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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87화 (87/175)

87화

절강행(66)

- 리퍼, 남궁세가에 서생원 시리즈와 통신 벌레, 꿈틀이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남궁상청과 남궁강이 떠나고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남궁세가에 감시망을 깔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남궁세가가 동맹을 신청한 그날부터 준비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초극 이상의 인원들에게 꿈틀이를, 다른 인원들에게는 벌레를 붙인다. 검색 키워드는 알아서 설정하고.

통신 벌레를 사용하면 남궁세가를 드나드는 모든 인원의 동선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대주, 정말 그러긴가?”

진우탁은 여전히 내 앞에서 징징거리고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모양새였다.

“뭘 주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 사이에 너무 그렇게….”

내 물음에 진우탁이 말꼬리를 흐렸다.

“탈단 할까요?”

“하아, 뭘 원하나? 영약은 이미 충분하지 않나?”

내가 정색하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소환단이 충분한 거지요. 소환단과 비슷한 급의 영약을 원합니다. 되도록 도가 쪽 영약이면 좋겠군요.”

내가 돌아갈 곳은 청도방이다. 그러니 일단 청도방을 지키고 있는 사제 녀석을 초극 고수로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그냥 놔둬도 몇 년 안에 초극 고수가 될 상 싶지만, 어차피 될 것이라면 빨리 되는 것도 좋지 않은가.

“남궁세가와 협상할 때 청심단을 달라 하지 그랬나?”

진우탁의 말에 의아할 수밖에 없다.

“남궁세가의 영약이 도가 계열입니까? 전장에서 칼질하던 장군이 낙향해서 세운 장원이 남궁세가의 시작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남궁세가의 기원은 도가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그 장원에 도가 쪽 연단가가 들어앉아서 청심단 제조가 시작되었다 알고 있네.”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청심단을 얻어 봐야겠군요.”

항주 흑도의 예가 있다. 매와 소통을 유지하려면 내가 제조한 영약(?)을 먹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영약 값으로 청심단을 뜯어내면 될듯했다.

“도가 계열의 영약은 청심단으로 대처할 수 있으니 나는 소환단으로….”

내 말에 진우탁이 기회를 잡은 듯 말을 꺼냈지만 내가 삭둑 자른다.

“소환단은 충분하다 했습니다. 소청단을 어떻게 구해 보시지요.”

도가 계열 문파 중 가장 세가 강한 곳이 무당파이고, 소청단은 그런 무당파의 영약 중 하나다.

“하아! 몇이나?”

진우탁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반응을 보니 힘들기는 하지만 어떻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열은 있어야 합니다.”

“약속한 거네.”

“남궁세가와 똑같이 해드리지요.”

진우탁의 확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단을 구해 오면 영파부 일대에 서생원 시리즈를 풀고 진우탁과 연결하면 될 일이다. 멸왜단은 내 뒷배의 핵심. 그러니 다른 세력의 수작질에 위축되지 않게 방첩망을 깔긴 깔아야 했다.

“그나저나 신창양가에 연락은 했습니까?”

남궁세가를 동맹에 끼워 넣는 일은 신창양가도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해야지.”

진우탁이 힘 빠진 얼굴로 답했다. 우리가 내건 조건을 듣는다면 신창양가도 남궁세가의 동맹 가입에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구민신창에게 한 소리 듣는 것은 피할 수 없으리라.

“잘 처리하시리라 믿습니다.”

***

“흐으, 하!”

호흡을 가다듬으며 공력을 일으키니 칼날에 도기가 일렁인다.

도기를 뿜고 있는 칼은 총 세 자루다. 내 손에 들린 한 자루와 손잡이를 줄로 묶어 천장에 달아 놓은 두 자루.

“타합!”

기합을 내지르며 격하게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손에 든 칼로 매달아 놓은 칼을 후려친다.

캉, 카캉!

금속성이 울릴 때마다 눈이 손에 든 칼과 매달린 칼을 살핀다. 그러기를 반각. 끊임없이 칼을 후려쳤지만, 손에 든 칼도 매달린 칼도 문제없이 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2차 실험으로 넘어간다.”

- 예, 리퍼.

내 말에 농꾼이 답하며 손을 검게 물들인다.

