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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12화 (112/175)

112화

산동행(05)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은 무리가 있네.”

“그건 그렇지요.”

상 노개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장보도를 찾기 위해 눈이 벌게진 작자들이 가득한 임청 주도다. 정보통인 개방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게 뻔했다. 밤도 아닌 대낮에 그들의 눈을 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방도들을 불러 모을까요?”

중늙은이 거지 중 하나가 상 노개에게 물었다.

“방도들은 계속 탐문을 하게 놔두게. 지금 방도들을 불러 모은다면 우리에게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꼴밖에 안 돼.”

“상대는 무면투괴입니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소림 무승들의 손을 빠져나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군웅들이 개방의 움직임을 눈치 채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일단 무면투괴를 확실히 잡기 위해 방도들을 동원해 포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개방과 정의맹의 전력이면 다른 잡인들이 함부로 덤벼들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다섯 개방이 넷, 이 자리에 초극 고수만 아홉이다. 팔파에서 손꼽히는 속가라도 뭉갤 전력이다. 하지만 지금 임청에 모여 있는 초극 고수들은 일백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천강의 비급에 눈 벌게진 작자들. 아무래도 이성적으로 움직여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무면투괴의 도주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빠져나간다 해도 바로 매를 사용해 추적할 수 있습니다.”

욕심에 눈 벌게진 초극 고수들과 드잡이질 하기 싫으니 개방 방도들을 불러들여 포위망 만드는 일에 반대했다.

“무면투괴로 짐작되는 자가 하나가 아닌 셋인 상황 아니오. 어디가 무면투괴인지 모르니 전력을 셋으로 나눠야 할 텐데 벽력응주의 몸이 셋은 아니잖소.”

내 몸은 확실히 하나긴 하다.

“이 자리에 매와 영통한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남궁세가와 신창양가에 한 분씩 있지요.”

내 말에 개방 사람들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벽력응주가 힘 써준 덕택에 매가 보고 듣는 것을 본인도 보고 들을 수가 있소.”

내 눈짓에 남궁화청이 나섰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양연곤 또한 나서고 말이다.

“흠, 그렇다면야….”

개방의 중늙은이가 물러났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이 자리에 있는 초극 고수들만 움직이는 것으로 개방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

날이 어두워지자 개방 방도들이 하나둘 폐가로 모여들었다.

= 주위 감시자들의 위치는 죄다 파악됐나?

- 예, 리퍼.

눈앞으로 폐가 주위의 지도가 뜬다. 개방이 거처로 쓰고 있는 폐가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점이 원을 그리듯 찍혀 있었다.

= 초극은 없지?

- 없습니다.

“슬슬 움직이지요.”

아홉 명이 어둠에 녹아들어 폐가를 나섰다. 폐가를 감시하는 눈들이 있지만, 대낮이 아닌 야간이라 그들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응 시리즈를 통해 감시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농꾼이 시야의 사각을 계산해 낸다.

우리는 그저 초극 고수의 몸놀림으로 농꾼의 안내를 따르면 될 뿐이다.

빈민가를 빠져나온 우리는 바로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목표가 세 곳이니 당연히 셋으로 찢어진다.

남궁화청과 개방 고수 둘이 민가 쪽으로, 신창양가의 셋과 개방 고수 하나가 장원 쪽으로 향했다.

나는 상 노개와 함께 임청 주도의 관청으로 향했다.

관청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초극 고수들이 담벼락 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훌쩍 담벼락을 넘어 문제의 창고에 당도했다.

응 시리즈로 창고 주변을 살피고 목표에 붙여 놓은 꿈틀이로 창고 안을 살폈다.

변동 사항 없다. 창고 안의 누군가는 열심히 운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제 그저 조용히 잡아가면 될 일.

- 한 명이 창고를 뚫고 들어가면 한 명은 기막으로 주위를 감싸 소음을 차단하세.

상 노개가 전음을 보냈다. 괜찮은 방법이다.

