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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37화 (137/175)

137화

산서행(06)

제압하기 무섭게 성심껏 치료부터 하고 있으니 무슨 수작질인지 의아할 만하다.

“태행산의 분들로 알고 있소만, 아니시오? 총채주를 습격한 자들을 쫓는 중이시고?”

치료를 마치고 투두투검의 앞으로 가 물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투두투검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피차 오해로 벌어진 일로 감정 상하지 않도록 노력 중이오.”

“오해?”

투두투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우리 일행은 태행산 녹림 총채주의 암습과 아무런 상관이 없소.”

“그렇게 당당하다면 신분을 밝히는 것이 우선 아닌가?”

투두투검이 이죽거렸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맞는 말이다.

“정의맹 정안각을 책임지고 있는 이도연이오.”

“정의맹 이도연이라면? 산동 장보도 쟁탈전에서 개방 뒤통수를 쳐서 불모의 유물을 얻었다가 결국 마교에게 모두 털렸다던?”

상당히 이상하게 알고 있기는 하지만 대충 나를 말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불모의 유물을 얻은 적은 없지만, 그 이도연 본인이 맞소.”

“개방과 오대파도 정의맹에 가담한 것인가?”

내 대답에 투두투검이 상 노개와 조주선을 비롯한 오대산 속가 고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공동의 적이 있기에 서로 협력하는 중이오.”

“그 적이 우리 태행산 녹림이고?”

내 대답에 이딴 소리를 하며 나를 자극하고 있다.

= 이 인간, 죽었다 살아난 경험이 있냐?

- 네 번 정도 있습니다.

내 물음에 농꾼이 잽싸게 SS-07의 기억 데이터를 검색해 대답했다.

네 번이라니. 녹림도답게 험하게 살았군.

어쨌든 나노 머신의 치료 기능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경험이 그 정도라면, 자기가 어지간한 상처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그러니 그걸 활용해 죽은 척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갈 계산으로 나를 자극하는 중일 가능성이 크다.

”태원 검인문 소문주를 태행산 녹림에서 죽였소?”

“무슨 개소리냐?”

“그러니 오해란 말이오. 우린 검인문 소문주를 살해한 흉수를 쫓고 있었소.”

“누구를 장님으로 보나? 네놈들이 여기서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우리가 쫓던 자들은 저쪽 통로로 나갔소.”

스물의 녹림 고수가 튀어 나온 중앙 통로의 옆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적의 은신처고, 단순한 비밀 통로로 보기에는 너무 넓지 않소? 공간만 봐도 적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는 상황 아니오. 그런데 이쪽으로 달려오는 다수의 기척을 느꼈소. 쫓던 자들을 계속 쫓기에는 무리 아니오?”

“흥.”

논리적으로 정황을 들먹이자 투두투검이 콧방귀를 꼈다.

“우리가 적이라면 이 자리에서 태행산 분들을 치료해 줄 리 없지 않소? 초극 스물이면 못해도 태행산 상위 전력의 삼 할은 될 테니 말이오.”

“뭔가 개수작을 부리려는 것일 테지.”

“태원에서 검인문 소문주를 살해한 적은 ‘성혈문’이라는 놈들이오. 정의맹과 개방이 연수해서 상대하고 있는 적으로 산동에서 황보숭을 포섭해 황보세가를 뒤집어엎으려 한 세력이며, 이곳의 주인이오. 우리를 이쪽으로 유인해 태행산과 충돌을….”

“개 소리. 난 속지 않는다. 죽이려면 빨리 죽여라.”

투두투검이 내 말을 끊었다.

보통 이 정도 이야기하면 들어보려고는 하지 않나?

- 리퍼, 태행산 녹림도는 추종향을 추적해 왔습니다.

농꾼의 보고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나온 통로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 태행산 녹림이 추적한 추종향이 우리가 통로에서 뒤집어쓴 그거랑 같은 종류야?

- 예, 리퍼.

하아, 그러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투두투검 저 작자는 죽여 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거다.

