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산서행(12)
셋, 셋. 여섯과 하나가 살벌하게 부딪치고 있다. 천문위를 상대하기 위해 합공과 협공을 익힌 여섯인지라 천문위를 앞둔 하나를 상대로는 여유로웠다.
굳이 상대를 쓰러트릴 이유도 없다. 수십 초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들이!”
공격이 번번이 막히자 하나가 노성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난다.
하나의 칼끝으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려든다. 그 칼이 막 호장우를 향해 움직이려는 순간, 뒤에서 강기로 그려지는 누런 구렁이가 용트림한다.
콰쾅! 콰콰쾅!
칼을 휘둘러 후방에서 덮쳐드는 구렁이를 지우며 그가 이를 갈았다.
“의와 협을 숭상한다는 개방의 십대 고수가 기습….”
콰르릉!
뇌성이 그의 말을 끊고, 번뜩이는 뇌정이 그의 숨통을 끊었다.
상 노개가 선제 기습으로 주의를 끌고 남궁화청이 마무리한 것이다.
동급의 고수와 한 단계 위의 고수가 손을 잡고 기습하니 천문위를 앞둔 고수라도 순식간에 당할 수밖에 없다.
전각 밖으로 튕겨 난 둘과 안의 하나. 어쨌든 천문위를 앞둔 셋이 정리됐다.
분진 폭발의 굉음을 비롯해 격돌의 굉음이 여러 번 났는데, 녹림 총채사람들이 우리의 침입을 모를 리 없다.
총채의 초극 고수와 정예들이 이쪽을 향해 개떼처럼 달려온다.
쾅, 콰르릉!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전각 바닥을 후려치니 바닥이 내려앉으며 아래로 통하는 통로가 드러났다.
성혈문 놈들이 숨어 있던 곳으로 통하는 통로다.
- 통로는 이상 없습니다.
농꾼의 장담에 주저 없이 안으로 뛰어든다. 남궁화청과 상 노개가 따라와 내 앞에 선다.
일행이 모두 통로 안으로 들어왔지만, 총채의 고수 중 쫓아 들어오는 자들은 없었다.
그래도 언제 들어와 뒤를 칠지 모르니 양연곤을 비롯한 신창양가의 셋이 뒤를 경계했다.
길지 않은 통로 뒤에 굳게 닫힌 석문이 보였다.
콰르르릉! 콰쾅!
남궁화청이 뿌린 뇌전의 강기가 두 자 두께의 석문을 박살냈다.
그 안쪽에는 검을 빼든 총채주와 수확 대상자 하나를 같이 물고 있는 성혈문도 셋이 있다.
피를 빨리고 있는 쪽은 SS-01의 숙주. 외팔이 녹림 도객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피를 잃고 미이라가 된 시체 한 구.
- SS-16의 숙주입니다.
농꾼이 재빨리 그 정체를 알려 준다. 성혈문과 한패가 아니라 녹림에서 최초로 나노 머신을 추출 당한 희생자였군.
“허, 족히 한 달은 정양해야 할 상처였을 텐데, 반 시진도 되지 않았는데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너희 두 놈도 성혈을 가졌던 게구나!”
총채주가 상 노개와 남궁화청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총채주, 산서에서 은자를 갈퀴로 긁는 분이 거지에게 빚을 떠안기는 건 좀 아니지 않소?”
상 노개가 히죽 웃으면서 양손을 누렇게 물들였다. 좀 전 죽을 뻔한 빚을 갚겠다는 소리다.
“상 노개, 제 몫도 있지요?”
옆에서 남궁화청이 거들었다.
“물론이네.”
말과 동시에 상 노개의 황망장이 용트림치고 남궁화청의 십삼섬전뢰가 뇌전을 뿌렸다.
쾅, 콰르르릉, 콰쾅!
굉음과 함께 셋의 신형이 격하게 어우러졌다.
지하 연공실의 공간이 제법 넓다 해도 저렇게 날뛰는 셋을 지나가는 것은 무리.
격전장 너머에서 외팔이의 피를 빨고 있는 성혈문도들을 저지하려면 먼저 총채주를 치워야 했다.
우웅!
그러니 천도공을 일으키고 유심조를….
콰르르릉!
뒤쪽에서 울리는 굉음. 우리가 들어온 십 장 길이의 통로가 무너졌다.
뭔 수작이지?
성혈문 놈들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지하라지만 별로 깊지 않은 곳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칼질 몇 분 열심히 하면 될 정도. 아니 이제 나 혼자 칼질할 필요도 없다.
