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산동행(11)
- ZJ-09의 숙주가 대상의 심정지를 확인하였습니다.
호장우가 실수했다는 소린가? 어쨌든 일단 놈을 잡고 본다.
거리를 좁히기 무섭게 녀석이 또 폭탄을 떨군다.
- 정면 도약!
믿는다. 농꾼!
발을 멈추지 않고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순간 피풍의가 내 전신을 감싼다.
쾅, 콰쾅!
폭발의 충격파가 내 전신을 밀어 올린다.
촤악!
허공에서 피풍의가 펼쳐진다. 폭발의 충격을 이용해 날아올라 활공을 시작하는데, 성벽을 넘은 놈들이 세 방향으로 찢어지는 것이 보였다.
“흥.”
그렇게 찢어지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좌측 놈부터 조져!”
명을 내림과 동시에 공력을 양손에 때려 박는다.
오올! 오올!
등판의 방수 중 두 개가 양쪽으로 하나씩 뻗어 나와 스피커를 형성해 울부짖는다. 그렇게 호거술이 만들어 내는 증폭 공간이 형성되기 무섭게 등판의 다른 방수가 비수를 꼬나쥐고 그 공간에 밀어 넣는다.
우웅!
유사 기맥을 타고 비수를 거친 공력이 도기가 되고 호거술의 영향 아래 증폭되어 강기화 되니.
핑!
방수의 거력이 비수를 쏘아내 빛살로 만든다.
피피피피피핑!
순식간에 열일곱 개의 빛살이 더해져서 좌측 놈을 향해 쏟아진다.
파파파팟!
몇 발은 방향을 틀어 피하지만, 농꾼이 다 계산을 하고 내던진 것들이다.
카카카캉!
피하지 못하는 것은 막아야 했고.
파파파팍!
막지 못하는 것은 맞아야 했다. 좌측 놈이 피 보라를 뿌리며 허물어졌다.
이번에는 우측.
피피피피피피피핑!
공격기(攻擊機)의 기총소사(機銃掃射)나 다름없는 공격에 우측 놈도 좌측 놈과 같은 꼴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마풍단주 하나. 둘이 순식간에 벌집이 되는 것을 본 마풍단주는 발을 멈추고 나를 향해 돌아서 칼을 뽑아 들었다.
도주하기를 포기한 놈의 앞으로 내려섰다.
“살아 있었네, 왜놈.”
“끼요옷!”
대답 대신 익숙한 기합을 토하며 칼을 휘두른다. 간결한 만큼 빠르고 살벌한 도법에 강화된 강기가 일렁거리니 일단 뒤로 크게 한 발 물러나 피한다.
내가 물러나기 무섭게 따라붙으며 연신 칼을 긋는다.
= 생포한다.
칼에 강기를 일으키며 왼손을 검게 물들인다.
끼요올!
똑같이 호거술로 강기를 강화하며 받아 준다.
쾅!
굉음과 함께 마풍단주의 몸이 뒤로 튕겨 난다. 바로 따라붙는데 튕겨 나는 그의 몸에서 폭탄들이 쏟아진다.
농꾼이 바로 반응해 내 몸을 피풍의로 감싼다.
콰콰콰콰콰쾅!
거센 충격이 내 몸을 연신 뒤로 밀어낸다. 폭탄이 터진 위치가 충격파를 타고 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바로 천근추를 펼치며 그 폭발의 충격을 버텨낸다. 폭발의 충격이 가시기 무섭게 피풍의를 펼쳤지만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폭발이 만들어 낸 뿌연 먼지들뿐이다.
“어디야?”
- 이쪽입니다.
농꾼이 만들어 내는 화살표를 따라 냅다 뛰니 열심히 내달리는 놈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의 강줄기도.
내가 놈을 따라잡기 전에 놈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으로 도망가면 될 것 같아?
바로 따라 들어간다. 그리고 음파 탐지로 놈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 수중 동굴, 발견했습니다.
농꾼의 보고와 동시에 강바닥의 널찍한 바위 하나의 색깔이 붉게 변한다.
농꾼이 찍은 바위로 다가가니 그 아래에 틈이 있었다. 사람 하나 들어갈 틈은 비스듬히 아래로 뚫려 있는 동굴과 연결된다.
슬쩍 틈새로 기어들어가 음파 탐지로 동굴을 살피니 길이는 대강 이십 장이다.
음파 탐지가 만드는 영상에 동굴의 끝자락에서 위로 올라가는 인영이 하나 걸려든다.
볼 것도 없다. 놈이다.
바로 동굴 구멍으로 몸을 들이민다. 벽면을 잡고 사지를 놀린다.
