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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27화 (127/175)

127화

대비행(02)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 거야?”

총타를 벗어난지 세 시진 정도 지났을 때 진혜예가 물었다.

“절반 좀 넘게 왔어요.”

“뭐?”

내 대답에 진혜예의 눈이 커졌다.

“칠백 리 넘게 왔는데 절반이라고?”

천오백 리 길을 가야 한다는 소리니 진혜예가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설마, 왜놈들 땅에 쳐들어가려는 거냐?”

평소 뇌응대의 활동 범위를 배로 넘어선 거리에 경철운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왜놈 땅은 제일 가까운 곳이 영파부 끝자락에서 이천 리는 떨어져 있거든?”

헛된 추측을 부정해 주니 경철운의 얼굴이 풀린다. 그걸 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남하하는 왜놈들 선단이 목표야.”

“선단이라, 몇 척이지?”

“열둘.”

한두 척으로 움직이는 왜놈들이라면 호거술로 합창을 하는 놈들이 없을 수도 있기에 규모가 좀 되는 선단을 찍을 수밖에 없다.

“왜선 열두 척을 뇌응대만으로 상대하자고?”

경철운이 인상을 힘껏 찌푸린다. 왜선 한 척당 백으로만 잡아도 천이백이다. 멸왜단 총타에 뇌응대 이외의 다른 전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뇌응대만 끌고 나온 나에게 인상을 쓰는 것이다.

“전부 상대할 필요 없이 몇 놈만 잡아가면 될 일이야.”

“누님에게 대주 자리 넘겨서 이제 자기는 뇌응대 아니라 그거지?”

“그러게, 막 굴리는데?”

경철운과 진혜예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렇게 수뇌부들끼리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도 삼인 일조의 엔진 대용 절정 무인들은 열심히 교대하며 바다를 내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니 해가 떨어지고 목표와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 리퍼, 잠시 후 왜구 선단의 견시 거리에 들어섭니다.

“노로 움직인다.”

배를 밀던 인원들이 배로 올라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쾌속선 곳곳을 밝히던 등불을 끈다.

그리고 노질이 시작되어 쾌속선이 칠흑으로 물든 바다 위를 미끄러진다.

그렇게 얼마간 움직이니 멀리서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불빛이 보였다.

열두 척의 왜선들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 초극 고수 일 인 탐지됩니다.

= 위치는?

- 최선두의 왜선입니다.

초극 고수가 우두머리라면 그 배에 선단의 핵심 전력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선단 최선두를 덮치지요.”

내 말에 진혜예와 경철운이 바로 반응했다.

“일 조와 이 조는 화공 준비. 왜선의 돛 포를 노린다.”

진혜예의 명에 뇌응대원들이 배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숯불이 든 화로 하나와 아이 머리통 크기의 단지 수십 개다.

기름 먹인 짚단들이 가득 들어 있고 바람구멍이 여기저기 뚫린 데다가 잡고 던지기 좋게 새끼줄까지 묶여 있다.

“삼 조와 사 조는 급속 운행 준비!”

경철운의 명에 후미에 둘, 양쪽에 둘씩 여섯 명이 쾌속선에 달라붙는다.

“붙여!”

진혜예의 명에 일, 이 조의 뇌응대원들이 화로에서 숯불을 꺼내 단지 안에 집어넣는다.

일 인당 열 개 남짓의 단지를 들고 쾌속선 위에서 각자 위치를 잡는다.

“전출(全出)!”

경철운의 명에 여섯 명이 동시에 바다를 박차니 쾌속선이 질주한다.

내달리는 쾌속선 위에서는 새끼줄에 묶인 불 단지들이 저마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언제든 던져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쾌속선이 선단의 후미에 도달하는 순간.

“좌정(左停)! 하나, 둘, 셋! 출!”

경철운의 명에 쾌속선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선단의 좌측으로 비스듬하게 질주한다.

“일 조, 투척!”

그리고 뒤를 이은 진혜예의 명에 준비된 불 단지 셋이 허공을 가르며 왜선의 돛 포를 두드렸다.

파퍽! 퍽! 화르르륵!

불 단지가 깨지기 무섭게 돛 포에 불이 붙는 것은 당연지사.

“우정(右停)! 하나, 둘! 출!”

