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절강행(35)
- 리퍼, 물품이 도착했습니다. 지정된 장소에서 물품을 수령하십시오.
완성 보고를 받은 뒤 8일째 밤에 안테나가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정된 장소는 인근의 나루터. 해 떨어진 야밤이라 사람의 눈을 피하기는 쉬웠다.
나루터에 도착하니 물속에서 시커먼 바위 같은 것이 치솟았다.
범고래의 머리다. 그리고 그 입에 물린 것은 넉 자 길이의, 양손으로 간신히 잡을 수 있는 두꺼운 둘레를 가진 철봉 셋이었다.
“묵직한데?”
세 개의 철봉을 양팔로 받아드는데 그 무게가 못해도 육백 근은 될 듯했다.
- 개당 120kg입니다.
“그래?”
예상대로다.
- 리퍼, 받아야 할 물건이 더 있습니다.
내가 철봉을 안고 몸을 물리려 하자 농꾼이 말했다.
거어억!
범고래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더니 내 머리통보다 큰 덩어리를 뱉어냈다.
“이건 또 뭐냐?”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라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 골격의 코팅재를 강화하고, 배터리 용량을 높이기 위한 재료들입니다.
“철 이온 대신으로 축적될 것들이라는 말이군.”
볼일 다 본 범고래는 물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물건들을 챙겨서 조용히 거처로 돌아왔다.
“또 죽어라 마셔야 하는 건가?”
예전 철 이온을 축적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 이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생체 드론들을 통해 여러 방식의 흡수 시험을 거친 결과, 최속의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마*카*원 베타의 숙주를 대상으로 인체 안전성 실험도 마친 완벽한 방법입니다.
아아, 사제 고생이 많구나.
“얼마나 빨리 되는 거냐?”
- 금속 이온을 처음 안착시키는 경우는 한 달 이상의 조정 기간이 필요하지만, 리퍼의 경우 하루면 됩니다.
“준비할 것은?”
- 리퍼의 전신을 담글 수 있는 물과 물통이 필요합니다.
내 거처를 담당하는 하인을 불러 물과 물통을 준비했다.
“이틀 정도 연공을 할 것이니 그렇게 알리도록.”
하인에게 그렇게 말해 거처에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그리고 이온화 되기 쉽게 만들어진 금속 분말을 농꾼이 지시한 양만큼 들이부었다.
“조금 남는데?”
- 장비 강화에 쓰일 분량입니다.
“장비 강화?”
- 리퍼가 사용하는 탄궁의 시위, 피풍의 등 쓰일 데가 많습니다.
“거미들 유전자 조작이 잘 안 되는 모양이네?”
- 여타 조건을 만족시키는 개체들은 나오고 있지만, 번식 조건을 만족시키는 개체가 없습니다.
“정 안 되면 좀 귀찮더라도 변이 후 번식은 포기하고 변이성 제일 높은 종을 대량 사육해서 개체마다 변이시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나오지도 않는 결과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빠르겠다.”
- 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속에 금속 분말이 잘 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안으로 몸을 담갔다.
몸 곳곳이 검게 물든다. 철 이온 코팅된 신체 곳곳이 스피커로 변환된다.
우우우웅!
몸을 담근 물통 안의 수면에 파문이 미친 듯 생성되다가 물이 끓어올랐다.
통째로 삶기는 모양새였지만 농꾼을 믿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리퍼, 모든 공정이 끝났습니다.
농꾼이 작업의 끝을 알렸다.
“그래? 배터리 작업도 끝난 거야?”
눈을 뜨고 물었다.
- 배터리 용량은 예전 대비 2,000% 상승했습니다.
“20배나! 대단한데!”
초극 고수를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격을 단발이 아니라 연발로 쓸 수 있다는 소리다.
“음?”
물통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어째 몸이 상당히 무겁다.
“몸에 무리가 간 건가? 평소보다 몸이 무거운데?”
- 체중이 44.396kg 증가했습니다.
하긴 몸 안에 각종 금속을 채워 넣었는데 몸무게가 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몸에 익숙해지려면 고생깨나 하겠군.”
체중이 갑자기 늘었으니 거기에 맞춰 감각을 조절해야 했다. 같은 힘으로 때려도 거기에 실리는 무게가 다르니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상태로 다른 사람과 비무라도 했다가는 사고 나기 딱 좋았다.
늘어난 몸무게에 익숙해지기 위해 연무장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다.
