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절강행(50)
거처에서 늘어져 있자니 화인천이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형님, 본가에서 허락했습니다.”
내 물음에 화인천이 환한 얼굴로 답했다.
“정말 빨리도 허가하는구나.”
내 투덜거림에 화인천이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육가장과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화인천이 자신의 문제를 내게 상담했다. 철검화가의 내공심법인 예단심공과 궁합이 맞지 않는 체질이라 강기를 운용하면 내상을 입는다. 그 해결 방법이 없느냐는 것이다.
고수들의 기맥을 살펴 뭔가를 얻으려 하는 내 행동과 ‘염왕적의’라 불리는 내 의술에서 뭔가 기대를 하는 것이다.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몸에 맞지 않는 심법으로 초극이 되었다. 몸에 맞는 심법을 익힌다면 향후 천문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예.”
“네 문제를 내가 해결한다는 보장은 없다.”
나노 머신인 농꾼도 딱히 수가 없는 것이 내공 문제다. 아예 공력을 측정하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문의 심법을 내게 공개하겠다는 거냐?”
“본가에서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절강 땅에 명성 높은 벽력응주가 예단심공을 탐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예단심공은 철검화가의 혈족들에게 맞춰진 심법. 내가 익힌다고 화 씨들 만한 성취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초극 고수. 거기에 원하기만 한다면 한 세대에 최소 하나의 천문위를 배출해내는 보타산의 내공을 배울 수 있다.
그런 내가 굳이 보타산의 내공보다 격이 떨어지는 예단심공을 탐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
뭐 내가 이번 일로 얻고자 하는 것은 확실히 예단심공이 아니긴 하다.
“만약 일이 잘못됐다고 나 원망하는 거 아니지?”
“제 체질에 맞는 내공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녀석과 함께 거처에 딸린 연무장으로 향했다.
“줘.”
연무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내가 손을 내밀자 화인천이 미리 준비해 놓은 서책을 건넸다. 철검화가의 예단심공이다.
“읽어 볼 동안 너는 이거 먹고 운기나 해라.”
나도 준비한 물건을 내놓았다.
“이건?”
내가 내미는 목함에 화인천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가진 영약이 뭐 있겠냐? 소환단이다.”
“형님, 감사합니다.”
내 말에 화인천은 환한 얼굴이 되어 넙죽 받는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나중에 받아 낼 거에 다 들어가 있는 거다.”
화인천이 소환단을 품 안에 챙기는 것을 보고 한마디 한다.
“지금 먹어.”
“전력으로 무공을 펼치면 내상을 입을 텐데, 그때 먹는 것이 더….”
“화인천!”
“예, 형님.”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시키면 좀 시키는 대로 해.”
“옙!”
내가 인상을 쓰자 화인천이 대답을 하며 목함을 열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소환단을 삼켰다.
- 마*카*투 감마 활성화 시작합니다.
소환단에는 경철운을 치료할 때 썼던 마*카*투 감마가 들어가 있었다.
= 마*카*투 감마는 무슨. 재활용 알파라 해라.
저거 도대체 몇 번을 재활용하는 거지? 항주 흑도 때 네 사람을 거쳐서 경철운까지 거쳤으니….
- 예, 리퍼. 마*카*투 감마를 재활용 알파로….
= 농담이거든.
- 예, 리퍼.
예단심공을 훑어보는데 어째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아는 척 흉내를 내려면 읽어 보기는 해야 했다.
반 시진 뒤 운기를 마친 화인천이 눈을 떴다.
“어때?”
“영약이 좋긴 좋네요? 약간이지만 공력이 늘었어요.”
내 물음에 화인천이 히죽 웃었다.
“철검화가는 명색이 세가인데, 너한테 영약 한 번 안 먹였단 말이냐?”
영약 처음 먹는 듯한 반응에 나오는 말이다.
“소환단처럼 좋은 건 처음이지요.”
