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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85화 (85/175)

85화

절강행(64)

양묵현 일당이 타고 나갔던 배에 그들 열넷의 시신을 실었다. 거기에 원래 있던 양언직의 시신 한 구까지 더해서 그 배를 타고 나갔던 모두는 그렇게 시체가 되어 양주 신창양가로 돌아갔다.

할 일을 다 한 우리들은 이제 받을 것 받고 영파부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남은 일들이 있지만 그것은 신창양가의 일이지 나나 멸왜단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가문 상황이 어수선해서 약속한 것을 당장 이행하기는 어렵네. 하지만 가문이 정상화 되는 대로 이행하겠네.”

“그게 보기도 좋겠군요.”

구민신창의 말에 진우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동맹 체결은 먼저 발표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신창양가의 정상화에 도움도 되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진우탁의 말에 구민신창이 동조했다.

멸왜단과의 갈등이 마무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맹을 체결했다는 발표가 있으면 어수선한 신창양가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어수선한 신창양가를 한 번 찔러 볼 생각을 가질 세력들도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다. 신창양가를 건들면 멸왜단의 개입이 확실시되니 말이다.

멸왜단의 분노를 뒤집어써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은 육가장의 경우만 봐도 확실하다.

“서로 좋은 일 아닙니까.”

동맹의 공식 선언은 약속한 것들을 안전하게 받아 낼 수 있는 보증도 된다. 솔직히 구민신창과 한 약속은 세력과 세력의 공식적인 계약이 아닌 멸왜단주와 신창양가 전대 가주의 야합에 불과했다.

하지만 동맹을 공식 선언하면 그 야합이 공식적인 계약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벽력응주.”

구민신창이 가만히 있는 나를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자네 덕에 일이 쉬워진 것은 사실이네. 하지만 감시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야. 본가를 감시하고 있는 매를 거둬들이게.”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도 다시 신창양가에 매를 보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신창양가에서 나를 건드려 일어난 일. 두 번 다시 이런 일 안 일어나게 밑에 애들 관리 잘하라는 말을 그렇게 던져 주고는 쾌속선에 올라탔다.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언직이는, 그 아이는 살려 주시기로!”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양심성이 오열을 터트렸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놈들이 손을 쓴 이후였다.”

“하하.”

눈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양심성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약속은 깨졌습니다.”

말과 동시에 양심성의 손이 움직였다.

퍽!

스스로 머리를 내려친 양심성의 몸이 허물어졌다. 공력을 잃었다 해도 초극 고수가 되도록 단련한 그였다. 사람의 급소를 잘 아는 그가 스스로를 죽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 신창양가에 뿌려 둔 꿈틀이와 통신 벌레들 죄다 복귀시켜.

멸왜단이 있는 영파부로 돌아가는 쾌속선 선실에서 서생원 시리즈가 보내온 영상을 끄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 리퍼, 서생원 시리즈들도 복귀시킵니까?

= 혹시 모르니깐 그 애들은 놔둬.

양심성이 저렇게 뒈져 버렸으니 그 잔당이 신창양가에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주의 명령을 어떻게 위조했는지 그 방법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잔당들이 남았고, 그들이 가주의 명령을 위조할 수 있다면 나를 다시 어떻게 해보려고 수작질을 부릴 가능성이 컸다.

절강 무림을 왜구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도록 만든 것은 내가 제공한 매들이다. 내가 잘못되면 절강 무림 전체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잔당들이 신창양가를 뒤집어엎는 수로 활용할 여지가 큰 것이다.

그런 탓에 천문위인 구민신창의 요청을 가볍게 씹어 버리고 서생원 시리즈를 남긴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 요청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구민신창은 매를 이용한 감시를 그만두기 원했지 서생원 시리즈는 아니잖아.

그렇게 뻔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멸왜단으로 복귀했다.

“신창양가와 멸왜단 일은 어떻게 된 거래? 전쟁할 것처럼 서로 각을 세우더니 갑자기 동맹이라니?”

“그게 다 제3의 세력이 중간에 수작질을 부렸기 때문이라더군.”

