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절강행(62)
조용히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강바닥에 바싹 엎드려서 피풍의를 편다.
= 대강 가오리 같은 모양새로.
내 말을 충실히 따르는 농꾼이 피풍의 형태를 제어했다.
그렇게 가오리 같은 형태로 변한 피풍의를 덮어쓰고 강바닥을 사지로 짚어 움직인다.
= 양유경의 수공 데이터만 분리 가능해? 신창양가 무공 같은 특정 방식은 들어내고 수공 요령만 말이야.
강바닥을 기며 농꾼에게 물었다.
- 가능합니다.
= 당장 정리해 줘.
- 예, 리퍼.
농꾼이 그렇게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을 때, 나는 조심스레 강바닥을 기어 격전장을 향해 다가간다.
장강의 물길이라는 것이 그렇게 맑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 수중에서 시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초극 고수라도 힘든 일. 그런 탓에 수공의 고수들은 물의 흐름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보통이다.
초극에 달한 수공 고수를 상대로 이런 어설픈 위장 따위 통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은 그만한 고수가 단독으로 움직일 경우다.
지금 상황은 3인 1조의 세 개 조가 한 번에 움직이는 상황. 거기에다가 물 위에는 천문위의 강적이 있다.
신경이 전부 물 위의 적에게 쏠려 있고, 물속 주변에는 믿을 만한 아군이 그득하다. 그러니 단독으로 움직일 때보다 물속 주변에 신경을 덜 쓸 게 뻔하다.
아니 뭔가 수상한 게 느껴져도 동료이거니 하거나, 다른 동료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
- 정리 끝났습니다.
= 따로 저장해 두고. 단번에 저들이 메고 있는 공기 주머니를 찢을 수 있는 경로를 계산해.
놈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지역과 대강 십여 장 정도 거리를 두고 강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눈앞으로 화면이 요동쳤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목표가 아홉이나 되는 탓에 단숨에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일이 장 거리를 두고 놈들이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농꾼이 계산을 끝내기를 기다린다.
- 사전 작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전 작업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 어떤 사전 작업?
내 물음에 눈앞의 화면이 흐른다. 말로 하는 것보다 그냥 상세한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다.
= 알아서 할 테니 난 그냥 닥치고 내공이나 보태라는 거군.
- 그런 것이….
= 허가한다. 한번 해 봐.
- 예, 리퍼.
내 말에 농꾼이 피풍의를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말이 피풍의지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망간 단괴에서 뽑아 낸 각종 금속들이 함유된 인공 근육의 집합체다.
슬금슬금 스스로 움직이기 편한 형태를 잡는다. 형태가 잡히자 나도 몸 여기저기에 숨겨 놓은 투척용 손 화살, 수전들을 꺼내서 피풍의 쪽에 하나씩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풍의에 장비한 수전이 서른여섯 개.
준비가 끝나자 피풍의가 내 몸을 감싼다. 그리고 내 양손이 검게 코팅되며 장심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맥들이 피풍의와 연결되어 최종적으로는 1차로 준비된 열두 개의 수전에게 닿았다.
- 작전 시작합니다.
농꾼의 말과 함께 변형된 피풍의가 가오리처럼 움직였다.
강바닥에 바싹 붙어 놈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격전지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간다.
궁! 구궁! 궁!
수면을 두드리는 강기가 만들어 내는 충격이 수중에서 이리저리 휘몰아치지만, 양묵현이 포섭한 수군 출신 초극 고수들은 그 정도는 우습다는 듯 물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였다.
피풍의로 감싼 내 전신도 그 충격파에 들썩일 정도로 울렸지만, 이 정도로 내상을 입으면 어디 가서 초극 고수라 자랑하지도 못한다.
솔직히 이만한 충격이면 수공을 익힌 일류 무인 정도는 내상을 입을 만도 하다. 이러니 저 잘난 천문위 셋이 수공을 우습게 보지.
20, 19, 18….
갑자기 시작되는 카운트다운. 공력을 일으킬 준비를 하라는 신호.
웅!
강바닥에 붙어 있던 전신이 갑자기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서서히 움직인다.
목표는 수면 위를 달리는 황학약을 노리고 있는 물속의 3인 1조!
황학약의 움직임을 따라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그들 근처를 부유하듯 돌아다닌다.
3, 2, 2, 2, 2.
시계가 고장 난 듯 계속 2를 반복한다.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막 수면 위를 향해 손을 쓰는 순간 2를 반복하던 카운트가 1을 지나 0이 된다.
