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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34화 (134/175)

134화

산서행(03)

검인문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미라처럼 비쩍 마른 얼굴이지만 조주선이 아들의 시체임을 알아본 것이다.

“혈편복을 찾아 주십시오.”

조주선이 굳은 얼굴로 상 노개에게 말했다.

“혈편복의 짓이라 보는가?”

“강호에서 저 짓거리 하는 놈이 혈편복 말고 누가 있습니까!”

빠드득.

상 노개의 말에 조주선이 답하며 이를 갈았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상 노개가 나를 보며 물었다.

혈편복은 마교 고수로, 사람 피를 주기적으로 빠는 미친놈이다. 뭐, 나도 시체만 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성혈문주가 조율후를 죽인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혈편복은 아닙니다.”

“혈편복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내 말에 조주선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상 노개가 물었다.

“혈편복은 산 사람 피를 빨기 좋아하지요. 시체에서 피를 빨았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습니다.”

“시체에서 피를 빨았다니, 그건 무슨 소린가?”

상 노개가 물었다.

“피를 빨다 상대가 죽으면 입을 떼는 혈편복입니다. 그런데 소문주의 시체는 어떻습니까? 피가 죄다 빨린 꼴이지요? 사람은 가진 피의 사 할만 빠져나가도 죽습니다. 혈편복의 짓이라면 저렇게까지 될 이유가 없지요.”

“그 말은?”

“혈편복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수작일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아니, 혈편복 개인보다는 마교와의 충돌을 유도하는 수작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혈편복의 짓은 확실히 아닙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소?”

조주선이 물었다.

“혈편복이 피를 빠는 미친 짓거리로 유명하기는 합니다만, 무공만 따지면 어지간한 초극 고수일 뿐이지요. 혈편복이 초극 고수를 덮쳐서 피를 빤 적이 있었습니까?”

“내 알기로는 없네.”

상 노개가 내 말에 동조했다.

“그럼, 도대체 누구의 짓이란 말이오!”

조주선이 노성을 토했다.

“짐작 가는 놈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놈들의 짓인가?”

내 말에 상 노개가 급히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에 의하면 성혈문주가 흉수인 것은 확실한 일이니 말이다.

“그놈들이라니요?”

조주선이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을 하며 상 노개에게 묻는다.

“성혈문이라고 들어보았나?”

“산동에서 황보세가의 혈족을 꼬드겼다는 놈들 말입니까?”

“들어본 모양이군. 아주 위험한 놈들이야.”

상 노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혈문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상 노개가 잘하고 있으니 조주선은 상 노개에게 맡겨 두고 성혈문주 이 망할 놈이 조율후의 피를 빤 이유를 고민한다.

마교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수작일 수도 있다고 내 입으로 말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하다.

마교와 정파의 갈등 조장을 위해서 굳이 수확 대상자를 노릴 필요는 없다.

아니 검인문과 혈편복 사이에 원한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수확 대상자인 조율후를 죽이는 것보다 문주인 조주선을 죽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아비가 아들의 복수를 위해 미쳐 날뛰는 것보다 아들이 아비의 복수를 위해 날뛰는 것이 호응을 얻기가 더 쉽다.

그뿐인가? 마교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초극 고수인 조주선보다 나노 머신의 지원을 받는 조율후가 압도적이다.

한 마디로 피를 빤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린데….

= 숙주 사망 이후 나노 머신의 통상적인 움직임은?

- 새 숙주로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집합합니다.

= 집합을 위한 이동 경로가 혹시 혈관이냐?

- 예.

숙주가 사망해 심장이 멈춰 혈류의 흐름이 없어도 나노 머신의 이동에는 혈관이 제일 빠르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가 확실하니 말이다. 집합지를 정하고 거기까지 혈액 사이를 헤엄친다면….

= 이 새끼들 나노 머신 자체를 노린 거 아냐?

피를 빨아서 그 안의 나노 머신을 들이킨 거다. 나노 머신 간의 살벌한 해킹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적당량 들이켜고 입 다물면 끝이다. 호신 강기가 SS-11 나노 머신 사이의 통신을 막아 버리는 것이다.