“신창양가와 멸왜단을 공멸시키려 했다고? 어딘지 모르지만 진짜 간도 크군.”

“간만 크나? 전력도 상당한 놈들이야. 이번에 놈들은 무려 천문위를 동원했다고. 신창양가 가주가 놈들의 암수에 걸려 죽었다잖나?”

“창정이 죽었어? 그 양반 천문위 아니었나?”

“그러니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인거지. 신창양가와 멸왜단이 괜히 동맹을 맺었겠나? 그 의문의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그런다잖아.”

양묵현의 정체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소문이 났다가는 신창양가의 체면이 똥통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신창양가와 합의해 살짝 비틀린 소문을 낼 수밖에 없었다.

양묵현은 구민신창에 의해 유폐된 경쟁자의 후예라는 진실보다는 있지도 않는 의문의 세력에서 보낸 천문위로 포장되었고, 그 세력에 공동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멸왜단과 신창양가의 동맹이 선포되었다.

물론, 신창양가만을 위해 제3의 세력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이거 다행이라 해야 하나?”

“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귀 밝은 척하더니 절강의 생각 없는 놈들이 떠드는 소리는 못 들었나보군.”

“생각 없는 놈들이 떠드는 소리라니?”

“이제 멸왜단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는 놈들이 있다 하더라고.”

절강 일각에서 멸왜단의 규모를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매를 활용해 해상에서 왜구를 찾아 격멸하는 방식이 주가 된 지금은 예전과 같은 대규모 인원이 필요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절정과 일류 무인의 집중된 전력이 필요할 뿐, 넓은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모집한 대다수의 이류 무인은 크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허, 그러다 왜구놈들이 매들의 감시망을 뚫고 오면 어쩌라고? 놈들이 육지로 올라와 사방팔방 흩어져 약탈하는 것을 막으려면 규모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그러니 개소리라 말하잖아.”

멸왜단 상층부에서는 몇 년 안에 멸왜단을 독립된 무림 세력으로 만들 구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때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 이때 저런 소리가 커지는 것은 막아야 했다.

나도 적극 동조한 일이다. 내가 멸왜단에서 이 고생을 하는 이유가 뭔가. 멸왜단의 힘을 내 뒷배로 삼아 수확에 뒤따를지도 모를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부리는 매들 때문에 멸왜단의 규모가 줄어든다?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현실을 모르는 것들이야.”

“그렇지. 하지만 이번 일로 그런 개소리하는 것들도 입을 닫게 될 거야. 신창양가를 유린할 정도의 세력이 암약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절강을 지킬 힘을 줄이자는 개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있겠나?”

“진짜 불행 중 다행이군.”

어쨌든 그렇게 양 세력의 이익을 위해 있지도 않는 암중 세력이 남직례와 절강을 황행하는 것이 되었다.

***

뇌응대의 일은 경철운과 화인천 에게 밀어 놓고 연공실에 들어앉았다.

이번에 천문위에게 쫓기는 심장 쫄깃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그래서 천문위를 상대로 어떻게든 버틸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천문위들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어떻게든 수를 내보려고 했지만, 상세한 데이터를 놓고 보니 그 격차만 확실히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있자니 진혜예가 찾아왔다.

“일은 둘에게 다 밀어 놓은 주제에 편하게 쉬고 있지 않고 얼굴이 구겨져라 인상만 쓰고 있네?”

“둘에게 일을 밀어 놓은 것은 누님도 마찬가지 아니오.”

“나는 환자잖아.”

“누님, 제가 치료했습니다. 누님 다 나았어요. 절강에서 이름난 명의인 염왕적의의 진단입니다.”

“농은 그만두고 아버지가 찾으셔.”

“단주께서요?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남궁세가 사람들이 찾아왔어.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남궁세가에서요?”

남궁세가에서 나를 찾을 일이 있나? 뭐 어쨌든 가보면 알 일이다.

단주 집무실로 향하는데 진혜예가 따라오지 않았다.

“누님은 안 가십니까?”

