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보복행(02)
남직례의 녕국부에서 강서성 공주부의 금정산까지 대략 700km.
피풍의를 펼치고 열심히 내달리니 날이 바뀌기 전에 어찌어찌 금정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정산 자락에 도착하기 무섭게 피풍의를 거두고 느긋하게 산을 탔다.
멀리서 불빛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수행하던 동굴 앞 공터에서 누가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얼굴이 보였다.
사제 장철상이다.
“절강에 계신 것 아니었소? 뭐가 이리 빠르오.”
사제 녀석이 툴툴거리며 나를 맞이했다.
“멸왜단 일 때문에 남직례 여주부 근방에 있었다.”
그렇게 대꾸해 주며 사제의 맞은편에 앉았다.
“남직례 여주부라면 남궁세가의 앞마당 아니오? 설마, 남궁세가에서도 무슨 일을 벌인 것이오?”
사제 녀석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물었다.
“마교도 몇 때려잡았지.”
남궁세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마교라면, 저 백련교 놈들 말하는 것이오? 십만대산에 있는?”
내 말에 사제 녀석이 기겁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무림 최강의 세력과 척을 져 어쩌려 그러시오?”
생각해 보니 청도방이 자리 잡은 강서 공주부는 마교의 세력권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심각한 일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마교 놈들이 나선다 해도 그들이 쫓을 것은 청도방의 섬패 이도연이 아니라 멸왜단의 벽력응주 이도연이다. 마교 놈들이 나선다 해도 뒷감당은 멸왜단과 동맹을 맺은 두 세가의 몫이 된다. 그리고 벽력응주는 수확이 끝나면 사라질 신분 아닌가.
“어쨌든 대단하시오. 육가장을 후려치고 신창양가에 이어서 남궁세가 일에도 끼어들다니. 그만하면 정파의 협객. 그것도 ‘대협’이라 불릴 만하지 않소?”
사제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다.
“대협은 무슨, 흥국 흑도의 별 섬패가 바로 이 몸이시거든?”
“잘났소.”
내 말에 사제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사부님은?”
“내 괜히 밖에서 이러고 있겠소? 안에서 연공 중이시오. 아직 나도 인사 올리지 못했소.”
“호거술에 뭐 별다른 게 있다고 저러시는지 모르겠네.”
“뭔가 궁리하시는 게 있으니 저러시는 것 아니겠소.”
“뭐 그렇겠지? 그나저나 셋의 시신은?”
“근처에 임시로 묻어 두었소. 방에서는 나와 함께 귀몰색마를 쫓고 있는 중으로 알고 있소.”
사제의 대답. 그렇다면 청도방은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고.
“소환단 얼마나 남았냐?”
“내가 쓸 일이 뭐 있겠소? 사부님 연공 들어가실 때 드린 열 개 말고 고스란히 남아 있소.”
“마흔 개 남았다는 소리군. 서른일곱 개만 줘 봐.”
“사형이 내게 준거니 다시 사형에게 주는 것은 아무 문제없소. 그런데, 서른일곱이라는 건 무슨 애매한 숫자요?”
녀석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네 녀석 초극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숫자지.”
“소환단 서른일곱으로 초극이 될 수 있단 말이오?”
내 말에 사제 놈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당연하다. 절정 무인 중 초극이 되고 싶지 않은 놈이 어디 있으랴.
“소환단 단독으로는 안 돼. 하지만 남궁세가에서 뜯어낸 청심단 스물둘을 합하면 어떻게든 될듯하다.”
“남궁세가에서 영약을 뜯어냈단 말이오?”
“네 사형이 이런 분이시다!”
사제 놈 앞에서 콧대를 한껏 세운다.
“물론, 청심단을 쓴다 해도 그냥은 아니고 파머가 좀 손을 봐서 복용법을 바꿔야 하지만 말이야.”
앞이 아닌 뒤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말이다.
“정말 대단한 마귀구려.”
사제 녀석, 자신이 당할 일을 알지 못하기에 감탄만 하고 있다. 녀석을 보고 있기 힘들었다.
“소환단이나 빨리 줘.”
