, 뒤엣것이 무당 장문인께서 유심조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한 운기법입니다.

- 알겠네.

황학약의 대답에 이어 농꾼의 보고가 이어진다.

- SS-06의 유심조 데이터 이전과 유심조 수확을 위한 추가 프로그램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 지금 당장 부탁드립니다.

황학약에게 유심조의 수련을 재촉한 뒤 통신을 끊었다.

= 농꾼, 공방에서 매들을 추가 생산해. 매를 잡을 수 있는 무장 갖춘 것들로.

왜놈이 찍어내는 짝퉁 매를 사냥할 매들의 생산을 명했다.

- 예, 리퍼.

열심히 달려 양주 신창양가에 당도하니 구민신창이 우리를 맞이했다.

“소식은 남궁세가로부터 들었네.”

남궁화청과의 통신으로 사정을 들은 남궁세가에서 신창양가로 전서응을 날린 것이다.

신창양가에 통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수확 대상자 셋도 죄다 정안각 사람으로 나와 같이 움직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놈들이 움직일 것을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치는 것이 어떤가?”

“육가장을 먼저 치자는 말입니까?”

“그래.”

내 말에 구민신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 이 양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불가합니다.”

“왜?”

“잊으셨습니까? 멸왜단과 육가장이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는 것을?”

멸왜단은 정의맹의 주축이다. 정의맹이 육가장을 먼저 후려치면 무림에서 멸왜단의 신용도는 엉망이 된다.

그리고 멸왜단 핵심 인사로 알려진 내 신용도 역시 덩달아 떨어진다. 차후 수확에 무리가 간다는 말이다.

“그럼, 이대로 놈들이 덮쳐들기를 기다리자는 말인가? 놈들도 벽력응주 자네가 부리는 매 못지않은 매들을 부릴 수 있다면서?”

“그래서 제가 왔지 않습니까?”

“딴 곳에서 일이 터지면? 자네가 양주에 계속 버티고 있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 당연한 소리를 왜….

설마, 이 양반?

“다른 곳들처럼 감시망을 까는 것은 어떻습니까?”

“허, 사정이 이러니 별수 없군.”

혹시나 싶어 말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싫은 티를 팍팍 내며 그 방법 말고는 딴 방도가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세.”

망할 영감이 자기가 먼저 감시망 깔아 달라는 소리 하기 싫어서 육가장 후려치자는 소리를 꺼낸 것이다.

그렇게 신창양가에도 감시망을 관리하고 통신이 가능한 인원이 생겼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다.

***

신창양가에 대기한 지 이틀째.

- 리퍼, 유심조의 1차 데이터가 도착했습니다.

= 무당의 무혹 도장처럼 아예 못 쓰는 건 아니지?

- 데이터를 보시지요.

기대해도 된다는 소리 같다.

= 1차 데이터와 본인 평소 데이터와 붙여 봐.

- 예, 리퍼.

눈앞에 두 명의 황학약이 나타났다. 한쪽은 머리칼이 녹색이다.

- 녹색이 유심조를 사용하는 황학약입니다.

머리색이 다른 둘이 서로를 향해 칼을 뽑아든다.

그리고 격돌한다.

= 뭐야?

내 눈이 커졌다. 녹색 머리와 다른 황학약의 움직임에 거의 차이가 없다.

천문위에 이른 칼잡이의 공방이 순식간에 이어진다.

순식간에 피가 튄다. 녹색 머리의 전신에서 여기저기 상처가 생겨난다.

내 눈에는 비슷하게 보여도 천문위의 눈에는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그렇게 녹색 머리 황학약이 밀린다 싶은데 갑자기 그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황학약의 몸이 상하로 그냥 분리된다.

= 몇 초였지?

- 3초였습니다.

무당 장문인이 사기 쳤다!

유심조 발동 시간이 절반 정도 줄어든다더니 반의반으로 줄었어!

- 천문위가 유심조를 사용한 데이터가 없기에 예의 운기법의 효과인지, 그냥 천문위라 그런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뻐 날뛰려는 내 귀에 농꾼이 하는 소리다. 그거야 해보면 될 일.

신창양가 사람에게 부탁해 지하 연공실 하나를 빌렸다.

연공실 중앙에서 칼을 뽑아 들고.

우웅!

단전의 스피커를 켜니 전신에 힘이 넘친다.

= 데이터 적용

유심조를 쓰는 황학약의 데이터가 적용되니 전신으로 고통이 내달린다.

크윽!

하지만 그 와중에 정신은 또렷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주위를 훑는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뒤에 닥쳐오는 해방의 시간.

사학!

몸이 공간을 넘는다. 있던 곳과 있는 곳을 구분할 수 있지만,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전신을 덮치는 탈력감. 서 있을 힘도 없다. 내상이 아니다. 그냥 전신 한 올의 힘까지 모조리 쏟아낸 느낌이다.

= 이것도, 황학약의 데이터?

- 아닙니다. 이건 리퍼의 육체 상태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 발동은?

- 데이터대로 3초였습니다.

일단 발동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 이건 회복에 얼마나 걸리지?

- 육체 상태는 10초면 원상회복이 됩니다.

농꾼의 장담대로다. 잠시 뒤에 다시 팔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건 근력뿐이다. 단전의 공력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운기조식으로 비어 버린 단전을 채운다. 꼬박 두 시진이 걸렸다.

그것도 농꾼의 도움으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어서 두 시진이다. 일반적인 운기조식이라면 종일 걸린다는 소리.

한 번 쓰고 이 지경이면 실전에 써먹기는 무리. 어떻게든 수를 써야 했다.

아니 그 전에 천문위를 상대로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 살핀다.