장비 강화는 내가 해야 할 게 별로 없었다. 그저 시간 날 때 강화해야 할 물건을 금속 분말이 풀어진 물통 속에 집어넣고 시간 맞춰 빼면 된다.
나머지 공정은 분할되어 물통 속에 들어앉은 농꾼의 분신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장비는 주로 활시위로 사용되지만 다른 일에도 여러모로 쓸 수 있는 일 장 길이 활줄 30개에 농꾼이 디자인한 피풍의 다섯 벌이다.
“이거 줄 자체의 복원력이 이백육십 관이 넘는다고?”
- 예, 리퍼. 격발 시 전류를 가하면 섬유 사이사이에 구성된 전자석이 활성화 되어 극단적 수축 작용이 일어나 철탄에 1톤의 힘이 가해질 겁니다.
“그 정도면 활대 작살나는 거 아냐?”
- 철궁 자체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줄 자체에 그만한 탄성이 있으면 굳이 활대의 탄성이 필요 없기는 했다. Y형 새총 같이 적당히 줄을 감고 버텨 줄 지지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위력 높이고 싶으면 몇 번 겹쳐서 쓰면 되고 말이야?”
- 예, 그렇게 쓰시면 됩니다.
탄궁을 챙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뭐하나 싶다. 진짜 무거운 건 철탄들인데 말이다.
“이 정도면 거의 인공 근육 아냐?”
전자석 배치 형태가 원통형 탄소 결합 배치 구조라 전기 제어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제법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했다.
- 활줄 단독으로 환형동물의 움직임을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활줄로만 쓸 건 아니라는 거네?”
- 예, 리퍼.
어쨌든 이제 안테나를 꽂아야 했다.
“이 조의 고장명, 대주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강산방이 이름 그대로 구주부 강산현에 자리 잡고 있지?”
“예, 대주.”
“부탁 하나만 하자.”
고장명은 온주 사태 때 왜구의 칼에 종아리를 맞았다. 근육이 끊어졌는데 그냥 무식하게 금창약만 쏟아 부어 출혈만 틀어막는 치료를 했기에 놔두면 절름발이가 되었을 운명이었다. 그걸 다시 째서 근육을 제대로 이어 준 이가 바로 나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런 탓에 단매에 답하는 고장명이다. 그렇게 구주부의 안테나 부지는 해결했다.
안테나 설치를 위해서 자리를 비워야 하는 탓에 진우탁을 찾았다.
“어딜 간다고?”
진우탁이 인상을 쓰며 나를 쳐다봤다.
“항주를 들러 구주 강산방을 방문하고, 온주 분타로 간다고요.”
“왜?”
내 대답에 진우탁이 그렇게 움직이는 이유를 물었다.
“이걸 좀 설치하게요.”
내가 안테나를 들어 보였다.
“그 흉악한 쇠뭉치는 뭔가?”
접어 놓은 안테나는 그저 상당히 굵은 넉 자 길이 철봉으로밖에 안 보였다.
“매들이 좀 더 잘 보게 하는데 필요한 것들이지요.”
이 시대 사람들이 알아듣게 안테나에 대해 설명할 능력이 없기에 그냥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온주 쪽 갈 일 있으면 그때 같이 갔으면 될 일 아니었나? 온주에서 구주 쪽으로 가는 거면 처주부는 어차피 거쳐야 하잖나!”
“그때는 이게 만들어지기 전이지요. 그리고 듣자니 백토검문이 회복될 동안 철검화가와 같이 용천현을 감당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랬지.”
“자기와 보검으로 유명한 곳인데, 저한테는 칼 한 자루도 없는 것입니까?”
철산맹이 불러들인 왜구의 주목표 중 하나가 나였다. 따지고 보면 나도 철산맹으로부터 배상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네가 직접 갔으면 작은 은광이라도 하나 챙겼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게 같이 가자 했잖나!”
“단주께서 알아서 챙겨 주실 줄 알았지요.”
“직접 갔어야 하는 자리였다니깐. 대신 내 추가하기로 한 매 두 마리는 넉넉하게 쳐주지. 어떻게 할 건가? 그것도 소환단으로 받을 건가?”
“이제 그 정도 급의 영약은 크게 필요가 없지요.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지요.”
“그럼, 그 흉악한 쇠뭉치는 정확히 어디에 설치할 생각인가? 알다시피 온주 쪽 분타가 하나가 아니잖나?”
위치상 평양 분타가 가장 남쪽이지만 이번 일로 피해가 컸다. 거기에 매와 연관된 물건이라 소문날 수도 있는 걸 설치한다면 왜구의 습격을 부를 수도 있었다.