파자작!

도기에 전압이 걸리며 빛을 발한다. 도기에 전압을 걸어 만들어 내는 가짜 강기다.

그 가짜 강기가 내가 쥔 칼은 물론 매달려 있는 두 자루의 칼에서도 빛을 내고 있었다.

“전력 소모는 어때?”

- 계산 범위 내입니다.

“유지 시간은?”

- 340초 가능합니다.

“배터리 늘인 후에 전압 걸어 만든 가짜 강기는 시간제한 없어졌다며?”

- 하나를 유지할 때는 소모량보다 충전량이 많았습니다만, 소모량이 세 배로 늘어난 상황에서는….

“알았다.”

농꾼 녀석의 대답을 끊고 다시 칼을 휘두른다. 표적은 매달려 있는 칼들이다.

캉, 콰캉!

가짜 강기라 해도 그 위력은 강기 못지않다. 매달린 칼날이 충격에 요동치고 소음이 개인 연공실을 울렸다.

충격음은 가짜 강기가 빛을 잃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흐읍, 흐!”

공력을 수습하고 칼을 내렸다.

“칼 한 자루로 강기를 쓰는 것보다 공력 소모가 적고, 합공은 무리라도 협공은 가능해지겠지?”

그간 고심을 한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쓸 만한 물건이 나올 것 같았다.

“방수(幇手)로 이름 붙이고 생산해.”

- 공방에서 제작 들어갑니다. 제작 시간은 58시간, 현지 배송까지 고려하면 70시간 후에 장비 가능하리라 봅니다.

“두 쌍, 네 개 만들어.”

- 단독 개체라도 하나의 무기를 제어하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만?

“한 쌍은 암기와 전기 충격 등등, 다용도로 쓸 거야.”

- 예, 리퍼. 둘이 아닌 넷으로 발주 수량 수정했습니다. 제작 시간이 두 배로 늘기에 128시간 후에 장비 가능합니다.

“연구소에 요청한 데이터는 도착했어?”

이가 없으면 잇몸, 능력이 안 되면 무기라도 좋아야 했다. 천문위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 제작에 필요한 데이터를 연구소에 요청한 것이다.

- 아직 연구소 쪽의 발신 가능 주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다. 21세기 연구소와 이곳 무림을 잇고 있는 망할 게이트가 양방향이 아닌 단방향으로 게이트가 불안해지는 주기에 맞춰 연락할 수밖에 없음을.

“그 망할 주기란 거 어떻게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답답한 거는 답답한 거다.

- 게이트 연구는 해당 관할이 아니라서 알 수 없습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개인 연공실을 나서 거처로 들어섰다. 잠시 쉬기 위해 침상에 누웠다.

이 각 정도 침상에서 뒹굴거리고 있자니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린다.

- 리퍼, 남궁세가의 수확 대상자들이 총타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빨리도 온다.”

농꾼의 말에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남궁상청이 떠난 지 5일 만이다.

대강 옷을 차려 입고 거처에서 나와 객청으로 간다. 도중에 나를 부르러 오는 하인을 만나서 돌려보냈다. 객청에 도착하니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십대 중반이 하나, 다른 둘은 이십대다.

“멸왜단 뇌응대를 맡고 있는 이도연입니다.”

사십대면 반반이다. 천문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천문위들을 수확한 결과 빠르면 사십 중반에, 늦어도 오십이 되기 전에 천문위가 되었으니 말이다.

“남궁가의 남궁화청이오. 이 둘은 조카인 산천과 호천.”

사십대 중반의 사내, 남궁화청의 말에 두 이십대가 내게 간단한 공수의 예를 취했다.

“많은 남궁가의 무인 중에 나와 조카들을 꼭 집어서 청한 이유는 무엇이오?”

“가문에서 사정을 듣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남궁화청의 물음에 내가 되물었다.

“이 대주가 우릴 지목했고, 가문을 위한 일이니 이 대주가 하는 일에 협조하라는 말을 들었소.”

“전후 사정도 모르십니까?”

“솔직히 기우라 보오. 다른 곳도 아니고 대남궁세가에 어찌….”

내 말에 얼굴을 슬쩍 찌푸리며 말꼬리를 흐린다. 어쨌든 안다는 소리다.

