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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94화 (94/175)

94화

보복행(03)

“사형, 나는 지금 바로 방으로 복귀해야겠소.”

“그래.”

사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가 금정산에 머무르고 있는데 놈의 행적이 청도방에 알려진다면 사제의 입장이 안 좋아진다.

사제가 뒤를 쫓은 색마가 계속 활동을 하는데 사제에게서 연락이 없다? 청도방에서 찾아 나설 것은 뻔하고, 그렇게 되면 무산삼도의 시신 정도는 찾을 것이다.

사태가 정리되고 사제가 나타나면 수하들이 사제를 어떻게 볼지 뻔하다. 수하가 죽었는데 색마가 무서워 몸을 사리고 있었던 윗전이 되는 것이다.

“사제는 놈의 실체는 모르는 척 흑도 식으로 대처하게.”

놈의 실체는 형산 삼대 속가 중 하나인 백라장의 소장주. 그런 놈의 실체를 안다면 청도방의 중진들은 흑도인답게 싸울 생각보다 도망갈 궁리부터 할 수 있었다.

“무산삼도의 복수를 천명하고 청도방의 전 세력을 움직이라는 것이오?”

“그래.”

몰론, 청도방의 힘으로 귀몰색마를 잡으라는 것은 아니다. 청도방이 귀몰색마를 잡았다가는 백라장 놈들이 야밤에 복면 뒤집어쓰고 살겁을 벌일 것이 뻔하니 말이다.

“청도방은 귀몰색마만 알지 놈의 실체 따위는 모른다고 무림에 외치라는 것이구려.”

귀몰색마가 저렇게 나오는데 청도방이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귀몰색마의 뒤에 있는 백라장의 존재를 안다고 시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사정 모르는 자들은 청도방이 귀몰색마의 무위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백라장이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니 백라장의 의심을 피하려면 귀몰색마를 잡아 죽이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했다.

“놈이 우리 청도방에게 쓰려던 계책을 그대로 백라장에 쓸 생각이오?”

과연 사제, 내 꼼수를 그대로 읽는다.

“받은 대로 갚는 것이 우리 흑도의 생리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흑도인이다.

“놈에게 현상금을 건 가문의 목록은 필요하지 않소?”

사제가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는데 피에 젖어서 엉망이다. 사제가 놈에게 한 번 죽었을 때 흘린 피다.

“이거 내용을 볼 수 없으니 청파루에 가서 하나 더 받아야 하나?”

사제가 책자를 훑으며 인상을 썼다.

“내용은 알고 있으니 됐다.”

책자가 멀쩡했을 때 사제가 한 번 훑어봤으니 그 영상을 불러내면 될 일이다.

“마귀의 종자가 내가 본 것을 사형에게 보여주는 거요?”

사제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래.”

“설마, 마귀의 종자가 내 야사(夜事)도 막 알려 주고 그러는 거 아니오?”

구긴 인상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네놈이랑 같이 기루에 가서 내가 어떤 꼴이 됐는지 알 텐데?”

내 인상도 절로 구겨진다.

“그런 내가 네 야사에 관심 가지리?”

아! 그 굴욕의 날이 또 생각난다. 나도 이 정도면 꽤 생겼다고 할 만한 편인데, 저 녀석과 나란히 서면 그냥 오징어 취급을 받으니.

“하긴 내 딴 건 몰라도 얼굴만큼은 사형보다 뛰어나지.”

“빨리 안 가! 방에 소식 들어가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할 것 아냐!”

“예, 갑니다. 가요.”

사제 녀석이 히죽거리며 금정산을 떠났다.

모닥불을 끄고 놈을 잡으러 갈 준비를 한다.

“목소리 변조. 샘플 재생.”

귓가로 여러 가지 목소리가 지나갔다. 그중 하나를 택했다. 귀를 자극하는 쇳소리 같은 독특한 목소리다.

“안면 윤곽 변조.”

광대와 턱, 코 등에 금속 이온을 결합해 만든 보형물을 삽입한다. 그 결과 부리부리한 눈에 넓적한 얼굴을 가진 칼잡이가 되었다.

“무기도 바꿔야지. 대감도 있냐?”

공방 쪽으로 걸어가 묻는다.

- 예, 리퍼. 10분만 기다리시면 삼십 근짜리 묵직한 놈 하나로 뽑을 수 있습니다.

“그거랑 날 길이 한 자 정도 되는 소도 두 자루. 그리고 비수도 마흔 개 정도.”

- 제작 들어갑니다. 총 48분 소요됩니다.

“안테나는 얼마나 걸리지?”

- 안테나는 72시간 소요됩니다.

“다 만들면 안테나도 하나 제작해.”

