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절강행(39)
“곤산? 소주부 곤산현에 놈들의 거처가 있다고?”
내 보고에 진우탁이 인상을 썼다.
“소주부 곤산현이 아니라 송강 부도와 청포현의 경계에 있는 산인 곤산입니다.”
진우탁의 오해를 바로잡아 줬다.
“송강부나 소주부나 육가장 놈들의 텃밭인 건 매한가지잖나. 육가장 놈들의 수작이었다는 말이지?”
진우탁이 얼굴을 힘껏 구겼다.
“아직 육가장과의 연관성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너무 앞서가지 말라는 내 말에 진우탁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태호 육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흑도 유일 세가일세. 그런 놈들이 자기 텃밭에서 화포를 사용하는 위험한 놈들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 같은가?”
“우리 멸왜단도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만, 총타 코앞에서 단원을 납치당했는데 제가 구출해 올 때까지 총타의 누구도 몰랐습니다만?”
“백 리가 코앞은 아니지.”
사실을 들먹여 뼈를 후려치는 내 반박에 진우탁이 툴툴거렸다.
“어떻게 할 건가?”
“받은 만큼 돌려줘야지요.”
히죽 웃어 준다. 내 목을 노린 놈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오 년, 하다못해 삼 년쯤 뒤에 일어났으면 참 좋은데 말이야.”
“멸왜단 입장에서나 그렇지요.”
육가장에서 일으킨 일이라면 상대를 후드려 팰 명분을 멸왜단이 쥐게 된다.
오 년 뒤라면 절강 무림의 지지를 받으며 육가장을 후려 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권마저 모조리 씹어 삼킬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멸왜단은 왜구라는 족쇄를 벗지 못한 상태. 육가장을 후려 팰 명분을 얻어도 왜구를 대비해야 하기에 전력을 다할 수도 없다.
설사 모자란 전력으로 육가장을 후려 패 이긴다 해도 이권을 강탈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멸왜단은 이름 그대로 항왜를 위해 절강 각계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무력 집단이지 재정이 독립된 무림 세력이 아니었다.
왜구라는 재앙을 확실히 처리하지 않고 무림 세력화를 시도했다가는 절강 무림의 지지를 잃는 것은 물론, 절강 각계의 지원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중간에 항주 흑도를 끼워 넣는 수밖에 없나?”
이 인간 싸움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긴 뒤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다. 아니 싸움이 뭐야?
“이 일의 배후가 육가장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습니다만?”
“육가장이라는 증거가 나오고 움직이면 늦네. 이런 일은 미리미리 대비해 놔야 하네.”
틀린 말은 아니다. 육가장이 배후라면 내가 증거를 찾아냈을 때쯤 이쪽의 움직임을 읽고 대응을 시작할 테니 말이다.
“대충 이야기가 끝났는데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할 말이 더 있나 보군.”
“예, 사람이 좀 필요합니다.”
진우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람? 뇌응대에 차고 넘치는 게 사람 아닌가?”
진우탁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절정 무인으로 이루어진 뇌응대를 움직이는 내가 사람이 부족하다 말하니 의아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내가 본 놈들은 일곱. 튀던 모양새를 보면 전원 경험 많은 절정은 되어 보였다. 거기에 호거술이 더해져 강기를 휘두른다 생각하면 어지간한 절정 무인들로는 상대가 안 된다. 그뿐이랴, 화기도 있다.
아무리 이 시대 화기의 기능이 낮아도 화기는 화기다. 거기다가 그걸 사용하는 숙련병이 절정 무인이다. 화기에 익숙하지 않은 인원을 데리고 가 봐야 피만 볼 뿐이다.
“진 부대주는 오래도록 간직한 원한을 해결한 탓인지 좀 풀어진 듯하고, 경 부대주는 아직 정양이 필요합니다. 화 부대주는 초극이라 할 수 있지만, 무공에 문제가 있어 강기를 사용하면 한동안 전력을 상실합니다.”
굳이 뇌응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부대주들도 동행하기 거북한 일인데, 그 밑의 뇌응대원들은 말해서 무엇 하랴.
“생각해 놓은 사람이 있는 듯하군. 누군가?”
내 말에 진우탁이 물었다.
“태주 신하 분타의 호장우입니다.”
호장우는 절강 수확 대상자 중의 하나로, 나노 머신이 몸을 지키는 자다. 놈들이 쓰는 화기에 대한 데이터를 호장우의 나노 머신에게 넘기면 알아서 호장우에게 화기 대처법을 숙지시킬 것이다.