- 제가 뚫고 들어가 제압하지요.

- 단번에 제압해야 하네. 자신 있나? 소란이 인다면 뒤가 귀찮아져.

내 말에 상 노개가 물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온갖 잡놈들이 순식간에 몰려올 것이다.

-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히죽 웃어 준 다음 창고의 벽면에 양손을 올렸다. 예민한 감각에 공기의 흐름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 지금!

파팡!

순식간에 힘을 쏟아내니 벽면이 터져 나간다. 뚫린 벽면을 통해 창고 안으로 뛰어든다.

뭔가 잔뜩 채워져 있지만 이미 창고 안의 상황은 농꾼이 죄다 파악해 놨다.

농꾼이 그려주는 동선대로 순식간에 발을 옮기니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곰보가 눈에 들어온다.

황급히 운기를 중단하려는 그를 향해 검게 물든 내 손이 벽력을 쳤다.

파자작!

“…….”

전신을 지지는 전격에 곰보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쓰러진 늙은이에게 재빨리 다가가 마혈을 짚었다.

= 인피면구, 확인해.

마혈을 짚어 공력을 차단했으니 농꾼이 신체를 살핌에 무리가 없다.

- 대상자의 천연 표피밖에 관측되지 않습니다.

“잡았군.”

뒤따라온 상 노개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무면투괴의 얼굴 맞습니까?”

내가 늙은이의 얼굴을 상 노개에게 보이며 물었다.

“녀석의 얼굴은 아무도 몰라. 그런데 이 얼굴은 내가 아는 얼굴인데?”

상 노개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깨울 수 있나?”

상 노개의 말에 곰보의 혈을 자극했다.

“끄응.”

곰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개방의 장걸개?”

상 노개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기겁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상 노선배. 이 무슨 짓이오? 내, 개방에 죄를 지은 기억이 없는데!”

“혈진자(血疹子)?”

“무림에 나 같이 얼굴 얽은 놈이 또 있소?”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황보세가 놈들에게 처맞고 몸조리 중이오.”

곰보, 혈진자의 대답에 내가 손을 움직였다. 옷깃을 풀어 농꾼을 통해 알아낸 그의 상처들을 상 노개 앞에 노출시켰다.

“소림의 흔적이 아니군. 잘못 짚었어.”

상처를 살핀 상 노개가 인상을 썼다. 이 곰보는 무면투괴가 아니라는 말이다.

= 다른 쪽은 어때?

- 두 곳 다 무난히 제압했습니다.

농꾼의 대답에 혈진자의 마혈을 다시 짚고 그를 둘러맸다.

“일단 끌고 가지요.”

그가 무면투괴가 아니라도 여기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풀어 주면 개방이 뭔가 정보를 얻었다는 소문을 낼 수 있고 그냥 두고 가도 부서진 벽면 때문에 관청의 사람들에게 발견될 것이 뻔했다.

죽여 파묻는 것이 가장 깔끔하기는 한데, 괜히 상 노개 앞에서 죽여 심성이 잔인하다는 평 받을 필요 없다.

“그러지.”

상 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진자라는 곰보를 업고 조용히 관청을 빠져나왔다.

“따라오게.”

상 노개가 앞장섰다. 그런데 방향이 빈민가가 아니었다.

“이쪽은….”

“비밀 거점이 있네. 다른 조도 그쪽으로 올 걸세”

내가 불려갔던 쪽은 다른 작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드러낸 거점이라는 소리다.

도착한 곳은 관청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번듯한 장원이었다.

개방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지만 놀랄 이유는 없다.

개방은 무림에서 손꼽히는 정보통이다. 정보를 다루는 집단이 돈이 없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말이다.

장원의 대청에서 반 각 정도 앉아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무면투괴는 찾았나?”

상 노개가 물었다.

“이쪽에 있었습니다.”