“나는 오랜만에 얼굴이나 비추려고.”

그렇게 말하고는 뇌응대가 쓰고 있는 연무장 쪽으로 사라졌다.

“단주, 뇌응대주입니다.”

“들어오게.”

단주 집무실로 들어가니 진우탁 혼자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사람이 왔다 들었습니다만? 그 일로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 일 맞아. 하아!”

진우탁이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가 동맹을 제의했네.”

“동맹이요?”

아니 갑자기 뭔 동맹?

“멸왜단과 신창양가 양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니 자기들도 끼고 싶다는 거야.”

“설마?”

“그래, 그 일 때문이야.”

있지도 않는 암중 세력 때문에 남궁세가가 움직인 것이다.

“거절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남궁세가가 끼게 되면 그놈의 암중 세력을 조사하려 할 것이 뻔하다. 애초에 암중 세력 따위는 없지 않나. 조사해봐야 나오는 것은 없는 암중세력이 아니라 그 암중세력이란 말이 신창양가와 멸왜단 양쪽에서 나오게 된 원인이다.

그렇게 일의 진상이 드러나면 남궁세가에게 괜한 약점을 잡히는 꼴이 된다.

“거절할 명분이 없지 않나?”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야….”

잠시 말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남궁세가까지 끼어들면 상당한 세력이 된다. 멸왜단 하나를 뒷배로 하는 것보다 거기에 오대세가의 둘이 더 들어간 동맹을 뒷배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말이다.

“남궁세가, 그냥 받아들이지요.”

“뭐?”

내 말에 진우탁의 눈이 커졌다.

“남궁세가를 끼워 넣어서 조사대를 조직하는 겁니다.”

“조사대를 조직해서 신창양가의 일을 조사하게 되면 일의 진상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야.”

“신창양가의 일을 왜요?”

진우탁의 말에 내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놈들이 어디서 암약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이미 끝난 일을 조사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나온 결과물로 놈들을 추적해야지요.”

내 말에 진우탁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조사대에 모든 권한을 주고 그 조사대를 헤매게 만들자는 것이군.”

“그렇지요.”

진우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척했다. 나는 조사대를 헤매게 만들 생각 따위 없었다.

“좋은 생각이 아니야. 조사대가 우리 뜻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이 없어. 조사대의 인원 구성에서 누가 수장을 맡느냐에 따라서 변수가 너무 많아.”

“남궁세가에서 다른 소리 못할 사람을 수장으로 삼으면 됩니다. 추적 전문가로 놈들의 행적을 최초로 밝혀 낸 사람을!”

내 말에 진우탁의 눈이 커졌다. 당연했다. 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 말이다.

“자네가 직접 조사대를 이끌겠다고?”

“예. 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뇌응대는 어쩌고!”

진우탁의 목소리가 커졌다.

“저 없어도 잘 돌아가지 않습니까?”

“자네가 밖으로 나도는 일은 멸왜단주로서 허락할 수 없네.”

“육가장이 한 번. 양묵현이 한 번. 멸왜단을 흔들기 위해 저를 노리고 손을 썼지요. 제 위치를 알고 있었으니 손을 쓸 수 있었던 겁니다.”

“절강을, 남직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보다 총타에 있는 것이 안전한 일이야!”

“누가 절강과 남직례를 돌아다닌다 했습니까?”

“무슨 소린가, 놈들을 찾는 척하려면….”

“천문위를 휘하로 부리는 세력입니다. 중원 전역에 퍼져 있어도 문제가 없지요.”

남궁세가 끼워 넣기를 성공하면 절강과 남직례를 후려친 암중 세력의 흔적을 추적한다는 핑계로 수확 대상자들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무공의 완성’이라는 개인적 소망 따위가 아닌 ‘무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지니고 당당하게 ‘호신강기 좀 억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멸왜단을 비롯한 절강 무림은 물론, 오대세가의 둘을 등에 업고 하는 부탁이다. 정도 팔파의 인물들이라 해도 쉽게 거절하기 힘든 명분 아닌가.

흐흐흐!

웃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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