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절강행(46)
금선방의 항주 출정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육가장에서 내려온 경계령에 이미 금선방의 핵심전력들이 총타에 모여 있었던 탓이다.
항주 출정의 인원들은 정예들로만 꾸려졌다. 금선방주를 비롯한 초극이 다섯, 절정이 서른다섯, 일류 무인이 일백오십이었다.
일류 무인들을 여섯 개 조로 편성했다. 스물다섯의 일류 무인을 절정인 조장, 부조장이 이끈다.
그렇게 나눠진 조에 절정 넷과 초극 하나를 포함시켰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 조에 세 명의 절정 무인밖에 배정되지 않지만, 그 조에 우리가 포함되면 된다.
합공을 익힌 육가의 천행삼도다. 이 전력을 나누는 것은 바보짓. 그런 탓에 가장 강력한 전력인 천행삼도가 최선두의 돌격을 맡기로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금선방의 전력들은 해 떨어지기 무섭게 항주로 출발했다.
가흥 부도에서 항주 부도까지 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운하를 이용하는 것. 하지만 운하를 통한 이동은 관의 눈을 피할 수 없기에 육로를 이용해야 했다.
관도를 따라 내달리는 것이 아닌, 농꾼이 그려 주는 경로를 따라 내달린다.
“과연 육가장이군, 빈틈없이 준비했어.”
금선방주의 말이다. 인적이 없으니 길도 없다. 그런데 주저 없이 길을 찾아가는 내 행동을 보고 어림짐작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가장 본가의 전력들은 어디로 움직이는 건가?”
금선방주가 물었다.
“머릿수가 많아지면 이목을 피하기 힘들기에 일부는 호주부를 가로지르는 육로로 움직이고 있고, 일부는 남직례의 상단으로 위장해 호주 쪽 운하로 항주에 미리 들어가 있을 겁니다.”
“혹시라도 그 빌어먹을 매가 항주에 남아 있다면 먼저 들어가 있는 쪽은 위험하지 않겠는가?”
“벽력응주의 빌어먹을 매가 구분하는 것은 초극 고수지요. 정예들만 먼저 들여보내 놓은 것입니다. 육가장의 초극들은 지금 호주 방면을 통해 합류하고 있을 겁니다.”
= 저 작자, 뭔가 눈치 챈 것 같냐?
그렇게 대답을 해주는 와중에 손가락을 까닥여 농꾼에게 금선방주의 반응을 물었다.
- 불안 또는 의심 반응은 검출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길목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이 보입니다.
“방주, 이쪽 경로를 밀수꾼들이 사용할까 우려하시는 겁니까?”
혹시나 해서 떠본다.
“운하를 관리하는 한 축으로 조금 걱정이 되는군.”
금선방의 수입원 중 하나가 운하에서 통행료를 걷는 것이다.
“일이 끝나면 경로를 표시한 지도를 넘기지요.”
“고맙네.”
금선방주가 환하게 웃었다.
금선방 총타를 나선 지 두 시진 반 만에 항주 북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류 무인들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히 속도를 조절해야 했던 것이다.
눈앞의 강을 넘으면 항주 부도가 나온다.
“이각 동안 수하들의 체력을 회복시키지요.”
그렇게 일류 무인들에게 한 차례 운기할 시간을 줬다.
“강을 넘고 신호를 보내면 북문이 열릴 겁니다.”
“항주 관부를 포섭한 건가?”
“북문의 수문장을 회유한 것이지요.”
“우리 목표는 어딘가?”
“항주 도박장을 휘어잡고 있는 패선방 총타입니다. 다른 곳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거기 초극 전력이 다섯이던가?”
“항주 칠선의 호장 공청완을 포함하면 여섯이지요.”
“공청완이라 해봐야 천행삼도에 비하면 저승에 한 발짝 걸친 늙다리일 뿐 아닌가.”
금선방주의 입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금선방은 육가에서 보낸 천행삼도까지 초극 고수가 여덟이니, 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지요.”
그렇게 서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자니 일류 무인들의 운기가 끝났다.
금선방 인원들이 강 쪽으로 움직이자 나루터 쪽에서 하나의 인영이 몸을 일으켰다.
“천지사방은?”
그쪽이 이 편을 향해 던지는 질문에 내가 답했다.
“육가천하!”
인영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혹 외줄 못 타는 사람이 있습니까?”
인영이 내게 물었다.
“없다.”
일류 무인 정도 되면 그 정도 균형 감각은 당연히 가져야 했다.
내 대답에 인영이 나루터 쪽으로 가더니 나루터 한쪽에 박아 놓은 다섯 개의 도르래를 감았다.
그르륵, 그륵.
굵은 밧줄들이 도르래의 움직임에 따라 말려들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넘어가시면 됩니다.”
강폭은 삼십 장 남짓. 다섯 개의 외줄 위로 인영들이 줄을 이어 내달렸다.
수하들이 그렇게 외줄 위를 달려 강을 넘을 때 초극 고수들은 등평도수로 강을 넘었다.
모두가 그렇게 강을 건너자 강 너머 나루터에서 횃불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횃불이 크게 원을 그렸다.
드르륵.
성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갑시다.”
나와 천행삼도가 앞장서고 금선방의 무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목표는 패선방. 지금부터 패선방을 향해 달린다.”
항주 부도의 성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그리 지시하고는 앞장서 내달렸다. 자연스레 공격조끼리 뭉쳐진다.
밤이 깊었다지만 항주는 소주와 더불어 중원 최대의 향락 도시.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삼십이 넘는 떼거리들 여럿이 대로를 질주하는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
“저것들 뭐야?”
“무림인들이다!”
“아니 어디의 무림인들인데 저 지랄이야?”
“뭔 일 있나?”