= 상대 남궁화청!

내 명에 남궁화청의 전신이 내 앞에 나타난다.

우웅!

단전이 울림과 동시에 모든 절차가 동시 진행된다.

***

유심조는 그럭저럭 수습했다.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방도도 찾았다. 문제는 나흘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는 거다.

짝퉁 매를 생산해 활동에 들어갔다면 전파 신호가 걸려들 텐데 어째 걸려드는 전파 신호가 없다.

거기에 각 세력의 감시망에 걸려드는 수상한 인물도 없다.

= 응5 쪽은 어때?

- 별다른 움직임 없습니다.

응5를 태호로 보내 육가장을 직접 살피는데 이쪽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인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주 육가장은 물론 태호 육가장 본가도 마찬가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마풍단주가 찍어낸 짝퉁 매로 게릴라전을 벌일 예정이라면 저렇게 육가장의 인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안 된다.

우리 쪽도 매를 쓰는 것은 마찬가지. 게릴라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우리 쪽 천문위들이 본진을 후려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매를 활용하는 천문위의 습격에 대비하려면 그냥 사람을 숨겨 버리는 것이 가장 편하다.

그런데 평소와 다름없다?

= 농꾼, 빠진 인원들 없나 확인해.

- 예.

육가장 인물들의 프로필은 예전에 만들어진 상태. 거기에 감시망이 궤멸되기 전까지 꾸준히 보강됐다. 그러니 자리에 없는 인원은 금방 알 수 있었다.

- 육가장의 핵심 인사 둘을 찾을 수 없습니다.

= 누구야?

- 육진성과 육진정입니다.

당대 육가장주와 육가장 태호 본가에 버티고 있던 천문위다.

= 없는 것 확실해? 지하 시설에 들어앉은 것 아냐?

- 꿈틀이로 확인했습니다.

육가장의 구조는 이미 죄다 파악한 상태. 육가장의 무인들이 꿈틀이의 위장을 안다 해도 아예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끈이나 실 조각처럼 작은 꿈틀이 몇을 육가장 지하에 밀어 넣는 것은 일도 아니다.

= 왜놈은?

- 찾을 수 없습니다.

왜놈도 천문위도 안 보인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다.

마풍단주가 육가장의 두 천문위를 꼬드겨 수확 대상자를 잡으러 간 것이다.

수확 대상자의 나노 머신을 강탈해 성혈문을 재건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불가침 조약 때문에 멸왜단이, 정의맹이 육가장을 선제공격하기 어려우니, 두 천문위가 자리를 비우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육가장의 감시망을 걷어내게 한 것은 육진성과 육진정에게 보이는 성의임과 동시에 나를 남직례에 불러들여 묶어 두기 위한 수작일 수도 있다.

= 매들은?

- 계획대로 서른여섯 생산 완료해 각지에 배치 중입니다.

내가 묻기 무섭게 농꾼이 답한다. 서른여섯 마리의 매들은 응 시리즈의 기능에 추가 무장을 갖춘 것이 아니다. 아예 짝퉁 매들을 사냥하기 위한 기능에 집중한 개체. 그러니 기능 많은 응 시리즈보다 생산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 배치 완료 시간은?

- 28분 후입니다.

왜놈이 육가장이나 강남 흑도맹에게 짝퉁 매를 몇 마리 넘겼다 해도 이제 게릴라전을 걱정할 필요 없다. 짝퉁 매를 사냥할 매들이 각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매의 보조를 받아 게릴라전을 한답시고 기어들어 오면 당장에 매를 잃게 될 것이다.

어쨌든 왜놈이 육가장에 없는 것은 사실. 짝퉁 매에 대한 대비도 끝난 마당에 내가 이 이상 양주에 죽치고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신창양가의 가주인 구민신창을 만나러 갔다.

“감시망 구축도 끝났고, 놈들의 매에 대한 대처도 할 만큼 해놓았습니다.”

“본가에서 할 일 다 했으니 가보겠다는 말이군.”

무림에서 구를 대로 구른 노강호답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바로 짚어낸다.

“예.”

“멸왜단 총타로 가는 건가?”

“호광의 일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형산의 초대에 응해 수확이나 할 생각이다. 당장 왜놈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말이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호광으로? 육가장의 일은 이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내 생각이 맞나?”

“예, 신창양가에서 즉각 대응 전력을 유지한다면 그럴 겁니다.”

“육가장 놈들이 기습을 걸어 올 가능성이 미약하지만 있다는 소리군.”

어째 아쉬워하는 구민신창의 얼굴이다. 하긴 지금 강남 흑도맹과 전면전이 일어나 육가장이 망한다면 산동 이남의 운하는 신창양가가 오롯이 움켜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멸왜단이 온전한 무림 세력으로 전환되기 전이니 말이다.

“수고했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구민신창과 헤어져 정안각 인원들을 소집했다.

“호….”

막 호광 형산으로 간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 SX-23의 수확이 시작됩니다.

농꾼의 보고가 귀를 때렸다. 느닷없이 수확이 일어나는 이유는 뻔하다.

“후으, 후.”

호흡을 가다듬어 호신강기를 억제해 SX-23의 수확 데이터를 수신한다.

= 마지막 기억 데이터 재생.

- 예, 리퍼.

복면을 뒤집어쓴 셋의 인영이 눈에 들어온다.

- 마풍단주와 육진성, 육진정의 체격과 일치합니다.

농꾼의 보고, 하지만 필요 없는 말이었다. 마풍단주가 복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SX-23을 품은 수확 대상자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더 볼 것도 없다.

= 위치는?

- 산서 서안 인근입니다.

“성혈문 잔당의 종적이 발견되었다. 산서 서안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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