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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48화 (148/175)

148화

섬서행(03)

남궁화청과 상 노개가 지하 통로로 먼저 뛰어들고 내가 뒤따른다.

“우리 들어가는 반대쪽은 무너트리고 여기를 지켜. 놈들이 땅 위로 뚫고 나올 수도 있으니 잘 살피고!”

따라 들어오려는 호장우와 정안각 인원들을 말리며 조용히 말했다.

아홉이 죄다 몰려가 놈들과 싸우기에는 놈들이 숨어 있는 지하 공간이 좁은 탓이다.

“젠장, 놈들이 출구 쪽 통로로 들어왔다!”

“입구로 나가!”

“이런, 입구 쪽 통로를 놈들이 무너트렸어!”

“빌어먹을!”

통로 끝에서 놈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린다.

“일단 통로를 무너트려서 놈들을 막아!”

누가 우리 발을 묶을 방법을 토해냈지만 그걸 실행하는 것보다 뇌전을 감은 남궁화청이 그들이 숨은 공간으로 뛰어드는 것이 더 빨랐다.

쿠르르릉! 콰쾅!

상 노개가 누런 구렁이를 그리며 그 뒤를 따랐다.

“공력을!”

“크하압!”

열 중 둘만이 나서 상 노개와 남궁화청을 상대하고 있었다.

놈들이 숨어 있는 공간은 그 폭이 기껏해야 일 장 정도. 열이나 되는 인원이 제대로 된 합공을 펼치기에는 무척 협소한 공간이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나선 둘에게 공력을 몰아주는 정도?

그래도 둘에게 열의 공력이 몰리니 어떻게든 남궁화청과 상 노개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다.

놈들을 제압하는데 못해도 이 각은 걸릴 듯하니 내가 나설 수밖에.

우웅!

천도공을 일으키고 유심조를 시전한다. 유심조의 압박감이 전신을 휘감으며 감각이 둔해지니 천문위의 전투 감각이 그걸 무마하며 육감을 날카롭게 세운다.

남궁화청과 상 노개와 어우러지는 둘을 목표로 잡는다.

그리고 그 둘을 한 번에 베어내는 궤적을 마음속에 그린다.

- 갑니다.

전음을 날리기 무섭게 둘의 신형이 벽으로 붙으며 놈들을 향한 길이 열린다.

거리를 줄이는 동시에 마음속의 궤적을 현실로 꺼낸다.

슥, 확!

칼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 둘. 성공이다.

휙!

방수가 내 몸을 뒤로 던지기 무섭게 남궁화청과 상 노개가 여덟이 된 놈들을 덮쳤다.

공력을 옭아매 휘두르던 주체가, 합공의 핵심 인원이 갑자기 사라진 상태에서 남궁화청과 상 노개가 덮쳐들자 합공은 깨질 수밖에 없다.

쾅, 콰쾅, 콰쾅!

둘을 상대로 열이 펼치던 합공이 순식간에 여덟이 펼치는 개인의 칼부림이 되었다.

공간이 좁으니 협공도 무리. 개인이 된 초극 여덟을 천문위와 천문위를 앞둔 고수가 처리하는데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죽은 놈들 사이를 오가며 나노 머신을 수거한다.

= 없지?

- 예.

내 말에 농꾼이 동조했다. SS-11 대다수를 들이킨 놈이 이쪽에도 없었다.

- 왜인, 마풍단주의 시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쪽에서 열다섯, 이쪽에서 열. 그렇게 총 스물다섯은 확실했다.

시체를 다시 확인하니 성혈문 잔당 프로필에 없는 놈이 하나 있었다.

= 야, 이놈 신체 조건이 왜놈과 완전 다른데?

놈들을 쫓을 때 그냥 머릿수만 확인한 것이 아니다. 놈들의 신체 조건을 확인해 잔당 놈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나.

- 저수지 입수 전까지 이런 신체 조건을 가진 자들은 없었습니다.

= 그 말은 저수지 안에서 바꿔치기했다는 거야?

