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섬서행(01)
성혈문의 위험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상 노개다.
성혈문주가 죽었다지만 그 잔당이 어디에 얼마나 숨어 있을지 모르니 성혈문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니 성혈을 가졌다 추측되는 자들, 내가 원하는 자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 검증 받게 할 수밖에 없다.
“호신강기를 억제하라고 했나?”
내 요구에 개방의 십대 고수 중 하나가 인상을 썼다.
분위기가 살짝 험악해지려는 찰나에 상 노개가 끼어들었다.
“불군, 시키는 대로 해라.”
“무슨 일인지 이야기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생판 처음 보는 놈 앞에서 무방비가 되라는 소리에 개방 십대 고수 중 막내인 하불군의 입이 튀어나왔다.
“때 되면 어련히 말해 줄까?”
“상 노개께서 개방 십문의 하나를 책임지듯 저도 이제 개방 십문 중 하나의 주인입니다.”
“불군! 방주께서도 허락하신 일일세.”
상 노개의 말에 하불군이 입을 닫고 호신강기를 억제했다.
- HN-08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개방의 수확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개방의 총타가 있는 개봉에 머무르며 개방의 수확 대상자가 도착하면 수확한다.
- 리퍼, 안테나가 도착했습니다.
물론, 안테나도 3개 1세트로 만들어지는 즉시 황하의 물길을 통해 배달된다.
범고래가 토해내는 안테나를 야밤에 받아 아침에 상 노개에게 전한다.
“젠장, 도대체 이만한 쇳덩이를 어디에서 매번 가져오는 건가?”
안테나를 건넬 때마다 상 노개가 인상을 썼다.
개방도들이 눈 부릅뜨고 있는 개방의 안방에서 무겁고 커다란 안테나를 어디선가에서 들고 오고 있으니 개방 입장에서는 체면 상할 일인 것이다.
“자네, 사천으로 돌아갈 예정이지? 이것 좀 들고 가서 성도 분타에 설치하게.”
“이건 또 뭡니까?”
“성혈문에 대해 이야기해 줬지 않나? 놈들을 찾아내는데 필요한 물건이야.”
어쨌든 그렇게 상 노개의 손을 통해 안테나들은 멀리서 불러들인 수확 대상자들의 손으로 옮겨 갔다.
한 달 정도 개봉에서 시간을 보내니 개방의 수확 대상자들을 죄다 만나 볼 수 있었다.
전부 해서 열다섯, 그 중 천문위만 셋이요, 천문위를 앞둔 자도 넷이다. 거기에 후개(後丐)까지 끼어 있으니 잡다하기로는 제일이라는 개방의 무공 중 굵직한 것들은 죄다 수확했다 할 수 있다.
“하아, 천만다행이야.”
개방의 수확이 모두 끝나자 상 노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혈문과 연관된 자들이 없다고 증명된 것이다.
“자네가 조처했으니 나중에라도 배반자가 나올 일 없겠지?”
“예.”
성혈문 놈들에 대한 프로필을 나노 머신에 넘기고 그들과 접촉 시 숙주의 호르몬이 조작되어 절대 친해질 수 없도록 손을 써 놨다.
뭐 이때껏 마련된 대비책도 죄다 프로그래밍했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갈 건가?”
상 노개가 물었다.
“하남에 온 김에 소림에 들릴 생각입니다. 같이 가 주시겠지요?”
상 노개를 끌고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성혈문의 위험성에 대해 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개방 핵심 인사이자 무림 명숙인 상 노개를 통하는 것이 설득력이 더할 테니 말이다.
“당연히!”
개봉에 자리 잡은 개방 총타에서 소림이 자리 잡은 숭산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다.
대강 사백 리.
무인이 아닌 범인의 걸음으로도 나흘이면 되고, 좋은 말을 타고 내달리면 하루면 되는 거리다.
수확 내내 상 노개를 끌고 다닐 생각은 예전부터 했다. 그래서 개봉에 도착하기 무섭게 건장한 말 한 마리를 사서 미리 나노 머신을 먹여 뒀다.
그렇게 아홉 마리 말에 올라탄 아홉 명이 개봉을 나섰다.
느긋하게 반 시진쯤 달렸을까?
- 리퍼, 호광 경산 일대의 전파량이 극감했습니다.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렸다.
호광 경산이라면 성혈문의 잔당들이 웅크리고 있는 곳이다.
