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절강행(52)
= 응 시리즈가 찍은 영상 있지? 무공 패턴 분석해서 진짜 양가창법인지 확인해.
- 예, 리퍼.
손가락을 움직여 바로 농꾼에게 분석을 명했다.
“양가창법이었다고?”
치료가 끝난 진혜예에게 붙어 있던 진우탁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째 사고 칠 분위기다.
“예.”
경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이야기는 좀 있다 하지요.”
일단 둘의 입을 막았다. 대로변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때 일단의 무인들이 몰려왔다. 영파 부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벽해문(壁海門)의 문도들이다.
“진 사제,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나서는 것이 벽해문주 노우빈. 성 내에 갑자기 울려 퍼진 사자후에 담긴 심후한 공력에 놀라 직접 달려온 듯했다.
“멸왜단 뇌응대주 이도연이 벽해문의 노 문주님을 뵙습니다.”
진우탁이 뭐라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섰다.
“뇌응대 부대주들이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같은 영파에 자리 잡은 동도로 도움을 청합니다.”
“내가….”
벽해문주가 뭐라 말을 하기 전에 다급히 전음을 날렸다.
- 문주님, 사람 많은 곳에서 이야기할 것이 아닙니다.
“일단 부상자들부터 옮길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러세.”
내 말에 벽해문주 노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뇌응대 부대주 셋은 들것에 실려서, 진우탁과 나는 두 발로 걸어서 벽해문으로 향했다.
“괜찮냐?”
들것으로 옮겨지는 화인천 곁으로 가서 물었다.
“단주께서 치료를 했지만 어디 의원의 손길만 하겠습니까?”
들것에 누운 화인천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염왕적의라 불리는 내가 다시 봐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곁에서 걸으며 화인천의 상처를 살폈다. 당한 곳은 단전이었다. 무인이 행한 치료답게 혈도를 찍어 출혈을 막고 상처에 금창약을 뿌린 게 다였다.
내공의 중심인 단전에 제대로 창을 맞았으니 이런 단순한 치료에 불안할 만했다.
“단전을 당했군.”
“예.”
= 화인천의 상태는?
- 마*카*투 감마의 의료 기능은 문제없습니다.
제대로 치료되고 있다는 소리다.
“이삼 일 정양하면 나을 상처다.”
“공력을 모을 수가 없어요.”
화인천의 말에 그의 손을 잡고 기맥을 살폈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공력에 자연스레 대응하는 힘이 느껴졌다. 내공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공 운용의 중심인 단전을 다쳐서 힘을 마음대로 쓰지 못할 뿐.
“공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전이 상해서 그래.”
“단전을 상했는데 이삼 일 정양하면 나을 것이라고요?”
“예단심공에는 없는 효용이지?”
불안해하는 화인천을 향해 씨익 웃어 줬다.
“예?”
잠시 어리둥절하던 화인천이지만.
“아아!”
곧 내 말의 행간을 읽고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녀석은 마*카*투 감마에 의한 치료를 귀원공이 가진 공능으로 이해할 것이다.
- 네가 보기에도 습격자가 쓴 무공이 양가창법이었냐?
전음으로 물었다. 화인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도 온전한 그 수법이었습니다.”
명색이 초극 고수인 녀석이다. 녀석도 양가창법이라 봤다면 습격자는 진짜 양가창법을 쓴 것이다. 그것도 초극 고수를 제압할 정도로 제대로!
- 무공 패턴 분석 결과, 양가창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거기에 농꾼이 쐐기를 박았다.
진짜 신창양가에서 진혜예를 노렸다고?
“하아.”
진짜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신창양가가 멸왜단을 노릴 이유가 있나?
벽해문에 도착해 진우탁과 함께 벽해문주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누군지 짐작이 가나?”
벽해문주도 물었다. 그도 눈이 있기에 오는 도중 부대주들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경철운과 화인천의 상처는 제압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진혜예의 상처는 죽이기 위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진혜예를 목표로 한 습격.
진우탁을 향한 수작이라 짐작을 한 것이다.
“상대가 양가창법을 썼답디다.”
진우탁이 조용히 답했다.
