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절강행(38)
피풍의를 해제하자 오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굉음, 오줌 냄새, 그리고 초극 무인을 그대로 내동댕이치는 충격.
이것들을 조합하니 생각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설마, 화약? 누가 폭탄이라도 쓴 거야?”
쾅! 쾅! 쾅!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굉음이 터졌다.
- 리퍼, 응5, 응3이 피격당했습니다!
농꾼의 다급한 말이 귀를 때렸다.
“무슨 소리야? 응 시리즈들이 날아다니는 고도가 몇 미터인데….”
쾅! 콰쾅! 쾅!
연속적으로 들리는 굉음.
설마?
“화기?”
- 응4 피격.
수백 미터 높이의 하늘을 날고 있는 응 시리즈를 피격하려면 활로는 답이 없다. 화살이 날아오는 게 보이니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화기로 쏜 탄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속도도 속도지만 크기도 작아서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응1, 2 이탈시키고. 사정거리 밖에서 화기가 닿지 않는 고고도로 이동 후 복귀시켜.”
- 예, 리퍼.
바닥에 엎드려서 연신 하늘을 향해 굉음을 울리고 있는 놈들을 살폈다.
쾅, 콰쾅, 쾅!
일곱 자 길이에 직경이 반 자는 될 듯한 굵직한 철봉 같은 화기가 놈들의 어깨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한 번 불을 뿜으면 잠시 내려놓고 뭔가 맥주잔 같은 것을 빼내고 다른 맥주잔 같은 것을 철봉, 화기에 끼운다. 그리고 다시 들려서 불을 뿜는다.
그 시간이 불과 몇 초다. 이 시대 무기답지 않게 빠른 연사 속도다.
아니 연사 속도가 빠른 게 문제가 아니다. 저 정도 크기면 저건 총이 아니라 숫제 포라 해도 된다.
- 불랑기포입니다.
진짜 포였다. 관련 자료가 재빨리 눈앞을 지나갔다. 맥주잔 같은 것이 자포(子砲)로 거기에 미리 장전된 화약과 탄환이 있다. 약실에 탄환을 장전하는 것이 아니라 탄환이 장전된 약실을 통째로 교환하는 무식한 방식인 것이다.
“허, 총도 아닌 포로 하늘을 나는 매를 잡아?”
아무리 무인이 들고 쏜다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 응 시리즈를 잡은 것은 일반적 포탄이 아니라 산탄의 한 종류인 플레셰트 탄으로 보입니다.
다시 관련 자료가 지나갔다. 산탄 탄환 속에 구슬 대신 작은 화살을 빼곡하게 넣고 쏘는 것이 플레셰트 탄이다.
“야, 화기 쓰는 놈 없으니 쓰면 안 된다며!”
수확 대상자를 상대하기 위해 고민하던 금정산 시절,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화기였다.
- 전에도 말씀드렸듯 화기 제작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화기가 성행하면 무공의 몰락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쓰는 놈이 있는데? 그것도 20세기 월남전에 쓰였던 탄종을 개발해서!”
- 저들을 절대 말살 대상에 등록합니다.
무공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뽑아 먹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화기가 유행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농꾼의 입장이다.
- 응1, 응2 불랑기포의 사정거리에서 무사히 이탈하였습니다.
응 시리즈들이 멀어지자 불랑기포를 쏴대던 작자들이 사격을 멈췄다. 동굴을 포위하듯 감싸고 있던 작자들이다.
동굴 후방의 둘이 발사되지도 않은 자포를 교체하고는 불랑기포를 내 쪽으로 겨눴다. 산탄이 아닌 포탄으로 교체한 듯하다.
내 좌측에 있던 하나가 칼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확실한 뒤처리를 위해 오는 듯했다.
백 장이 넘는 거리를 성큼거리는 큰 걸음으로 단숨에 줄이다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살아 있다!”
놈의 외침에 불랑기포가 불을 뿜었다.
쾅! 쾅!
백 장이 넘는 거리에서 쏜 포탄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바로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린다. 당연히 목표는 나와 가장 가까운 놈.
콰앙, 쾅!
포탄에 내가 있던 바닥이 터져 나갔지만 이미 나는 그 범위 밖을 달리고 있었다.
끼요옷!
목표로 삼은 놈이 익숙한 기합을 터트리며 칼 든 손이 아닌 다른 손을 휘둘렀다.
피피피피핑!
그 손에서 열 개가 넘는 수전(手箭)이 뿌려지며 나를 덮쳐든다. 전원 강기가 서려 있다.
쩌저저정!
순식간에 칼을 빼 들고 벽력의 그물을 그려 덮쳐드는 수전들을 튕겨 냈다.
