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79화 (79/175)

79화

절강행(58)

- 수확 데이터는 공방의 통신 모듈을 통해 연구소로 송신되고 있습니다. 리퍼께서는 공방의 서버로부터 NZ-11의 압축 데이터를 지금 다운로드 하시겠습니까?

양묵현과 양유경 이 둘이 남아 있으니 양가창법에 대해 알아 두는 것이 좋았다.

= 해.

- 원활한 통신을 위해서 호신강기를 억제해 주십시오.

음파 통신으로는 데이터 결손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에 하는 조처다. 응 시리즈와 여타 시리즈가 보내는 영상 정보나 음성 정보는 일부 결손이 일어나더라도 농꾼이 보정 작업을 통해 대충 메꿀 수 있지만 수확된 정보는 그렇게 대충 메꿀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아, 후.”

호흡을 골라서 전신의 호신강기를 억제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 NZ-11의 압축 데이터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농꾼의 보고에 호신강기를 억제하기 위한 호흡을 멈췄다.

“뭔가 새로운 사실이라도 알아냈나?”

진우탁이 물었다. 쾌속선 선실 안에 죄다 몰려 있는 상황이라 내 경악성을 들은 것은 물론, 내가 호신강기를 잠시 억제했다는 것도 알아본 것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에 매와 통하려고 그러나 하고 짐작한 듯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으니 잠시 조용히 해주시지요.”

“그러지.”

내 요구에 진우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닫았다.

= 양언직의 사망 영상 띄워.

수확이 아니었다면 보고와 동시에 떴어야 할 영상이 그제야 떴다.

양묵현 패거리는 신창양가의 쾌속선을 타고 장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부님, 멸왜단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선실 안에서 양언직이 양묵현 옆에 앉으며 물었다.

- 해당 인물들의 영상 정보를 꿈틀이들의 초음파 탐색 기능을 근거한 위치 정보와 조합해서 만들어진 재현 영상입니다. 당시 일어난 상황과 일치율은 98% 정도로 계산됩니다.

“절강으로 간 전대 가주가 그들과 손을 잡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냐?”

“조부께서는 절강의 항왜 활동으로 이름을 얻은 분이니까요.”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양묵현이 양언직의 양손을 잡으며 웃었다.

“설마, 멸왜단 쪽에 이미 손을 써 놓으신 겁니까?”

양묵현의 장담에 양언직의 얼굴이 슬쩍 기대로 물들었다.

“너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예?”

그 말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다. 갑자기 양 손목의 요혈을 죄어 오는 압력.

“사부!”

양언직이 언성을 높였지만 그에게는 천문위가 작정하고 움켜쥔 손을 뿌리칠 능력이 없었다.

“사제, 그간 고생했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양유경이 양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

“도대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양언직은 칠공으로 피를 뿜으며 전신을 늘어트렸다.

그런 양언직의 가슴을 향해 양묵현의 손이 움직였다.

퍼억!

정확히 심장을 두드리는 손길. 확인 사살이다.

“하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양묵현 쪽에서 지금 양언직을 처리할 필요가 있나?

신창양가를 손에 넣기 위한 수작이라면 지금은 양언직을 살려 두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말이다.

양심성이나 양언직 누가 가주가 되든 양묵현은 천문위다. 구민신창을 처리하면 신창양가는 양묵현의 뜻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천문위인 양묵현을 내세우지 않으면 드러난 천문위를 모두 잃은 신창양가를 향해 육가장이 압박을 해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민신창을 처리하기 이전인 지금 양언직을 죽였다? 이건 양심성이 안다면 당장 구민신창에게 달려갈 일이다.

양심성이 애초에 일을 벌인 까닭이 뭔가? 잘난 아들을 가주로 만들기 위해서 아닌가. 물론, 그것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쨌든 양묵현이 신창양가를 집어삼키기 위해 움직인 것이라면 지금 양언직을 죽인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쉬운 일을 괜히 어렵게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 지금 저놈들 위치는?

내 물음에 농꾼이 눈앞으로 지도를 띄웠다.

구민신창을 쫓고 있다면 장강을 넘은 놈들은 남하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놈들은 남하하기는커녕 장강을 넘지도 않았다. 아니 장강의 물길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신창양가 따위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 모양새 아닌가?

아니 양유경은 응 시리즈를 뿌리치고 도망간 전적이 있다. 그만큼 응 시리즈에 대해서 안다는 말이다.

지금 하는 일련의 행동 자체가 내가 다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 한 행동이라면?

사사혈창대가 복귀하지 않았으니 나를 제거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양심청을 죽인 것을 내가 안다는 가정 하에 계획을 짠 거라면?

멸왜단주의 고명딸인 진혜예를 급습한 양유경이 드러났으니 멸왜단이 구민신창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것이다.

멸왜단에 도화도주가 와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구민신창과 멸왜단주, 도화도주 이렇게 천문위 셋이 신창양가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구민신창을 핑계로 신창양가를 나와서 양언직을 죽이고 꼬리 끊기를 했다?

신창양가라는 커다란 먹거리가 손에 거의 들어온 상태에서 그렇게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가능하다?

진짜 대단한 놈이다.

= 놈들이 전과 같은 수작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 통신 벌레와 꿈틀이들이 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상어들을 동원했습니다.

대륙붕에서 망간 채취를 위해 만들어 놓은 해양 생물 시리즈 중 상어들을 불러들였다는 소리에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양 노 선배를 추적하기 위해 양묵현과 그 일당들이 신창양가를 비웠습니다.”

“그럼 본가에는?”

구민신창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둘째 아드님이 남아 있네요.”

“놈들의 위치는?”

이번에는 진우탁이다.