바로 양손에 공력을 주입했다. 큰 공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도기를 일으킬 정도의 공력.
순간 피풍의에 걸어 놓은 수전 중 열두 개가 쏘아졌다.
구궁!
그들이 쳐낸 물기둥과 황학약의 강기가 부딪친 충격이 수중을 내달린다.
그리고 인공 근육이 톤 단위의 힘으로 쏘아낸 수전들이 그 충격파를 뚫고 목표했던 가죽 주머니에 꽂혀 들었다.
물속에서 휘몰아치는 충격파로 인해 상당수 힘을 소실한 수전들은 그저 가죽을 한 번 툭 건드리고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물길을 따라 가라앉았다.
찢긴 구멍은 없다. 구멍이 없으니 공기가 새지 않는다.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계획에 있는 일이니 걱정 없다.
그렇게 결과를 비추는 시야 한 켠의 조그마한 화면에서 눈을 돌린다.
5, 4, 3….
내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 화면은 바로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카운트가 가득하다.
내가 처음 시도한 결과를 분할된 화면으로 주시하고 있는 동안, 농꾼은 이미 피풍의를 움직여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구민신창의 발아래에서 노는 것들이다. 사방팔방에서 터지는 충격파에 휘말린 가오리처럼 움직이며 빠르게 공격 타이밍을 잰다.
0.
역시 같은 요령으로 도기를 품은 수전들이 날아간다. 열두 개의 수전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날아가지만.
구궁!
물 위의 천문위와 물 아래의 3인 1조가 뿜어낸 힘이 격돌하여 생긴 충격파가 수중을 흔들면 당연하다는 듯 녀석들이 등에 멘 가죽 주머니에 꽂혀 든다. 앞서와 같이 공기가 새지 않는다.
똑같은 방법으로 진우탁의 발아래에서 노는 셋의 가죽 주머니에 수전을 날렸다.
이로써 세 천문위의 발아래를 쫓아다니는 아홉의 공기 주머니를 단매에 박살 낼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강바닥으로 다시 내려앉아 마지막을 장식할 포인트로 이동한다.
= 셋에게 예정된 음파 통신.
- 예, 리퍼.
통신 벌레들의 음파 통신 신호를 겹치게 만들어 내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아군인 세 천문위들이 내게 전음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 수신 확인되었습니다.
셋 다 내 전음(?)을 들었다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내 전신을 감싼 피풍의가 슬그머니 헐거워졌다. 농꾼이 주도하는 부분은 이제 끝. 내가 움직여야 했다.
눈앞으로 커다란 원이 그려진다. 그리고 아홉 개의 점이 활발히 움직이며 원 안팎을 오간다.
아홉 개의 점은 당연히 물속에서 천문위의 발을 잡고 있는 아홉 초극 고수들이다.
점들이 모두 원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손을 떨쳤다.
양손에서 쏟아진 전력이 물속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호신 강기로 보호되는 초극 고수들에게 이렇다 할 충격을 줄 수는 없는 전압이었지만, 그들이 떠메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 잔뜩 묻어 있는 인공 근육 섬유 다발들을 수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가죽 주머니가 터져 나가며 아홉의 초극 고수들이 기포에 휩싸였다.
바로 바닥을 박차고 사지를 떨친다. 농꾼도 피풍의를 움직여 내 가속에 도움을 준다.
가죽 주머니가 터져서 당황하고 있는 한 명의 뒤로 접근하기 무섭게 칼을 휘둘렀다.
당연히 철교아의 한 수!
쿠르릉!
거센 포말이 일며 충격이 그를 수면 위로 쳐올렸다.
수면 위의 진우탁이 물 밖으로 튕겨 나온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뒤처리는 진우탁에게 맡기고 두 번째 상대를 향해 다가가 칼을 휘두른다.
상대도 창을 움직여 내 공격에 대응한다. 창과 칼이 만들어 내는 수류가 서로 뒤엉켰다.
= 지금.
궁! 구궁!
수면 위에서 내리꽂힌 창격이 충격파를 만들어 내며 수중을 뒤흔든다.
초극 고수가 다칠 정도의 충격은 아니지만 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예기치 못한 충격에 틈을 보이는 상대에게 쾌속으로 달라붙으며 칼을 휘둘렀다.
쿠르릉!
