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섬서행(05)
“천문위 정도 되면 유심조 정도는 단번에 익혀야 하는 거 아냐?”
무혹 도장은 증강현실의 무당 장문인이 구결을 다섯 번이나 불러줬는데 유심조에 대한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유심조가 불문 기반 무공이라 그런가?”
무혹 도장이 평생 수련해 온 무당 절기들은 도교 기반 무공이라 상성이 맞지 않는 건가?
“농꾼, HG-06에 심어 놓은 SS-06의 유심조 데이터 돌려.”
구결로 진전이 없으면 데이터를 돌려 익히게 하면 된다.
- 예, 리퍼. SS-06의 유심조 데이터 활성화합니다.
증강현실의 무당 장문인이 유심조 데이터 활성화 코드를 말하자, 화면 속의 무혹 도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의 몸에 웅크린 HG-06이 감각으로 무혹 도장에게 유심조의 운용법을 새기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감을 못 잡지는 않겠지?”
그런데 화면 속의 무혹 도장이 인상을 쓰면서 피를 토한다.
- 아무래도 유심조는 무당 무공과 궁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젠장.”
아니 천문위쯤 되면 무공 궁합이 좀 안 좋아도 대강 익혀서 펼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무혹 도장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몇 번 더 도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하아, 되는 일이 없네.”
이렇게 되면 소림 쪽 수확 대상자를 골라 넘기는 수밖에 없나?
“대충, 수습하고 넘어가!”
내 말에 농꾼이 화면 속의, 증강현실의 무당 장문인을 움직였다.
“너에게는 유심조의 연이 닿지 않는가 보구나. 오늘 일은 잊거라.”
그 말에 무혹 도장이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나, 어째 저 양반에게 못 할 짓 한 기분이잖아!”
그렇게 무당 장문인이 손 쓴 유심조의 개량판을 익히는 것은 실패했지만, 무당파의 수확은 순조로웠다. 연락을 받고 온 수확 대상자를 무당 장문인 앞에서 수확하면 그만인 일이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무당파의 수확 대상자들은 전부 열여섯, 보름 동안 무당산에 머무르면서 천문위 넷, 초극 열을 수확했다.
“무당에서 일은 언제쯤 끝날 것 같나?”
상 노개가 찾아와 물었다.
= 남은 수확 대상자 둘. 지금 위치는?
- 둘 다 무당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늦어도 90분 안에는 도착할 듯합니다.
농꾼이 응 시리즈를 움직여 아직 수확되지 않은 무당의 수확 대상자 둘을 찾아냈다.
“둘 남았는데, 둘 다 무당산을 오르는 것이 보이네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오늘 중으로 끝나겠지요.”
“그럼, 못해도 내일은 출발할 수 있겠군.”
“무슨 일인지요? 혹여 왜놈이라도 찾았답니까?”
성혈문 잔당을 박살내고 그 신상정보를 개방에게 넘겼다. 그중 왜놈, 마풍단주의 신상도 있었으니 혹시나 하고 묻는 것이다.
“그 일은 아니고, 본방의 장사 분타를 통해 형산에서 연락이 왔네.”
“형산에서요?”
“성혈문의 일로 자네를 꼭 만나보고 싶다더군.”
“상 노개께서 손을 쓰신 겁니까?”
경산의 뒤처리는 개방에 맡겼다.
경산을 세력권으로 둔 무당도 우리가 고하고 난 뒤 안 일을 머나먼 형산에서 알 리 없다.
같은 호광에 자리 잡았다 해도 무당산과 형산의 거리는 아주 멀다. 거리만 따지면 하남의 숭산이 무당산과 가까울 지경이니 말이다.
“호광에 왔는데 무당만 둘러보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상 노개가 웃으며 답했다.
경산의 일과 성혈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무당산에 오른 일을 소문내서 형산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했다는 소리다.
“명불허전입니다. 상 노개!”
개방의 상 노개를 끌어들인 건 진짜 신의 한 수다. 내가 찾아가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쪽이 내게 부탁하게 만들다니 말이다.