- 예, 리퍼.

공방에서 무기가 나오는 족족 받았다. 허리 뒤에 소도 두 개를 찔러 넣고, 등판과 피풍의 곳곳에 비수를 감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감도를 등에 찼다. 그렇게 준비가 끝난 뒤 놈이 있는 숭의현을 향해 피풍의를 펼쳤다.

금정산에서 놈이 한참 색마 짓을 하는 숭의현 현도까지는 200km가 안 된다. 피풍의를 펼치고 내달리니 한 시진 만에 도착했다.

야밤에 성문이 열려 있을 리 만무하니 성벽을 타고 넘어 현도 안으로 들어섰다.

“놈은?”

- 해당 장원에서 행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3시간 가깝게 하고 있다고?”

색마답게 정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지루인지 모르겠지만 오래도 한다.

“사제는?”

- 청도방에 도착, 방의 중진들을 모았습니다.

청도방이 귀몰색마를 때려잡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니 청도방이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했다.

“야밤에 성문 열고 움직이면 소문은 충분히 나겠지?”

자기 딸 간살한 놈 잡기 위해서니 지부 대인도 흔쾌히 성문을 열어 줄 것이다.

“지금 놈을 감시하고 있는 건 천안각 소속인가?”

- 예, 리퍼.

“응5 복귀했지?”

- 예, 30분 전에 복귀했습니다.

멸왜단에 다녀온 것이다.

“감시를 응5로 바꾸고 천안각 날짐승은 확실히 돌려보내.”

아무래도 응 시리즈가 천안각 소속 날짐승보다 성능이 좋았다. 그리고 천안각 소속의 날짐승은 사제도 접속 권한이 있었다.

사제도 피 끓는 흑도의 호걸이다. 자신의 원한을 스스로 갚으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정보를 끊어 놈과의 접촉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옳았다.

“놈에게 현상금을 건 가문 목록 띄워.”

귀몰색마의 목에 현상금을 건 곳은 백여 곳에 달했다. 작게는 은자 백 냥, 많게는 수천 냥에 달하는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기가 막힌 게 가장 큰 현상금을 내건 곳이 백라장이었다.

“백라장에서 놈이 귀몰색마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잡아 보면 나오겠지.”

어쨌든 수확 대상자다. 그러니 수확을 하면 대상자의 기억을 읽는 것은 일도 아니다.

“청도방 무인들이 공주 부도 성문 통과하면 알려. 아, 그리고 현도 내 기루 중에 청파루라고 있나 찾아봐.”

청파루는 하오문이 운영하는 정보 거래소다. 현 이상의 시진(市津)에는 어디든 하나씩은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 찾았습니다.

“저장해 둬.”

- 예, 리퍼.

현도의 어둠 속에 숨어서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반 시진이 흘렀을까?

- 공주 부도의 성문이 열리고 청도방 무인들이 부도를 벗어났습니다.

청도방 전력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장수(章水)를 건너면 남안부 흑도 놈들에게 바로 보고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남안부 흑도가 자신의 세력권으로 밀고 들어오는 청도방 전력 앞을 막아서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게 되면 무림에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놈은?”

- 여전히 행위 중입니다.

“색공이라도 수련한 정통파 색마인가?”

내게 더 기다려 줄 이유가 없다.

녀석이 숨어든 장원을 향해 발을 옮겼다.

적지 않은 장원이다. 현도 내에 이만한 장원을 가진 자라면 호원 무사들을 고용할 만했다.

“호원 무사들은 제압당한 건가?”

- 무인으로 보이는 인원은 넷. 그들의 신체 반응을 보면 리퍼의 예상대로 제압당한 듯합니다.

“그럼 걸릴 게 없다는 말이네.”

바로 담을 뛰어넘고 장원 내원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놈이 들어앉아 있는 방의 창문을 박살내고 들이친다.

“뒈져라! 귀몰색마!”

노성과 함께 대감도를 휘두르니 녀석이 재빨리 침상에서 몸을 굴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니 순식간에 벗어 놓은 옷가지 쪽으로 굴러가 검부터 찾아든다.

“어디서 온 놈이냐!”

홀딱 벗은 놈이 하물을 덜렁거리며 검을 겨눈다.

“네놈 목에 걸린 돈 벌러 온 사람!”

우우웅!

도기에 전압이 걸리며 강기화 된다. 옷을 입을 여유 따위는 주지 않고 바로 칼을 몰아친다.

상대는 수확 대상자. 어설픈 칼질로는 이길 수 없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칼질이다.

캉, 카카캉!

순식간에 검과 칼이 부딪치며 강기와 가짜 강기의 힘이 서로의 몸을 밀어낸다.

