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섬서행(04)
순간, 몸이 찌릿해진다. 무당 장문인이 내게 쏜 기세에 몸이 반응한 것이다.
“지금 자네 수준에서는 영약이 더 도움 되리라 보내만?”
무당 장문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방금의 한 수로 내 수준을 가늠한 것이다.
뭐 천도공이나 여타 다른 꼼수를 쓰지 않고 순수 공력만 따진다면, 나는 뒤에 서 있는 호장우보다 낫다 하기 힘드니 무당 장문인의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당장 천문위 급의 공력을 얻게 해 줄 영약이 아니라면, 지금 제게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익힌 무공이 꽤 특이한 것인가 보군.”
괜히 무당 장문인 하는 것이 아니다. 말 한 마디에 내 사정을 꿰뚫는다.
“예.”
무당 장문인에게 보여 줄 것은 유심조다.
“성혈문과 손을 잡은 자들을 찾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
“조사 자체는 금방입니다만 성혈문에서 말하는 성혈을 가진 자들을 불러들이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요.”
“그들의 명단을 지금 볼 수 있나?”
“예.”
무당산을 오르기 전에 미리 작성해 놓은 무당 수확 대상자들의 명단을 넘겼다.
“본산 제자만이 아니라 속가 제자도 여럿이군.”
무당 장문인이 명단을 보며 말했다. 죄다 이름난 고수들로 무당 장문인도 알 만한 이름들인 것이다.
“죄다 무당산으로 불러들이는 데만 며칠 걸리겠어.”
무당 장문인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바쁘지? 우리 무당의 일만 아닐 테고 다른 문파도 들러야 할 것 아닌가. 일 끝나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값을 치르지.”
당장 무공을 봐주겠다는 소리다.
무당 장문인은 내가 건넨 명단의 인물들을 무당 본산으로 불러들이라는 명을 내린 다음 나를 끌고 도관을 나왔다.
인적 드문 숲속 한적한 공터에서 발을 멈췄다.
“펼쳐 보게.”
무당 장문인의 말에 나는 바로 천도공을 펼쳤다.
우웅!
스피커가 단전을 울리면서 공력이 증폭되고, 그 강력한 힘이 사지백해를 흘러 칼날에 모여든다.
칼날에 맺히는 영롱한 광체에 무당 장문인의 눈이 커진다.
그 상태에서 유심조를 펼친다. 몸을 짓누르는 압박과, 뭉개지는 감각 속에서 천문위의 감각을 빌려와 일격을 날린다.
“하아, 하!”
허공을 긋기 무섭게 무너져 내리며 숨을 몰아쉰다.
“허, 대단하구나. 천문위도 되지 않은 몸으로 천강을 엿보게 하는 무공이라니!”
무당 장문인의 탄성에 눈이 자연스레 커진다.
“천강이라니요?”
“몰랐나?”
“그저, 전신의 힘을 끌어다 모아 한 번에 터트리는 무공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게나마 검령체(劍靈體)를, 아니 도령체(刀靈體)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이네.”
“도령체라 하면?”
“검객이 쓰면 검령체, 도객이 쓰면 도령체지. 뭐 이런 거네.”
무당 장문인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스윽 하고 휘두르는가 싶더니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여기네.”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십 장 너머 공터 밖 숲속에 무당 장문인이 서 있었다. 꺼내 들었던 검은 어느새 왼손에 든 검집 안에 얌전히 들어간 상태.
그르릉!
뭔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주위로 하나의 궤적이 보인다. 아니, 예전에 그려진 궤적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궤적 위쪽의 수목들이 아래의 수목들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져 내린다.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보이는 것이 궤적을 볼 수 없는 유심조와 닮은 것이다.
아니 닮은 정도가 아니다. 저게 바로 유심조가 닿고자 하는 바다.
“다시 한 번 펼쳐 보겠나? 허공이 아니라 나를 목표로 말이야.”
“예.”
내상 치료가 끝나기 무섭게 천도공과 유심조를 연계해 펼친다.
흐려지는 오감은 포기한다. 천문위의 감각으로 육감을 갈아내 무당 장문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를 베는 궤적을 마음으로 그린다.
옥죄는 육체가 해방의 순간을 맞고 마음속 궤적이 현실에 강림한다.
