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보복행(10)
폭발이 만들어 내는 거센 충격파를 미리 넓게 펴진 피풍의로 받아내니 전신이 자연스레 허공으로 밀려난다.
미리 몸을 가볍게 했기에 내 몸은 십 장 이상의 높이로 떠올랐다.
아래를 보니 갑작스레 뒤에서 터진 충격에 세 명의 초극 고수들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초극 고수의 호신강기로 몸을 지켜 큰 피해가 없다 해도 폭발의 충격이 몸을 밀어붙이는 것에는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뭉쳐 있던 셋이 충격에 밀려나 거리가 벌어진 것이 중요했다.
폭발의 충격이 허공으로 흩어지기 무섭게 피풍의를 조작해 바로 하강한다.
목표는 내당주.
맨손이 다시 허공을 휘젓는다.
내 손짓을 따라 움직이는 공력이 내당주의 뒤편에 다시 기막을 만든다.
백라장주와 집법당주가 재빨리 내당주와 합류하려 했지만, 내 빈손이 기막을 향해 뇌전을 튕기는 쪽이 빠르다.
콰콰콰쾅!
또다시 일어나는 폭발.
내당주는 다시 바닥을 나뒹굴고, 백라장주와 집법당주는 앞에서 덮치는 충격을 굳세게 버틴다.
그렇게 셋이 다시 뭉치는 것을 막은 나는 피풍의를 이용해 폭발의 충격파를 가르며 내당주를 덮쳐들었다.
캉!
과연 정도 명문 형산이 길러낸 초극 고수. 폭발의 충격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칼을 막는다.
하지만 내 칼은 하나가 아니다.
푸푹!
방수가 쥔 소도가 내 옆구리를 지나 내당주의 명치를 쑤신다.
비스듬히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찌르는 일격은 단매에 심장을 찔러 즉사다.
“일아!”
백라장주가 허물어지는 제 동생의 모습에 울부짖으며 달려든다.
흉악한 기세를 담은 원공검의 살초가 검강과 함께 내 목숨을 노린다.
허나, 백라장주 당신의 순서는 마지막이거든.
쾅!
진각과 동시에 발로 발휘되는 내가중수법에 청석이 빻아지고, 그 가루가 내가 만든 기막에 말려든다.
곱게 빻아진 청석 가루가 기막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적절히 공기와 뒤섞인 상태로 내가 튀긴 스파크에 노출되니.
콰콰쾅!
분진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아압!”
백라장주가 폭발의 충격을 호신강기로 견디고 천근추(千斤錘)를 사용해 몸이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며 검을 휘둘렀지만, 허공에 하는 칼질일 뿐이다.
이미 피풍의를 활짝 펼쳐서 폭발의 충격을 추진력으로 사용한 나는 그와 십 장 이상의 거리를 단매에 벌린 상태.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내 몸은 당연히 집법당주의 지척으로 내려선다.
캉! 카르르릉!
내 칼이 집법당주의 검을 찍어 누르며 얽어매니.
푸욱!
소도를 꼬나 쥔 방수가 마무리를 한다.
“뭣들 하느냐?”
눈 돌아간 백라장주의 노성.
“하아압!”
“크아압!”
“뒈져라!”
백라장 절정 무인들이 이를 악물고 내게 덤벼든다.
하지만 어지간한 절정 무인은 내게 한칼의 상대밖에 되지 않는다. 그게 몇이든 간에 말이다.
한 걸음에 한 번 칼을 휘두른다. 그렇게 칼을 휘두를 때마다 그들의 목숨이 사라져 갔다.
열네 번의 발걸음을 옮기니 남은 것은 백라장주 밖에 없었다.
“네놈 도대체 누구냐?”
백라장주가 물었다.
“귀몰색마 때문에 빡친 사람.”
칼을 고쳐 잡고 단번에 거리를 줄인다. 강기와 유사 강기가 격돌한다.
악에 받친 백라장주의 검강은 흉흉했지만 세 자루 칼이 뿜는 유사 강기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소도에 옆구리를 베이고 내 칼에 목이 날아갔다.
“그럼, 목격자들을 지워 볼까?”
백라장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발을 옮겼다.
방수는 내가 계속 써야 할 장비고 눈에 띄는 장비다. 저들이 방수를 봤을 가능성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
백라장을 끝장내니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놓친 사람은 없다. 백라장 사람 전원에게 통신 벌레를 괜히 붙인 게 아니다.