단숨에 절반을 통과하는데….
쿵!
동굴이 울린다.
- 리퍼, 함정입니다.
농꾼의 경고. 음파 탐지로 만들어 내는 영상으로 놈이 사라진 동굴의 끝부분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젠장.
- 긴급 탈출합니다.
농꾼의 경고와 함께 허리의 방수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벽면에 처박힌다.
파항!
네 가닥 방수의 수축에 전신이 급가속 한다. 순식간에 동굴을 빠져나와 입구를 덮고 있는 바위에 부딪친다.
아파할 새도 없다. 바로 바위를 박차고 틈새를 빠져나왔다.
구구궁!
바위의 틈새가 대량의 모래를 토한다. 수중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일단 물 밖으로 나왔다.
“그 동굴 사람 손 탄 거였지?”
- 바위로 입구를 덮은 것도 그렇고 자연적인 형상은 아니었습니다.
“유인당했다는 건가?”
수중 동굴에서 나를 파묻으려 한 것이다.
“추적할 수 있어?”
- 대상이 대청하(大淸河)에 입수 전 꿈틀이와 통신 벌레의 신호가 소실되었습니다. 근접 폭발의 충격파에 버티지 못한 듯 합니다.
“매에 대해 아는 놈이니 매의 눈을 피해 도망갈 방법을 강구했겠지? 젠장, 그냥 죽여 버렸어야 했나?”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놈을 놓쳤다는 사실이 아니다. 나와 매에 대해 알 만큼 아는 놈이 상대 쪽에 쭉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양연곤에게 연락해서 이쪽 상황, 놈들의 수법 상세히 전하고 그쪽도 함정일 가능성이 크니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고 전해.”
- 예, 리퍼.
박살 난 객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일단 상 노개와 남궁화청을 살펴야 했다.
“다친 겁니까?”
남궁화천이 얼굴에 뭔가를 둘둘 감고 있기에 물었다.
“멀쩡하네.”
죽립이 박살 나 대충 옷을 찢어 얼굴을 가린 것이다.
“허어, 이게 무슨 망신인지.”
상 노개도 멀쩡했다. 호신강기 덕분이다. 단지 객잔의 잔해에 깔려서 바로 나오지 못했단다.
“자네가 죽인 둘은 개방이 수습했네. 그런데, 한 명은 놓친 건가?”
상 노개가 물었다.
“예, 물속에 저를 파묻을 함정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황보세가에 연락해야겠군. 셋이 있던 이쪽도 이런 대비가 되어 있는데, 열셋이 있는 우산 쪽은 어떻겠나?”
“개방은 우산으로 가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황보세가의 입장이란 것이 있지 않나?”
“아무래도 우리 정의맹은 우산 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황보세가에서 안 좋아할 텐데?”
“제 목숨을 몇 번이나 노렸던 왜구가 낀 일이라서요.”
“황보세가에 한마디 해놓지.”
“그럼, 이곳의 뒤처리는 개방에 맡기겠습니다.”
상 노개와 인사를 하고 남궁화청에게 고개를 돌렸다.
“남궁 대협, 우산까지 내달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의상 물어본다. 멀쩡하다 해도 어쨌든 폭탄을 맞은 사람 아닌가.
“죽립만 하나 있으면 되네.”
죽립을 구해다 쓴 남궁화청과 함께 청주 부도를 향해 내달렸다.
제양(濟陽)에서 청주 부도까지는 오백 리 길.
산이 많은 지역도 아니라 강을 세 개 건너야 하는 것 말고는 험할 것도 없는 길이다.
제양 현도를 나와 대청하를 건넌 뒤 평지를 백오십 리 정도 달려 소청하(小淸河)에 당도했을 때다.
“건너편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
남궁화청이 발을 멈추고 말했다.
건너편에 열이 넘는 초극 고수들이 모여 있는 것을 매를 통해 알았기에 하는 소리다.
“동곤륜(東崑崙)에 모용세가의 사람들이네요.”
그들은 장보도 쟁탈전에 나섰던 무인들로 농꾼의 감시망 아래 등록되어 있던 자들이다. 그러니 바로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저기서 뭐 하는 거야?
- 알 수 없습니다.
= 꿈틀이 붙어 있잖아. 녹음된 거 없어?
- 모용세가의 경우 3,528초 전부터 대화가 끊겼습니다. 위치 데이터를 보면 대화가 끊기고 231초 뒤에 이동을 시작, 2,751초 전에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동곤륜의 경우는 대화 단절이 약 312초 정도 늦었지만 모용세가의 경우와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전음으로 저들에게 소식을 전했다는 말이다. 모든 대화를 전음으로 하라는 충고와 함께 말이다.