일행 전원이 체내 나노 머신 보유자들이니 이렇게 공간이 있으면 정보 공유로 다 같이 칼질을 할 수 있다. 나 혼자 땅을 파는 것보다 단순 계산으로 아홉 배는 빨라진다는 말.
거기에 이렇게 통로가 막히면 당장 우리에게 유리하다. 통로로 쏟아져 들어올지 모르는 녹림 고수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쾅, 콰쾅!
이번에는 피 빠는 세 놈의 뒤쪽 벽면이 터져 나간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두 명.
- 리퍼, 성혈문주와 황보숭입니다.
씨발, 욕 나온다. 이 상황에 천문위 둘을 끼얹어? 양심도 없는 것들! 통로를 무너트린 게 도망 못 치게 퇴로를 끊은 거였어?
바로 양손을 떨친다. 기막의 회오리가 형성되고 금속 분말이 주머니째 빨려든다. 그리고 세 명이 만들어내는 격전장으로 낮게 깔리듯 날아갔다.
콰콰쾅!
정신없이 격돌하는 셋의 사이에서 일어난 분진 폭발!
셋의 신형이 폭발의 여파로 각기 밀려난다.
“부각주 옆으로!”
정안각 셋, 셋을 앞세우고 남궁화청의 옆으로 합류한다. 상 노개도 잽싸게 가담해서 일행이 하나로 뭉쳤다.
우리가 하나로 뭉치자 총채주를 비롯한 저쪽의 천문위들이 나란히 선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성혈문도 셋은 외팔이를 입에 문체 녹림 수확 대상자들을 성혈문주가 나온 구멍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냥 구멍이 아니다. 다른 데로 이어진 통로가 분명했다. 여기 싸움이 어떻게 되든 일단 나노 머신을 확보하고 보겠다는 심보다.
“핫!”
회선표의 수법을 응용해 피 빠는 셋을 향해 비수를 날린다.
캉, 카캉!
피 빠는 셋도 초극 고수들. 뻔한 비수 투척은 가볍게 튕겨낸다.
강기도 싣지 않은, 호거술로 위력을 강화하지도 않은 비수로 저들을 저지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
비수에 붙어 갔던 꿈틀이들이 순식간에 구멍 안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구멍의 구조가 파악됐다.
딴 데서 파고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 입구가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멀다.
= 마원과 연락돼?
- 지금 연결되었습니다.
저 구멍 덕이다.
= 마원이 땅을 팔 수 있던가?
- 가능합니다.
농꾼의 대답에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저쪽은 천문위가 셋인데, 이쪽은 천문위 둘을 간신히 감당하는 전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길 전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콰콰쾅!
구멍이 무너진다. 우리가 따라붙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
구멍이 무너지는 굉음을 신호로 성혈문주를 비롯한 저쪽 천문위 셋의 전신이 강기로 뒤덮인다. 아니 바로 덮쳐든다.
일단 먼저 천문위 셋의 협공부터 막아야 한다. 내가 가진 기술 중 협공을 깨는 가장 좋은 건 역시 분진 폭발이다.
양손으로 쉴 사이 없이 기막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면 방수가 금속 분말을 주머니째 던져 넣는다.
쾅, 콰콰콰쾅!
내 양손을 따라 움직이는 기막의 소용돌이가 총채주와 성혈문주 둘의 진로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로 둘이 멈추니 하나가 덮쳐드는 꼴. 그 하나, 황보숭을 향해 남궁화청과 상 노개가 달려든다.
쾅, 콰콰콰쾅!
힘과 힘이 만들어내는 충격이 지하를 울린다.
남궁화청과 상 노개에 의해 황보숭이 이쪽으로 밀려온다.
“끼요옷!”
“까앗!”
“오로롤!”
정안각 셋, 셋의 합창이 울려 퍼지며 창칼과 검이 황보숭을 맞이한다.
콰쾅, 콰콰쾅!
거기에 다시 남궁화청과 상 노개의 공격까지 더해지니, 나를 제외한 모두의 공격이 황보숭에게 집중되는 격이다.
내가 거기에 끼지 않는 이유는 연신 기막의 회오리를 날려 분진 폭발로 다른 천문위 둘의 발을 묶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쿵! 쿵! 쿵!
폭발음 사이로 들리는 둔중한 소리. 성혈문주와 총채주는 천근추와 같은 중신법(重身法)으로 폭발의 여파를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쪽으로 굳건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리퍼, 마지막입니다.
젠장, 금속 분말까지 떨어졌다.
마지막 분진 폭발이 끝나자 천문위 둘의 신형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우웅!
천도공을 일으키고.
= 방수 회피 모드.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두른다.
“크아악!”