“백라장 투입 자원들 10분 이내 철수시켜.”
- 예, 리퍼.
10분이 흐르고 모든 자원들이 철수한 것을 확인하고는 백라장 여기저기에 불을 붙였다. 상음이 지척이니 백라장에서 일어난 불을 보고 형산의 속가들이 움직일 것이다.
백라장이 잘 타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북쪽으로 움직인다.
백라 북쪽의 강물에 몸을 한 번 담가 땀과 피를 씻어내고 물기를 털어냈다. 내공으로 옷을 말린 뒤 무창 팔분산을 향해 발을 옮긴다.
중간에 금정산에서 온 수리에게 대감도를 받았다. 내가 팔분산에서 분질러서 버린 대감도와 똑같은 것이다.
원래 쓰던 칼은 매에게 맡겼다.
“방수를 좀 짧게 만들 수 있지?”
등 뒤에 달린 방수는 최대 길이가 10미터다.
-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팔뚝과 종아리에 크게 티 나지 않게 감을 수 있는 정도? 길이는 대충 3미터쯤이면 되겠군.”
대충 어떤 용도로 쓸지 설명해 줬다.
- 호광 내에 계시면 24시간 안에 배달 가능합니다.
“귀몰색마는 어때?”
내 물음에 지도가 뜨고 귀몰색마의 현재 위치가 표시된다.
물길을 거슬러 가고 있는 것이 배를 탄듯했다.
“이 속도면 흑천맹이 있는 장안에 도착하는데 열흘은 걸리겠는데?”
뭐 그게 이 시대의 통상적인 속도이긴 했다.
“그동안 썩는 건 아니겠지?”
- 뇌를 제외한 전신은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습니다.
“내공은?”
내공이 유지되어야 미면나찰이 잡아먹으려 할 것 아닌가.
- 뇌 쪽의 손상된 기맥은 유사 기맥으로 이어 놨습니다. 뇌가 없는 상태이기에 실전에 나설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의 공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운기행공도 가능합니다.
“폭탄도 무리 없지?”
- 예.
“기회 봐서 쇳가루라도 좀 삼키게 해.”
그냥 폭발의 충격을 주는 것보다 파편 하나라도 박아 넣는 것이 좋을 듯해서 하는 소리다. 파편을 생성할 위치를 지정해 줬다.
어째 인간적으로 좀 심한 위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메울 수 없는 것이 나와 미면나찰의 차이다.
그렇게 대강의 점검을 끝내고 다시 부지런히 무창을 향해 발을 놀린다.
***
“이렇게 맞추면 되려나?”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이쪽으로 돌려 봐.”
“그냥은 안 될 것 같은데?”
“여기 좀 깎아내야겠어.”
다섯 명의 장정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장원 앞에서 조각난 대문을 어떻게든 맞추기 위해서 용을 쓰고 있었다.
“허.”
“이게 무슨?”
그 광경에 우중원, 우중근 두 형제의 얼굴이 구겨졌다. 야밤을 달려 백라에서 팔분산까지 왔더니만 목적지인 장원의 정문이 저 꼴인 것이다.
“누가 선수를 쳤군.”
우중원의 구겨진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험험, 이보시게.”
우중근이 구긴 얼굴을 펴고 대문을 맞추기에 여념 없는 장정들을 향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말 좀 묻겠네.”
우중근의 말에 장정들이 짜증스런 얼굴로 우중근을 바라보다 그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보고 얼른 표정을 바꾼다.
“무슨 일이신지요. 어르신.”
다섯 장정 중 가장 나이 먹은 자가 나서 대꾸한다.
“여기가 팔분산 맞는가?”
“팔분산 입지요.”
“팔분산에 ‘하원장’이라는 장원이 또 있는가?”
“제가 알기로는 팔분산에 ‘하원장’이라 이름 붙은 장원은 여기 우리 장원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주인은 어디 계신가?”
“저도 주인 나리 얼굴을 뵌 적 없습니다. 그저 여기 살면서 장원을 관리할 뿐이지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겠나?”
“가끔 장원을 빌리는 분들이….”
장정이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고맙네.”
우중근은 한 냥짜리 은자를 이야기 값으로 건네고는 형의 곁으로 돌아왔다.
“간밤에 습격이 있었고 장원을 빌렸던 도객은 그들을 쫓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답디다. 도객이 나간 직후 서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니 그쪽으로 가봅시다.”