“철검화가 정도라면 소환단을 못 구할 리도 없었을 텐데?”
“저는 굳이 먹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재수 없는 천재 놈.”
안 먹어도 공력 잘만 불렸다는 말에 자연스레 짜증이 났다.
“기맥 좀 살피자.”
내 말에 화인천이 팔을 내밀었다. 나는 진맥하는 척 녀석의 팔을 잠시 잡고 있었다.
“예단심공으로 십자철검 펼쳐 봐. 전력으로! 할 수 없을 때까지!”
내가 팔을 놓으며 말하자 화인천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철검화가의 십자철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파라라라랏!
열 번을 쑤셔서 꿰뚫는다는 검법답다. 살벌한 찌르기의 향연이 쾌속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끝에 번뜩이는 검강.
“대단한데?”
찌르기로 초극에 오른 흑도의 거마인 혈검보다 한 수 위다.
농꾼이 활성화 되기 전의 나였다면, 그 시절이었다면 사부와 함께 덤벼들었어도 이길 희망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나가면서도 뒤로 물러나면서도 찔러대는 검격은 멈추지 않는다. 검 끝이 흔들리며 어디를 찌를지 쉽게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며 번개같이 찌른다.
진짜 찌르는 것 하나는 확실한 검법이다. 물론, 이름이 ‘십자철검’이라 하여 검식이 찌르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베고 휘두르는 동작은 모두 찌르기를 위한 포석. 검격에 담긴 힘과 기세가 다르다.
그렇게 이각 동안 허공을 찔러대던 검이 멈췄다. 안색이 파리하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심각하네.”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허공에 칼질 좀 했다고 내상이라니 말이다.
화인천이 검을 거두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잠시 기다려.”
운기에 들어서려는 녀석을 멈추게 하고서는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진맥하는 척을 한다.
- 마*카*투 감마로부터 관련 데이터를 모두 넘겨받았습니다.
벌레들을 이용한 음파 통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용량을 순식간에 전달받았다.
“이제 운기에 들어가서 내상을 다스려.”
- 마*카*투 감마의 의료 기능을 활성화시키겠습니까?
= 일부러 잠가 둔 거니 지금은 놔둬.
여차하면 마*카*투 감마의 의료 기능을 귀원공이 가진 치료 효과로 사기를 쳐야 할지도 모르니 하는 짓이다.
화인천이 운기에서 깨어난 것은 반 시진 뒤였다.
“다시 강기를 쓸 수는 있냐?”
화인천이 눈을 뜨기 무섭게 물었다. 화인천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무리예요.”
“초극 고수라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군.”
이 각밖에 싸우지 못하는 초극 고수라니, 강기를 사용한다 해도 초극 고수라 불러 주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먼저 먹지 말고 지금 먹었어야 하는데….”
화인천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환단을 말하는 것이다.
“잠시 빌린다.”
나는 화인천의 검을 뽑아 들었다.
= 녀석의 데이터를 재현한다.
녀석의 몸속에서 일어난 생리 반응이 내 몸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그 반응을 따라 기운이 흐르고 몸이 움직인다.
우우웅!
검이 강기를 토하며 허공을 찌른다. 내가 펼치는 것은 십자철검. 그리고 내 몸을 움직이는 힘은 예단심공의 흐름이다.
화인천의 생리 반응이 그대로 적용되는 탓에 정상적이지 않은 반응 또한 재현된다.
“큭!”
그러니 내상을 입고 검을 멈출 수밖에 없다.
“내상을 입은 겁니까?”
죽은피를 뱉어내는 내 모습에 화인천이 놀란 얼굴이 되어 물었다.
“조용히.”
화인천의 입을 닥치게 만들고 심호흡을 했다. 내상은 이미 농꾼이 나노 머신을 움직여 치료를 시작했다.
“후우, 후.”
호흡을 가다듬으며 스스로 만든 내상을 살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내상을 불러온 생리 반응을 찾아내고 그 반응들을, 그 감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다시 한 번 더.”