동시에 터지는 비명, 황보숭의 것이다. 두 명의 천문위는 나를 덮치지 않았다. 칼질을 피하고 나를 지나쳐 일행을 덮친다.
콰콰콰쾅!
황보숭을 후려치던 일행들은 두 천문위의 공격에 자신들의 몸을 지키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니 흩어지기 무섭게 내 주위로 몰려든다.
단전을 울리는 스피커를 꺼 천도공을 해제한다.
“크윽.”
피투성이가 된 황보숭이 인상을 쓰며 신음을 흘리고 있다.
상처가 제일 심한 곳은 허벅지와 종아리.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천문위의 고수라도 며칠은 정양해야 할 상처지만, 나노 머신 보유자인 탓에 몇 분이면 치료될 상처다.
성혈문주와 총채주가 양쪽에서 황보숭을 끼고 몸을 움직인다.
타타탁!
벽을 밟고 천장을 달려 모여 있는 우리를 넘어간다. 무너져 막혀 버린 구멍 앞에 내려서 황보숭을 내려놓는다.
저 자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뻔하다. 구멍이 막히고 통로가 무너졌다지만 죄다 무너진 게 아니다. 조금만 파내면 통로가 드러나니 우리가 도망갈 여지를 전혀 안 주겠다는 것이다.
성혈문주와 총채주, 두 천문위는 황보숭의 앞을 막고 서서 우리를 향해 무기만 겨눴다.
먼저 덤벼들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무리하지 않겠다는 거다. 황보숭이 다 나은 뒤 셋으로 덤비겠다는 속셈.
놈들이 시간을 준다는데 우리가 거부할 필요 없다.
뒤로 한 발 물러난다. 일행들을 앞에 세우고 내가 할 것이라고는 뻔하다.
- 신호하면 길을 터.
일행들에게 전음을 보낸 뒤.
우웅!
다시 천도공을 일으킨다. 거기에 유심조를 더하니 자연스레 적용되는 천문위의 전투 감각. 세 명의 천문위 중 목표를 잡는다.
유심조의 공능이 몸을 압박한다. 십 몇 초의 짧은 시간. 금방이다.
“터!”
외침과 동시에 일행들이 내 앞에서 비켜서고 그 길을 그대로 달려 칼을 휘두른다.
촤악!
칼에 뭔가 걸리는 느낌.
“놈!”
총채주의 노성과 함께 빗발치는 강기의 무더기.
콰콰콰쾅!
하지만 내 몸은 그것들을 피해 바닥을 구른 뒤 허공을 날고 있었다. 농꾼이 방수를 움직인 것이다.
성혈문주가 그런 나를 쫓으며 강기를 날렸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콰르릉!
남궁화청이 그 앞을 막아서고, 상 노개와 정안각의 여섯이 덮쳐든다.
이에 총채주가 덮쳐드니 일행들과 천문위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행들이 천문위 둘을 상대하는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바닥에 널브러진 나는 유심조가 만들어낸 결과를 감상했다.
“크윽, 큭.”
황보숭이 피거품을 토하며 갈라진 목을 굳게 잡고 있다.
목뼈를 자르지는 못했지만, 식도와 중요 혈관은 완전히 갈라놓았다. 출혈 과다로 죽지 않으려면 나노 머신이 저 상처부터 치료해야 했다.
다시 몇 분 번 것이다.
천문위 셋과 초극 여섯, 천문위를 앞둔 하나가 만들어내는 난장판이라 이리저리 강기가 튀는 것은 당연지사.
농꾼이 방수를 열심히 움직여 내가 강기의 파편에 얻어맞는 일이 없게 한다.
- 내상 치료 완료되었습니다.
= 방수 가동. 투척이다!
우웅!
천도공을 일으키고 모든 공력을 여섯 방수에 때려 박으니.
오올!
방수가 내던진 비수들이 유사 강기를 머금고 황보숭을 향해 줄을 잇는다.
쾅, 카카캉, 콰캉!
칼 맞아 상처 입고 낫기를 기다리는 몸이라도 천문위는 천문위. 농꾼이 계산해서 방수로 던진 비수들을 검으로 쳐내고 몸을 틀어 피한다.
내 공격에 화들짝 놀란 것은 성혈문주와 총채주. 재빨리 상 노개와 정안각 인원들을 밀어내고 몸을 빼 황보숭 앞을 막아선다.
일행들도 그들을 따라붙기 보다는 뒤로 물러나 내 곁으로 모인다.
= 아직 멀었어?
- 지하의 밀폐 공간이라 통신 차단 상태입니다.
농꾼에게 계획의 진행도를 묻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이따위다.
젠장, 마원의 인공지능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