동생의 말에 우중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옮겼다.
장원의 서쪽으로 얼마 가지 않고 격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차례 붙은 듯 하군.”
“그런 것 같소.”
그리고 둘은 잠시 후 동강난 대감도를 찾을 수 있었다.
“허, 상당히 공을 들인 칼이군.”
우중원이 반 토막 남은 대감도를 주워 들고 감탄을 터트렸다.
“나도 좀 봅시다.”
우중근이 형에게 반 쪼가리 대감도를 받아들고 살폈다.
“쇠의 재질이 상당히 좋소. 이만한 재질이면 박살나더라도 수습해 다른 무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칼의 주인이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테니 동강난 칼을 수습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군.”
“멀쩡한 몸이 아니라면 주위에 아직 있을 가능성이 크오. 주위를 찾아봅시다.”
“옳은 말.”
동생의 말에 우중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두 형제가 주위를 뒤졌지만, 더 나오는 것은 없었다.
“상처 입은 몸으로 급박하게 피했다면 무슨 흔적이 남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백천을 잡은 자의 무기라면 간밤에 습격해서 백천을 끌고 간 자에게 이 자 역시 끌려갔을 가능성이 크군.”
“귀몰색마와 원한이 있는 곳 중에 이런 힘을 지닌 곳이 있었소?”
“장주에게 들은 바대로라면 없지 않나?”
“그렇다면 뻔하구려.”
“아우는 흑천맹에서 백천을 데려갔다고 보는가?”
“그들이 아니면 누가 있겠소.”
한 발 먼저 팔분산으로 보낸 매가 보내오는 실시간 영상을 끈다. 나도 이제 팔분산에 들어선 탓이다.
한달음에 장원까지 달려갔다.
다섯 장정이 쪼개진 대문을 얼추 맞추어 못질을 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해 볼까?
“이 도대체 무슨 일이!”
놀란 얼굴을 만들고 목청을 돋운다. 큰 목소리에 일하던 다섯 장정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사람은? 여기 장원을 빌렸던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다섯 중 한 명 아무나 잡고 격하게 추궁한다.
무인의 손길이 제대로 멱살을 틀어쥐었으니 일반인이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어서 말하지 못할까!”
그렇게 노성을 내지른다.
초극 고수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리 아닌가.
내 손에 잡힌 장정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빨리 오라고 이 늙다리들아!
그렇게 장정을 잡고 흔들고 시간을 끌고 있자니.
“멈춰라!”
호통과 함께 두 명의 노인이 장원 앞 공터에 내려섰다.
장정을 던지듯 내려놓고 대감도의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그러는 자네는 어디의 누구인가?”
내 말에 우중원이 되물었다.
“형님, 이것과 같은 모양이오.”
우중근이 한 손으로는 내가 잡은 칼자루를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반쪽의 대감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건 형님의 칼, 네놈들이 형님을 해쳤느냐?”
노성을 내지르며 칼을 뽑았다.
“확실히 같은 칼이군.”
우중원의 눈이 번뜩인다.
“타합!”
기합을 내지르며 가까운 우중원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우웅!
칼이 울리며 강기가 서린다.
“그 나이에 도강을?”
우중원이 내 공격을 피하며 검을 뽑는다.
“형님, 사로잡아야 합니다.”
“알고 있다!”
우중근의 말에 우중원이 대답하며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강기가 치솟으며 원공검의 검초를 쏟아낸다.
캉, 카카캉, 카캉!
검격과 도격이 어우러진다.
빌어먹을 노친네. 나이만큼 내공이 심후하다.
“원공검! 잠깐, 잠시만!”
공격을 막으며, 몸을 뒤로 물리며 이어 외쳤다.
“형산의! 백라장의 분들입니까?”
내 외침에 우중원의 검격이 멈췄다.
“우리를 알고 있느냐?”
우중원이 물었다.
“백천 형님이 부른 원군 아닙니까?”
내 말에 우중원, 우중근 두 노인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당연하다. 색마질 하던 조카 손자 놈을 구하러 왔다.
그런데 조카 손자 놈을 잡았다는 놈과 한패로 보이는 놈이 조카 손자 놈을 형님이라 부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알아본 후 원군 운운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우중원의 말이다.
이 정도면 반 이상은 넘어왔다고 봐야지?
일단 혓바닥에 기름칠 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