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산동행(03)
일행의 선두는 양연곤이 맡았다. 일행 중 가장 내공이 얕은 자가 양연곤이다. 갓 초극이 되었으니 당연하다. 일행의 속도는 그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선두에 세워 일행의 속도를 정하게 한다.
거기에 산동에 도착하기 전까지 매와의 교감을 튼튼하게 한다는 핑계도 있다.
농꾼이 짠 최단 거리 경로를 내가 양연곤에게 알려주고 그가 하늘을 나는 매와 공감해 가며 길을 확인하며 달렸다.
한 시진에 이백 리씩 내달리니 해 떨어질 무렵에는 산동과 경계를 맞이하는 서주 주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서주는 산동을 지난 운하가 남직례로 들어서는 관문인지라 신창양가의 분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신창양가의 분가에서 쾌속선을 한 척 빌린다. 쾌속선이 물길을 따라 야간 운행하는 동안 일행은 배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두 시진 정도 눈을 붙였을까?
- 리퍼, 장보도의 최종 종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농꾼의 보고가 나를 깨웠다.
= 어디야?
- 산동 동창부(東昌府)의 임청주(臨淸州)입니다.
= 염가동이 보낸 정보야?
- 예.
= 응5는?
- 해당 지역 도착까지 30분 걸립니다.
= 현재 염가동의 위치는?
염가동이 가까이 있으면 일단 그에게 붙은 응6을 움직여 일대의 초극 고수들을 파악할 수 있다.
- 제남부(濟南府)의 부도입니다.
제남 부도라면 임청주와 수백 리 떨어진 곳이다.
= 이 인간, 하오문에서 돈 주고 정보를 산 거야?
이번처럼 장보도가 나타나고 무림인들이 모여들면 제일 이득 보는 것은 하오문 같은 정보상들이다.
믿을만한 정보를 팔 때도 있지만 시기가 지난 정보를 팔거나 의도적으로 정보를 비틀기도 한다.
그뿐이랴 보물을 쫓는 무림인들을 이용해서 평소 원한 있는 세력들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 이런 시기의 하오문은 신뢰도가 절반을 넘기 힘든데….
- 염가동의 이동 경로 확인 결과 하오문이 아니라 황보세가를 감시해 얻은 정보입니다.
산동의 정도 무림 패권을 쥔 곳이 황보세가다. 염가동이 응6으로 황보세가를 감시해 얻은 정보라면 하오문에서 돈으로 산 정보 보다 믿을만했다.
= 믿을만한 정보란 소리지? 응5가 임청주에 도착하면 초극 고수 파악해서 꿈틀이 붙여.
- 예, 리퍼.
= 내 현재 위치는?
- 어대현(魚臺縣) 인근입니다.
내 물음에 농꾼이 산동의 지도를 띄우며 답했다.
= 날 밝을 때쯤 배에서 내린다면 어디쯤이야?
- 쾌속선의 평균 속도를 계산하면….
응5가 임청주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김에 대강의 경로를 짜본다. 일어나면 양연곤에게 말해 줘야 하니 나도 알고 있기는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 리퍼,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경고와 함께 눈앞에서 지도가 밀려나며 영상이 뜬다.
양쪽에 두 명씩 네 명의 무인이 열심히 삿대질하는 배가 보인다. 내가 타고 있는 신창양가의 쾌속선이다. 그런 쾌속선의 뒤를 조용히 헤엄쳐서 따라오는 민머리가 셋.
자맥질로 다가오는 것이 배를 털어먹으려는 수적 같았다.
= 초극이냐?
혹시나 해서 묻는다.
- 아닙니다.
농꾼의 대답.
= 저것들 뭐냐?
어이가 없어서 묻는다.
초극이 아니니 기껏해야 절정. 내가 탄 배에는 신창양가의 표기가 걸려 있다. 절정 셋이 신창양가의 표기를 내건 배에 수작을 건다고?
어쨌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배는 신창양가 소속. 이 배를 향해 오는 자들이니 신창양가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았다.
“수상한 자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일행들은 죄다 초극 고수. 나지막한 내 경고에 죄다 눈을 떴다.
“무슨 소린가?”
양묵월이 물었다.