쾅!
불랑기포의 발사음이 귀를 때린다. 동시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데도 내 눈에 포탄의 비행 궤적이 그려진다. 농꾼이 포탄의 궤도를 예측해서 알려 주는 것이다.
놈과 나 사이를 가르는 포탄인지라 발을 멈췄다.
쿠쾅!
그대로 달렸으면 내가 당도했을 자리가 포탄을 얻어맞고 터져 나갔다.
쾅!
또 한 번의 발사음. 나를 향해 그려지는 포탄의 궤적!
강기로 한번 베어 봐?
일순 이는 호승심에 칼자루를 불끈 움켜쥐는데….
- 리퍼!
경고성과 함께 피풍의가 내 상체를 휘감는가 싶더니 내 몸이 허공으로 던져졌다.
쿠쾅!
포탄이 무엇인가를 때려 부술 때 내 몸은 바닥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야, 뭐 하는 짓이야!”
농꾼 녀석이 피풍의와 연결된 활줄, 그 인공 근육을 움직여 피풍의로 감싸 쥔 내 몸을 던진 것이다.
- 탄환 베기를 하려 하셨지요?
“그래”
- 피한다면 안 맞고 끝날 걸 두 방 맞게 하는 행위입니다.
순식간에 펼쳐지는 시뮬레이션. 날아드는 포탄은 내 도강에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난다. 하지만 그뿐이다. 운동에너지를 전혀 잃지 않은 두 동강난 포탄이 내 몸을 그대로 후려치며 영상이 끝났다.
- 엉뚱한 시도는 그만하시고 절대 말살 대상을 처리하시지요.
농꾼의 말을 따르려는 찰나.
쿠쾅, 콰콰쾅!
굉음과 함께 놈들이 숨어 있던 장소가 폭발했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를 뒤로 하고 내달리는 놈들이 보였다.
들고 뛰기 무거운 불랑기포와 화약들을 처리하고 도망가는 것이다. 아니 도망가고 있는 것은 셋만이 아니다. 동굴 안에 있던 셋도 어느새 나와 내달리고 있었다.
여섯 놈 전부 도망치는 방향은 제 각기다.
“응2로 한 놈 추적해!”
가공된 활줄을 꺼냈다. 활줄을 겹쳐서 한쪽 끝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철탄을 잡아 활줄에 걸고 당긴다.
동굴 안에서 기어 나온 한 놈을 막 겨냥하는 순간.
- 해당 인원은 꿈틀이를 붙인 인원입니다.
농꾼의 말에 철탄을 거둬 들였다.
“응2 추적 취소.”
매를 사냥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서 응3, 4, 5를 사냥한 놈들이다.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매를 경계할 것이 당연했다. 그런 놈에게 응 시리즈를 붙여 봐야 재미 보기 힘든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잘했다.”
나는 그런 놈들에게 꿈틀이를 붙인 농꾼을 칭찬하고는 급히 동굴로 달려갔다.
고장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놈들이 생각 없는 놈들이라면 고장명을 죽였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놈들의 움직임을 보면 상당히 체계적이다. 그러니 나를 이 자리에 붙잡아 놓기 위해, 직접적인 추적을 막기 위해 고장명의 숨을 끊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동굴 입구에서 발을 멈췄다. 처음 놈을 덮쳤을 때처럼 무슨 수작이 있을 수 있는 탓이다.
양손이 검게 물들고 스피커로 변했다.
웅!
그리고 가볍게 쏘아진 음파로 동굴 안을 훑는다.
- 동굴 내 GR-02 이외의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농꾼의 장담에 나는 급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대주, 진짜 귀신같이 알고 오십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고장명이 그런 나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그 꼴로 웃음이 나오냐?”
그렇게 투덜거리며 고장명의 치료를 시작했다. 내가 직접 손대기 힘든 상처는 나노 머신을 주입하고 농꾼의 지도하에 손댈 수 있는 상처들을 치료했다.
치료가 일단락되자 나는 고장명을 들쳐 업고 멸왜단 총타를 향해 달렸다.
백 리가 넘는 거리지만 피풍의까지 펴고 달리니 이각이면 충분했다.
“치료는 끝냈으니 거처에서 푹 쉬게 하고.”
뇌응대원들에게 고장명을 떠넘겼다.
“대주, 이 무슨….”
화인천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나를 봤지만 지금 그와 이야기할 시간은 없다.
“나중에 이야기 해주지.”
멸왜단주에게 바로 달려갔다.
“단주, 뇌응대주 이도연입니다.”
“들어오게.”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 흉악한 쇠뭉치들을 절강 각지에 설치한다더니?”