마치 내 감시망을 대비한 것 같다. 육가장의 경우도 있으니 분명했다. 마풍단주. 그 망할 왜구 놈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쟁탈전을 조정하던 놈들이 다시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다시 쟁탈전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장보도가 무용지물이 되자 망할 놈들이 유물을 꺼내 던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네가 부리는 매들이 모를 리 없지 않나?”
“제양에서 놓친 왜구 놈, 제 매의 감시 능력을 잘 아는 놈입니다. 그놈이 끼어 있다면 모든 소문을 전음으로 흘렸을 수도 있습니다.”
유물 쟁탈전의 수습은 소림에게 맡기고, 일단 우산에 모인 놈들을 잡아야 한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 강을 건너지요.”
“그러지.”
남궁화청과 함께 소청하의 상류 쪽으로 몸을 틀었다.
“건너편의 두 분, 잠시 멈춰 주시겠소!”
쩌렁쩌렁한 울림과 함께 동곤륜의 고수들이 등평도수로 소청하를 건너고 있었다.
아니 그런 동곤륜의 움직임에 모용세가의 고수들이 이쪽에 이목을 집중하는 것이 보인다.
여기서 귀찮다고 내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동곤륜은 물론 모용세가의 고수들까지 따라붙을 것이다.
동곤륜은 둘, 모용세가는 하나. 그렇게 수확 대상자들이 끼어 있다. 그냥 내달리면 쫓아올 체력이 되는데다가 내가 피풍의를 펼치면 저치들 체내의 나노 머신이 그걸 분석해 흉내 내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의 외침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벽력응주?”
강을 건너던 동곤륜의 고수 중 하나가 나를 알아봤다.
“벽력응주다!”
그 옆의 자가 재차 확인하더니 갑자기 무기를 뽑아 든다. 그리고 터지는 소리가.
“불모의 청하신수(靑霞神手)를 내놔!”
이런 개소리다.
설마, 이 망할 새끼들이 내가 유물을 찾았다고 덮어씌운 거야?
“이 무슨 짓들인가!”
남궁화청이 노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뇌성과 함께 십삼섬전뢰의 강기가 덤벼드는 동곤륜의 고수들을 휩쓸었다.
파라랏!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여섯의 신영이 새처럼 날아올라 제각기 남궁화청을 타고 넘는다.
동곤륜의 경공 전시영(展翅營)이다.
“감히!”
콰르릉!
섬전의 강기가 만들어 내는 뇌옥이 동곤륜 고수들을 휘감는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동곤륜의 무리가 둘로 나뉜다. 셋이 몸을 돌려 검과 창, 칼로 빛을 발하며 남궁화청을 막아선 것이다.
당연히 남는 셋은 나를 향해 덮쳐드니 나도 칼을 뽑을 수밖에 없다.
쩌저저정!
도기에 전압 건 유사 강기로 내 몸을 지키는 벽력의 그물을 그리니, 나를 공격하던 두 자루 검과 한 자루 칼이 튕겨 난다.
삼십 대 수확 대상자 둘과 오십 대 동곤륜 고수가 남궁화청에게 묶여 있는 탓에 내 상대는 평범한(?) 초극 고수 셋이다.
하지만 느긋하게 상대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강 건너 모용세가의 다섯이 등평도수로 달려오고 있다.
= 방수 가동. 칼 쓰지 말고 죽지 않을 정도로 지져 버려.
손가락을 까닥이며 동곤륜의 셋에게 돌진한다.
정면에서 칼이 격한 호선을 그린다. 동곤륜 노망육해(擄蟒六解)의 하나인 참망인(斬蟒刃)이다. 그리고 양쪽에서 검강이 빛살이 되어 나를 찌른다. 역시 노망육해의 하나인 천망검(穿蟒劍).
하지만 내 칼이 그리는 것은 이무기가 아닌 벼락!
쩌저저저정!
이무기를 꿰뚫는 검과 참하는 칼을 힘과 속도로 찍어 누른다.
파자작, 파작, 파팍!
그리고 유사 강기로 그리는 벼락의 그물 사이로 진짜 벼락이 내려치니 동곤륜의 평범한(?) 초극 고수 셋은 그대로 몸을 떨며 쓰러져야 했다.
퍽, 퍼퍽!
발끝으로 마혈을 찍고 발등으로 후려 차 그들 셋을 강변 한쪽으로 밀어 놓으니, 모용세가의 다섯이 강을 넘어 강변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