“수적들로 보이는 자들 셋이 배 뒤쪽으로 헤엄쳐 오는 것을 매가 발견했습니다.”
“초극들인가?”
양묵월이 물었다. 응 시리즈가 초극 고수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묻는 것이다.
“초극은 아닙니다.”
“곤아! 나가 봐라.”
내 대답에 양묵월이 바로 양연곤에게 떠밀고 양연곤은 창을 들고 선실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따르시는 분들은 이 배가 신창양가의 배임을 알고 쫓으시는 거요!”
양연곤의 우렁찬 목청이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야밤이라 신창양가의 표기를 못 본 걸 수도 있기에 하는 경고다.
선두의 민머리가 인상을 쓰는 것이 화면에 잡힌다. 그가 수신호를 보내자 뒤따르던 민머리 둘이 물 아래로 사라진다. 선두의 민머리도 곧 그 뒤를 따른다.
“젠장.”
양연곤의 경고에 물러나는 모양새가 아니다.
바로 선실 밖으로 나왔다.
응 시리즈로는 탁한 물속 상황까지 알 수 없다. 수중 생물 시리즈들이 있다면 물속 상황을 살피는데 문제없지만, 당장 옆에 없기에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
공방에서 만든 활줄을 꺼내 길게 풀어 물에 담근다.
= 초음파 탐지.
- 예, 리퍼.
바로 물 아래의 모습이 영상으로 뜬다. 뭔가 묵직한 것들을 등에 멘 민머리 셋이 쾌속선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딱 봐도 등에 멘 묵직한 것으로 배에 구멍을 뚫겠다는 수작이다.
“물 밑으로 접근 중입니다.”
“배를 침몰시키려는 수작이겠군.”
나를 따라 선실 밖으로 나온 양묵월이 인상을 썼다.
“사로잡을 수 있겠나?”
양묵월이 나를 보고 묻는다.
“예?”
지금 나보고 나서라는 거야?
“곤이나 우리 형제는 수공을 모르네.”
구민신창의 경우도 그렇고, 운하를 관리하는 집안이 수공을 등한시하냐!
“물론, 우리 실력이면 물 밖에서 공격할 수도 있네. 하지만 그렇게 공격한다면 죽일 수는 있어도 사로잡기는 어렵다네. 알다시피 이 일대는 양산박 수채의 영역 아닌가. 그러니 자네가 좀 수고해 주게.”
양산박 수채는 황하의 삼대 수채 중 하나로 산동 물길의 지배자다. 저들이 양산박 소속일 가능성도 있으니 죽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장보도를 구경하기도 전에 산동 물길의 지배자와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하아, 삿대나 거두시지요.”
“당장 삿대를 거둬라!”
내 말에 양묵월이 외쳤고, 네 명의 무인들이 명을 따랐다.
삿대질이 멈추자 쾌속선의 속도가 느려지고 물속 놈들과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해.
- 예, 리퍼.
놈들이 지근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한 손으로 풀어 둔 활줄을 거뒀다. 동시에 다른 손을 검게 물들이며 수면을 겨눴다.
파자작!
손에서 터진 벽력이 수면을 때리니 민머리 셋이 물고기 몇 마리와 함께 물 위로 떠올랐다.
기절한 그들을 쾌속선의 무인들이 건져 올렸다.
양연곤이 그들의 사지를 탈골 시키고 세 명의 혼혈을 짚었다.
그리고 한 명을 깨웠다.
“소속.”
“양산박의 소두령 중 한 분인 혈선풍 휘하의 소선주 마달이오. 우리는 그저 배에 작은 구멍을 뚫으려 했을 뿐이오.”
소속만 물었는데 줄줄이 분다.
“우리 양산박은 신창양가와 충돌을 일으킬 생각은 없소. 그저 산동의 소란에 신창양가가 끼어드는 것을 막고자 했을 뿐. 솔직히 신창양가의 영역에서 이번과 같은 쟁탈전이 일어난다면 신창양가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을 것 아니오?”
굵직한 세력들이 끼어들어 일이 크게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순순히 자백하는 것도 일이 실패해서 잡혔을 경우 사실대로 말하라 명을 받았기 때문이오. 더 물어볼 것이 있으시오?”
