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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04화 (104/175)

104화

보복행(13)

두 녀석 다 수확 대상자라고?

내 눈이 순식간에 둘을 훑는다. ‘철매화’라 불린 술상 위로 떨어진 놈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방 한쪽으로 물러나 술 취한 놈과 거리를 벌리고 있다.

근데 그 위치가 내 짐 쪽이다.

무복과 피풍의, 칼과 비수들을 길쭉한 상자에 넣은 채 천으로 말아놓은 것이 내 짐이다.

게다가 저 술 취한 놈.

나노 머신을 몸에 박아 넣은 놈이 인사불성일 정도로 술이 취한다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두 명 모두 내게 어떤 수작을 부리기 위해 이 난리를 떠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몸에 지닌 무기는 헐렁한 비단 장포 안에 잘 감춰 둔 소도 두 자루와 투척용 비수 몇 뿐이다.

“네놈, 누구냐고 물었다!”

술 취한 놈이 내게 검을 겨누며 노성을 내지른다.

- SX-17과 19입니다. SX-17은 공동 제자로….

농꾼이 두 녀석의 프로필을 불러 준다.

술 취한 놈이 공동파, 술상 위로 떨어졌던 놈은 화산파 속가제자다.

호신 강기로 인한 통신 두절 이전의 기록으로는 둘이 친구다.

“허, 공동의 자랑이라는 팔마검객(捌魔劍客)께서 도대체 이 무슨 짓이오.”

“뭐?”

프로필에 나와 있는 녀석의 별호를 들먹이기 무섭게 녀석의 얼굴이 흉신악살 같이 일그러졌다.

“이보시오. 우리가 갑자기 난입한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화산파의 철매화가 기겁한 표정으로 외친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내가 무슨 심한 말을 했다고 저딴 표정에 저딴 소리를.

“죽어라!”

술 취한 놈, 팔마검객이 비틀거리면서 내게 검을 휘두른다.

금속 코팅된 손으로 강기를 두르고 걷어내려는데, 검의 궤도가 이상하게 비틀린다.

“헛!”

급히 뒤로 물러나는데, 팔마검객이 바닥으로 꼬꾸라지듯 걸음을 옮기며 검을 내뻗는다.

캉!

낭파조의 한 수를 발휘해 간신히 튕겨 낸다. 하지만 팔마검객의 걸음도 검격도 계속 이어진다.

양손을 움직여 대응한다. 양손이 경력을 뿜으며 허공을 휘젓는다. 손이 뿜어낸 경력을 첩첩이 쌓아 힘의 장막을 만들고, 그걸 낭파조의 수법으로 휘둘려 덮쳐드는 검격을 비튼다.

검격이 비틀어지는 즉시 금속 코팅된 손끝으로 검면을 두드린다.

카카카캉!

순식간에 십여 번의 공방을 교환하고 서로 뒤로 물러났다.

그저 술 취한 자가 비틀거리며 휘두르는 검이 아니다.

이 새끼 무슨 취검(醉劍)이라도 익힌 건가?

잠시 그렇게 대치하고 있자니.

“설마, 천철흑강수(天徹黑罡手)?”

술상 위로 떨어졌던 놈, 철매화가 팔마검객의 검을 막은 내 손을 보며 헛소리를 한다. 그러고는 허리춤의 검 자루를 움켜잡더니.

“기련산(祁連山) 노괴(老怪)의 문하인가?”

은근히 살기까지 피우며 묻는다.

기련산의 노괴? 그건 또 누구야?

- 기련신마(祁連娠魔). 화산과 공동 모두와 원한이 있는 기련산의 고수입니다. 공동과 화산 후기지수 여럿을 꾀어 마인(魔人)으로 만든 전적이 있습니다.

농꾼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대답한다.

그러니깐 이 새끼들, 저희끼리 싸우다 실수한 척 나를 노렸지만, 내가 만만하지 않다 싶으니 섬서 무림에서 공적 같은 놈과 엮어 둘이 같이 공격해도 비방 받지 않으려는 수작질을 부린다는 거지?

어차피 소동은 일어났다.

기루에 이 이상 죽치고 있기는 힘드니 저것들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나 알아봐야겠다.

“내가 낸 선금이면 수리비로 충분할 것이다.”

방 한구석에서 떨고 있는 기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철매화를 향해 한 손을 뿌렸다. 철매화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두 줄기 빛살이 날아간다.

카캉!

철매화가 검으로 그리는 호선에 두 줄기 빛살이 비수가 되어 튕겨 난다. 이때 나는 방의 벽면을 향해 내달리며 손을 뻗었다.

쾅!