“신창양가? 신창양가가 자네를 노릴 이유가 있나?”
개인적 원한이 있느냐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개인 간의 원한 쪽으로 생각을 안 해봤다.
“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창양가는 아닐 수도 있지요!”
빠드득!
진우탁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났다.
“단주, 속단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창양가는 정도 팔가에 속하고, 오대세가의 일좌를 차지하는 명문이다. 빡대가리들의 모임이 아니다.
설마 개인적 원한이 있다 해도 이렇게 섣불리 건들 만큼 진우탁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천문위의 고수이고, 공적으로는 절강 무림 항왜의 핵심인 멸왜단 단주다.
명분 없이 진우탁에게 시비를 걸면 멸왜단이 움직이고, 보타산 속가가 움직이고, 결국에는 절강 무림 전체가 움직인다는 것을 신창양가에서 모를 리 없다.
“다른 세력의 수작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예.”
내 대답에 진우탁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스스로 믿지 못하는 소리를 하는구나. 너도 알다시피 화인천은 나이가 어리지만 초극 고수다. 그런 화인천을 손쉽게 제압한 무공이 본신의 무공이 아닐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 생각하느냐?”
단주는 경철운이 말하기 전에 이미 화인천에게 습격자의 무공에 대해 확인을 했다는 소리다.
초극 고수를 본신의 무공이 아닌 흉내로 제압할 수 있으려면 그보다 훨씬 더 고수여야 한다.
“진 사제, 천문위의 고수면 가능하지 않겠나?”
벽해문주가 의견을 내놓았다.
“습격자가 천문위는 아니었습니다.”
진우탁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봤을 때도 천문위는 아니지요.”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천문위라면 진우탁이 달려온다고 그렇게 놀라 내뺄 필요가 없었다. 천문위라면 진혜예를 확인 사살하고 몸을 뺄 여유가 충분했다.
진우탁이 앞뒤 안 가리고 날뛰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천문위라면, 그 자리에서 진혜예의 목을 잘라 던져 줬을 것이다.
“그럼 진짜로?”
벽해문주가 인상을 썼다.
“매를 붙였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지요.”
진우탁이 분노에 눈이 멀어 홀로 튀어 나가는 것은 막아야 했다.
“기다려라?”
“예. 이게 진짜 신창양가의 수작이라면 단주 홀로 나서시면 안 됩니다.”
신창양가가 진우탁을 노리고 수작을 부린 것이라면, 진우탁이 홀로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현 상황에서 진우탁을 잃는 것은 나에게 좋지 않았다.
멸왜단의 단주가 바뀐다면 누가 되든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진우탁처럼 쉽게 써먹을 수 없게 된다.
그뿐이랴. 현 멸왜단의 가장 중요한 전력은 매다. 그리고 그 매를 공급하는 것은 나. 새로운 멸왜단주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나를 붙드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 진우탁이 잘못되면 까딱하다가는 멸왜단에 평생 발목 잡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자네가 매 한 마리 빌려 주면 될듯한데?”
진우탁과 응 시리즈라…. 천문위의 무력과 응 시리즈의 실시간 탐색 능력이 합쳐지면 신창양가가 아무리 오대세가라 해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더욱더 신창양가의 짓거리가 아닌 것 같다. 육가장의 사태를 보고 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면 매가 고수의 눈이 되었을 때 유격전에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신창양가의 짓으로 밝혀지면 빌려드리지요.”
일단 시간을 벌고 진상을 파악해야 했다.
“놈의 지난 행적을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게.”
내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벽해문주가 하는 말이다.
벽해문에서 나오기 무섭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 놈은?
- 영파 부도를 벗어나 북상 중입니다.
영파부에서 신창양가가 자리 잡은 양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다를 건너 가흥부로 넘어가 운하를 타는 것이다.
= 영파 부도 내에서 놈의 이전 행적을 뽑아!
놈의 행적을 굳이 수소문할 필요는 없었다. 등록되지 않은 초극 고수가 감시 영역 안에 들어오면 일단 그 행적을 기록하고 보는 것이 응 시리즈다.
- 예, 리퍼.
