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절강행(41)
콰릉! 콰르릉! 콰쾅!
연이어 벽력을 후려쳤다. 전격이 좁은 통로를 채우며 목표들을 향해 뻗어 갔지만.
“젠장!”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초극 고수 넷을 단숨에 잡을 셈으로 배터리의 모든 전력을 때려 부었다. 순식간에 스무 번의 벽력을 날렸는데 쓰러진 놈은 하나다.
두 번째로 벽력에 처맞았어야 할 놈이 최초로 전격을 맞고 전투 불능이 된 놈을 방패처럼 들어 올려 내 벽력을 다 막은 것이다.
“벽력?”
“벽력응주, 뇌응대주다!”
벽력을 뿜어낸 나를 보고 뒤의 두 놈이 바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걸 그냥 두고 보지는 않는다. 바로 바닥을 박차며 놈들과 거리를 단숨에 줄이며 칼을 휘둘렀다.
지하의 비밀 통로는 폭이 석 자를 살짝 넘고, 높이는 일곱 자가 될까 하는 좁은 공간. 사람 한 명이 칼을 마음껏 휘두르기도 좁다.
쩌저저저정!
그러니 벼락의 그물로 좁은 통로를 채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벽력을 막기 위해 쓰러진 동료를 방패로 들은 놈은 내 돌진에 뒤로 급히 물러설 수밖에 없고, 녀석의 머리 위를 타 넘은 녀석과 다리 사이로 빠져나온 녀석은 내가 만들어 낸 강기의 그물에 무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다.
카캉, 쾅!
금속성과 굉음이 좁은 통로를 뒤흔들었다.
“크흑!”
“젠장!”
두 명의 초극 칼잡이들이 짜증스런 얼굴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법. 기세를 탔으니 그대로 지르고 나간다.
덮쳐드는 강기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뒤로 몸을 물렸다. 두 놈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맞받기에는 통로가 너무 좁았다.
그래도 초극 고수답게 좁은 통로에서 엉키지 않고 물러났다.
“끼요옷!”
익숙한 기합성과 함께 물러나는 둘이 벽으로 바싹 몸을 붙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튀어 나오는 살벌한 빛의 궤적!
콰콰쾅!
내가 그리는 뇌전의 그물을 찢은 궤적이 이제는 나를 덮쳤다.
일도양단의 기세로 떨어지는 빛무리에 칼을 들어 올리며 퇴보를 밟는다.
쾅!
퇴보로 충격의 상당수를 흘려냈지만 내 몸을 후려친 충격은 그대도 내 몸을 뒤로 밀어낼 정도.
방패로 삼았던 동료 대신 왜도를 든 자가 큰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끼요옷!”
그리고 다시 터지는 요란한 기합. 거기에 나는 스피커 생성이 끝난 왼손을 내세웠다.
끼요올!
좁은 통로를 가득 채우는 호거술의 울림. 그리고 그 울림에 따라 증폭된 강기가 역시 호거술로 증폭된 강기를 맞이한다.
카캉, 쾅, 카쾅!
강기와 강기가 좁은 통로에서 격돌하며 그 위세를 세우니 통로는 미친 듯이 몸을 떨며 천장으로 흙먼지를 토해냈다.
좁은 통로에서 해대는 칼질이라 탁 트인 공간에 비해 그 궤도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해진 칼질에 당할 정도면 초극 고수라 부를 수도 없다.
무슨 소리냐 하면 초식의 승부가 되기 보다는 단순한 힘과 속도의 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승부가 단순해지면 내공이 크게 밀리지 않는 한 내가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약 빨아 만든 근육이 공력까지 빨아들여 강격을 토한다. 몸을 흔드는 충격? 금속이 축적되어 강해지고 무거운 뼈마디가 너끈히 감당한다.
초극에 이른 잘난 공력을 바탕으로 호거술로 뻥튀기한 힘으로 그 격차를 어떻게 견딘다? 나도 초극 고수에 호거술 쓰거든!
끼요올!
콰쾅!
굉음과 함께 왜도를 든 놈의 몸이 뒤로 튕겨 났다. 견디기 힘드니 뒤로 물러난 것이다.
“크하압!”
“타핫!”