성혈문주의 나노 머신은 조직적인 해킹을 시도하는데 피와 함께 들이켜진 나노 머신 집단은 호신 강기로 인해 SS-11 메인 집단과 통신이 끊겨 저항할 수도 없다.

그렇게 나노 머신을 정복하고 다시 들이켜고를 반복하면 SS-11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

= 농꾼, 지금 내가 생각한 게 가능한 일이냐?

- 가능합니다.

내 생각대로라면 성혈문 놈들은 수확 대상자들을 꼬드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적당한 수확 대상자를 때려잡아 나노 머신을 강탈해서 원래 부리던 수하에게 심으면 되니 말이다.

= 이에 대한 방비는?

- 나노 머신의 중심 군집과 통신 단락이 일어나면 단락 개체의 기능 정지가 일어나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하면 됩니다.

= 내가 수확한 대상에게만 깔 수 있는 거잖아.

- 예, 리퍼.

수확하지 못한 대상자들에게는 수가 없다. 하긴 접촉하지 않고 그들의 프로그램을 수정할 방법이 있었으면 내가 리퍼가 되는 일도 없었겠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혈문 놈들에게 수확 대상자들의 명단이 없다는 점이다. 수확 대상자의 특징을 탐색해서 찾아내는 듯하다.

= 수확이 끝난 인원들과 사부님, 사제 등 마*카 시리즈 소유자들 프로그램 수정하고, 응 시리즈 움직여서 의심 인물 색출해.

- 예, 리퍼.

산동의 일을 생각하면 성혈문 놈들은 응 시리즈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음모를 꾸미고 진행하는 놈들이다. 외부 활동이 필요할 게 분명했고, 그렇게 움직이는 순간 잡아내야 했다.

어쨌든 나는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산서 수확 대상자들을 만나 수확과 동시에 나노 머신 강탈 저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 산서 수확 대상자들 프로필 띄워.

- 예, 리퍼.

산서 수확 대상자는 총 열여섯. 그중 열은 종남 무공을 익힌 태행산 녹림도고, 남은 여섯이 오대파의 무공을 익힌 수확 대상자다. 아니 조율후가 죽었으니 오대파의 수확 대상자는 이제 다섯.

어쨌든 태행산 녹림도는 총채주가 암습 당한 탓에 당장 접근하기 힘들다.

그러니 오대파 쪽을 먼저 해결하자. 오대파의 수확 대상자는 본산에 셋이 있고, 속가에 둘이 있었다.

속가의 둘을 만나 먼저 수확하고 오대산을 오르는 것이….

“이 각주.”

조주선의 부름에 생각을 끊고 고개를 드니 그가 말을 이었다.

“성혈문의 다음 목표가 될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오?”

상 노개가 성혈문에 관해 이야기하며 내가 가진 명단을 그렇게 둘러댄 것이다.

“예.”

내 대답에 조주선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검인문도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율후의 시신을 수습해 먼저 본문으로 복귀해라.”

“장례 준비는….”

조주선의 명에 문도 중 한 명이 조율후의 장례에 관한 질문을 하려 했지만 조주선이 그 말을 끊었다.

“장례는 흉수를 잡을 때까지 미룬다.”

그렇게 조주선이 일행에 합류했다.

***

“각주, 성혈문에서 노릴 만한 자들이 본산에 셋, 속가에 둘이라 했소?”

“예, 흔주(忻州) 풍검문(豊劍門)의 구전중과 대주(代州) 야검문(惹劍門)의 노익단입니다.”

조주선의 말에 바로 수확 대상자 둘의 신상을 밝혔다.

“육선 사제의 셋째 제자와 규장 사형의 첫째가….”

조주선이 안색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풍검문과 야검문을 거쳐 오대산으로 가는 것으로 합시다.”

“그러지요.”

조주선의 의견에 동의했다.

풍검문이 있는 흔주 주도는 태원 부도에서 이백 리 정도 된다. 야검문이 있는 대주 주도는 사백 리쯤?