스윽!
뭔가 칼끝에 걸려든 듯하지만, 늪 속에 빠져드는 느낌.
“큭!”
볼 수 없지만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궤적이 깔끔하게 비틀렸다.
“하나가 아니었군. 전신의 힘을 쥐어짜는 도격과 공력을 증폭하는 방법, 이 둘의 연계야. 그렇지?”
“예.”
알아봤으니 숨길 이유 없다.
“영약을 원하지 않는 것은 공력을 증폭하는 방법 때문이었군. 균형이 깨질 수도 있으니 말이야.”
“천도공이라 부릅니다.”
“도격은?”
“유심조입니다.”
무당 장문인의 질문에 공손히 대답한다.
“자네가 봐주길 원하는 것은 유심조의 도격이겠지?”
“예.”
“그럼, 일단 유심조를 쓰지 않는 자네를 알아야 하니 천도공만 사용하여 덤벼 보게.”
“후우, 후.”
잠시 숨을 돌려 천도공과 유심조로 입은 내상을 치료할 시간을 번다.
- 내상 치료가 끝났습니다.
농꾼의 보고와 동시에 단전의 스피커를 틀며 천도공을 운용한다.
쩌정, 쩌저저정! 쩡!
영롱한 빛으로 그려지는 벼락의 그물은 한 자루 검이 그리는 원에 휩쓸려 사라진다.
원을 그리는 것은 검만이 아니다. 장문인의 발걸음도 원을 그린다.
발과 손이 만들어내는 원에 휘말려 내 공격은 마치 질척거리는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찾아온 천도공의 타임아웃.
“시간 한계가 있는 방법이군.”
내가 공격을 멈추기 무섭게 무당 장문인이 물었다.
“예.”
“유심조야 무공 자체가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 몰랐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군.”
“무엇을 말입니까?”
“도대체 자네 사문에서 자네를 어떻게 가르친 건가? 그 나이에 천문위나 다름없는 경지라니!”
“…….”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훔쳐다 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입을 다문다.
“공력을 증폭시키는 천도공을 사용해도 공력이 받쳐 주지 못해 그 모양이지만, 정말 대단해! 자, 이제 유심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게.”
무당 장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가 겪어 본 것에 내가 풀어놓는 설명을 듣고 유심조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원본을 내놓아서 확실히 파악하게 하고 배우는 게 나을 듯했다.
“제 주관이 들어가 왜곡될 수도 있으니 그냥 유심조의 구결을 들으시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유심조가 닿고자 하는 길을 이미 가고 있는 것이 무당 장문인이니, 본인이 유심조를 욕심낼 이유가 없다.
“제자들에게 천강의 경지를 경험시키기 위해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무당 제자들에게 유심조를 전할 위험? 솔직히 나도 오대산의 수확 대상자들에게 빼돌린 기예다.
무당파의 누군가가 유심조를 쓴다면, 나도 오대산 쪽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다.
“세상 이치에 밝은 장문인이시니, 만약 그러신다고 하여도 저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겠지요.”
“자네가 그렇게 감수하겠다면 나야 나쁠 것이 없지.”
무당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유심조 구결.
내 명에 농꾼이 눈앞으로 유심조의 구결을 띄웠다. 그걸 고대로 읊어 준다.
“한 번 더 불러 주게.”
세 번을 읊어 주니 무당 장문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시진이 지난 뒤에야 눈을 떴다.
“대충 이해가 되는군. 잘 듣게….”
그러면서 내공을 움직이는 운기법 하나를 알려 준다.
무당 장문인이 일러 준 대로 공력을 움직인다. 그렇게 그 운기법을 몸에 새겼다.
“대충 적용한 듯하군. 자, 이제 이걸 적용해서 해보게.”
무당 장문인의 말을 따라 천도공을 일으키고 유심조를 펼친다. 그리고 방금 몸에 새긴 운기법을 운용하는데…. 안 된다. 공력이 운기법을 따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흩어진다.
“큭!”
단전이 뜨끔하면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하아, 하.”
주저앉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자니 무당 장문인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혹시 안 되는 건가?”
“예.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니 자네 정도면 못 할 리가 없어야 하는데….”
무당 장문인의 말에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시도해 봤다.
