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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45화 (145/175)

145화

산서행(14)

성혈문주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그 목을….

갑자기 몸이 뒤로 당겨진다.

콰학!

옆구리가 뜯겨 나가는 통증과 함께 내 몸이 바닥을 뒹군다.

- 내상과 외상 치료 시작합니다.

옆구리를 보니 피가 흥건하다. 농꾼이 방수를 움직여 내 몸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두 동강이 났을지도 모른다.

성혈문주가 바닥을 굴러 유심조의 칼날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한 것이다.

“어떻게?”

남궁화청과 정안각 여섯의 협공, 거기에 상 노개의 기습을 신경 써야 해서 싸움판 밖에 있던 나를 살필 정신머리 따위 없었을 텐데?

- 나노 머신을 활용한 듯합니다.

싸움에 집중한다 해도 육체는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다만 뇌가 처리할 여유가 없을 뿐. 그러니 나노 머신이 성혈문주의 뇌 대신 나를 주시하고 있다가 내가 덮쳐드는 타이밍에 신호를 보내 성혈문주가 반응한 것이다.

유심조의 칼질은 인지를 뛰어넘지만, 그 칼질을 하기 위해 다가서는 내 발걸음은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유심조로 한칼 먹이려면 칼이 닿을 거리로 다가가야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달려드는 수법이 안 통한다면 근거리에서 유심조를 써야 한다는 말.

하지만 유심조를 운용하면 몸이 굼떠진다. 그 굼뜬 몸으로 강기가 난무하는 저 난장판에 끼어든다?

일행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될 뿐이다.

고로 유심조로 싸움을 끝내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 상처 치료되었습니다.

성혈문주의 전신은 피투성이다. 이 시대의 평범한 천문위라면 저렇게 자잘한 상처라도 계속 쌓이면 싸움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는 어지간한 상처는 단번에 치료되는 나노 머신 소유자. 일정 부위를 움직일 수 없는 큰 상처가 아니면 싸움에 큰 지장이 없다.

= 방수 가동.

네 개의 방수에 칼 하나씩 쥐어주고 슬금슬금 격전장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드러나는 틈에 바로 난입한다.

우웅! 오올!

몸 안팎에서 스피커가 울부짖으니 섬광격이 깃든 다섯 칼날이 성혈문주를 몰아친다.

콰카캉, 콰쾅!

“크흑!”

강기를 휘감은 성혈문주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천문위의 전투 감각으로 휘두르는 섬광격의 다섯 칼날에 신경 쓰다가 진짜 천문위인 남궁화청에게 일격을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칼날들이 빛을 잃는다. 6초가 지나 섬광격을 유지하는 배터리가 다된 거다.

“끼요옷!”

“까앗!”

“오로롤!”

내가 물러나기 무섭게 그 자리를 정안각의 합창이 채운다.

어쨌든 성혈문주가 꽤나 큰 상처를 입었으니 몰아붙일 기회다.

천도공에 이어 유심조를 일으킨다. 바닥을 밟고 서는 것이 아니라 전신 관절을 굳건하게 조여 자세를 유지한다.

= 방수 회피 기동 모드, 성혈문주에게 접근.

내 몸이 굼떠? 그럼 아예 안 움직이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저 유심조의 한칼. 그 한칼을 날릴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성혈문주와의 거리 조절은 농꾼에게 온전히 맡긴다. 내 몸 곳곳에 달린 인공 근육 덩어리, 방수라면 내 몸 하나쯤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몸에 적용되는 천문위의 전투 감각에 일행들의 움직임이, 성혈문주의 움직임이 걸려든다.

모두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격전장을 중심으로 내 몸이 돌고 있다.

그리고 유심조가 해방되는 순간, 나는 성혈문주의 뒤에 설 수 있었다.

성혈문주가 바닥을 굴러 반격할 것을 대비해 칼을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올려친다.

콰콱콱!

뭔가 묵직한 충격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허공으로 튕겨 나는 성혈문주의 신형과 그를 향해 덮쳐드는 남궁화청이다.

콰르릉! 콰쾅!

남궁화청의 공격이 그대로 성혈문주의 몸에 틀어박히니.