나도 수확 대상자인 양묵현 부자를 먼저 쫓고 싶다. 하지만 양묵현 패거리의 전력은 상당했다. 합공이 가능한 초극 고수 열둘에 나노 머신을 가진 천문위와 초극 고수가 하나씩이다.

천문위 셋을 온전히 끌고 가야 안전하게 수확이 가능한 전력이다.

“양 노 선배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당장 놈들을 쫓겠습니까? 아니면 신창양가를 먼저 수습하시겠습니까?”

내 말에 구민신창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본가를 먼저 수습하겠네.”

옳은 선택이다. 놈들을 쫓으려면 바다로 나온 배가 장강으로 들어가야 한다.

해금령이 한참인 시절이다. 바다에서 장강 하류로 그냥 들어갈 수 없었다.

군부의 허락을 득해야 했다. 왜구를 쫓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것이 허락된 멸왜단이지만 절강에 한한 것이다.

남직례에서는 구민신창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신창양가에 소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소리.

신창양가를 먼저 정리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군부에서 신창양가로 소식이 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양주의 신창양가에 도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묵현 일행을 먼저 쫓는다면 소식을 접한 신창양가가 뒤를 쫓을 가능성도 있었다.

재수 없으면 양묵현 일당들을 처리하기도 전에 신창양가의 전력이 당도하고 양언직의 죽음도 우리가 뒤집어쓸 수도 있는 것이다.

뭐 구민신창의 선택에 그런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강 하류에 당도했다.

장강 하류에는 바다에서 몰래 들어오는 왜구들을 막기 위해 나룻배들을 연결하고 그 위로 널빤지를 놓아 만든 수상 가교(假橋)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이야 자유로이 가교 아래를 흐르지만 배는 가교를 치우지 않으면 통과하지 못하는 구조다.

우리는 멸왜단 소속의 쾌속선임을 밝히고 절차에 따라 검문을 받았다.

장강 하류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군문에 신창양가의 인물이 없을 수 없었다.

“태상께서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신창양가의 인물이 구민신창을 공손히 맞이했다. 양심성이 조작한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아직 여기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듯하군.”

구민신창도 그 점을 파악하고 바로 수작을 부린다.

“무슨 말씀이신지?”

“가문에 반란이 일어났다.”

“예?”

“멸왜단과의 마찰은 들어 알고 있겠지?”

“그야….”

“모든 것이 심성 그 녀석의 계략이었다. 그 일을 중재하기 위해 내가 본가를 나서자 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집법당주에게 가주를 제압할 힘이 없지 않습니까? 가주께서는 천문위인데….”

“멍청한 놈이 가문에서 축출된 성환 형님의 혈족을 끌어들였다.”

“맙소사!”

“가문의 분가들에게 빨리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

“당장 파발을 써서 분가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양심성이 퍼트릴 헛소문에 동조하는 분가를 줄이기 위한 조처를 끝낸 후 구민신창과 우리 일행은 쾌속선을 타고 장강을 거슬러 갔다.

그렇게 어둠에 물든 장강 위를 네 시진 동안 달려 양주 남단에 닿을 수 있었다.

세 명의 천문위와 다섯의 초극 고수, 열여섯의 절정 무인으로 이루어진 일행인지라 어둠에 녹아들어 사람 눈을 피해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창양가 장원 안으로 숨어드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림의 오대세가이자 정도에서 이름 높은 팔가의 하나답게 신창양가의 장원 방비는 철벽같이 튼튼했지만, 우리를 이끄는 자는 구민신창이었다.

그는 신창양가의 전대 가주로 장원과 외부를 은밀히 연결하는 비밀 통로 대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장원의 방비가 튼튼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그렇게 신창양가 장원 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이 자리 잡은 곳은 구민신창의 거처.

정원에는 두 천문위가 부딪쳤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금 심성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가?”

구민신창이 나를 보며 물었다.

- 농꾼.

내 부름에 농꾼 녀석이 즉각 응답했다. 눈앞으로 장원의 단면도가 펼쳐졌다.

“흠.”

양심성은 지금 홀로 있는 것이 아닌 상황이었다. 양심성 주위에 양가의 중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둘째 아드님은 지금 양가의 중진들과 모여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는 듯합니다.”

가주가 갑자기 죽었다. 권력 구도를 개편해야 할 상황이니 논의할 것이 많은 게 당연했다.

“조용히 처리하기는 그른 것 같군.”

구민신창은 둘째 아들을 조용히 잡아다 추궁하려 했던 듯하다.

“녀석에게 안내하게.”

구민신창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따라오시지요.”

북경에 자리 잡은 자금성도 가로 세로만 따지면 각기 1km를 넘지 않는다. 신창양가의 본가 장원이 크다고 해 봐야 한쪽 면만 따지면 백 장은 넘지만 이백 장이 되기에는 아주 모자라다.

대충 400m 내외? 거기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장원의 심처다. 무슨 소리냐고?

= 최단거리 방향 잡아.

직선거리, 최단거리로 움직이면 최대 300m 정도만 내달리면 장원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이다.

- 예, 리퍼.

농꾼의 대답과 동시에 경로가 그려진다. 땅 위로 움직이는 경로가 아니라 건물 위, 지붕 위를 밟고 달리는 경로.

바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런 나를 따라 세 명의 천문위와 초극 고수 넷, 절정 무인 열여섯이 뒤를 따랐다.

그렇게 다수의 인원들이 대놓고 내달리는데 번초들의 눈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적?”

“적습이다!”

하지만 번초들의 경고성이 그렇게 울려 퍼질 때에 구민신창은 이미 사고 친 둘째 아들 코앞에 당도하고 있었다.

“심성! 네 이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