- 생체 드론의 탐지 기능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농꾼이 다루는 생체 드론의 탐지 기능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놈들에게 있었다면, 이놈들이 들켰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슨 문제 있나?”

상 노개다. 내가 시체 하나를 놓고 인상을 쓰고 있자니 와서 묻는 것이다.

“상 노개가 이놈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농꾼이 풍마단주로 오해했던 놈, 프로필에 없던 체격을 가진 시체를 가리켰다.

“흠.”

상 노개가 그 시체를 잠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 축골공을 익힌 놈이군.”

이놈이 풍마단주로 위장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우리가 올 줄 알았다는 말도 된다. 그럼 기다릴 게 아니라 이 스물다섯을 피신시켰어야 옳다.

이들을 희생해서 저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우리 쪽의 탐지 능력 정도인데? 그걸 알고자 합공이 가능한 초극 고수들을 스물다섯이나 소모품으로 내던진다고? 그것도 우두머리인 성혈문주가 뒈진 상황에서? 이게 말이 돼?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왜 그러나?”

“성혈문이 다가 아닐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무슨 소린가?”

“아무래도 성혈문주가 이들의 수장이 아닌 듯해서요.”

성혈문주 말고 조직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는 놈이 없다면 이런 짓은 불가능하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생각합니다만?”

내 우려를 풀어내자 남궁화청이 말을 꺼냈다.

“반대의 경우?”

“남은 잔당을 우리를 통해 털어버리고 성혈문의 비결을 독식하려는 자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럴듯한 이야기다. 거기다가 살아남은 놈이 마풍단주, 그 왜놈이다. 중원이 아닌 왜국에서 나노 머신의 힘을 휘두를 수도 있는 것이다.

마풍단주 대신 죽은 놈은 우리를 속이기 위한 놈이 아니라 성혈문 잔당을 속이기 위한 놈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남궁화청의 말에 동조하면 성혈문은 패망한 것이 되고 수확의 명분이 날아간다.

“분명한 것은 성혈을 가진 자가, 성혈을 강탈할 수 있는 자가 빠져나갔다는 겁니다.”

마풍단주, 그 왜놈이 진짜로 왜국으로 넘어가 버린다면 별수 없지.

염가동에게 살마제일도 대신 성혈문도의 탈을 뒤집어쓰라 명할 수밖에.

인근 개방 분타에 연락해 뒷정리는 개방 거지들에게 넘겼다. 개방에서는 스물다섯 시체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들의 인간관계를 더듬어 성혈문 잔당 탐색에 써먹으려는 듯하다.

저수지로 여덟 마리 말들이 찾아왔다. 어쨌든 호광에서의 볼일은 끝났으니 다시 하남 숭산으로….

“호광에 온 김에 무당부터 둘러보는 것이 어떤가?”

“놈들의 근거지와 가까우니 무당에 놈들의 손이 닿았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상 노개의 말에 남궁화청이 동조한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호광 경산은 무당의 영역. 따지고 보면 외지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일행이다. 그런데 무당의 영역에서 뭔가 한바탕 난리를 친 뒤 그 뒤처리는 개방에 맡기고 아무 말도 없이 떠난다면 향후 무당파와 얼굴 붉힐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 무당파 수확 대상자가 몇이지?

- 본산, 속가 다해서 열여섯으로 소림 다음으로 많은 인원입니다.

내가 향후 무당파와 얽힐 일이 없으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소림 다음으로 많은 수의 수확 대상자를 가진 곳이 무당파다.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나만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게 좋겠군요.”

거기다가 무당의 영역에서 놈들을 때려잡은 직후다. 나중에 이야기하는 것보다 지금 성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잘 먹힐 것이 뻔했다.

그렇게 일행은 무당을 향해 말을 몰았다.

경산에서 무당산까지는 사백 리. 날이 밝을 때쯤 무당산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 아래 객잔에 말들을 맡겨 두고 산을 올랐다. 무림의 거대 문파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지만, 무당파의 본질은 도교의 대사원. 찾는 신도가 많을 수밖에 없다.

상 노개는 향화객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니라 그 옆의 수목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르니 수목 안으로 따로 길이 나 있었다.