경철운의 명에 사선으로 달리던 쾌속선이 살짝 우측으로 방향을 틀며 선단과 평행을 유지한다.

“이 조, 투척!”

진혜예의 목소리와 함께 다음 배를 향해 불 단지 셋이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들고 돛 포를 태우는 불 단지에 왜선 위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경철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쾌속선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진혜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불 단지가 날아갔다.

선단 최선두의 왜선이 상황을 깨닫고 불붙은 왜선들을 돕기 위해 배를 돌리려 할 때, 이미 열한 척 왜선의 돛 포는 죄다 타오르고 있었다.

“전투 준비!”

최선두 왜선에서 백 장 정도 떨어지기 무섭게 진혜예가 외쳤다.

불 단지를 휘둘러 던지던 일, 이 조는 물론 배를 움직이던 삼, 사 조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배 위에 올라 정렬해 각자의 무기를 챙겼다.

“쾌속선은 오 리 거리를 유지해서 대기한다.”

진혜예의 명에 쾌속선의 노꾼들이 재빨리 자기 자리를 잡고 노질을 시작한다.

“목표는 선두의 왜선. 출!”

진혜예가 그렇게 외치며 바다로 뛰어든다. 그 뒤를 뇌응대원들이 힘차게 따른다.

열다섯의 인영이 바다 위를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뱃전을 박찼다.

순식간에 뇌응대원들을 추월해 뇌응대의 선두에 선다.

뇌응대의 선두는 화인천. 서로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란히 바다 위를 달려 둘이 동시에 왜선을 향해 뛰어오른다.

뱃전에 오르기 무섭게 갑판 위에 몰려 있는 왜놈들 사이로 파고들며 칼을 휘두른다.

두 명의 초극 고수가 도강과 검강을 휘두르니 순식간에 열댓 명이 도륙 당한다.

“끄오올!”

요란한 기합과 함께 강기를 머금은 왜도가 날아든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호거술로 합창하는 놈이지 이렇게 홀로 독창하는 놈이 아니다.

바로 칼을 올려쳐서 도강을 튕겨 내고 사선으로 내려 긋는다.

절정 왜구가 호거술로 강기를 흉내 내봐야 몸이 부실한 탓에 일초지적 밖에 되지 않는다.

칼질의 궤적을 따라 놈의 몸이 그대로 동강난다.

호기롭게 덤빈 놈이 그렇게 동강 나자 주위의 왜놈들은 감히 내게 덤벼들지 못했다.

“로꾸데나시(ろくでなし)!”

커다란 욕설과 함께 왜놈들을 밀어내며 한 놈이 내 앞으로 튀어 나왔다.

딱 봐도 일반적인 왜구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풍기고 있다. 농꾼이 말한 초극 왜구다.

“크하앗!”

왜도에서 강기가 피어오른다. 거기에 호거술이 더해지니 한층 더 강렬해진다.

“끼요올!”

나 역시 호거술로 도강을 강화해 초극 왜구와 칼을 맞댄다.

캉, 카카캉!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휘둘러진 도격이 순식간에 격돌한다.

호거술로 증폭된 강기와 강기의 충돌이 천지사방으로 힘을 뿌린다.

그렇게 힘과 힘이 격돌하는 틈을 타 방수가 움직이니.

파자자자작!

초극 왜구는 격한 전격에 사지를 떨며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도 말했듯 내 목표는 합창이 가능한 놈들. 혼자 잘났다고 홀로 호거술을 내지르고 다니는 놈이 아니다.

쓰러진 놈의 목을 그냥 베어 버리고 주위를 훑었다.

갑판 여기저기에서는 뇌응대와 왜놈들의 싸움이 한참이다.

“끼오옷”

“꺄악!”

“끄오올!”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화인천이 상대하는 놈들이다. 셋이서 어떻게 화인천을 감당하고 있었다.

호거술이 만들어내는 강기가 세 자루의 왜도를 옮겨 다니며 화인천의 검강을 받아내고 있었다.

호거술로 이루어진 합공, 합창이 가능한 놈들을 찾았다.

바로 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양손을 내뻗었다.

파자작, 파작!

전격으로 순식간에 셋을 튀겨 주니 화인천의 검이 허물어지는 그들의 목숨을 노린다.

카캉!

“형님?”

내가 검격을 막자 화인천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본다.