놈이 물러나기 무섭게 뒤에 있던 두 놈이 놈을 대신해서 치고 나왔다.
나란히 서기도 좁은 통로, 한 명으로는 힘든 상황. 그 탓인지 놈들은 상하로 나눠서 덤벼들었다.
정상적으로 서서 내게 칼을 휘두르는 놈과 바닥에 드러누워 칼을 휘두르는 놈으로 말이다.
하체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공격에 일단 뒤로 물러났다.
탁 트인 공간에서야 저런 비정상적인 협공 따위 경쾌하게 움직여주는 보법으로 틈을 잡으면 그뿐이지만, 좌우로 운신하기 힘든 이 좁은 통로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길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뿐 아닌가.
하체를 노리는 궤도 따위 뛰어넘으면 그뿐이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으로 선 놈을 밀어내고 누운 놈을 위에서 덮치면 끝.
바닥을 박찼다. 놈이 그리는 궤적을 뛰어넘고 선 놈을 향해 횡격을….
끼요옷!
익숙한 기합과 함께 선 놈의 머리와 어깨너머에서 십수 개의 빛줄기가 덮쳐들었다.
타타타타타탕!
칼을 휘둘러 빛줄기를 지워내자 선 놈의 칼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캉!
일단 막고 벽면을 박차며 뒤로 물러난다.
사사사삭!
바닥에 내려서는 나를 향해 누운 놈이 등으로 미끄러져 왔다. 그리고 내 하체를 향해 정신없이 칼질 한다.
놈 혼자라면 자세를 낮춰 상대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내 상대는 놈 하나가 아니다.
끼요옷!
왜도를 든 놈이 어느새 거리를 줄이고 합류했다.
“하압!”
그리고 선 놈도 마찬가지. 누운 놈이 내 하체를 노리고, 선 놈과 왜도가 교차해 가며 순차적으로 연격을 퍼붓는다.
세 가닥의 도강이 그렇게 연신 나를 노리니 당장 힘으로 찍어 누르기도 힘들다.
일단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 리퍼, 배터리 5% 충전되었습니다.
농꾼이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팍!
바닥을 박차고 크게 뒤로 물러난다. 앞을 보고 뒤로 뛰는 허공에서 도강은 도기가 된다.
내가 물러나는 만큼 놈들도 빠르게 따라붙었다.
파지직!
도기가 전력을 먹고 강기화 하는 순간.
오올!
스피커가 울고.
번쩍!
백색 섬광이 지하 통로를 꽉 채웠다.
끼요옷!
왜도를 든 놈이 호거술을 터트리며 칼을 휘두른다.
독한 새끼! 시력이 날아갔는데도 하던 칼질은 마저 한다는 거냐!
끼요올!
콰쾅!
일단 힘으로 왜도를 든 놈을 뒤로 날려 보내는데, 뒤로 날아가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붉게 충혈되어 있지만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시력을 잃은 놈이 아니었다.
놈은 발이 바닥에 닿기 무섭게 바로 몸을 돌려 반대편 모퉁이로 사라졌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설마 다른 두 놈도….
“비열한!”
“무슨 사술을!”
다행히 남은 두 명은 서고 누운 상태에서 일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갑작스레 시력을 잃어 자기 한 몸 지키기 급급해진 둘을 제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끼요올!
하나씩 힘으로 찍어 누르고 마혈을 제압하면 끝이다.
두 놈을 제압하고는 통로를 따라 움직인다. 통로 한쪽에 벽력을 연달아 맞은 놈이 쓰러져 있었다.
“살아 있냐?”
- 심정지 상태입니다.
혹시나 싶어 물었는데 대답은 역시나. 하긴 초극 고수를 실신시킬 목적의 고전압을 한두 번도 아닌 스무 번이나 맞았는데 살아 있을 리 없다.
쾅! 쿠쾅!
비밀 통로는 여전히 발포음과 탄착 충격에 뒤흔들리고 있었다.
호장우와 불랑기포로 무장한 놈들과의 싸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왜도를 든 놈은?”
- 장원 쪽 출구를 통해 빠져나갔습니다.
내 물음에 농꾼이 놈이 나간 출구를 표시했다. 모퉁이 하나 도니 바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니 여기저기 물건이 쌓여 있는 창고다.