그쪽 길을 따라가니 연못을 끼고 있는 작은 건물 하나가 보였다.

“여기가 무당의 해검지(解劍池)네.”

상 노개의 말에 일행들이 각자의 무기를 풀어놓는다.

무인이라면 무당에 들리지 않아도 무당 해검지의 규칙을 한 번은 들어봤으니 당연했다.

나도 칼을 내려놓고 가지고 있는 소도와 비수들을 하나하나 빼서 내려놓는다.

네 개의 소도와 수십 개의 비수를 꺼냈지만 아직도 내 몸에 숨겨진 비수는 많았다. 여기저기를 더듬어 연신 비수를 꺼내 놓는 나를 보고 상 노개가 질린 얼굴이 되었다.

“무슨 놈의 비수가 이렇게 많아? 이걸 몸 곳곳에 꽂고 다니는데 몸이 움직여지나?”

“잘 꽂으면 전혀 무리 없습니다.”

마지막 비수까지 뽑아 내려놓으며 히죽 웃어 준다.

그렇게 날붙이를 모두 풀어놓은 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갔다.

무림 마당발인 개방 십대 고수의 안면은 무당에서도 유용했다.

“무전 아직도 자네가 접객을 맡고 있나?”

“저야 언제나 이 자리에 있지요. 그나저나 상 노개께서 무당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상 노개의 아는 척에 중년의 도사가 물었다.

“장문인을 뵈러 왔네.”

“뒤에 분들은?”

“정의맹에서 나온 사람들이네.”

“따라오시지요.”

간단한 몇 마디에 중년 도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도관의 심처로 안내했다.

중년 도사가 떠나고 반 각쯤 지나니 백발이 성성한 노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할 거지가 또 무슨 골치 아픈 일을 몰고 왔어?”

“진인,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인사부터 하시지요.”

상 노개의 말에 노도인이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노도가 무당 장문 청진이네.”

천하제일에 가장 가깝다는 무인.

“정의맹, 정안각을 맡은 이도연입니다.”

나를 비롯해 정안각 인원들의 인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천문위를 뛰어넘어 천강에 닿았을지 모른다는 절대 고수인데 어떤 기세도 느낄 수 없다.

“인사했으니 이제 말해 보게.”

“성혈문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자네가 정의맹과 협조해서 열심히 쫓고 있다 들었네.”

상 노개의 말에 무당 장문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산서가 뒤집힐 뻔했습니다. 놈들이 녹림 총채주를 꼬드겨서요.”

상 노개는 성혈을 강탈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빼놓고 산서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무당의 지척인 경산에 놈들의 오랜 근거지가 있었습니다.”

“태행산의 지존이자 무림에서 손꼽히는 천문위인 총채주도 꼬드긴 놈들이 성혈문인데, 그 근거지가 무당 지척에 있었으니 우리 무당 제자 중에 놈들의 수작에 넘어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뭐 그런 소린가?”

“예.”

“자네 정도 되는 인물이 단순히 경고를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 테고?”

“정의맹 정안각주가 성혈문의 꼬임에 넘어간 자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황보세가의 황보숭도 그렇게 찾아냈고요.”

과연 개방 십대 고수다. 내가 입을 놀릴 필요 없게 혼자 알아서 판을 깐다.

“이도연이라 했나?”

“예, 진인.”

무당 장문인의 부름에 머리를 조아린다.

“받은 게 있으면 뭐든 줘야 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 생각하네.”

과연 무당 장문인, 진인이라 불릴 만하다! 세상의 가장 중요한 이치를 깨닫고 있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게.”

무당 장문인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무당의 무공이야 수확하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무당의 영약을 달라고 할까? 하지만 영약은 현재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약을 먹고 공력을 늘려도 천문위가 되기는 무리. 아니 약 먹고 내공을 늘리면 천도공을 처음부터 다듬어야 한다. 아니 까닥 잘못하면 늘어난 공력으로 인해 천도공을, 내공 증폭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될 만한 요구를 생각하다가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가장 흔한 것이다.

“제 무공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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