- BZ-04 수확을 시작합니다.

농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도공과 유심조의 후유증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자연스레 수확 데이터를 받아들인다.

BZ-04라면 북직례에 뿌려진 나노 머신이다. 데이터베이스를 찾으니 북직례에 자리 잡은 장군가의 인물을 숙주로 했다.

장군가의 인물이 어떻게 성혈문주가 되어 이 난리를 떨었는지 궁금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바로 몸을 일으켜 성혈문주가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머리에 칼을 꽂고 경력을 쏟아내 부활의 여지를 없앴다.

= BZ-04 수거 끝나면 기억 데이터에서 성혈문의 인원과 거점을 검색해서 뽑아 줘.

- 예, 리퍼.

성혈문주가 죽었다 해도 성혈문이 와해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성혈문의 핵심은 천문위의 무력이 아니라 성혈, 나노 머신이다. 그 설정을 고쳐서 제 놈들 뜻대로 부리는 힘.

당장 산서에서도 성혈문주 본인 말고도 나노 머신 추출을 할 줄 아는 놈이 셋이나 있었다. 다른 잔당들이 그 방법을 모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뿌리를 뽑아야 했다.

태행산 총채주의 경우처럼 성혈을 부여해 주겠다며 천문위의 고수를 꼬드겨서 새로운 성혈문주로 내세운다면 고생해서 성혈문주를 때려잡은 보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군. 혹시 아는 거 있나?”

상 노개가 총채주를 몰아붙이는 녹림 천문위 둘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성혈문도 셋에게 무력하게 끌려가던 둘이 갑자기 쌩쌩해져서 돌아와 총채주와 싸우고 있는 상황.

저 싸움이 끝난 다음, 녹림 천문위 둘과도 싸워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것이다.

“이쪽에서 손을 써서 구출했으니, 저 둘이 칼을 들이밀지는 않을 겁니다.”

- SS-16의 수확이 시작됩니다.

농꾼의 보고. 총채주가 쓰러지고 싸움이 끝났다. 먼저 SS-16의 수확 데이터를 받아들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극 고수의 데이터였지만 주인이 바뀌며 하루 만에 천문위의 데이터로 업데이트된 격이다. 물론 천문위로 가는 과정이 빠진 데이터라 21세기에서 볼 때는 별로 좋은 데이터는 아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주겠나?”

녹림 도객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도 대강 짐작을 할 뿐 자세한 이야기를 모른다.

= 총채주와 성혈문의 협상 기억 먼저 찾아 봐.

- 예, 리퍼.

그래서 농꾼에게 떠넘긴다.

성혈문주와 황보숭의 기억 데이터를 뒤지면 녹림 총채주와 어떻게 손을 잡았는지 나올 것이다.

“뒤처리부터 먼저 하지요.”

여차하면 바로 싸울 수 있게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일행들을 지나 총채주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팔다리는 물론, 머리까지 작정하고 토막을 쳐놓은 상태.

하지만 SS-16은 아직 숙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치료 기능을 풀로 가동 중이다.

시간이 있으면 살아날 게 분명하니 잘려진 머리에 손을 올렸다.

파삭!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SS-16의 수거는 농꾼이 알아서 할 일.

“부각주, 저쪽 좀 뚫어 주시겠습니까?”

녹림의 두 천문위가 뚫고 나왔던 구멍, 내가 무너뜨린 구멍 쪽을 가리켰다.

농꾼이 넘긴 정보에 힘입어 남궁화청은 단 일곱 번 검을 휘둘러 막힌 구멍을 뚫었다.

구멍 뒤 통로는 길었다. 그 중간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는 태행산의 수확 대상자들을 만났다.

빠각! 빡! 파각!

성혈문도 셋을 끈질기게 밟고 있는 마원도….

***

태행산 총채주가 성혈문과 손을 잡고 태행산의 수확 대상자들을 숙청하려 했던 이유는 뻔했다.

자신 사후에도 자신의 혈족이 대대손손 태행산의 권좌를 계속 쥐고 살기 바랐던 거다.

혈족 중 자신 이후 천문위가 될 것이라 기대한 자들은 벽을 넘지 못하고 죄다 주저앉았다.