힘이 담긴 거센 물길이 그 역시 물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순식간에 동료 둘을 잃은 3인 1조의 마지막 한 명이 맹렬히 사지를 놀렸다.
공기 주머니를 잃고 당황해 호흡이 모자란 상황. 수중에서 나와 싸울 것이 아니라 호흡 확보가 우선이었다.
순식간에 물 밖으로 튀어 나갔다. 바로 공기를 들이켜고 물속으로 들어올 셈이었겠지만, 이미 농꾼을 통해 그가 치솟을 위치를 전해 받은 진우탁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물속에 남은 놈은 이제 여섯.
다음 목표를 향해 몸을 움직이려는데, 놈들이 먼저 몸을 뺐다. 여섯이 뭉쳐서 황급히 격전지를 벗어난다. 내가 물속에서 아무리 호흡이 자유롭다 해도 내 존재를 인식해 하나로 뭉친 초극 고수 여섯과 수전을 펼칠 수는 없다.
뒤로 물러난 놈들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양묵현과 일 개 조를 뒤로 불러들였다.
수면 위의 세 천문위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급히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
“쫓지 말고 일단 모여요!”
내 외침에 세 명의 천문위가 바로 발걸음을 늦췄다.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수면을 박차고 달려갔다.
“저 물귀신 같은 것들을 물러나게 하다니 대단하이.”
내가 곁으로 오자 도화도주가 탄성을 터트렸다.
“일단 목혜부터 신으세요.”
세 명에게 목혜를 건넸다. 세 명의 천문위가 차례대로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수면 위로 내려섰을 때는 세 명 다 목혜를 신고 있었다.
“구민신창께서는 잠시 놈들을 견제해 주시겠습니까?”
“지금도 견제 중이네만?”
내 말에 구민신창이 답했다.
“두 분, 잠시 몸을 물에 담그시겠습니까?”
내 말에 황학약과 진우탁이 머뭇거린다.
“놈들 잡아야지요.”
내 재촉에 둘이 수면 위를 미끄러지고 있던 발을 멈추고 물속으로 빠져든다.
“두 분 다 호신강기를 잠시 억제하시고.”
내가 두 사람 곁으로 빠져들며 말했다.
“적을 코앞에 두고?”
“이 대주가 괜히 이러는 것이 아닐 겁니다. 황 사형.”
내 말에 황학약이 인상을 쓰자 진우탁이 내 편을 들어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아.”
이에 황학약도 한숨을 내쉬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구민신창은 그렇게 물속에 몸을 담은 우리 셋 주위를 오가며 적들을 견제했다.
= 수공 데이터 둘에게 넘겨. 그리고 수중 호흡이 가능하게 응용 프로그램 넘기고.
- 예, 리퍼.
“수공의 요령을 전할 거예요. 산시산수시수(山是山水是水)….”
어디 불경 구절에 나온 말을 중얼거린다. 수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들이다.
“아무리 우리가 천문위라도….”
“지금 당장 수공을….”
부정의 말을 하던 두 천문위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당연했다. 수공 요령들이 머리와 몸에 속속 박혀 들고 있을 테니깐. 농꾼에게 데이터를 넘겨받은 나노 머신들이 두 수확 대상자의 몸과 머리에 그 요령들을 때려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두 천문위는 내 헛소리를 듣고 자신이 그 요체를 깨닫고 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다.
“이해하셨으면 물속에서도 호흡에 불편이 없을 거예요. 할 수 있죠?”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네. 황 사형은 어떻소?”
“할 수 있을 것 같으이. 그런데 이게 말이 돼?
내 말에 두 사형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럼, 가세요.”
히죽 웃으며 두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허….”
“진짜.”
진우탁과 황학약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믿기지 않는다는 웃음을 짓고는 몸을 물 밖으로 꺼냈다.
“양 노 선배 익숙해지셨습니까?”
황학약이 구민신창에게 물었다.
“신고 말고의 차이가 엄청나군.”
구민신창이 목혜의 효용을 깨닫고 감탄을 터트렸다.
“놈들의 공격을 좀 더 쉽게 막으실 수 있겠지요?”
“확실히.”
“진 사제가 양 노 선배의 곁을 지키게.”
“저는 뒤에서 구경이나 하겠습니다.”
내가 뒤로 빠지면서 말했다.
“그러게.”
“위험하니 멀리 빠져 있게.”
그렇게 수공 요령을 익힌 두 천문위와 발밑이 든든해진 한 천문위가 적들을 향해 맹렬히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