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대비행(04)
= 응 시리즈 여덟 마리 생산해.
호거술에 집중하는 화인천을 연공실에 놔두고 나오면서 농꾼에게 명했다.
- 예, 리퍼.
정안각 인원들에게 한 마리씩 안길 생각이다.
정안각의 전력은 성혈문의 드러난 전력과 비교해도 많이 모자란 것이 사실. 여차하면 대원들이 단독 행동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이틀 뒤 정안각의 남은 인원들이 멸왜단 총타에 도착했다.
멸왜단 신하분타의 호장우와 황보세가의 황보군과 황보성, 신창양가의 양연곤과 양유정 양황준이다.
양유정, 양황준 두 명을 제외하고는 죄다 안면이 있는 사이.
대충 인사를 하고 그들 여섯을 정안각에 배당된 연무장에 몰아넣었다.
“하나씩 받게.”
먼저 스피커 장갑을 나눠줬다.
“일단 모두 호신 강기를 억제해 주겠나?”
정안각주로 그들을 수하로 대한다. 호장우 빼고는 죄다 나보다 어리니 말 놓기가 편하다.
화인천에게 했듯 그들의 나노 머신과 접촉해서 호거술의 데이터를 넘기고 장갑의 기능을 알린다.
“지금 내가 전하는 것은….”
호거술에 관한 설명을 대강하고 구결을 불러준다. 장갑을 끼게 하고 유사 기맥의 설치가 끝나자 호거술의 독창을 쓸 수 있게 음역대를 찾게 한다.
유사 강기를 만드는 음역대와 강기를 강화하는 음역대를 찾은 다음 여섯을 셋씩 나눠 두 조로 만든다.
호장우와 황보세가의 둘을 하나로 묶고 신창양가의 셋을 하나로 묶었다.
호거술의 합공, 합창을 위해서다. 왜구의 데이터가 직감으로 제공 되니 조의 인원들이 머리를 맞대면 합창을 위한 음역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야기 좀 하세.”
합창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호장우를 따로 불렀다.
“예, 각주.”
말 놓기로 한 사이지만 공식적인 자리라 각주 대우를 해주는 호장우다.
“불문 음공인 사자후 가능한가?”
“보타산 본산의 존장들만큼 능숙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만?”
“호거술은 음공에 약하네.”
“뇌응대의 진혜예 대주를 통해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내용이지요.”
거열쌍왜가 죽은 뒤 진혜예가 호거술의 파훼법을 전파한 모양이다.
“성혈문에 마풍단주가 붙어 있어.”
“마풍단주라 하심은?”
내 말에 호장우가 의아한 눈초리가 되었다. 기억 못 하는 것인가? 아 이 친구는 그냥 화기 쓰는 왜구로 알고 있지.
“육가장 사태 때 화기 쓰던 놈들이 마풍단이네. 자네가 쫓아가 죽이기로 했던 왜놈, 그놈이 마풍단주고.”
“숨통을 끊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살아 있어. 산동에서 만났지. 성혈문 측에 붙어 있더군.”
“그 왜놈이 살아서 성혈문 쪽에 붙어 있다면 호거술의 약점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
마풍단주도 호거술의 사용자. 호거술이 음공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쪽으로 대비하자는 걸세.”
“합공을 연마하면서 합공이 깨졌을 때의 대응도 수련을 해둬라, 그 말이군.”
“그렇지.”
저쪽이 호거술 합창의 파훼법을 알 수 있다고 이쪽에서 합공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합공의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초극 고수들끼리 합공이 가능하면 천문위가 상대라도 어떻게든 버텨낼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합공 수련을 막 시작하는 지금 시점에 그 말씀을 꺼내는 것은 각주께선 앞으로 이쪽 훈련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시오? 합공에도 참여하지 않으시고?”
합공 수련이 막 시작하는 시점에 그 이후의 수련 방향까지 미리 지시하는 것에서 내가 이쪽 일을 완전히 맡긴다는 것을 눈치 챈 호장우다.
“나와 화인천 두 사람은 익힌바 내공의 문제로 호거술의 합공에 낄 수가 없어.”
망할 귀원공. 상식적으로 어지간한 무공을 다 쓸 수 있으면 합공에 더 적합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 문제가 있으니 이쪽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화인천도 어제부로 증강 현실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지만 나도 내 실력 향상을 위해 굴러야 했다.
***
“아, 진짜 수확 대상자가 천문위니 답 안 나오네!”