하지만 여전히 되지는 않고 단전을 쑤시는 고통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릴 뿐이다.
무당 장문인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아니 도대체 그게 왜 안 돼?”
그걸 댁이 모르면 안 되지!
“장문인께서 전한 운기법은 어떤 작용을 하는 겁니까?”
속에서 끓어오르는 노성을 억누르며 물었다.
“유심조의 발동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여 주네. 그리고 감각을 흐리는 부작용을 감해 주는 정도지.”
유심조를 펼치면 받아야 하는 위험을 절반 이하로 줄여 준다는 소리다.
“일단 노력을 해보지요.”
“그, 그래 보게나.”
무당 장문인이 계면쩍은 모습으로 답했다. 나름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전했는데 그걸 내가 받아먹지를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언제부터 노력해서 무공을 배웠다고.
= 농꾼, 운기법의 데이터 작성해.
- 예, 리퍼.
정석이 안 되면 꼼수를 쓰면 된다. 어쨌든 쓸 수만 있으면 그만인 거다.
무당 장문인이 가르쳐 준 운기법을 천천히 몸에 새긴다. 운기의 감각과 모든 것을 농꾼이 데이터화 한다.
- 리퍼, 데이터 추출 끝났습니다.
우웅!
천도공과 유심조를 연계해 펼치고 천문위의 감각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운기법 데이터를 돌린다.
“큭!”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씨발, 안 해!
***
무당 장문인과의 교습은 그렇게 민망하게 끝을 맞이했다. 먹여 주는 것을 내가 받아먹지 못했으니 대신 다른 것을 달라 하기도 그렇다.
그래서 조용히 수확이나 한다.
속가 제자들은 불러들이는데 며칠의 시간이 걸리지만, 무당산 자락에 퍼져 수련하던 본산 제자들을 부르는데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이미 무당 본산의 수확 대상자 전원이 모여 있었다.
오십 대 하나에 삼십 대 둘, 이십 대 둘이다.
한 명씩 방으로 들어와 나와 마주 앉는다. 내 뒤에서 무당 장문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수확 대상자는 군말 없이 따랐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먼저 수확한다. 넷의 기억 데이터를 훑어도 성혈문과 관련은 없다.
“무혹은 들어오너라.”
장문인의 명에 오십 대의 도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일부러 맨 뒤로 돌린 인물이다. 호신강기를 억제하자 수확이 시작된다.
- 기억 데이터 검색 결과 성혈문과의 연관성은 없습니다.
성혈문과 무관한 것이 확인되기 무섭게 묻는다.
= 천문위지?
- 예, 리퍼, 천문위입니다.
오십 대의 수확 대상자가 대개 그러하듯, 무혹도 천문위였다.
= 아까 말한 것들 실행해.
- 예, 리퍼.
농꾼이 일을 열심히 하는 증거로 눈앞으로 문자열이 빠르게 흐른다.
- 무슨 문제가 있는 겐가?
무당 장문인의 전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앞의 넷보다 확연히 오래 잡고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다.
- 기다려 주시지요.
무당 장문인에게 전음을 날리고 이 분 정도 지나자,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렸다.
- 작업 끝났습니다.
“호신강기의 억제를 푸시고 나가 보셔도 좋습니다.”
내 말에 무혹이 밖으로 나가자 무당 장문인이 바로 내 어깨를 잡았다.
“설마, 무혹이!”
“걱정하지 마시지요, 진인.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
“무혹아.”
조심스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무혹 도장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거처에 나타난 인영을 보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무당 장문인 청진 진인이다.
“내 이렇게 너를 찾은 것은 오늘 내게 전할 것이 있어서다.”
“전할 것이라면?”
“천강의 경지를 엿볼 비법이다.”
“어, 어찌 제게!”
“딴 뜻은 없느니라, 그저 부단히 노력하는 네 녀석에 대한 작은 상이니.”
청진 진인의 말에 무혹 도장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없으니, 귀를 열고 잘 들어라. 이 비결은 유심조라 한다….”
“무당 장문인이 사기를 치지는 않았겠지?”
무혹이 증강현실 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을 보면서 히죽 웃는다.
유심조의 개량법을 내가 익힐 수 없으면 익힌 놈의 데이터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