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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38화 (138/175)

138화

산서행(07)

유심조를 사용하는 황학약의 목에 진우탁의 창날이 너무나도 쉽게 파고들었다.

“이거 왜 이래?”

다시 돌려도 마찬가지다. 시작하기 무섭게 진우탁의 창날에 황학약의 목이 날아간다.

“양묵현으로 상대 바꿔.”

이번에도 일초지적이다.

“창이랑 상성이 안 좋나?”

이번에는 검수로 바꿔 본다.

당대 검후. 보타문 속가의 대사저가 휘두르는 검은 황학약의 전신을 순식간에 난자한다.

“남궁화청으로!”

남궁화청을 상대로는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허나, 그뿐이다.

원래의 황학약이라면 갓 천문위가 된 남궁화청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면 부렸지 저딴 식으로 몰릴 리 없었다.

하지만 화면 안의 황학약은 몰리고 있었다. 덮쳐 오는 검격을 간신히 막고 피한다. 아니 뒷걸음질 친다. 검격에 실린 기세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저게 말이….”

기가 차서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예의 칼질이 발휘된다. 그리고 남궁화청의 목이 뚝 하고 떨어진다.

“뭐야 진짜?”

보는 것만으로는 어떤 무공인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그러니 몸으로 겪어 보는 수밖에 없다.

= 유심조 데이터 내 몸에 적용해.

- 예, 리퍼.

이거 뭐야?

유심조의 데이터를 몸에 적용하는 순간, 몸이 무겁다.

팔다리에 뭔가가 잔뜩 매달린 느낌.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뿐이랴 뭔가가 숨통을 조여 온다. 시야가 뿌예지고 귓가에 이명이 울린다.

그리고 심장을 짓누르는 압력.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느끼는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전신의 모든 힘이 한 번에 쑥 빠져 나간다.

“하아, 하.”

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 방금 일어난 일 화면으로 재구성해.

- 예, 리퍼.

멍하니 서 있던 내가 갑작스레 칼을 휘두른다. 전조도 뭐도 없이 느닷없이 휘둘러지는 도격이다.

칼이 움직이는 것을 인지한 순간 이미 칼날은 공간을 긋고 멈춰 있다.

딱 봐도 초극 상태인 나는 어떻게 막을 수 없는 칼질이다.

하지만 천도공을 운용하고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빌린다면 피할 수는 있다.

우웅!

천도공을 운용한다. 그리고 다시 유심조의 데이터를 적용.

29.

다시 육체에 각종 현상들이 재현된다.

25, 24, 23…

씨발. 천도공으로 위력이 뻥튀기된 만큼 몸에 걸리는 부담도 크다.

18!

순식간에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간다.

“커헉!”

천도공이 깨지며 입에서 검은 울혈이 튄다. 약간의 내상을 입었다.

= 농꾼, 치료해.

- 예, 리퍼.

농꾼에게 치료를 맡기며 잠시 숨을 돌린다.

- 치료 끝났습니다.

= 화면으로 재구성.

내 명에 눈앞으로 화면이 뜬다.

우웅!

천도공을 다시 일으키고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빌려 화면을 본다.

저 칼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면 천도공을 일으킨 지금의 나도 막거나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대충 알겠군.”

유심조는 전신의 힘을 한데 모아 폭발시키는 방법이다. 자신의 공력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그 옭아맨 힘을 떨쳐낼 힘을 육체에서 쥐어짜 옭아맨 힘과 함께 칼에 싣는 방법.

“천문위에게도 충분히 통할 만한 방법이기는 한데….”

문제는 저 칼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전투 중에 그 과정이 몸에 펼쳐진다면… 결과는 뻔하다. 그냥 적에게 목숨을 내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혼자서는 써먹을 게 못 되네.”

대강 유심조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오대파에서 내준 거처로 들어앉았다.

= 녹림 총채 쪽은 어때?

오대산을 오르기 전 응3을 녹림 총채로 미리 보내 놓았던 것이다.

녹림 총채의 위치는 무림에 드러나 있지 않았다. 개방의 핵심인사인 상 노개도 태행산 어디쯤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하지만 응3을 녹림 총채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태행산에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니, 태행산 자락을 훑으면 되는 것이다.

태행산에서 초극 고수를 찾고, 초극 고수가 제일 많이 몰려 있는 곳을 찾으면 그곳이 녹림 총채일 테니 말이다.