“사전에 경고를 해 줄 수 있는 일 아닌가? 우리가 이번 쟁탈전에 끼어드는 목적은 불모의 유산이 아니라 이번 쟁탈전이 우리 영역까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
“신창양가의 영역 안에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면 신창양가는 우리 양산박에 자중해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하겠소?”
할 수 있을 리 없다. 영역 안에서 쟁탈전이 끝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요청에 이웃 세력이 응해 움직이지 않았는데 장보도가 그 이웃 세력권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그래서 그곳에서 쟁탈전이 일어나 인적 물적 피해를 입게 된다면? 개입을 막았던 세력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양연곤이 그의 혼혈을 짚어 기절시켰다. 남은 둘을 차례로 심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한 마디 묻기 무섭게 똑같은 말들을 내뱉은 것이다.
“배를 뭍에 대.”
양묵일의 명대로 배가 움직였다.
배를 타고 이대로 가면 양산박 수채가 계속 발목을 잡으려 들 게 뻔했다. 어차피 아침나절에는 내리려 한 배 아닌가.
“그래도 일행이 단출해 다행이네. 절정 무인이 끼어 있었다면 발걸음이 상당히 더뎌졌을 거야.”
“그렇지요.”
남궁화청의 말에 양묵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 리퍼, 임청주의 초극 고수 현황입니다.
농꾼의 보고. 응5가 임청주에 도착한 것이다.
지도에 온통 시뻘건 점투성이다. 대충 봐도 백 개는 훌쩍 넘어 보인다. 초극 고수만 저 정도니 이번 일로 몰려온 무림인들이 수천은 된다는 소리다.
= 꿈틀이 뿌려서 신분 파악하고 세력 구분해 놔.
- 예, 리퍼.
“이제부터는 제가 앞장서지요.”
양연곤 대신 내가 나섰다.
뭍으로 간다 해도 이 일대는 양산박 수채의 영역. 그들이 길을 막을 수도 있었다.
“양산박에서 길을 막을 수 있으니 인적이 드문 길로 달릴 겁니다.”
임청주까지 직선거리는 육백 리 정도. 느긋하게 달려도 점심은 임청주에서 먹을 수 있을 듯했다.
***
관도의 길목마다 무인들이 깔려 있었다. 양산박 수채의 무인들만이 아니다. 인근 무파의 무인들이 연합한 모양새다.
힘없는 잔챙이들은 막아서고 힘 으로 막지 못할 인물들은 그 신분이라도 알아내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우리야 응 시리즈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미리 알 수 있으니 마주칠 일 없다.
그렇게 임청주 인근까지 달려오는 동안 농꾼은 끔틀이를 뿌려 초극 고수들의 신상과 세력들을 대강이나마 파악해 놓았다.
- 소림, 개방, 진주언가, 황보세가가 공개적으로 나섰으며 하북팽가와 모용세가는 은밀히 나선 듯합니다. 자중하는 태산파와 달리 산동 곤륜파는 이번 일에 명운을 걸은 듯합니다.
죄다 수확 대상자들을 보유한 방파들이다.
- 이들 방파들과 양산박, 강남 흑도맹 인사들이 초극 고수들의 육 할을 차지하며 사 할 정도가 개인적으로 온 자들 아니면 중견방파의 인물들입니다.
= 강남 흑도맹? 육가장이 움직인 거야?
- 육가장의 인물은 없었습니다.
육가장의 인물이 없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강남 흑도맹의 인물이라면 장보도를 차지하는 것보다도 장보도가 신창양가의 세력권으로 흘러들게 유도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 마교는?
마교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묻는다. 불모는 마교의 고수 아닌가. 마교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 아직 특정해내지는 못했습니다.
하긴 주류 마교의 세력권인 광서광동은 산동과 거리가 멀다. 지역의 마교 놈들은 암약하는 게 당연하니 쉽사리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왔으니 나는 일단 내가 이번 일에 참가한 티를 내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조사대가, 아니 이제는 정의맹의 정안각이지. 어쨌든 수확하기 위한 명분을 살리려면 내가 이곳에 와서 활발히 활동한 행적이 있어야 한다.
효과적으로 소문을 내기 위해서는 전문 조직을 활용해야 하는 법. 정파의 마당발과 안면을 트자!
= 개방과 접촉한다. 위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