그래서 녀석에게 손을 내밀며 재촉했다.
“혹시 몰라 상비약으로 가지고 다니는 두 개 밖이오.”
사제가 품에서 소환단을 담은 작은 목함을 꺼내며 말했다. 나머지 서른여덟 개는 청도방에 있다는 소리다.
“그건 계속 상비약으로 가지고 다녀.”
“어쨌든 방에 한 번 다녀와야겠구려.”
“지금 사제가 얼굴 보여서는 안 되니 내가 가지고 와야겠군.”
어디 놔뒀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다. 사제 몸속에 자리 잡은 마*카*원 베타와 접촉한 농꾼이 이미 소환단을 숨긴 장소를 눈앞에 띄우고 있으니 말이다.
“아, 사부님의 연공이 끝난 모양이오.”
사제가 동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쪽으로 향했다.
“밖에 둘째와 누구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척으로 사제는 알아봤지만 나는 알아보지 못하는 사부다. 당연하다. 절강에서 초극이 된 뒤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니 말이다.
“제자, 도연입니다. 사부님.”
“바쁜 놈이 웬일이냐?”
내 말에 대꾸하며 사부가 동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부님?”
그런데 어째 사부의 얼굴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몸이 안 좋으신 겁니까?”
아니 핏기가 없고 병자와 같이 핼쑥한 것이 몸 튼튼한 무인의 얼굴이라 볼 수 없었다.
“이 나이에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니 만만치가 않구나. 둘째야, 가지고 있는 소환단이 있으면 꺼내 보아라.”
사제가 준 소환단 열 개는 이미 다 쓰고 없다는 소리다.
“예, 사부.”
사제가 가지고 있던 소환단을 재빨리 건넸다.
“소환단은 계속 구할 수 있다 했지?”
사부가 소환단을 받은 뒤 내게 물었다.
“예, 멸왜단에 부탁을 하면 소소하게는 구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럼 스무 개 정도 더 구할 수 있느냐? 아무래도 그 정도는 더 필요할 듯싶구나.”
내 대답에 사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제자가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사제와 사부에게 넘긴 소환단은 쉰 개다. 그 쉰 개로 모자라 스물이 더 필요하다는 듯 말하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말해 줄 단계가 아니다.”
사부가 영약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초극이 된 사부인지라 소환단을 그렇게 퍼먹는다고 해도 내공이 늘 일도 없지 않은가.
“지금 시도하시는 일에 기력이 달리시는 겁니까?”
“그래.”
내 말에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 수련은 연속성이 중요하다. 뭔가 감을 잡았을 때 그 감을 잃기 전에 몸에 붙여야 했다. 아무래도 사부는 소환단으로 소모한 기력을 단숨에 보충하고 수련을 계속할 모양이다.
마*카*원 알파를 품은 사부이기에 어지간한 감각은 원할 때 재현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내공의 미묘한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라면 마*카*원 알파의 재현은 완벽하다 할 수 없다.
“남궁세가에서 얻어 온 청심단입니다. 먹어 보니 소환단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영약입니다.”
내가 품에서 청심단이 가득 든 목함을 꺼내 사부에게 건넸다.
사부는 목함을 열어 보고는 그 안에 든 청심단 몇 개를 꺼내 나에게 줬다.
“비상시를 대비해 상비약으로 몇 개는 들고 다녀야겠지.”
나에게 되돌아온 것은 일곱 개다. 남궁세가에 있을 때 청심단의 약효를 확인하기 위해 세 개를 먹었으니 사부가 들고 가는 것은 마흔 개. 사부가 이번에 뭔가 대단한 감을 잡은 듯했다.
“둘째야, 조만간 소환단도 준비해 놓아라.”
“예, 사부.”
사부의 말에 사제가 대답했다.
“여기 왔다는 것은 나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냐?”
사부가 물었다.
“아닙니다.”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럼, 이 사부는 바빠서 이만.”
사부는 청심단이 든 목함을 들고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천문위에 오를 단서라도 발견하신 건가?”
그럴 리는 없다. 초극으로 올라선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은 사부 아닌가.