숨어 있을 데가 많은 곳이다. 뒤쫓는 상대를 기습하기 딱 좋은 위치였지만 기습 따위는 없었다.
- 대상이 장원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튀는 수준이다.
“추적은?”
- 꿈틀이 셋을 붙여 놓았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저 끊어진 새끼줄 조각 아니면 실뭉치처럼 보이는 것이 꿈틀이다.
“놈과 접촉하는 자들을 추적할 수 있게 꿈틀이와 벌레들을 넉넉히 보내고. 응3을 감시 모드로 붙여.”
- 예, 리퍼.
이제 호장우를 도와서 남은 놈들 뒤통수를 쳐볼까?
장원 안에 퍼진 꿈틀이를 이용하면 화약 근처에 있는 놈들을 쉽게 폭사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의 정보를 토할 입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시야 한쪽으로 밀어 놓은 장원의 실시간 중계 영상을 확인한다.
원래 열넷의 사수였지만 내가 비밀 통로로 들어가기 전에 꿈틀이로 하나 줄여 열셋의 사수가 남아 있었다. 그중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아홉이다. 꿈틀이로 폭사시킨 놈이 둘이 더 있고….
“이놈들 동료가 잡혔다 싶으면 그냥 죽여 버리네?”
다른 둘은 호장우에게 제압당했다가 동료들이 쏜 포격으로 사망했다.
일단 창고 밖으로 나와서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다. 포격이 집중되는 곳은 호장우 쪽이지만 놈들이 자리 잡은 곳들은 장원 어디라도 포격을 때려 넣을 수 있는 위치들이다.
“남은 놈들을 단숨에 제압한다. 가능하면 사로잡는 쪽으로 계산해.”
내 말에 화면 한쪽에서 열심히 숫자와 그래프들이 요동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티를 한껏 낸 농꾼이 결과를 내놓았다.
- 전원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리 이동이 없는 셋은 한 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자리 이동이 빈번한 여섯은 하나씩 잡아야 합니다.
살아남은 아홉 중 호장우에게 포격을 가하고 있는 놈들은 여섯이다. 그들은 한자리에 앉아 쏴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준비된 포탄을 다 소모하면 바로 다른 자리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남은 셋은 호장우를 공격하기 보다는 장원 전체를 살피고 있었다. 호장우에게 당한 동료 둘을 포격으로 끝장낸 것도 이 셋이다.
“알았다.”
내 대답에 내가 움직여야 할 루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농꾼이 그 셋의 시선을 피해 움직일 수 있는 경로를 잡은 것이다.
쾅! 콰콰쾅! 쾅쾅!
불랑기포의 포격음과 착탄 충격음을 전신으로 들으며 농꾼의 인도를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 건물의 처마 밑이다. 농꾼이 계산해 낸 저격 포인트다.
새총이나 다름없이 생긴 소형 탄궁을 꺼냈다. 그걸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반 자 길이의 수전을 한 움큼 쥔다.
내 눈앞으로 몇 개의 인영이 생성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자세로 소형 탄궁을 들고 있는 모습. 당연히 머리 위에는 순서를 이르는 숫자들이 새겨져 있다.
- 시작합니다. 3, 2, 1.
0이 뜨는 순간 바로 몸을 움직였다. 인영들과 몸을 겹친다.
새로 만든 활시위들은 죄다 인공 근육이라 할 수 있다. 그 탓에 내가 세게 당길 필요가 없다. 그냥 적당히 당겨서 놓으면 된다. 수축은 전기 자극이, 활시위에 내장된 전자석들이 알아서 한다.
핑피피피핑!
내 움직임을 따라 수전들이 허공을 가른다.
총 열다섯 발의 수전들이 톤 단위의 힘을 싣고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첫 발이 그들과 화포 사이를 가르고 뒤이은 네 발이 그들의 사지를 꿰뚫는다.
“크아아악!”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들이 작지는 않았지만 장원 안에 그것을 듣고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쾅! 콰콰쾅! 쾅쾅!
불랑기포의 발포음과 착탄음이 장원 안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는 와중 아닌가.
응 시리즈의 시야로 그들 셋이 사지를 잃고 널브러지는 것이 보였다.
- 제압 확인. 다음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눈앞으로 다시 루트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