“이것들이 목표야. 챙겨!”

내가 그들의 마혈을 제압해 한 손에 하나씩 왜놈들을 챙겨 옆구리에 끼자 화인천도 한 놈을 챙겼다.

“목표 달성, 후퇴!”

화인천의 외침에 왜놈들을 향해 칼질하던 뇌응대원들이 재빨리 배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나와 화인천도 즉시 그 뒤를 따랐다.

쾌속선으로 돌아온 우리는 우두머리와 돛 포를 잃은 왜선들을 어두운 바다 위에 남겨둔 채 절강으로 출발했다.

쾌속선의 선실에 왜놈 셋을 눕혀놓고 준비해 둔 마*카*투를 먹였다.

“형님, 그 귀한 걸 왜, 왜놈들에게 먹입니까?”

그걸 본 화인천이 기겁했다.

“먹일 만하니 먹인 거다.”

화인천의 입을 닫게 한 뒤 손가락을 움직였다.

= 총타에 도착하면 바로 데이터 뽑을 수 있게 준비해 둬.

- 예, 리퍼.

***

“끼오옷”

“꺄악!”

“끄오올!”

나에게 배당된 연공실에서 세 왜구가 죽을힘을 다해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목청만 돋는 것이 아니다. 연신 허공을 향해 왜도를 휘두른다.

그들이 나아가며 휘두르고 물러나며 뻗어대는 왜도에 시퍼런 강기가 옮겨 다닌다.

호거술을 이용한 합공이다.

증강현실이 만들어내는 환상 속에 갇혀 격전을 치르는 중인 것이다.

“어때? 놈들의 합공에 대한 견적 나오냐?”

- 예, 생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강 흐름을 잡았습니다. 강기의 주체가 되었을 때의 반응과 보조가 되었을 때의 반응 둘로 나뉩니다. 세 명의 데이터가 유사한 것으로 봐서 그 두 가지 방법이 다인 듯합니다.

내 물음에 농꾼이 바로 대답했다.

“꼭 셋이 필요한 건가?”

중원 무림의 여타 합공법은 정해진 인원이 넘어서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호거술은 음공 기반의 합공법. 음공은 하모니가 중요하니 사람 수에 가감이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

- 확인해 보겠습니다.

농꾼이 답하기 무섭게 세 명의 왜구 중 한 명이 그대로 쓰러졌다.

농꾼이 왜구 체내의 마*카*투를 조절해 한 명을 기절시킨 것이다.

셋이 갑작스레 둘이 된 상황.

옮겨 다니는 왜도의 빛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홀로 휘두를 때보다는 빛났다.

중원 무림의 합공법과 다름없이 둘일 때도 호거술의 합공이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넷부터는 이쪽에서 해보는 수밖에 없겠군.”

아니 그보다 초극 고수에 맞는 음역대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호거술의 합공을 익힐 당사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망할 귀원공.”

내 입에서 절로 투덜거림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한 내공을 다 흉내 낼 수 있으면 합공에 더 유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합공을 쓸 수 없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긴 귀원공으로도 합공이 가능했으면 내가 귀원공으로 초극이 되는 순간 21세기에서 수확에 열 올릴 필요가 사라져 버렸을 테지.

합공을 제외한 어지간한 무공은 죄다 귀원공을 바탕으로 펼칠 수 있다. 합공까지 가능하면 헌터들이 자신이 익힌 무공의 독문 내공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스피커 제작은 어때?”

정안각 인원들에게 육성으로 호거술을 쓰게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나처럼 금속 이온을 축적하게 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스피커를 만들어 주는 수밖에.

- 장갑 형식으로 총 열 개가 완성. 세 시간 이내에 배달될 예정입니다.

“내가 탈 말은?”

- 출발시킵니까?

완성되었다는 말이다.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다면 출발시켜.”

- 열 시간 뒤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저 셋에게 뽑아낼 건 다 뽑아낸 건가?”

실험이 끝난 탓에 널브러져 있는 세 명의 왜구를 보며 말했다.

- 중복된 데이터가 관측되는 것이 호거술과 연관된 데이터는 다 뽑아냈다고 봅니다.

“폐기하고 마*카*투 수거해.”

- 예, 리퍼. 600초 뒤 수거가 끝납니다. 그 이후에 시체를 치울 사람을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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