“흑도끼리 싸움이 붙은 건가?”
“항주 흑도는 연맹으로 묶인 거 아니었어?”
주변에서 한마디씩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무시하고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를 내달리자 곧 패선방이 관리하는 구역에 들어섰다. 도박장이 모여 있는 거리.
그 중앙에 패선방 총타가 들어서 있다.
“저것들 뭐냐?”
“설마, 적?”
“적습이다!”
패선방 졸자들이 내달리는 금선방 무리들을 보고 소란을 떨었지만, 나를 비롯한 금선방 무리들의 발은 끊임없이 바닥을 박차고 있었다.
“패선방과 육가장의 싸움이다! 함부로 나서는 것들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게다!”
선두에서 달리며 칼을 뽑아 든다.
우우웅!
그리고 칼에 강기를 일으킨다.
“맙소사, 초극 고수!”
“허!”
“육가장, 육가장에서 쳐들어 왔다!”
내가 선두에서 강기를 일으키고 내달리자 거리에 배치된 패선방 졸자들은 감히 앞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도박장 거리를 관통한 우리는 곧장 패선방 총타에 당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을 멈추지는 않는다.
“타합!”
콰콰쾅!
바로 총타 정문을 박살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끝장을 내자!”
“오늘 패선방이 문 닫는 날이다!”
천행삼도의 뒤를 따르는 공격조가 기세를 올리며 외쳤다.
앞을 막는 문이란 문은 다 박살내며 안으로 치달렸다. 그렇게 패선방 내전 깊숙한 곳에 도착해서야 발을 멈췄다.
뒤쪽에서 금속성과 고함성, 비명이 울리는 것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스물다섯의 일류 무인과 조장, 부조장에 절정 셋. 그렇게 서른의 인원이 빠짐없이 우리를, 천행삼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쪽이 소란스러운 데 비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이제 끝내지요.”
“그러지. 둘째야.”
내 말에 평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제자를 불렀다.
“예.”
대답과 동시에 육천월의 탈을 쓴 삭인의 둘째 제자가 바닥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다섯 절정 무인을 넘어 스물다섯 일류 무인들의 무리 위로 떨어졌다.
“아아악!”
“크악!”
그리고 시작되는 살육.
“도대체….”
번쩍, 파지지지직!
금선방 소속의 절정 무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내 손에서 튀어 나간 벽력이 그들을 휩쓸었다.
초극 고수도 훅 가게 만드는 전격이 기습적으로 쏟아지니 절정 무인 다섯으로는 어떻게 견딜 방법이 없었다. 그대로 전격을 얻어맞고 저세상으로 가는 수밖에.
“도와주지 않아도 되려나?”
육천일의 얼굴로 평현이 소란스러운 내전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전황은?
- 패선방에 몰려 있는 항주 흑도의 초극 고수가 열다섯입니다.
초극 고수 전력이 금선방의 세 배나 된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평 노선배. 이 얼굴로 가봐야 일만 망칩니다.”
그러니 평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긴 그렇지.”
내 말에 평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물다섯, 빠짐없이 처리했습니다. 사부님.”
정중히 보고하는 평현의 둘째 제자의 발밑으로 금선방 일류 무인 스물다섯이 흘린 피가 흥건했다.
“평가야 수고했다.”
내전 건물 한쪽에서 공청완이 걸어 나왔다.
“벽력응주 자네도 수고했네. 안에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겠나?”
밖에 소란 따위 알 바 없다는 태도로 공청완이 우리를 청했다.
***
“송강부 쪽에 보낸 지원대에서 연락은?”
“아직 없습니다.”
육천경의 질문에 육천동이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송강부는 물론, 가흥부 쪽에서도 소식이 없었다.
“심가장이랑 연락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심가장이 당했을 수도 있다는 건데….”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벽력응주의 매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자가 부리는 매가 전서구들을 차단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빌어먹을 놈.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람.”
사천 동생의 말에 육천경은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급보입니다.”
수하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어디서 온 소식이냐?”
육천동이 물었다.
“항주 흑도가, 공식적으로 연맹을 체결했습니다!”
“그놈들 원래 한통속이었잖아?”
수하의 보고에 육천경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뒤이은 말은 심드렁하게 반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항주 흑도 연맹, 항주 흑도련이 본가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그 작자들이 무슨 명목으로!”
육천경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수하를 바라봤다.
“놈들이 보낸 포고문이 있을 것 아닌가. 그걸 주게.”
듣고 있던 육천동이 답답한 듯 수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하가 항주 흑도련이 보낸 포고문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금선방이 본가의 명을 받고 항주를 공격했다니!”
“뭐? 가흥부의 금선방이 항주를 공격해? 무슨 개소리야? 거기는 항주 놈들 도발에 경계령을 내렸던 곳인데?”
천행삼도까지 보냈다. 금선방주가 미쳐서 항주로 쳐들어가려 해도 천행삼도가 막아설 것이다.
“당장 금선방에 연락해. 아니, 금선방주를 호출해!”
육천동은 사촌 형의 말을 못들은 듯 수하에게 명을 내렸다.
수하가 튀어 나가자 육천경이 육천동의 어깨를 잡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주 놈들이 하는 개소리를 그대로 믿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항주 놈들이 이 상황에서 전쟁을 입에 올리는 이유가 있을 것 아냐!”
“상황을 파악하면 그 이유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둘이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자니 집무실 밖에서 수하 하나가 튀어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이번에는 또 뭔데? 멸왜단 놈들이 전쟁 선포라도 한 것이냐?”
육천경의 역정에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알고 계셨습니까?”
“뭐?”
육천경의 눈이 커졌다.
“멸왜단도 본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단 말이냐!”
“난장판이네. 난장판.”
서생원 시리즈가 보내오는 실시간 영상에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