“일단 제가 남궁 대협의 기맥을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흐음.”

남궁화청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적극 협조하라는 말을 듣고 온 입장인지라 팔을 내밀었다.

“호신강기를 억제해 주시겠습니까?”

내 검지로 그의 약지를 살짝 누르며 말하자 남궁화청이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내 귀에 들려오는 농꾼의 목소리.

- NZ-04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 이 작자 천문위야?

수확 데이터는 대용량이라 음파 통신으로 감당하기는 무리, 공방의 데이터베이스에 먼저 저장된다.

- 아닙니다.

아직 초극이라는 소리.

저 작자에게 천문위 데이터를 넘기면 천문위가 좀 더 빨리 되지 않을까나?

그걸 이용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어진 농꾼의 말이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 리퍼, 호신강기를 거둬 주시겠습니까?

= 왜?

- 공방은 본체의 카피에 불과합니다. NZ-04에 프로그램 추가 권한이 없습니다.

공방은 보안 등급이 딸리니 본체로 접속해야 한다는 소리다.

호신강기를 억제하자 시야가 요동쳤다. 농꾼이 일하는 표를 한껏 내는 것도 잠시다.

- 필요한 프로그램을 모두 인스톨했습니다.

농꾼의 보고에 남궁화청의 약지에서 검지를 뗐다.

“뭐를 살핀 것이오?”

남궁화청이 물었다. 기맥을 살피겠다고 한 말과는 달리 자신의 기맥을 파고드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을 테니 궁금할 만도 했다.

“다른 분들도 살피고 다 같이 말씀드리지요.”

내 말에 남궁화청이 자신의 조카들에게 빨리 움직이라는 듯 턱짓을 했다.

- NZ-13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남궁호천을 먼저 수확하고.

- NZ-12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남궁산천을 수확했다.

물론, 수확 뒤에는 농꾼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셋의 나노 머신에 인스톨했다. 인스톨 된 프로그램은 이후 지속적 수확을 위한 프로그램과 서생원 시리즈와의 접속 프로그램 정도다.

= 이들이 이때껏 처리한 작자들에 대한 명단 확보하고. 명령 계통 확인해 줘.

수확 데이터에는 그들의 그간 행적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들이 나노 머신의 숙주가 된 다음 했던 행동과 만난 인물들을 대다수 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남궁세가가 은밀히 휘둘러 왔던 검들. 이들의 데이터를 뒤지면 자연스레 남궁세가의 약점도 확보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세 분은 그들과 연관되지 않았군요.”

“그들이라면, 동맹의 목표를 말하는 것이오?”

내 말에 남궁화청이 눈가를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암중 세력 따위는 원래 없다. 하지만 내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없는 그들이 존재해야 했다.

“그 말은 이 대주는 기맥을 살펴 그들을 구별할 수 있단 말이오?”

“전부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초극 이상인 자들만 알아낼 수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보신 바와 같이 상대가 호신강기를 스스로 억제하지 않으면 수가 없고요.”

조사대를 결성하고 무림으로 나가기 위한 밑밥을 깔아 놓는다.

“나와 조카들이 어떻게 도우면 되겠소?”

“일단 이것을 드시겠습니까?”

남궁화청의 물음에 준비해 둔 환약을 꺼냈다.

“무슨 약이오?”

“동맹의 조건을 들으셨지요?”

“들었소.”

“이걸 먹으면 남궁세가를 살피는 아이가 보고 듣는 것들을 같이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지요.”

먹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미 접속 프로그램은 깔려 있으니 접속코드만 입력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항주 흑도에서 돈을 뜯어내듯 남궁세가에서는 청심단을 뜯어내야 했다.

남궁화청은 내가 내민 환약을 의심 없이 받아 삼켰다.

대개의 나노 머신 소유자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독이 통하지 않음을 알기에 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남궁산천과 남궁호천 역시 숙부를 본받아 내게 환약을 받아 삼켰다.

“운기라도 해야 하오?”

남궁화청이 물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주문 하나 외우시면 됩니다.”

“주문이라니?”

남궁화청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세 숙질을 향해 프로그램 시동어를 읊었다.

“인터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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