장력에 벽면이 터지고 그 터진 벽면을 통해 밖으로 몸을 날리자.

휘익!

내 등 뒤로 내 짐이 딸려왔다. 농꾼이 등 뒤의 방수를 움직여 잽싸게 짐을 챙긴 것이다.

“어딜 도망가느냐!”

“서라!”

뻔한 소리와 함께 둘이 나를 쫓아온다. 환락가의 지붕 위를 내달려 가장 가까운 성벽으로 향한다.

성벽을 타고 올라 부도 밖으로 나왔다. 두 놈이 내 뒤를 따라 성벽을 뛰어넘는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저것들 무슨 의도를 가지고 나를 공격한 것이다.

그저 우연한 충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를 쓰고 쫓아올 리 없지 않은가.

서쪽으로 뻗은 관도를 따라 잠시 내달린다. 해 떨어진 시간이라 관도에는 인적이 없었다.

관도 위에서 발을 멈추자 한 놈은 나와 삼 장 거리를 두고 멈췄고, 한 놈은 내 머리 위를 뛰어넘어 관도 앞쪽을 막아선다.

“또 도망가 보시지!”

앞쪽을 막아선 팔마검객이 이죽거리며 검을 겨눈다. 뭐 검을 겨누는 것은 뒤쪽의 철매화도 같다.

“내 질문에 대답 없이 몸을 뺐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보겠소.”

철매화의 헛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몸을 비틀어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앞뒤로 선 놈들을 양쪽으로 선 놈들로 만들어 한 번에 시야에 넣는다.

그런데, 놈들이 내 움직임을 따라 슬쩍 발을 옮긴다. 한 놈이 철저히 내 등 뒤에 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빙빙 도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니 짐을 풀어헤치고 상자에서 내 칼을 꺼내 뽑아 든다.

그래도 꼴에 명문 정파인 화산과 공동 속가라고 그 사이에 들이치지는 않네.

짐을 정리해 관도 한쪽에 던져놓고 정면에 선 팔마검객을 향해 발을 움직인다.

타닥, 탁!

두어 걸음 걷다가 단번에 바닥을 박차고 거리를 줄이며 큰 칼 놀림으로 허리를 벤다.

칼날에는 당연히 도기가 치솟고 전압이 걸리며 유사 강기가 맴돈다.

그걸 팔마검객은 휘청하는 술 취한 듯한 몸놀림으로 피하며 바로 찔러든다.

이글거리는 검강을 앞세운 찌르기. 칼날을 돌려 밖으로 걷어내고, 마지막에는 손목을 비틀어 튕겨 낸다.

그리고 그 자세에서 바로 사선으로 베어 들어가니 놈이 물러나며 검을 돌려 막는다.

캉, 카카캉, 카캉!

순식간에 칼과 검이 오가는 공방이 펼쳐졌다.

그나저나 이 녀석 검 놀림이 공동파의 복마검법이 아니다. 아니 농꾼의 데이터에 저장된 공동파의 검법도 아니다.

- 데이터에 없는 검술입니다.

중원 전역에 뿌려진 이백 개의 나노 머신을 통해 어지간한 명문 무공에 대한 데이터는 다 가지고 있는 농꾼이다. 그런 농꾼도 모르는 검법이라니.

“공동 속가라는 놈이 복마검법은 어디 팔아먹고, 이상한 검법을 쓰느냐?”

“이놈!”

내 말에 팔마검객이 노성을 내지르며 검을 떨쳐낸다. 비틀거리는 몸을 따라 검 끝이 흔들리며 순식간에 십여 곳을 찔러든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우직하게 막기보다는 훌쩍 물러나 뒤로 피해 허공을 찌르게 하고 물러나는 발걸음이 땅에 닿기 무섭게 다시 전진하며 칼을 휘둘러 역공한다.

내 등 뒤에 선 철매화는 신경 안 쓰냐고? 등 뒤의 방수가 이미 품속에 두 자루 소도를 움켜쥐고 대기하고 있다.

철매화가 암습한다면 농꾼이 방수를 움직여 막을 것을 알기에 눈앞의 상대에 집중한다.

팔마검객은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몸놀림으로 내 공격에 실린 힘을 상당수 흘려내고 있지만, 나도 근본이 초극 고수다. 거기에 내 몸무게는 상대의 두 배 이상이고, 내가 칼을 휘두르는 힘 역시 강기 만들 공력마저 끌어다 쓰고 있다.

적당히 흘려도 상당한 충격이 팔마검객의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소리.

팔마검객이 연신 뒤로 밀려나며 그 얼굴마저 확연히 일그러지자 철매화가 나섰다.

“돕겠네!”