개인 연공실 바닥에 큰 대자로 뻐드러지듯 누웠다.
증강 현실에서 천문위를 하나씩 상대한 것이다. 이기는 것은 기대도 안 했지만, 마원을 동원하면 최소한 한방 정도는 먹일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맞닥뜨리면 십 초 안에 마원을 잃는다. 분진 폭발과 피풍의를 펼쳐서 도망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상대가 분진 폭발과 베르누이 원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제한이 걸려야 가능하다.
아무제한 없이 싸운다면 양묵현이 그랬듯 증강 현실 속의 천문위들은 베르누이 원리를 금방 깨닫는다. 천문위가 피풍의 펴고 내달리니 도망갈 수가 없다.
분진 폭발도 마찬가지. 내가 기막을 형성하는 것을 막아 분진 폭발의 발생 조건 중 하나인 닫힌 공간 자체를 만들지 못하게 하니.
- 리퍼, 마*카*원 베타의 호출입니다.
= 사제가? 연결해.
- 사형. 들리시오?
사제 놈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 주위에 생체 드론이 없는 장소인 듯하다.
= 무슨 일 있는 거냐?
- 사부님이 폐관을 끝내셨소.
= 원하시는 것은 얻으셨다던?
- 당장 달려오랍니다.
= 당장 가지.
사제 놈 초극 고수로 만들어 줄 영약까지 당신이 씹어 드시며 매달린 뭔가다. 솔직히 기대가 안 될 수 없다.
당장 연공실을 박차고 나간다. 마굿간에서 마원을 꺼내 정문으로 향한다.
“단주께 며칠 외유를 다녀온다 전해주게.”
총타의 수문장에게 전언을 부탁하고 바로 마원을 타고 내달린다.
영파부에서 남하하여 인적 없는 산길로 접어들기 무섭게 마원의 날개가 펼쳐졌다.
파항!
톤에 가까운 마원의 거체가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곧게 뻗은 사지의 힘만이 아니다. 마원의 몸통에 달린 굵디굵은 방수의 힘이다.
굵은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방수가 톤 단위의 거체를 화살처럼 쏘아 올린 것이다.
쾅, 콰콰쾅!
그뿐만이 아니다. 연신 굉음이 마원의 엉덩이 쪽에서 터진다.
뭔가 커다란 주머니가 굉음과 함께 한껏 부풀었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분진 폭발이다. 그걸로 톤에 가까운 거체를 허공으로 밀어 올리는 추력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허공으로 떠올라서 매서운 속도로 활공한다. 순식간에 수 km를 활공해 땅에 내려앉는다. 땅에 닿기 무섭게 사지가 땅을 박찬다.
그리고 다시 허공으로 쏘아진다.
콰콰콰쾅!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마원이 허공을 날았다.
그렇게 마원이 제 기능을 다 하니 출발한 지 다섯 시간도 안 되어 금정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형, 굉장히 빨리 오셨구려. 못해도 열 시간은 걸린다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저건 말이 왜 저래 크오? 내가 사서 마귀의 공방에 맡긴 말은 저런 놈이 아니었는데.”
사제 장철상이 질린다는 눈으로 마원을 바라봤다.
“좀 있으면 사제도 똑같은 거 한 마리 생길걸세. 그나저나 사부님은?”
“안에 계십니다.”
사제가 동굴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굴 쪽으로 말을 옮기려 하자 안에서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올 것 없다. 내 나갈 테니.”
사부가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것저것 바쁘다 들었는데 빨리도 왔구나.”
“사부께서 부르는데 제자가 감히 늦을 수 없지요.”
“이번 폐관에서 얻은 걸 빨리 내놔보라는 소리구나.”
내 말에 사부가 슬쩍 미소를 짓더니 칼을 뽑았다.
“이 사부가 얻은 것이다. 똑똑히 보거라.”
그리고 자연스레 일어나는 강기가 칼날을 휘감는다.
“으음!”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울림에 강기가 그 빛을 더 한다.
별다를 것 없는 호거술이다. 일반적인 초극 고수가 호거술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현상.
“이게 네가 얻은 호거술의 일반적인 사용법이지?”
“예.”
사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부가 얻은 것은 이거다.”
사부는 칼날을 휘감은 강기 마저 지웠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우웅!
순간 사부의 몸이 떨리는가 싶더니 전신이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이 순식간에 칼로 모여든다.
그 빛살에 그 기세에 몸이 떨린다.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 아니 요 며칠간 증강 현실에서 매번 느끼고 있는 감각이다.