하루 만에 돌아온 이유를 묻는다.
“각 분타의 경계를 강화하고 주위의 거동 수상자들을 단속하라 하십시오.”
“무슨 일인가?”
“저와 함께 총타를 나섰던 뇌응대원 고장명이 납치를 당했습니다.”
“뭐?”
“바로 구출했습니다만, 고문을 당했더군요.”
“어디 짓인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왜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놈들의 얼굴이나 체형은 왜구라 보기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수전을 뿌린 놈이 호거술을 썼지 않은가. 거기다가 매를 적극적으로 노린 것으로 봐서는 왜구와 관련됐을 수도 있었다.
“저와 매에 대한 정보를 캐냈습니다. 그리고 화기를 사용해 제가 부리고 있는 매들을 사냥하려 했습니다.”
세 마리나 당했지만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멸왜단주 진우탁은 내가 부리는 응 시리즈가 충당 가능한 자원임을 알면 멸왜단의 대여 매들도 같은 종으로 달라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징징거릴 것이 뻔했다.
“화기를 사용했다고?”
순간 몸이 움찔해질 정도의 살기가 집무실을 휩쓸었다.
“아, 미안하네. 내가 화기를 좀 싫어해서.”
진우탁이 내 반응을 보고 자신이 살기를 뿜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화기에 대한 거부 반응은 체내에 있는 나노 머신의 영향인 듯하다.
“그런데, 작금의 화기로 하늘을 나는 매들을 잡을 수 있던가? 어지간히도 높게 날던데?”
진우탁이 물었다. 그래, 이런 것이 보통 무림인들이 가진 화기에 대한 인식이다.
“사정거리가 백칠십 장 정도 되더군요. 제가 부리던 매들을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제가 훈련시킨 매들은 충분히 잡을 수 있을 듯했습니다.”
분타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분타 상공을 눈에 띄게 날 수밖에 없다. 놈들이 그때를 노린다면 충분히 매들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쓰던 화기입니다.”
불랑기포를 그려 줬다. 혹시 몰라서 조총도 그려 주고, 대강 이 시대 총기의 특성도 그려 준다.
“분타 주위에 서성이는 자들 중 이런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 자들을 잡아들이십시오.”
“걱정 말게. 내 분타에 단단히 일러 두지.”
그렇게 놈들에 대한 대강의 방비를 마쳤다.
***
고장명을 구출한 지도 이제 8일.
불랑기포에 잃은 응 시리즈 3, 4, 5를 다시 제작해 배치했다.
“확실히 있기는 한 거냐?”
내가 하늘 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 찾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래.”
- 그럼, 위장을 거둬 들입니다.
농꾼의 말과 함께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매들이 보였다.
“이 정도로 될까?”
- 시력 강화를 거친 리퍼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의 인간들이 맨눈으로 찾기는 불가능합니다.
농꾼이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새로이 제작된 응 시리즈에 추가시킨 기능으로, 관측을 피하기 위한 위장인 것이다.
“대여 개체들 위장 기능은?”
- 응6과 7은 추가 시술을 했으며, 절강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매들은 정찰 고도를 600m 이상으로 설정했습니다.
자료들이 눈 앞으로 흐른다. 멸왜단에 투입한 매들은 응 시리즈와 달리 몇 가지 기능만 가진 단순 개체들이었다. 그 개체들에게 위장 기능을 추가하려면 여타 다른 기능들도 잔뜩 추가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만약 피격당한다면, 새 개체 투입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위잉, 윙.
내 주위로 날벌레 몇 마리가 꼬인다.
“야, 절로 치워.”
- 해당 개체는 통신용이 아닌 자연산입니다만?
내 역정에 리퍼가 답했다.
“그래?”
투툭!
가볍게 손을 흔들어 날벌레들을 잡아 죽였다.
고장명에게 편지를 쓰게 한 뒤 강산방을 방문해 안테나를 설치했다. 온주부에도 마찬가지. 다시 고화질 인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덕에 내 주위에는 벌레들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기가 단위의 통신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천 마리의 통신용 벌레들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서로 내쏘는 음파가 상쇄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위치를 바꿔야 했다. 그렇게 통신용 벌레들이 내 주위에 득실거리자 다른 벌레들도 내 인근에 뭔가 주워 먹을 게 있는 줄 알고 몰려드는 것이다. 일반 벌레와 통신용 벌레가 뒤섞여서 날아다니는 꼴이 되었다.
그러니 벌레가 내 주위를 날아다닌다고 바로 잡아 죽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주위의 자연산 벌레들을 잡고 있자니 기다리던 소식이 들어왔다.
- 리퍼, 놈들의 거점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