- 태행산 총채에 통신 벌레와 꿈틀이들 배치를 마쳤습니다.

산서에 딱히 안테나를 세우지 않아도 통신 벌레들이 잘 날아다니는 것은 마원 덕분이다.

말이란 동물의 덩치가 있다 보니 여러 가지 기능을 구겨 넣을 수 있는 것이다.

= 수확 대상자들은?

종남 무맥을 이은 태행산 녹림에 배정된 나노 머신은 총 10기다.

- 총채주가 습격당한 비상사태라 그런지 SS-07 제외 전원이 총채에 모여 있습니다.

9명 수확 대상자의 프로필이 눈앞에 펼쳐진다.

쉰을 넘은 자가 둘, 사십 중반이 하나, 삼십 대 후반이 둘, 이십 대가 넷이다.

= 살벌한 전력인데?

수확 대상자들의 무력이 나이에 비례함을 생각하면 아홉 중 최소 천문위가 둘이다.

= 성혈문 놈들이 저들에게 손을 뻗을 가능성이 크니 집중 감시해.

- 예, 리퍼.

= 매들은 언제쯤 보충돼?

절강에서 출발할 때 열둘이던 매가 지금은 여섯밖에 남지 않았다.

- 48시간 안에 보충됩니다.

녹림 총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된다는 말.

= 매 보충이 끝나면 바로 안테나 생산 들어가.

성혈문 놈들이 응 시리즈를 카피해 쓸 것을 대비해야 한다.

= 중원 전역을 뒤덮는 전파망을 만든다.

중원 전역에 안테나를 깔아 놓으면 놈들이 응 시리즈 카피 판을 만들어 활용하는 즉시 바로 전파 추적으로 위치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안테나 예상 설치 위치 계산하고.

- 예, 리퍼.

눈앞에 떠오르는 중원 전도에 스무 곳이 넘는 위치가 표시된다.

지금 안테나가 제대로 세워진 지역은 강서, 절강, 산동, 호광, 남직례뿐이다.

“개방을 통하는 수밖에 없나?”

지금 연이 닿은 곳 중 중원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은 개방뿐.

뒤로 미룰 일이 아니기에 바로 상 노개를 찾아간다.

“상 노개. 이도연입니다.”

“들어오시게.”

상 노개의 대답에 문을 열고 그의 거처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 일인가?”

“논의할 일이 있습니다.”

“흠, 해보게.”

상 노개의 말에 거처에 놓인 지필묵을 찾아 다탁에 펼친다. 그리고 스무 곳이 넘는 지명을 써 내려갔다. 농꾼이 뽑은 안테나 설치 지역이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지요.”

“이건, 지명들 아닌가? 중원 전역에 흩어진 지역들인데?”

상 노개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봤다. 정파의 소식통인 개방의 고위층답게 죄다 지명이라는 것을 알고 이 지역에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눈이 된다.

“이곳에 개방 분타가 있는 곳이 몇이나 됩니까?”

“여기 일곱 곳은 귀주, 광동, 광서에 속해 있기에 개방 분타가 없네.”

광동, 광서는 마교의 텃밭이니 당연한 일이다.

“귀주 쪽 세 곳은 개방의 이름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나서 줄 세력이 있긴 하네만.”

역시 무림의 마당발. 마교의 텃밭을 제외하고는 손이 안 닿는 곳이 없다.

“물건을 하나 설치하고자 합니다.”

“어떤 물건인가?”

내 말에 바로 묻는다.

“성혈문 놈들을 찾아내기 위한 물건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성혈문 놈들이 부리는 매를 찾기 위한 물건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때 이야기를 하다 말았군. 놈들이 부리는 매는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가?”

“제가 살펴본 바로는 제 사문에서 키운 매들 못지않을 듯합니다.”

“큼.”

상 노개의 얼굴이 구겨진다. 당연하다. 중원의 소식통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개방이 내가 부리는 매의 위력을 모를 수 없다.

정보의 실시간 취득으로 상대방에게 일방적 피해를 강요할 수 있는 수단, 그것이 바로 내가 부리는 매다.

“그 물건을 그냥 설치만 하면 되는 건가?”

“예.”

“준비되는 대로 보내게.”

“그러지요.”

***

“나를 비롯해 사형제들과 사질들은 입장 상 태행산 총채에 동행하기 힘드오.”

오대파에서 하루를 보낸 일행이 하산 준비를 하고 있자니 검인문주 조주선이 말을 꺼냈다.