***
야심한 밤에 조용히 담벼락을 넘는다. 내가 넘는 담은 멸왜단 총타의 담. 고장명이 납치당했다는 것은 놈들이 멸왜단 총타의 출입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 후 총타 분타 할 것 없이 주위를 한번 청소했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총타를 나서 인적 없는 강변을 따라 피풍의를 펼쳤다. 그렇게 오십 리를 달리니 바다가 나왔다. 여기에서 바다를 건너면 바로 남직례 송강부인 것이다.
이백오십 리 바닷길을 등평도수로 건너는 것이라지만 물 위에서 발밑을 받쳐 줄 목혜에 내 몸무게를 지워 줄 날개까지 있는 상황이다. 큰 무리 없이 송강부 해변에 닿을 수 있었다.
곤산까지 백 리 길. 어둠 속을 내달렸다.
그렇게 육해(陸海) 사백 리 길을 한 시진 만에 주파해 곤산에 스며들었다.
“이름은 좋아요, 선풍장(仙風莊).”
놈들의 거점, 곤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장원의 이름이었다.
“안의 상황은?”
놈들의 거점이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농꾼에게 몇 가지 준비를 시켰다.
서생원 시리즈의 알파 개체를 여럿 제작해 절강에 수송해 놨고, 꿈틀이를 대량 제작해 놓는 등 말이다.
그렇게 준비한 꿈틀이들을 놈들의 거처가 드러나기 무섭게 모조리 투입시킨 상태다.
그러니 선풍장의 상황은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같았다.
- 장원의 인원은 쉰이 넘어가지만, 그 중 무인으로 파악된 인원은 마흔입니다.
꿈틀이의 초음파를 사용해서 근육의 발달과 골격의 강도를 살피면 대상이 무인인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 있었다.
일반인과 단련된 무인의 육체는 사람과 야생동물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 그 중 스물둘은 일류 무인으로 장원을 지키는 호위무사로 파악되었습니다. 남은 인원 중 일곱은 응 시리즈의 피격 현장에 있던 자들입니다.
저들 일곱이 모여들었기에 여기를 놈들의 거점으로 파악한 것이다.
- 근골의 상태를 봐 나머지 열하나 중 일곱도 절정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절정 열넷의 거처에 불랑기포 한 문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화포 가격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열넷이나 되는 인원을 화포로 무장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중 셋은 도주를 위해 자기가 들고 있던 화포를 파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새 걸 들고 있다? 여차하면 화포를 파기하고 튀도록 교육했다는 소리다. 얼마든지 새 화포를 공급해 줄 능력이 있다는 소리. 배후 조직의 자금력을 엿볼 수 있는 상황이다. 놈들의 배후가 육가장이면 다행이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만한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소리가 되니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눈앞으로 장원의 평면도가 펼쳐지고 열넷의 화기 사용자들의 현 위치와 거처가 찍혔다. 그리고 그들 개개인에게 1부터 14까지의 번호를 매겼다.
그들 개개인에게 붙어 있는 꿈틀이의 초음파 탐색으로 그들 주위 상황까지 윤곽으로 보였다. 그들 거처에 맥주잔 같이 생긴 자포가 몇 개씩 숨겨져 있었다. 불랑기포의 자포가 숨겨져 있는 곳은 그들 거처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초음파를 뿌려대는 꿈틀이들 때문에 장원 곳곳에 숨겨 둔 자포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많게는 열 개, 적게는 세 개의 자포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미 화약과 포탄이 장전된 상태. 유폭을 우려한 듯 찾아서 뜯기 전에는 불이 붙기 어렵게 뭔가로 똘똘 감싸 놓은 상태들이다.
- 자포에 장전된 탄종은 일반 포탄과 플레셰트 탄 두 종류입니다.
플레셰트 탄, 다수의 화살을 쏘는 산탄이다. 그런 탄을 준비했다는 것은 다수의 인원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는 말이 된다.
멸왜단에서 다수의 인원을 동원해 이 장원을 습격했다면, 저들에 의해 상당수가 죽어 나갔을 것이다.
각자 거처에서 불랑기포로 몇 번 포격 후 자리를 이동하며 계속 공격하겠다는 계획이 그대로 내비치는 광경 아닌가.
- 그리고 장원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그곳에 초극 고수, 남은 넷이 대기 중입니다.
비밀 통로의 입구와 출구 형태가 그려지며 그 안에 네 개의 점이 찍혔다.
초극 고수가 넷이라….
놈들의 배후는 육가장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저만한 역량을 지닌 세력이 활개 치고 다니도록 놔 둘 육가장이 아니지 않은가.