“사부님, 저러시는 거 처음 아니오?”
사제가 사부님이 들어간 동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나도 사부가 저렇게 서두르는 것은 처음 본다.
“뭔지 모르지만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지 않소?”
“그러면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
사부가 뭘 얻든 그것은 제자인 우리들에게 이어질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사제는 내가 일을 끝낼 동안 사부님 곁에 붙어 있어야겠다.”
내 말에 사제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라장 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같이 하기로 하지 않았소?”
“사제를 초극 고수로 만든 다음에 같이 하려 했지. 하지만 그러려면 청심단과 소환단이 필요한데, 사부님이 먼저 쓰셔야 하잖아.”
“내가 굳이 초극이 되지 않더라도….”
“사제. 냉정하게 생각해 봐.”
내가 사제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귀몰색마와 다시 마주치면 살아날 수 있다 보나?”
내 말에 사제는 눈을 감았다. 귀몰색마와의 싸움을 복기하는 것이다.
“벽력도, 호거술도 섬광격도 통하지 않는 상대였지?”
사제의 실력은 초극에 들어서기 전의 나와 비슷하다. 아니 농꾼과 마*카*원 베타의 성능 차이를 생각하면 그때 당시 내가 더 강하기는 하겠다. 어쨌든 수확 대상자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확실히 모자란 실력이다.
“확실히, 다시 싸운다 해도 놈을 이길 수는 없소. 하지만 어지간한 초극 고수는 상대할 수 있소.”
“팔대 문파의 일원인 형산의 속가가 백라장이다. 그런 백라장에 어지간한 초극 고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 그리고 호거술은 정파의 음공에 정면으로 부딪치면 그냥 깨진다.”
정파의 음공만 아니라 어지간한 음공에는 죄다 밀리는 것이 호거술이다.
“아니 언제는 초극 고수 하나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 징징거리지 말라더니!”
“초극 고수 하나를 상대하는 일이 아니잖느냐.”
“하아.”
사제 녀석이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시오. 방을 오래 비워 둬 좋을 것 없으니.”
같이 나서는 것은 포기한 듯했다.
“되도록 빨리 처리하도록 하….”
- 리퍼, 놈이 남안부 숭의현에서 일을 저질렀습니다.
“뭐?”
눈앞으로 영상이 떴다. 녀석이 누군가를 붙들고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미친놈이 있나.”
공주부에서 사고 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지척인 남안부에서 또 사고를 쳐?
“색에 미친 놈이구나!”
사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제도 마*카*원 베타를 통해 놈의 개짓거리를 본 것이다.
“꺼!”
화면을 치워 버렸다. 미친놈의 미친 짓거리를 생중계로 봐야 기분만 나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색에 미친 놈이라 해도 자신의 뒤를 추적해 온 사제와 싸운 직후다.
본신의 실력은 절정이지만 어쨌든 남들이 볼 때는 초극 고수로 여겨질 능력을 지닌 사제다.
그런 사제가 속한 세력이 뒤를 쫓고 있는 상황에 자신의 행적이 드러날 짓을 한다?
형산 삼대 속가 중 하나인 백라장의 후계자로 교육받은 놈의 머리가 그 정도로 안 돌아갈 리 없다.
그럼 뭔가 의도를 지닌 짓이라는 건데?
“설마?”
청도방을 유인하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컸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사제는 얼굴이 바뀐 놈을 찾았다. 그게 사제 혼자만의 능력인지 청도방 자체의 능력인지 불안한 것이다.
만약 그게 청도방이 지닌 능력이라면 이대로 돌아갈 시 제 놈의 본거지가 들통 날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청도방을 지우려는 것이다. 일단 종적을 드러내 청도방의 일부를 유인해 처리한다. 그렇게 청도방의 세력을 약화시킨 다음 청도방을 정리할 속셈인 것이다.
“이 색마 놈이! 우리 청도방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빠득!
사제가 이를 부서져라 갈았다. 같은 사부 밑에서 배운 사제라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 색마 놈이 빨리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이렇게 되면 놈을 먼저 죽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