검을 들고 감각을 따라 공력을 움직였다. 귀원공의 공력이 예단심공의 운기법을 따라 흐르고, 검이 움직였다.
화인천의 생리 반응을 재현하지 않으니 막히는 부분이 없다.
그렇게 이 각 정도 감각에 의존해 십자철검을 휘둘렀다.
“흠, 이 정도면 가능하겠군.”
검을 멈추고 화인천을 바라보았다.
“어떠냐?”
“‘하늘 밖에 하늘’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저 스스로 제법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연 형님은 저따위가 비할 바가 아니군요. 어떻게 본가의 내공을 이리 단숨에….”
“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익힌 내공이 특별한 거다.”
“어쨌든 대단한 일 아닙니까?”
화인천이 초롱초롱한 눈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에 가득 찬 그런 눈동자다.
“예단심공과 네가 안 맞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 같다.”
“예?”
“하지만 네가 봤듯, 내가 익힌 내공으로 펼친 십자철검은 예단심공으로 펼친 십자철검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익힌 내공이 예단심공과 흡사한 것은 아니다. 뭐라 할까? 원래 별 특성이 없는 내공이라….”
내가 익힌 내공인 귀원공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정도 팔가니 오대세가니 할 정도로 아주 대단한 세가는 아니지만, 한 지역의 패자로 자처할 정도의 가문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은 화인천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다.
“형님 말씀은 제게 형님이 익힌 심법을 전수해 주겠다는 그런 뜻입니까?”
“그래.”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원하시기에 제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화인천이 물었다.
“사부께서 시작하시고 나에게 이어져서 아직도 다듬어지고 있는 내공심법이다. 몸에 맞지도 않는 공력으로 초극이 된 천재의 손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다고 할까?”
이 자식은 스물이란 어린 나이로 초극에 오른 천재 아닌가. 짧은 시간에 귀원공을 대성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 데이터로….
“귀원공 완성을 원하는 형님의 숙원에 도움이 되는 일이군요?”
“큰 도움이 되지.”
“그럼 단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라, 제가 뭔가를 요구해도 되는 일이라는 말인데요?”
“소환단이 스무 개 정도 남았는데 몇 알 주랴?”
백 알의 소환단 중 내가 초극이 되기 위해 사용한 것과 지금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사제 녀석을 위해 사부님께 보냈다.
농꾼이 있기에 내상을 위한 약이 따로 필요 없는 나니, 지금 가진 것들은 공력을 급히 회복해야 할 때를 대비한 것들이다. 게다가 진우탁을 통한다면 보타산 인맥으로 다시 구할 수 있는 것이 소환단이다. 그러니 화인천이 원한다면 모두 넘겨 줄 수도 있었다.
“허, 진짜로 저만 득 보는 일이 아니군요!”
“그래. 그러니 어쩔래?”
“하지요.”
“잘 풀려서 가주되면 말이다. 나중에 내가 요청하면 철검화가의 힘을 한 번은 빌려 주는 거다?”
“예.”
“외워라.”
나는 녀석에게 귀원공 구결을 불러 주었다.
원래 재능인지 재활용 알, 아니 마*카*투 감마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두 번 불러 줄 필요가 없었다.
“예단심공 공력을 귀원공 공력으로 전환하는 데 며칠 정도 걸릴까요?”
초극 고수의 정확한 데이터 따위 있을 리 없다.
“열흘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당시 내가 가진 공력과 지금 화인천의 공력을 비교해서 대충 추측해서 말했다.
“열흘이라…. 뇌응대의 일이 문제네요.”
어쭈, 이놈 봐라?
“철운이 놈 누워 있었을 때 네가 고생했잖아. 누님도 온주부에서 원수들 잡은 뒤 일 안 했고. 그러니 그 두 명에게 맡겨!”
부대주의 일은 부대주들이 알아서 해야지. 어디 대주에게 떠넘기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