= 저치들은 계속 땅속에서만 있었던 거냐?
- 꿈틀이가 파악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초극 고수들이 땅 아래에서 저렇게 숨어 있다는 것은 응 시리즈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응 시리즈의 관찰로부터 초극 고수들을 숨기기 위한 행동.
= 함정이라는 거지?
- 상황을 보면 그렇습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놈들이다.
= 내가 총타를 벗어난 사실은 아직 모르는 듯하고?
- 예, 리퍼. 꿈틀이들의 기록으로 봤을 때 외부인이 드나들거나 전서구나 전서응이 날아와 소식을 전한 기록이 없습니다.
당장 눈앞의 놈들도 문제지만 놈들의 배후를 알아야 했다. 육가장일 가능성이 컸지만, 증거 없이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다.
육가장을 지목하고 일을 진행했는데, 만약 육가장이 아닐 경우 진짜 골치 아파진다.
만만치 않은 암중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마당에 육가장이 멸왜단을 후려쳐도 될 명분을 주게 되니 말이다.
“그럼, 계획대로 해볼까?”
호장우가 도착하기 전에 놈들의 배후에 대해서 알아내야 했다.
곤산의 정상으로 발을 옮긴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래도 장원이 있는 산자락과 정상의 높이 차는 100m는 되었다.
“노출될 가능성은?”
- 위장 기능을 활성화한 응 시리즈들이 리퍼 아래쪽으로 비행할 예정입니다.
응 시리즈의 위장 기능으로 적들의 관측을 막겠다는 말이다. 대낮에도 내가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위장이니 야밤에 적들이 나를 발견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그래?”
산 정상에서 적당한 지형을 찾는다. 튼튼해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저 정도면 되겠지?”
- 충분합니다.
“그럼 간다.”
왼손을 나무를 향해 크게 떨치니 손목에 감겨 있던 활줄이 채찍처럼 뻗어 나갔다.
휘리릭!
활줄이 나무둥치에 감기는 즉시 바닥을 박찼다.
파항!
순간 내 전신이 허공을 향해 쏘아졌다. 쏜살같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다. 속력이 느려지고 결국은 중력의 힘에 이끌려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촤라라락!
기다렸다는 듯 피풍의가 펼쳐지고 목표를 향한 비행이 시작된다.
휘이이잉!
바람을 가르며 몸이 날아간다. 피풍의 조작은 온전히 농꾼의 몫. 피풍의를 정밀하게 조작해 단순 활공을 중력 가속도를 추력 삼는 비행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런 나를 호위하듯 응 시리즈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뒤 그들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위장 기능을 가동한 것이다.
장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 10, 9….
그리고 시작되는 카운트다운, 두 손을 검게 물들인다. 목표는 장원의 한 전각이다. 열넷의 거처 중 넷이 저기 몰려 있다.
물론, 놈들은 지금 저기 없다.
- 0.
농꾼의 신호와 동시에 내 양손이 벽력을 쏟아냈다.
콰르르릉, 콰쾅!
그야말로 마른하늘에서 내려친 날벼락이 장원 전각을 후려쳤다.
쾅! 콰콰쾅! 콰쾅! 쾅!
그리고 전각 안에서 격렬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습격?
- 움직여!
장원 안의 상황이 꿈틀이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스물둘의 호원 무사들이 쏟아져 나와 장원을 누볐고, 열넷의 불랑기포 사수들은 재빨리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화포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후려치는 것은 습격자의 후속 공격이 아닌 싸늘한 밤바람뿐이다.
- 벼락이었습니다.
- 번쩍 하면서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전각을 때리자 전각에서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습니다.
- 불랑기포 네 문이 파손되었습니다.
- 침입자의 흔적은?
- 없었습니다.
- 전각에 벼락이 떨어지고 그 탓에 화약에 불이 붙어 불랑기포 네 문이 파손되었다고?
- 누가 들어와서 포를 파손했다면 이렇게 요란하게 할 필요가 없지요.
- 근처에 장전해서 쌓아 둔 자포가 터지면서 파손되었습니다. 누군가 침입해서 그랬다면 이런 불확실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 젠장. 뭐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본 단에 연락해서 파손된 포들을 보충해! 빨리 안 하고 뭐 하나! 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밤 비행을 끝내고 땅 위로 내려선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모든 게 의도한 대로 흐르고 있다.
“나가는 놈들에게 꿈틀이 몇 놈 붙여. 혹시 모르니 벌레들도 열댓 마리 붙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