말을 타고 좀 서두르면 오늘 안에 둘을 수확할 수 있을지도….

말을 타고 먼저 흔주를 향해 내달린다.

검인문은 산서 태원에서 방귀깨나 뀌는 문파라 문주인 조주선이 관의 역참(驛站)을 이용할 수 있었다.

상 노개와 조주선 두 사람이 오십 리마다 있는 역참에서 말을 바꿔 타니 마원을 비롯해 나노 머신을 주입한 정안각의 말들과 나란히 달리는 것에 무리가 없었다.

흔주 주도에 도착하자 조주선이 앞장서 움직였다.

오대파 속가에서 한 손에 꼽히는 검인문주의 안면은 그야말로 프리패스 통행권과 다름없다.

배첩도 없이 풍검문에 찾아가 객청을 차지한다.

“급한 일이니 당장 오 사제를 불러와!”

풍검문의 문도들이 달려가고, 잠시 후 풍검문주가 달려왔다.

“조 사형이 예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풍검문주 오륙천이 조주선을 맞이했다.

“율후가 죽었네.”

“예?”

조주선의 말에 오륙천의 눈이 커졌다.

“율후를 죽인 놈들이 구 사질을 노리고 있어.”

“제 셋째 제자 전중이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당장 자네 셋째 제자를 데려오게.”

“밖에 누구 없느냐? 당장 셋째를 여기로 불러와!”

오륙천이 객청 밖의 수하를 불러 명을 내렸다. 그리고 조주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 사형, 도대체 무슨 일인지 차분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그리고 같이 오신 개방 분과 다른 분들도 소개해 주시고.”

“개방의 상 노개네.”

“정의맹 정안각을 책임진 멸왜단의 이도연입니다.”

오륙천의 말에 상 노개와 내가 먼저 나서고, 정안각 인원들이 나를 본받아 정의맹을 내세우고 자신의 출신을 밝히는 식으로 줄줄이 자신을 소개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개방의 상 노개께서 하실 걸세.”

조주선이 상 노개에게 설명을 미루니 상노개가 성혈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오륙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개방에 오대세가의 둘, 머나먼 절강의 멸왜단까지 몰려올 정도의 상대가 제자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니 당연했다.

“이놈들이 산동에서는 일종의 재능을, 제 놈들 말로는 성혈을 가진 자들을 포섭하는 듯했네. 하지만 여기 산서에서는 죽여 그 피를 모조리 뽑는 미친 짓거리를 벌였어.”

“제 셋째 제자가 성혈문이 원하는 재능을, 그 피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그놈들은 그렇게 피를 뽑아 도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이 각주.”

오륙천의 물음에 상 노개가 나를 불렀다. 설명하라는 것이다.

“피에 서린 힘을 이용해 그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부여하려는 짓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짓이 가능하단 말이오?”

“매와 통할 재능 있는 자에게서 뽑은 미량의 피와 비전의 단약을 통해 재능이 없는 자들을 매와 잠시 통하게 하는 방법이 제 사문에 있습니다.”

재능을 빌려 줄 방법이 있으니 재능을 강탈할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말.

“사부님, 제자 전중입니다.”

객청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구전중이 도착한 것이다.

“들어오너라.”

구전중이 객청 안으로 들어왔다.

“이분들은 누구신지요?”

“정의맹 정안각의 이도연입니다.”

수확을 하기 위해 통성명을 하는데 갑자기 농꾼의 음성이 귀를 울린다.

- 리퍼, 황1의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황1? 황보군에게 붙인 매다.

“각주!”

황보군이 나를 불렀다.

“대주 주도로 보낸 제 매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 어떻게 된 거야?

내 물음에 화면이 펼쳐졌다.

- 황1의 기능 정지 전 마지막 영상입니다.

그리고 화면을 채우는 것은 덮쳐드는 맹금들이었다.

“씨발!”

SS-11을 강탈해 무슨 짓을 하나 했더니 생체 드론을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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