“영촌(寧村) 분타로 하지요.”
“그럼, 영촌 분타주에게 자네에게 협조하라는 서신을 써 주면 되나?”
“예, 단주.”
내 대답에 진우탁이 간단한 서신을 작성한 뒤 멸왜단주의 직인을 찍어서 내게 넘겼다.“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지 말게나.”
“예, 단주. 그럼 다녀와서 뵙지요.”
그렇게 단주 집무실을 나왔다. 부대주들에게 내 외출을 알리고 고장명을 데리고 총타를 나섰다.
“나는 항주를 들린 다음 강산방으로 갈 테니, 너는 먼저 가 있거라.”
고장명을 먼저 집으로 보낸다.
“대략 언제쯤 도착하십니까?”
고장명이 물었다.
“넌 언제쯤 도착할 것 같으냐?”
“이곳에서 강산현까지 못해도 천리 길이니 오 일은 주셔야….”
“어디 유람 가시나? 삼 일 뒤에 갈 테니 준비해 놓고 있어.”
“대주, 제가 다리가 멀쩡했다면 가능했겠지만 대주께서 아시다시피….”
“내가 네 다리 고친 의원이다. 네 다리는 멀쩡해. 삼 일 뒤다.”
“예.”
고장명이 시무룩한 얼굴로 먼저 길을 떠났다.
나는 세 개의 안테나를 등에 메고 항주를 향해 발을 옮겼다.
항주까지 사백 리 길이지만 반쯤 뛰듯이 쉬지 않고 움직이면 네 시진이면 충분했다.
바로 상화장을 찾았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단철귀수 조구흥이 달려왔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일이 있었나 보다.
“아니 이게 누군가! 절강에서 명의로 이름 높은 염왕적의 이도연 의원 아니신가!”
조구흥이 이번에 새로 얻은 별호를 부르며 호들갑스럽게 나를 맞이했다.
“마침 근처에 계셨나 봅니다. 멀리 가셨으면 어쩌나 했습니다. 조 노선배.”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흠흠.”
내 말에 조구흥이 헛기침을 했다. 조구흥을 주축으로 항주 흑도의 노괴들이 모여 매달 날을 정해 육가장 세력들을 후려치기로 했고, 이미 두 번이나 성공한 마당이다. 당연히 응7의 지원을 받아 육가장에게 걸리지 않고 말이다.
“그나저나 자네가 어쩐 일인가? 얼마 전에 단약도 보냈지 않은가?”
조구흥은 정해진 기간마다 내가 보낸 단약을 먹어야 응7과의 연결이 유지된다고 알고 있었다.
“일이 좀 있어서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잘 왔네, 잘 왔어!”
어째 너무 반기는데? 어쨌든 안테나는 세워야 했다.
“상화장에 이걸 좀 세워도 되겠습니까?”
“뭔지 모르지만 자네가 하겠다는데, 항주 흑도에서 감히 누가 막겠는가.”
내가 내미는 안테나 따위는 보지도 않고 말한다. 영감님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응7로 육가장 후려 패는 재미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안테나 세울 곳을 찾는다. 전각의 지붕 위다.
“이거 좀 치워도 되지요?”
전각 지붕 중앙의 장식품을 치우고 거기에 안테나를 세운다.
끼릭, 끼릭.
쇳소리가 나며 안테나가 펼쳐진다. 넉 자 길이의 몸체에서 살짝 좁은 넉 자 길이의 몸체를 뽑아내고 거기에서 다시 살짝 좁은 몸체를 뽑아낸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니 넉 자 길이의 안테나는 이 장 길이의 탑이 된다.
안테나를 지지하기 위한 밧줄이 이리저리 걸린 다음 철봉 끝의 봉오리가 활짝 펴지며 설치가 끝났다.
“일은 끝난 건가?”
조구흥이 물었다.
“끝났지요.”
“자네, 바쁜가?”
슬그머니 말을 붙이는 모양새가 어째 내게 볼일이 있어 보인다.
“조 노선배, 저에게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허허, 무슨 말을! 내가 어찌 감히! 뭐 부탁이 있기는 하네.”
“이틀 안에 끝나는 일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과연 벽력응주! 호탕하구만! 하하하하!”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장원 밖으로 이끈다.
“무슨 일입니까?”
“자네 피 맛으로 본인 여부는 물론이고, 혈연을 판단할 수 있다 했지?”
“예.”
농꾼에게 유전자 검사시키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