꼴에 정파라고 자신의 공격을 그렇게 입으로 알리면서 내 등을 향해 검격을 날린다.

카카카카캉!

격한 금속성이 등 뒤에서 울려 퍼진다. 철매화가 뻗어내는 격한 검격들은 내 등 뒤에서 생성된 빛의 그물에 남김없이 걸려들었다.

두 자루 소도를 쥔 한 쌍의 방수가 만들어 내는 도격의 그물이 내 등 뒤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다.

머리 위의 응 시리즈 덕분에 시야 한쪽으로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농꾼과 방수가 알아서 잘하고 있다. 그러니 팔마검객을 몰아붙이는 데 집중한다.

“이런 사술이!”

철매화가 노성을 내질렀다. 이 시대 무인들은 제 놈들이 이해 못 하면 무조건 사술이란다.

“합!”

팔마검객의 기합과 동시에 칼과 검이 얽혀든다. 가볍게 뿌리치려는데 칼과 검이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쾅!

딱 붙은 검과 칼이 바닥을 후려치는 순간 녀석이 검을 놓고 내 팔목을 잡는다.

바로 낭파조로 대응하려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칼을 든 내 몸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방수가 내 몸을 던진 것이다.

“뭐 하자는 짓이지?”

바닥에 내려서며 농꾼에게 묻는다. 금속 코팅한 손으로 낭파조를 펼쳤으면 팔마검객은 쉽사리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유사 강기가 빠진 소도만으론 철매화의 강기 서린 검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 물음에 농꾼 녀석은 엉뚱한 소리를….

젠장, 그랬던 건가?

농꾼이 방수를 이용해 나를 팔마검객과 철매화 사이에서 빼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팔마검객의 공격에 낭파조로 대응하려 했기 때문이다.

방수가 휘두르는 소도가 만들어 내는 유사 강기는 내가 제공하는 도기를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런데 내가 도법이 아닌 낭파조를 사용했으니 방수의 유사 기맥을 통해 소도로 전달되는 도기가 끊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낭파조의 공력은 검기나 도기와 다른 것이다. 검기나 도기는 물건을 통해 그 최종적인 파괴력이 발휘되는 힘이지만, 낭파조는 시전자의 몸을 벗어나면 바로 발휘된다. 즉 손끝으로 유사 기맥을 옮긴다 해도 낭파조의 공력이 방수로 전달되기는커녕 유사 기맥과 방수를 그대로 뭉개 버릴 게 뻔했다.

“하아, 방수는 생각도 못 했군. 잘했다. 농꾼.”

“저놈 등 뒤에 누굴 업고 있는 듯하다.”

내가 농꾼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철매화가 방수의 정체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냈다.

“하나가 아니라 애초에 둘이었다는 말이군.”

자신의 검을 다시 든 팔마검객이 인상을 쓴다.

어째 분위기가 이제 둘이 대놓고 협공을 하겠다는 것이다.

“힘으로 찍어 눌러 초 만에 끝낸다.”

- 예, 리퍼. 준비하겠습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농꾼이다.

장심에서 유사 기맥이, 방수가 슬쩍 떨어졌다. 온전히 하나의 칼에 공력을 집중해 강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둘을 향해 돌격.

끼요올!

코앞에서 호거술이 더해지니 강기의 빛이 한층 더 강해진다.

쾅, 콰캉!

힘으로 팔마검객을 찍어 누르고 철매화를 옆으로 튕겨 낸다.

옆으로 밀려나는 철매화를 확인하며 강기 대신 도기를 피워 올리며 전압을 건다.

우웅!

칼에서 유사 강기가 치솟으며 등 뒤에서 소도 두 자루를 든 방수가 튀어 나온다.

오올!

그리고 세 방향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에 세 자루의 칼날이 세상을 백색으로 덮는 빛무리를 토해냈다.

콰콰콰콰쾅!

세 자루의 칼이 휘두르는 거력이 팔마검객을 짓밟은 뒤 철매화를 향해 나아갔다.

콰콰콰쾅!

빛이 터진 지 6.67초가 조금 못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 세상은 어둠을 되찾았다.

- SX-17, SX-19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호신강기를 억제하니 농꾼이 수확을 시작했다.

나는 수확은 농꾼에게 맡겨 둔 다음 세 가닥의 섬광격에 난타당해 관도 위에 널브러진 팔마검객과 철매화를 향해 발을 옮겼다.

둘 다 숨이 끊어진 상태. 하지만 죽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수확 대상자인 탓에 뇌가 박살나지 않는 한 어지간한 상처는 나노 머신이 치료할 테니 말이다.

“이제 이 녀석들이 덤빈 이유를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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