= 놈들이 탐지 지역 밖으로 매를 움직인 거 아냐?
개방을 통해 곳곳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있다지만 아직 안테나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광동, 광서, 운남, 귀주, 복건 다섯 곳이나 된다.
- 탐지 지역 밖으로 매를 움직였으면 그때까지의 이동 경로가 나와야 합니다만,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경산의 지리적 위치가 장강 북부라 흔적 없이 탐지 지역 밖으로 매를 빼돌릴 수 없는 위치다.
- 아무래도 매의 개체 수를 줄인 것 같습니다.
기껏 늘린 매를 써먹지도 않고 줄인다고? 뭐 때문에?
= 현재 전파 발신원이 몇인데?
- 스물다섯입니다.
성혈문 잔당이 스물다섯이다. 만약을 위한 여분 한 마리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와 부딪치면 매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 정도는 알 만한 놈들인데, 여분 하나 남기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
설마, 이것들 나노 머신을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긁어모으는 건가?
도대체 뭐에 쓰려고?
설마, 몰아주기?
= 스물다섯 마리 제외하고 매들의 나노 머신을 한 명에게 몰아줬을 경우 수확 대상자의 나노 머신을 강탈할 수 있어?
- 가능합니다.
젠장!
“숭산행은 뒤로 미뤄야겠습니다.”
“왜?”
내 말에 상 노개가 바로 물었다.
“각주, 성혈문 놈들을 발견한 것이오?”
“남궁 부각주의 말대로인가?”
남궁화청의 말에 상 노개가 다시 물었다.
“예, 호광의 경산 쪽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셋 중 하나는 잡아두는 건데….”
상 노개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개방의 젊은(?) 천문위 중 하나를 보내지 말고 잡아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천문위가 또 있으려고요.”
성혈문 잔당 중에 천문위가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걸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혈문이 완전히 망해 사라지더라도 수확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당장 무공 수확에 성혈문만한 핑계가 없으니 당연하다.
“어쨌든 빨리 가세.”
상 노개의 재촉에 일행의 선두에서 말을 달린다.
= 최단거리 경로 잡아.
- 예, 리퍼.
잠시 후 눈앞으로 지도가 펼쳐지며 경로가 표시된다. 511km. 대강 천이백칠십칠 리다.
- 정보 공유합니까?
= 해.
내 말에 모두의 눈앞으로 지도가 펼쳐졌다.
“근 천삼백 리라, 열심히 달리면 오늘 밤에 도착할지도….”
“자네들이 탄 말은 고르고 고른 명마라 가능할지 몰라도 내가 탄 말은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남궁화청의 말에 상 노개가 하는 소리다.
“예까지 무리 없이 따라오는 것 봤잖습니까? 그리고 그 말도 사들인 다음 좋은 거 많이 먹여 놔서 정안각 말들과 큰 차이 없습니다.”
“자네 말과는 덩치부터 다른데?”
이 양반아 아무리 그래도 마원과 비교하면 안 되지? 이건 그냥 말이 아니라 무기라고!
거의 여섯 시진을 꼬박 달려 목적지를 한 오십 리 남겨 뒀을 때다.
- 리퍼, 아무래도 성혈문의 매들이 응 시리즈의 전파를 탐지한 듯합니다.
= 뭐? 전파 탐지 피하려고 매들 뒤로 뺐잖아. 그런데도 걸렸다고?
순간 지도가 떠오르고 스물다섯의 점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다가서는 방면으로 오는 매는 한 마리도 없다. 농꾼 말대로 이쪽을 탐지하고 도망치는 것이 분명했다.
= 잔당들의 움직임은?
- 이쪽에서는 관측 불가입니다.
응 시리즈를 잘 아는 성혈문 놈들답게 지하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 매들이 흩어진 김에 사냥한다.
이 기회에 놈들의 매들을 좀 줄여 놓자.
= 다섯 마리 빼고 전부 사냥에 투입해.
- 예, 리퍼.
사냥 장비를 갖춘 여덟 마리의 매가 둘씩 짝을 지어 각자의 사냥감을 쫓는다.
= 잡을 수 있는 만큼 잡는다. 하지만 다 잡지는 마.
놈들에게 매가 있으면 중원 전역에 깔아 놓은 안테나의 전파 탐지로 그 뒤를 쫓기 쉬운 것이다
“각주, 아무래도 놈들이 눈치 채고 몸을 피한 것 같습니다만?”