잠시간 화면이 휘리릭 흐른다 싶더니 눈앞으로 놈의 이전 행적이 떠올랐다.
놈이 영파 부도에 들어선 것은 닷새 전. 혼자가 아니었다. 스물일곱이나 되는 일행이 있었다.
그리고 놈과 일행이 지낸 곳은 객잔이 아닌 장원이다.
- 리퍼, 추적 대상과 영파 부도로 같이 들어온 일행들이 문제의 장원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만.
“뭐?”
***
“그 망할 도련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예, 조장.”
“빌어먹을, 위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홍안자(紅顔者)를 우리랑 동행시킨 거야?”
“다 경험 아닙니까?”
“직계 혈족의 도련님이다. 우리 쪽 일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우리들 인생 아닙니까.”
“그건 그렇고, 밖의 일은? 무슨 일인지 알아봤어?”
“예, 멸왜단주 진우탁이 벌인 일이랍니다.”
“멸왜단주가 왜?”
“어떤 미친놈이 멸왜단 뇌응대 부대주들을 습격했다는군요. 그걸 막기 위해 그랬답니다.”
“뇌응대 부대주들이라면 혈적검, 웅면호리, 추왜검랑이잖아! 다들 만만찮은 절정 무인들로 그 셋이 연수한다면 어지간한 초극도 상대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인데, 멸왜단주까지 나서야 할 지경까지 되었단 말이야?”
“셋 다 중상을 입고 실려 갔답니다.”
“그 미친놈은 어디의 누구래?”
“도망쳤으니 모르지요.”
“멸왜단주 진우탁이 있는데 도망쳤다고?”
“예.”
“젠장, 애들 단속 똑바로 해. 재수 없이 엮였다가는 피 보기 딱 좋은 상황이다.”
“예!”
“젠장, 이런 상황에 이 망할 애새끼는….”
“무슨 일 있겠습니까? 명색이 직계 혈족인데?”
“신분을 밝히면 그 애새끼는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그 덕에 우리가 들통나면?”
“우리가 들통나면 윗분들에게 욕 좀 먹겠지요.”
“욕만 들을까? 감봉이라고 감봉!”
꿈틀이가 전해주는 대화 내용상으로는 그들은 ‘습격자’, ‘도련님’ 혹은 ‘애새끼’라 지칭되는 자가 행한 짓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뭐, 상관없으려나?”
동행이 한 짓은 몰라도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자들이다.
“스물일곱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잡아들여!”
내 명에 뇌응대원들이 어둠 속을 내달려 장원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반 각 정도 흘렀을까?
장원 정문이 열리고 하나의 인영이 달려왔다.
“제압 완료했습니다. 대주.”
고장명이었다.
“그런데 저쪽 대응이 좀 이상합니다.”
“이상해? 뭐가?”
고장명의 말에 내가 물었다.
“제압하는데 전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주하려는 시도도 없었습니다.”
꿈틀이로 들은 그들의 마지막 대화 내용도 이상했다. 보통 이렇게 타 방파의 세력권에 숨어들었다 사로잡히면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욕 듣고 감봉당할 걱정을 했다.
“안내해.”
“따라오시지요.”
고장명이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장원의 멋들어진 정원 맨바닥에 놈들을 굴비 엮듯 묶어서 꿇어 앉혀 놓았다.
“닷새 전 오시 초, 영파 부도의 북쪽 성문을 통과해서 들어온 스물여덟, 맞나?”
내 말에 그들의 눈에 감탄이 서렸다.
“왜구들 때문에 감시가 철통이라더니! 처음부터 들켰던 건가?”
대답하는 것은 꿈틀이로 들은 조장의 목소리였다.
“소속.”
“벽해문주님을 불러 주시겠소? 그분에게 우리 소속을….”
“난 벽해문도가 아니라 멸왜단 뇌응대주다.”
내 말에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
“우리는 저녁에 있었던 그 일과 관련이 없소!”
“소속.”
“신창양가 정안각(淨眼閣) 소속의 탐안(探眼) 팔 조장이오. 우리가 영파부로 온 이유는….”
바로 자신의 정체를 실토한다.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이 빌어먹을 양가 놈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