그런 차에 총채, 혈족 밖에서 천문위가 둘이나 탄생했다. 그것도 예순도 안 된 새파란 놈들로.

총채주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두 놈이 손을 잡아 자신과 혈족들을 밀어내려 할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그 둘을 주시하다 보니 눈에 띄는 자들이 있었다. 자신의 혈족들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진 자들, 그 둘과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여덟이나 더 있었다.

성혈의 존재를 몰랐으면 모를까 성혈문의 방문을 받고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천문위 둘과 다른 여덟의 성장이 성혈 덕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고, 성혈이 주는 효과가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냥 두면 자신 사후 혈족들이 저들에게 밀려날 것은 명확한 일. 저들을 숙청하기 위해, 성혈을 얻기 위해 총채주는 암습 당했다는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성혈문은 거기에 나를 들이밀었다. 총채주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 천문위 둘과 다른 여덟이 저항한다면 태행산의 전력이 얼마나 깎일지 모르는데 외부 전력을 이용해 그들을 처리할 수 있다니 박수칠 일 아닌가.

그래서 투두투검과 나를 충돌 시키는 계획이 만들어졌다. 그 충돌로 나를 총채주 암습의 범인으로 만들고 천문위 둘과 다른 여덟을 시켜 쫓게 해서 공멸시키는 것이 원래 계획.

투두투검과의 충돌이 흐지부지 끝나고 내가 총채에 방문 요청을 하자, 총채에서 충돌하도록 계획을 바꾼 것이다.

이게 성혈문주와 황보숭, 성혈문도 셋의 기억 데이터를 검색해 얻어낸 결론이다.

태행산 총채는 녹림의 수확 대상자들이 장악했다.

총채주도 이미 죽고 없는 상태에다가 총채주 혈족의 핵심 인사들도 태반이 다쳤거나 죽은 상태였다.

우리 일행이 성혈문도가 숨은 전각에 돌입할 때 일 층에서 모여 있던 자들이 그들이었다.

녹림 도객과 검객, 두 천문위를 힘이나 권위로 찍어 누를 사람이 총채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태행산 녹림과 정의맹 정안각 사이에 있었던 충돌은 없던 일이 되었다. 총채주와 성혈문의 거래 역시 마찬가지. 태행산 총채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그저 총채주와 두 천문위의 권력 다툼으로 포장되어 마무리되었다.

성혈문 인사들의 기억 데이터를 통해 산서에 남아 있는 성혈문도들이 더 없음을 확인했다.

오대산에 그 사실을 알리고 성혈문의 문주와 문도 셋의 시신은 개방도를 불러 조주선에게 보냈다. 황보숭의 시신은 당연히 황보세가로 보냈다.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

산서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성혈문 잔당 현황 띄워 봐.

성혈문주와 문도들의 기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잔당의 프로필이 뜬다.

왜놈인 마풍단주 포함, 총 스물다섯이다. 전원이 초극 고수, 스물이 일반적인 초극의 수준을 뛰어넘었다지만 천문위는 없다.

수확 대상자도 없다. 스물다섯 전원이 나노 머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SS-11을 나눈 것이다.

생체 드론 활용을 위해 최소한의 나노 머신만을 주입한 것이다.

= 저 정도로는 수확 대상자들의 나노 머신을 강탈할 수 없겠지?

SS-11을 스물다섯으로 나눈 정도가 아니다. 응 시리즈를 카피한 생체 드론도 SS-11을 썼을 테니 그 분할률은 더 높아질 터다.

- 예, 리퍼.

저만한 전력이 생체 드론을 활용하여 일을 벌인다면 현 무림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내 수확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성혈문 잔당이 날뛰면 날뛸수록 정안각이 움직이기 쉬워지고 수확 대상자와 접촉할 수 있는 명분이 확실해지니 말이다.

거기다가 개방의 도움으로 중원 전역에 안테나를 세운다면 응 시리즈 카피 본을 추적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상 노개, 예전의 약조대로 개방 분들을 만나 볼까요?”

그러니 성혈문 잔당들은 이대로 놔두고 개방의 수확 대상자들이나 만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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