“처, 천문위!”
천문위의 기세를 정면에서 받아낼 때 느끼는 바로 그 감각인 것이다.
“사부, 천문위에 오르신 겁니까!”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나노 머신의 도움을 받았다 해도 초극에 올라서신지 얼마나 됐다고!
재능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우리 사부 얼마나 천재인 거야!
아니 저런 인간이 왜 쉰이 넘도록 초극이 못됐던 거야?
“허, 제자라는 놈이 사부를 무슨 삼두육비의 괴물 보듯 보고 있느냐?”
사부가 입을 여니 칼날을 휘감던 영롱한 빛과 광폭한 기세가 동시에 사라졌다.
“그저 네 녀석이 넘겨준 호거술을 응용해 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요?”
아니 호거술을 뭘 어떻게 응용했길래 초극된 지 얼마 안 된 양반이 천문위의 기세를 뿜어!
“파머 노형이 내가 호신 강기를 억제하면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던데?”
데이터를 넘기겠다는 말. 그 말에 당장 호흡을 골라 호신 강기를 억제했다.
“저놈은 못 견디고 뻗었군. 철상이 놈에게도 네가 알아서 넘겨주거라.”
사부의 말에 뒤를 힐끗 보니 사제 녀석은 사부가 내뿜은 기세에 눌려 선 채로 기절한 모양새다.
“예.”
내 대답에 사부가 자신의 호신 강기를 억제했다. 그러자 마*카*원 알파로부터 사부의 데이터가 날아들었다.
그동안 사부가 해왔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사부는 연신 호거술을 펼쳤다.
음파를 외부로 뿜어 강기나 도기에 공명을 일으켜 증폭시키는 것이 호거술의 핵심.
하지만 사부는 호거술의 음파를 뿜지 않고 삼키고 있었다. 삼킨 음파가 단전을 두드린다. 그때마다 단전의 공력이 요동치며 기맥을 따라 뻗어 나간다.
단전과 기맥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부는 운기를 멈추지 않는다.
허한 공력은 영약으로 채우고 상처는 나노 머신에게 맡기며 계속 호거술을 단전에 시도한다.
“사부 이건….”
“과정을 본 모양이구나. 그저 결과만 알면 그뿐인데, 파머 노형이나 그 종자나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
사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완성된 무공도 따지고 보면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수법이다. 사용하면 적지 않은 내상을 입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요.”
“그래, 파머 노형을 품고 있는 너나 그 종자를 품고 있는 나와 철상이는 다르지. 어떠냐? 이만하면 쓸만한 방법이지 않느냐.”
나노 머신을 품은 자만이 쓸 수 있는 응용법이다.
“천도공(穿道功)이라 이름 붙였다. 이걸 응용하면 철상이 놈 초극 고수 만드는 건 쉽겠지?”
품고 있는 공력이 적더라도 천도공을 운용하면 전신 혈도를 열기에 충분하다.
아니 육성으로 음파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부님에 비하면 나나 철상이는 천도공의 유지 시간이 비교불가할 정도로 길다.
체내에 스피커 만들어 틀어버리면 되니 말이다.
“사부님, 호법 부탁합니다.”
“알기 무섭게 익혀 보겠다는 거군. 그래, 해봐라.”
사부가 사제를 둘러업고 한옆으로 물러섰다.
“후우.”
사부님의 데이터를 내 육신에 적용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단전을 두드리는 음파를 육성으로 만들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단전 인근에 스피커로 만들어 트는 정도.
우웅!
전신이 울리면서 공력이 요동친다.
쿠르르릉!
귓가로 뇌성벽력이 울리며 기운이 질주 한다.
= 황학약의 전투 감각 적용!
천문위의 데이터가 전신에 적용되며 그 감각이 몸에 새겨진다. 그리고 전신에서 미쳐 날뛰는 힘을 그 감각이, 천문위의 경험이 이끌고 도닥이니.
우우웅!
칼에 빛이 쏠리고 그 빛이 칼끝에서 영롱한 구슬처럼 맺혔다.
“큭.”
배를 쑤시는 통증과 함께 그 구슬은 곧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환강이었다.
강기가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파괴의 결정이자, 천문위의 증거!
“환강? 내가 환강을!”
- 형태 색상, 공간의 진동 등 여러 가지 관측 가능한 데이터를 분석 결과 환강이라 보기에는 뭔가 많이 모자란 형태였습니다.
농꾼 이 망할 새끼가 내 감동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럴 때는 그냥 좀 넘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