한 시진 뒤 남은 둘의 수확도 문제없이 끝났다.
마지막 수확 대상자가 방을 나가자, 무당 장문인이 작은 목함을 내민다.
“받게.”
영약 같아 보이는데? 내가 목함을 받으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무당 장문인이 말을 이었다.
“태청단이네.”
소림 대환단, 아미 금정신단에 비견되는 도가의 영단이다.
“자네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으니 이거라도 받아 가게.”
과연 명문 거파의 장문인. 싸게 막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이대로 가면 무당이 빚을 진 것이 될 수도 있다. 아예 그런 여지를 안 주겠다는 건가?
“진인께서 주시는 것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형산의 연단법도 본 파 못지않네. 뭐 소림의 대환단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고 말일세. 그 정도면 자네의 무위와 내공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걸세.”
태청단급의 영단 세 개면 나도 천문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천강의 경지에 오른 고수의 조언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진인, 평안하시기를!”
“가보게.”
그렇게 무당 장문인과 헤어졌다. 볼일이 끝났기에 일행은 무당산을 내려왔다.
물론, 하산 도중에 해검지를 들러 무기를 찾는다. 다른 일행이야 그냥 맡겨 놓은 무기를 들고 나오면 되지만, 나는 그 많은 비수들을 원래 위치에 넣어야 했다.
무당산 아래의 객잔에서 맡겨 둔 말들을 찾았다. 무당에서 형산까지 이천 리 길. 거기에 장강을 넘어야 했다.
“형주부(荊州府) 감리(監利)로 가세. 거기에서 형산의 속가 제자들이 우리를 태울 배와 함께 기다리고 있네.”
상 노개의 말에 지도를 살폈다. 형산 인근까지 배로 갈 수 있으니 육로로 대강 천 리만 달리면 된다.
마원에 올라타고 관도를 따라 달린다. 그렇게 일행들과 함께 대강 삼백 리쯤 달렸을 때다.
- 리퍼, 급보입니다.
= 뭐?
- 육가장의 감시 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 무슨 소리야?
눈앞으로 화면이 펼쳐진다.
육가장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를 피해 통신 벌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하인이 휘두른 총채에 맞고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눈 밝은 무인들이 육가장 곳곳을 누비며 실 조각, 끈 조각으로 보이는 것들을 주어다가 화로에 집어넣는다.
비수를 든 무인들이 육가장 구석구석을 살핀다. 서생원이 보이기 무섭게 비수가 날고 서생원이 꿰뚫린다.
통신 벌레와 꿈틀이, 서생원 시리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짓이다.
내가 부리는 매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통신 벌레와 꿈틀이, 서생원 시리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사부와 사제, 나를 제외하면 응 시리즈를 해킹한 성혈문 놈들뿐.
SS-11의 상당수를 들이켜고 튄 놈! 왜놈 새끼, 마풍단주가 육가장에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원래 육가장 일로 나와 부딪쳤던 놈이다. 육가장과 연관이 있다는 말.
왜놈이 육가장과 손을 잡고 수확 대상자들의 나노 머신을 강탈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아니, 녀석이 짝퉁 매를 찍어내 육가장에 넘기기만 해도 골치 아파진다.
한가하게 형산으로 가 수확이나 할 때가 아니다.
“형산행은 중지합니다.”
말고삐를 잡아채 말을 멈추며 외쳤다.
“무슨 소린가?”
상 노개가 내 옆으로 말을 멈추며 물었다.
“성혈문 잔당이, 그 살아남은 왜놈이 남직례에, 육가장에 나타났습니다!”
“이대로 계속 감리로 가세. 형산 속가의 쾌속선을 빌려 장강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것보다 빠를 걸세.”
“일반적이라면 그렇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탄 말들이라면 물길보다 육로로 가는 것이 더 빠릅니다.”
“상 노개께서 감리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나와 상 노개의 말을 듣고 있던 남궁화청이 말했다.
“내가 감리로 가서 형산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해라 그거군.”