태행산 녹림과 오대파는 같은 산서 세력으로 한쪽의 손해가 다른 쪽의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 그들이 총채로 간다면 괜한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알아서 빠지겠다는 것이다.

녹림 총채의 전력을 생각하면 초극 고수 다섯의 조력을 얻고 마찰의 위험성을 떠안느니 그들 다섯을 보내고 마찰의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 더 좋다.

거기에 이미 수확을 끝낸 데다 오대산의 수확 대상자들이 성혈문에 이용당하지 않게 후속 조치까지 마쳤으니 나는 아쉬울 게 없다.

“녹림에서 일이 끝나면 연락을 드리지요.”

“그럼, 기다리겠소.”

오대파 속가 다섯을 그렇게 오대산에 남겨 놓고 태원으로 향했다.

올 때는 대주를 거쳐야 해서 평지로 돌아왔지만, 갈 때는 산길을 질러 일단 흔주로 간다.

오대산에서 흔주 부도까지는 대략 삼백 리. 그 중 백 리 정도가 산행이었지만, 일행 전원이 초극 이상의 무위를 지닌 고수들인지라 반나절 만에 흔주 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흔주에 들린 이유는 풍검문에 맡겨 놓았던 정안각의 말을 찾기 위해서다.

“죄송합니다. 맡기신 말 중 한 마리가 마사를 뛰쳐나갔습니다. 어떻게 잡아보려 했으나 워낙에 발이 빨라….”

풍검문의 마사 책임자가 고개를 숙였다. 마원이 내 뒤를 따르도록 주문해서 일어난 일이다.

“미리 말을 해야 했는데, 내가 미안하오. 그 녀석 원래 그런 녀석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예?”

“저기 있지 않소?”

일행의 말들 사이로 슬그머니 끼어드는 마원을 가리켰다.

그렇게 풍검문에서 말을 찾아 태원을 향해 내달리니 그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일행은 태원 부도에 당도할 수 있었다.

투두투검이 이끄는 녹림 추적대와 합류하기로 한 것은 내일이라 일단 배부터 채웠다.

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에 거지인 상 노개가 끼어 있는 탓에 객잔을 잡기보다는 개방의 담벼락만 있는 장원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개방에서 내어 준 천막 하나에 정안각 인원이 다 들어갔다.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휴식을 취한다.

- 리퍼, SS-16에 배정된 통신 벌레와 꿈틀이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눈 좀 붙이려는데 농꾼 녀석의 보고가 들어왔다.

SS-16은 녹림 총채에 모여 있는 수확 대상자 중 하나다.

= 행적 추적해!

녹림 총채의 지도가 뜨며 놈의 동선이 표시된다. 총채 동쪽의 전각 중 하나로 들어간 다음 신호가 사라졌다. 지하로 들어간 것이다.

= 저기 지하 구조물 파악할 수 있지?

- 예, 리퍼. 대기 중인 꿈틀이들을 동원하면 가능합니다.

= 동원해.

명을 내리고 일 각쯤 지나자 눈앞으로 전각의 지하 화면이 떠오른다. 꿈틀이의 초음파 탐색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화면.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와 앞으로 이어지는 통로. 그러나 길게 이어진 통로는 아니다. 십 장쯤 뒤에 굳게 닫힌 석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석문 너머는 연공실 같은 분위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추적 대상인 SS-16의 숙주를 포함해서 넷이다.

= 넷의 신원은?

- 등록되지 않은 인원입니다.

농꾼의 감시망에 걸려들지 않고 그동안 지하에 있었다는 소리다.

= 음성 데이터 수집해.

- 대상 간 일부 공간의 공기 흐름이 정상이 아닙니다.

전음으로 대화 중이라는 소리.

다수의 꿈틀이와 통신 벌레를 투입한 중계 릴레이가 아니면 통신도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만나 굳이 전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조심성이 지나친 정도가 아니다.

갑자기 회면이 사라졌다.

= 뭐야?

- 물리적 파괴로 인한 통신 두절입니다.

꿈틀이가 파괴되었다는 소리.

그럼 저놈들의 정체는 뻔하다. 바로 성혈문.

산동에서 응 시리즈가 털렸으니 응 시리즈와 연동하고 있는 통신 벌레와 꿈틀이의 정보를 놈들이 모를 리 없다.

= 투두투검 위치 불러.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시간 따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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