신창양가의 셋과 같이 갔던 개방 고수 둘이 한 명을 잡아끌고 왔다.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고 있지만, 소림 무공에 당한 상처를 찾았습니다.”

“장보도는 어디 있나?”

상 노개가 묻자 끌려온 인물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장보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여기 임청에 주저앉아 있었겠소?”

= 본 얼굴이야?

내가 묻자 한차례 스캔을 끝낸 농꾼이 답했다.

- 인피면구입니다.

무면투괴 본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 장보도는?

- 대상이 입고 있는 상의 중 다른 부분과 판이한 재질이 검색됩니다.

농꾼이 그 판이한 재질을 증강현실로 표시했다.

- 대상에서 추종향으로 의심되는 물질이 다량 검출되었습니다.

무면투괴로 예측되는 인물은 추종향 범벅이 된 상태였다.

나는 말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상의를 뜯어냈다.

“네놈….”

놈이 하는 소리 따위 귀담아들을 필요 없다. 그저 뜯어낸 상의를 양손 사이에 넣고 슬슬 비볐다.

한 장처럼 딱 붙은 옷감이 슬쩍 사이를 내비치니 나는 양손으로 그걸 잡고 뜯어냈다.

툭!

그러자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 있군요.”

일단 주워서 펴 본다. 뭔가 잔뜩 그려져 있고 글귀가 몇 개 보였다.

자세히 살피는 척 장보도로 얼굴을 가리고 혓바닥을 댄다.

= 죄다 기록하고 작성 연대 분석해.

- 예, 리퍼.

농꾼을 이용해 장보도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어내고 조사한다.

“장보도처럼 보이기는 하군요.”

그리고 상 노개에게 미련 없이 건넨다.

“흠.”

상 노개가 장보도를 이리저리 살폈다.

= 오래된 종이에 염료가 사용되었습니다만, 종이에 염료가 스며든 시기는 반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자체에 추종향으로 추정되는 물질의 분포가 아주 고릅니다.

만들어진지 반년밖에 안 된 장보도에 골고루 묻어 있는 추종향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이 장보도가 이번 쟁탈전의 원흉이 맞다면 이번 일 자체가 누군가의 수작이라는 말이 된다.

누가 장보도를 가졌든 이번 일을 꾸민 누군가는 추종향을 통해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장보도를 차지한 자를 군웅들이 계속 쫓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며칠 동안 장보도를 지닌 무면투괴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적당히 가열된 상태에서 시간을 끄는 듯한 모양새다.

왜?

이 일을 꾸민 작자들이 이번 일로 피 봤으면 하는 상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깐.

일단 무면투괴의 혼혈을 짚어 그를 기절시키고 입을 연다.

“아무래도 이거 누가 마교를 노리고 부린 수작 같습니다만?”

내 말에 상 노개가 장보도를 살피다 말고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나?”

강렬한 눈빛을 발하며 묻는다.

“불모의 유물입니다. 불모는 마교 역사상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였지요. 마교 입장에서는 반드시 수거해야 하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보도에 추종향이 아주 골고루 묻어 있습니다. 아주 꼼꼼하게 발라져 있지요. 누가 장보도를 손에 넣어도 쫓을 수 있게 말입니다.”

“택향제를 쓰지 않고도 추종향 냄새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에 상 노개가 미심쩍은 눈이 되었다.

“상 노개께서 낮에 제게 뿌린 추종향 냄새도 바로 맡았습니다.”

상 노개의 눈에서 의심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제 생각은 단시간에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꾸민 자들은 우리가 장보도를 얻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마교가 목적이라면 우리가 장보도를 차지한 걸 보고만 있지 않을 터.”

“상처를 입어 오도 가도 못 하는 무면투괴 같은 개인이 아니라 개방이 상대임을 안다면 바로 움직이겠군.”

“그렇지요.”

- 리퍼, 개방이 장보도를 얻었다는 소식이 이곳 위치와 함께 초극 고수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젠장, 뭐 이리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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