남궁화청이 자신에게 할당된 매를 부려 놈들의 근거지를 살핀 뒤 말했다.
“매의 눈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면 지하로 들어간 듯합니다.”
호장우가 남궁화청의 말에 동조했다.
“밖으로 나오면 매들의 눈에 걸려들 테니 우리는 예정대로 놈들의 근거지로 가세.”
상 노개가 말했다.
“놈들이 계속 지하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지하 통로를 찾자는 말이군요.”
“그렇지.”
내 말에 상 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말안장을 박차고 경공으로 목적지를 향해 내달린다.
= 마원 시켜서 말들 따라오게 해.
말은 마원에게 맡겨 둔다.
= 통신 벌레와 꿈틀이 뿌려서 지하 통로 입구 찾아.
사냥에 가담하지 않은 매들이 바삐 움직인다.
내달리기 시작한 지 일각 만에 산을 올라 산 중턱의 장원에 도착했다.
일행은 주저 없이 담을 넘고 장원의 한곳을 목표로 내달린다.
쾅!
문을 박살내고 안으로 뛰어들어 침상을 뒤집는다.
그 아래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드러난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도중에 꿈틀이들이 이미 입구를 찾았고 그 정보가 공유된 것이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앞뒤로 꿈틀이를 뿌리며 지하와 바깥의 전파 중계망을 형성한다.
지하 통로를 백 장 정도 내달렸을까?
- 경산 서쪽 방면에서 적들을 발견했습니다.
지도가 뜨고 우리와 놈들의 위치가 표시된다. 지하 통로가 곧게 뻗어 있다 해도 2km는 달려야 할 거리다.
“돌아갑니다.”
놈들이 튀어 나왔으니 우리도 나가야 했다. 여기서 그냥 지하 통로를 따라 계속 달리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때까지 녀석들의 수작을 생각하면 놈들이 할 일은 뻔하다.
일행들이 왔던 길을 되짚어 열심히 달리는데….
콰르르릉!
뒤에서 굉음이 들린다. 아니 쫓아온다. 예상대로 놈들이 통로를 무너트린 것이다.
예상하던 일이라 누구 하나 당황하지 않고 발을 멈추지도 않는다. 여기서 발을 멈춰 파묻히면 놈들이 도망칠 시간만 줄 뿐.
“어차!”
내가 마지막으로 지하 통로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통로의 입구가 흙먼지를 잔뜩 토해냈다.
“각주, 놈들이 흩어집니다.”
- 두 무리로 나뉘었습니다.
호장우와 농꾼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화면을 보니 두 무리로 나뉜 놈들이 각기 서쪽과 북쪽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서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열다섯이고, 북쪽으로 내달리는 자들은 열이다.
놈들을 따라 움직이는 매들은 서쪽이 열셋, 북쪽이 다섯. 일곱은 내가 보낸 응 시리즈에게 사냥당했다.
둘 중 한 곳에 SS-11의 대부분을 가진 놈이 있다. 그놈을 잡지 못하면 수확 대상자를 상대로 나노 머신 강탈을 시도할 것이 뻔한 일.
그렇게 되면 성혈문주를 잡아 죽인 보람이 없어진다.
= 천문위가 없는 것은 확실하지?
- 예, 리퍼.
놈들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오십 리만 달리면 강이다. 인근에 도망가기 쉬운 강이 있는데 인원을 나누는 것은 우리를 유인하겠다는 수작. 쉽게 도망갈 수 있는 곳에, 제일 안전한 곳에 놈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둘로 나눕니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일행을 둘로 나눠야 한다.
거기다가 우리 쪽 인원은 열이 안된다. 둘로 나눠서 쫓는다고 해도 놈들이 또 흩어진다면?
놈들을 제일 많이 때려잡을 방법을 선택한다.
“나는 서쪽! 상 노개와 다른 사람들은 북쪽!”
“혼자 괜찮겠나?”
내 말에 상 노개가 놀란 눈이 되어 물어본다. 성혈문의 잔당들은 죄다 초극. 열다섯이나 되는 초극을 혼자 쫓겠다는 것이니 걱정할 만하다.
“문제없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먼저 몸을 날린다. 내가 그렇게 움직이자 상 노개와 다른 일행들도 바로 움직였다.
= 마원 이쪽으로 불러!
손가락을 까딱이며 피풍의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