“이 묘한 강기는?”

귀몰색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네놈도 청도방 놈이더냐?”

망할 나노 머신이 직감의 형식으로 귀몰색마에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쓰는 무공 비슷하다고 같은 방파면, 네놈은 형산파냐?”

“큭.”

내 말에 귀몰색마가 입을 다물었다. 네놈이 청도방을 언급하면 나는 형산파를 언급하겠다는 협박이 먹힌 것이다.

녀석은 입을 굳게 다물고 검을 휘둘렀다. 검강을 앞세워 날렵하고 변화무쌍한 검격을 날린다.

흉폭한 형산의 원숭이들을 상대하던 몽둥이질에서 발전했다는 원공검(猿鞏劍)이다.

대놓고 형산파의 무공을 쓴다는 것은 나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현.

콰쾅!

굉음과 함께 내 몸이 뒤로 밀려난다.

“흐압!”

놈이 거센 기합을 내지르며 따라붙는다. 동시에 검강이 번뜩이며 전신 요혈을 노린다.

카카쾅!

농꾼의 데이터 덕분에 놈의 검로를 읽어 어찌어찌 막았지만, 손바닥이 얼얼했다.

빌어먹을. 나보다 몇 살 더 먹은 나이답게 나보다 공력이 윗줄이다.

강기를 만들 내공을 몸으로 돌리는 지금도 힘으로 압도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다.

“방수 가동!”

내 양손을 통해 빠져나가는 공력이 늘어나며 동시에 내 허리춤 양옆으로 강기가 튀어 나갔다.

“뭣!”

갑자기 튀어 나와 휘둘러지는 두 가닥 강기에 놈이 기겁한 표정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타압!”

나는 바로 거리를 좁히며 칼을 휘둘렀다.

캉, 카카캉, 카쾅!

녀석은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 자신의 몸을 지키기 여념 없었다.

당연했다. 녀석을 공격하는 것은 내가 휘두르는 묵직한 대감도 하나가 아니다.

한 자 길이의 날을 지닌 소도. 강기를 뿜어내는 소도 두 자루가 날렵하게 그의 전신을 노리고 있었다.

그 소도를 휘두르는 주체는 직경 두 치를 넘을 것 같은 두툼한 밧줄. 실상은 농꾼이 제어하는 인공 근육 다발인 방수다.

캉, 카카카캉!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느낌상 이만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칼이 막힌다.

“흐하!”

순간 녀석의 손이 빛났다.

쩡, 쩌쩡!

그리고 그 손에 두 자루 소도가 튕겨 나간다.

“죽어라!”

카캉!

검과 칼이 부딪쳤다. 아니 부딪치는 순간 놈의 검이 내 대감도를 얽어맨다.

내가 이를 떨치려는 순간, 놈의 검이 내 대감도를 내리누르며 나를 향해 빈손을 내뻗는다.

쩌쩌쩡!

공간이 울부짖으며 터져 나간다. 그리고 전신을 덮치는 격한 충격.

“뇌공추(雷公椎)를 막아?”

녀석이 놀란 눈으로 뒤로 밀려난 나를 바라봤다.

“그게 형산의 비전 장법이라는 뇌공추군. 과연 뇌신이 부리는 망치라 불릴 정도야!”

내가 검게 물든 손을 흔들며 웃었다. 미치도록 욱신거렸지만 최대한 표를 내지 않고 여유롭게 웃는다.

=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저 녀석을 떨쳐내지 못했지?

녀석이 나보다 공력이 뛰어나다 해도 충분히 떨쳐내야 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내 반응이 미묘하게 늦고 그래서 뇌공추를 맞받을 수밖에 없었다.

뭐 순간적으로 내가 사용한 태산파의 산산수(山刪手) 역시 산을 깎는 손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무공이라 어떻게든 막기는 했다.

무공 자체는 뇌공추에 비해 떨어지지 않지만 내가 저 녀석보다 내공이 모자란 게 좀 문제. 급히 금속 코팅을 더 해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손바닥이 미친 듯이 아프다.

대적을 눈앞에 둔 상황이라 감각을 끊을 수도 없고 짜증난다.

- 평소보다 반응이 미묘하게 늦습니다. 아무래도 칼을 대감도로 바꾼 탓인 듯합니다.

농꾼의 대답. 평소에 쓰던 칼보다 배로 무거운 칼이 불러온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그냥 내 몸에 맞는 무공이 아니라 칼에 맞는 무공을 쓰는 게 나을 듯했다.

= 태산파의 단한도(斷限刀)로 간다.

귀원공의 요결에 따라 호흡을 돌린다.

- 예, 리퍼. 태산파의 단한도 데이터 가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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