추종향이라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으니 우리를 총채주를 습격한 자와 접촉한 일당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혈문 이것들은 태행산의 총채주를 후려칠 때부터 태행산 녹림과 우리 정안각을 충돌시킬 계획이었다는 말이잖아!

하아, 어쨌든 추종향이 문제인 것을 알았으니.

“우리 일행들 몸에서 물씬 풍기는 추종향 냄새 때문에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거요?”

내 말에 투두투검의 눈이 커졌다.

“우리 몸에 추종향이 묻어 있다는 말인가?”

상 노개가 끼어들었다.

“예, 지나온 통로 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도망치던 놈들이 바닥에 뿌려 놓았을 가능성이 크지요.”

“그럼, 진작 말을 했어야지!”

“놈들을 뒤쫓기 바빴지 않습니까?”

“택향제 없이 추종향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투두투검이 나를 보며 물었다.

“성혈문 놈들도 알 수 있소. 총채주를 습격한 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성혈문의 중진이라면 추종향이 살포된 즉시 눈치 챘을 것이오.”

“그게 놈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증거가….”

“우리 몸에 묻은 추종향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소?”

내가 투두투검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이상한 점?”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건가? 모르면 가르쳐 줘야지.

“태행산 총채주를 암습한 자와 접촉해서 묻은 추종향이라기에는 우리 일행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짙지 않느냐는 거요? 최근에 그 추종향을 대량으로 뒤집어쓴 것처럼 말이오.”

투두투검의 눈이 커졌다. 내 말대로 접촉으로 묻었다고 보기에는 일행들의 몸에서 풍기는 추종향 냄새가 너무 짙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이 추종향, 태행산에서 원래 쓰던 것이오?”

“그렇소.”

빠드득!

투두투검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태행산에서 쓰던 추종향을 미리 빼돌리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 고로 태행산 녹림 중에 성혈문 놈들과 내통한 자가 있다는 말이다.

“성혈문이라는 놈들 도대체 어떤 놈들이오?”

투두투검이 물었다.

“놈들은….”

성혈문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만큼 털어놓는다. 그렇게 태행산 녹림에서 나온 추적대와 손을 잡았다.

***

“이렇게 되면 추종향에 의지해 흉수를 쫓는 것은 무리잖아?”

“대주 말대로라면 그렇지.”

“추종향으로 이런 수작을 부렸으니 쫓아 봐야 다른 함정에 빠질 뿐이지.”

“그렇다고 추종향을 안 쫓을 수도 없는 거잖아?”

“돌아가서 추종향을 넘긴 놈을 찾는 것이 더 빠르겠어.”

“소득 없이 그냥 돌아가면 총채주께서 가만히 계셔도 다른 채주들이 지랄할 텐데?”

“소득이 없지는 않지.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잖아.”

“누군지 모르잖아?”

“찾을 방법이 있다잖아?”

“정파 놈을 총채에 들이자고?”

“대주가 하는 꼴을 보니 데리고 갈 것 같던데?”

“저 치들 총타에서 난리 피우면 곤란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

녹림의 초극 고수들이 일행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흠.”

투두투검이 헛기침을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총채주를 습격한 흉수를 쫓는 추적대의 명목상 대주가 그다.

“총채에 연락해서 허락을 구할 때까지 이틀쯤 걸릴 것 같소.”

세력의 핵심 거점에 아무나 들일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연락이 오갈 동안 오대파 본산을 다녀오지요.”

오대파 수확 대상자는 본산에 셋이 남은 상태. 수확도 수확이지만 그들이 성혈문과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안 갈 수 없다.

“그럼, 이틀 뒤 태원에서 봅시다.”

그렇게 녹림의 추적대와 헤어져 오대산을 올랐다.

오대파 속가에서 손꼽히는 무문의 주인이 셋이나 있는 탓에 일사천리로 장문인을 접견할 수 있었다.

조율후의 죽음과 황보숭의 예시로 성혈문의 위험성을 강조하니, 수확 대상자들과의 면담 허락이 떨어졌다.

오대파 본산의 수확 대상자들은 이십 대 하나, 삼십 대 둘.

먼저 이십 대부터 수확했다.