“예.”
남궁화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각주의 말대로 하시지요. 망할 왜놈이 육가장과 붙어먹었다면 우리 정의맹과 강남 흑도맹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가장 뒤에는 남직례 흑도들의 연합인 강남 흑도맹까지 있다. 상 노개가 이번 일에 끼어들면 남직례 패권을 두고 싸우는 세력 싸움에 개방이 끼어들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성혈문의 일은 차후 연락을 드리지요.”
상 노개가 그렇게 일행에서 떨어져 나갔다.
“성혈문과 육가장이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커.”
멸왜단 총타에 있는 화인천을 통신으로 불러내 이야기한다.
- 산서에서 천문위인 성혈문주와 황보숭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호광에서는 합공이 가능한 초극을 스물 넘게 죽였고요. 그렇다면 성혈문이 육가장이나 강남 흑도맹과 손을 잡았다 해도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보통의 경우라면 맞는 말이다. 정의맹 초극 전력이 몇인데, 초극인 왜놈 하나 합류했다고 호들갑을 떨까.
“놈은 성혈을 이용해 매를 찍어낼 수 있어.”
나노 머신 강탈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필요한 이야기만 한다.
- 예?
“성혈을 가진 놈 하나가 내가 부리는 매와 비슷한 놈들을 수십 마리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 그게 말이 됩니까? 형님의 매가 어떤 영물인데….
“되니깐 하는 소리다.”
- 그게 진짜라면 큰일 아닙니까?
왜놈이 짝퉁 매, 생체 드론 수십 마리를 만들면 육가장에서 그걸로 무엇을 할까?
항주 흑도에게 당했던 짓을 그대로 할 가능성이 컸다. 치고 빠지기.
수십 명의 초극 고수가 있어도 생체 드론의 보조를 받는 몇 명을 막기 힘들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육가장, 아니 강남 흑도맹의 초극 고수들이 수십 개의 조가 되어 신창양가와 남궁세가, 멸왜단의 세력권을 들쑤신다 생각해 봐라.
내가 깔아 놓은 감시 시스템으로 그들을 막는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듣고 움직이는 그들과 전해 듣고 움직이는 쪽의 숨바꼭질이라면 어느 쪽이 이길지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놈들이 매를 움직이면 이쪽에서 알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춰서 준비하도록 해.”
- 단주에게 바로 건의하지요.
“그래.”
화인천과의 대화를 마치기 무섭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 짝퉁 매의 신호가 잡히면 바로 보고해.
- 예, 리퍼.
남궁세가와 멸왜단은 내가 정보 공유를 하면 어느 정도 대응이 되지만 신창양가가 문제다.
서생원 시리즈를 이용한 감시망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신창양가에 그걸 활용할 인원이 없는 것이다.
“신창양가로 간다.”
그러니 신창양가로 달릴 수밖에 없다.
남직례 양주까지 이천 리 길. 지치지 않는 말을 타고 작정하고 달려도 스무 시간은 걸린다.
“인천아. 혹시, 황 도주 총타에 계시냐?”
다시 화인천을 불러 묻는다.
유심조는 불문의 무공. 황학약도 불문 무공인 보타산의 무공을 이었다. 그러니 천문위답게 금방 익힐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기대를 해보고 황학약에게 유심조를 넘겨 볼 생각이다.
육가장과 전면전이 일어나면 왜놈과 육가장주가 나를 노릴 게 뻔한데, 할 수 있는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 도화도주께서는 당연히 도화도에 계시지요.
“도화도에 당장 전서응 띄워. 호신강기 억제하시라고!”
- 예?
“바쁘니깐 당장!”
- 예.
화인천과의 통신을 끊고 바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 황학약과 연결되면 말해 줘.
- 예, 리퍼.
삼백 리 정도 더 내달렸을까?
- 리퍼, ZJ-0….
황학약과 연결되었다.
= 도주, 벽력응주입니다. 천강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무공이 있는데 관심 없으십니까?
리퍼-무공수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