= 성혈문과 연관 있어?

- 기억 데이터 검색 결과 성혈문도로 의심되는 행적은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나가 보도록 해라.”

내 말에 오대파의 장문인이 첫 번째 수확 대상자를 내보냈다.

산동의 황보숭처럼 성혈문에 가담했을 경우를 대비해 장문인을 비롯한 문파의 중진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는 것이다.

문제없이 둘을 끝내고 세 번째 수확 대상자와 마주 앉았다.

“내기를 조절해 호신강기를 억제해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주저 없이 따른다.

- SS-06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수확과 동시에 기억 데이터 검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째 평소보다 검색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다.

-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찾은 것이오?

오대파 장문인도 그것을 느꼈는지 바로 내게 전음을 보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오대파 중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 문제 있어?

재빨리 손가락을 움직여 농꾼에게 묻는다.

- 없습니다.

- 아무 문제없습니다.

내 물음에 농꾼이 답하자 바로 오대파 장문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대파 중진들의 표정이 풀리는 것이 그새 장문인이 전음으로 문제없음을 알린 듯했다.

= 프로그램 설치해.

- 예, 리퍼.

마지막 수확 대상자에게 자동 수확과 나노 머신 강탈 대비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으로 오대파 본산에서의 일은 끝났다.

“하아.”

“수고하셨소이다.”

수확 대상자를 내보내자 방안에 모여 있던 중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성혈문 놈들의 습격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오?”

“예.”

장문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끝내고 혼자가 되었다 싶으니.

- 리퍼,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농꾼의 목소리가 들리며 눈앞에 화면이 뜬다.

보이는 것은 오대파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한 수확 대상자의 모습이다.

= SS-06? 문제없다 하지 않았어?

화면에 보이는 것은 SS-06의 숙주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아니 그의 앞에 나타난 상대도 SS-06의 숙주.

- 지금 화면은 SS-06의 데이터를 활용한 가상 대련입니다.

= 동일 인물이란 말이지?

- 예.

대답과 동시에 둘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한쪽은 칼, 한쪽은 검이다.

검을 든 쪽이 움직인다. 한 자루 검이 살벌무비한 궤적을 그린다.

오대파의 검공 중 하나인 야차검(夜叉劍)이다. 불적(佛敵)의 목을 베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검공답게 살초가 난무한다.

그런 살벌한 공격 앞에서 상대는 칼 한 자루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지키는 것이 고작.

“뭘 보라는 거야?”

칼 든 쪽의 목이 날아가는 게 당연한 대결.

“어라?”

하지만 목이 날아간 쪽은 검수다.

“다시 돌려.”

- 예, 리퍼.

우웅!

단전에서 생성된 스피커가 울린다. 천도공으로 증폭된 공력이 사지백해를 달린다. 그리고 거기에 적용되는 천문위의 전투 감각.

육체의 감각이 몇 배로 예민해진다. 그뿐이랴? 그냥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검초의 움직임이 보이고 그 움직임의 의미가 떠오른다.

그렇게 더 넓어진 시야로 더 깊어진 안목으로 대결을 다시 본다.

검의 날카로움이 한층 더 실감 되고 그 검공의 깊이에 탄성이 나온다.

칼을 든 쪽은…. 초극의 감각으로 봤을 때랑 별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봐도 칼 든 쪽이 지는 게 분명한 싸움이다. 그런데 갑자기 검수의 목이 날아간다.

천문위의 감각과 안목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칼질.

“저거 도대체 뭐야?”

- 유심조(流心彫)입니다.

“유심조?”

다시 화면이 뜬다.

해골이 굴러다니는 동굴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책 한 권. 그리고 그 책을 집어 드는 손.

책에 적힌 글자가 유심조(流心彫).

SS-06의 숙주가 칠 년 전 얻은 기연이다.

- 불문 기반의 무공으로 SS-06의 숙주가 칠 년간 수련했지만 이렇다 할 부작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문위의 안목을 빌려 와도 이해되지 않는 도법.

= 저기에 천문위 데이터 작용하고 천문위 상대로 돌려.

천문위 상대로도 통할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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