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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48화 (48/175)

48화

절강행(29)

나를 업고 도망쳐야 된다는 소리에 화지철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 자네를 업고 저들의 추적을 따돌리기에는 내 경공이 미흡하다 생각하네만.

-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화 대협께서는 그저 저를 업고 달리시면 됩니다. 높이 멀리 뛰실 생각 마시고 몸을 최대한 낮춰서 그저 한 발이라도 더 땅을 박찰 생각만 하십시오. 몸 균형도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말입니다.

내 말에 화지철이 잠시 나를 미심쩍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을 끌어 진혜예와 화인천이 자철검대와 함께 도착한다 해도 두 초극 왜구는커녕 가짜 강기를 휘두르는 놈이 넷이나 포함된 왜구 무사들을 상대로도 승산이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 언제 몸을 뺄 생각인가?

- 당장이요.

그렇게 막 화지철의 등판에 탑승하려는 순간.

“이 씹어 먹을 새끼들! 드디어 만나는구나!”

내 뒤에서 격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진혜예였다. 진혜예가 미친년처럼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었다. 화인천이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내달렸듯 저 둘도 자철검대를 떼어 놓고 온 것이다.

“아나!”

입에서 욕이 나오려 한다.

지금 도착하면 어쩌자고! 이렇게 되면 도망도 못 가잖아!

도움 안 되는 지원군에 자극 받은 두 초극 왜구가 바로 덤벼들었다.

“끼악!”

“캬아!”

호거술로 강화된 검강과 도강의 궤적에 화지철이 나를 잡아 뒤로 던졌다.

“진 소저, 받게!”

허공을 나는 내 귀에 화지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미친 듯 달려오던 진혜예와 화인천이 짐짝처럼 던져진 나를 받아 들었다.

“이건 뭐 하자는 짓이야?”

“숙부께서 도연 형을 무슨 짐짝 취급하다니?”

진혜예가 인상을 썼고 화인천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놈들의 기습에 척추를 다쳐 하체로 공력을 못 돌려.”

“이럴 때!”

내 대답에 진혜예가 인상을 있는 힘껏 구겼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인천아, 고생하자.”

“예, 누님.”

진혜예의 말에 화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 저놈들 기본 바탕이 초극 고수입니다, 몸을 피해야 한다고요!”

“대주께서 피하는 것까지 말릴 생각 없어요.”

- 이 누나 왜 그래!

진혜예의 이상한 반응에 화인천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 누님이 추왜검랑이 된 것이 저 둘 탓이지요.

젠장, 초극 왜구들에게 원한이 있다는 소리다.

장군검을 든 왜구 놈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캬아!”

호거술로 강화된 검강이 뇌응대의 핵심 인력 셋을 싸잡는 궤적을 그린다.

내가 막을 수밖에….

순간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야!”

화인천이 나를 뒤로 던진 것이다.

“어헝!”

귀청을 두드리는 격한 소리.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뭐야 이거?”

장군검의 왜구가 날린 검강을 화인천이 막아냈다. 아니 단순히 막은 것이 아니다. 막기 무섭게 반격해서 그놈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초극 고수?”

화인천의 검에서 강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농꾼에게 묻는다. 화인천이 만들어 내는 강기에서 풍기는 기세는 내 아래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호거술로 강화된 왜구 놈의 검강을 저리 쉽게 막지 못한다.

- 호거술이 깨졌습니다.

내 물음에 바로 농꾼이 답했다.

= 나도 눈이 있어. 호거술 깨진 거는 보면 안다고. 왜 깨졌냐는 거지!

화인천이 정면에서 장군검을 든 왜구를 감당하고 진혜예가 그 왜구의 주위를 돌며 공격한다.

“캬아!”

“어헝!”

왜구가 호거술을 펼칠라치면 진혜예가 뭔가 소리를 내지른다.

그 소리가 호거술을 깨트리고 있었다. 호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초극 왜구와 초극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화인천의 싸움은 그렇게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진혜예가 쓰는 저거 사자후(獅子吼)지?”

- 데이터를 검색합니다.

내 말에 농꾼이 재빨리 반응했다.

절강 수집 대상자들은 죄다 보타삼문과 연관된 고수들. 불문의 음공인 사자후에 대한 데이터가 없을 리 없다.

- 사자후의 데이터와 97%의 유사성을 보입니다.

같은 무공을 익혀도 쓰는 사람에 따라 살짝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3% 정도는 그런 개인 차이에서 오는 오차라 보면 된다.

“사자후가 호거술을 깨트린단 말이지.”

-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호거술도 사자후도 죄다 네 데이터 안에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

-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공력, 내기, 내공이라 불리는 에너지의 측정 능력이 없습니다.

호거술과 사자후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해도 내공에 대한 측정이 불가하니 직접 실험해 보지 않고는 두 무공의 충돌 반응을 알 수 없다는 거다.

“사자후의 데이터 재현해.”

어쨌든 상황을 바꿀 방법이 생겼으니 일단 써먹는 것이 흑도인의 도리다.

- 진우탁의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진우탁이 사자후를 사용할 때의 육체적 움직임이, 생리적 변화들이 나노 머신들에 의해 내 몸으로 재현된다. 나는 그 느낌을 따라, 농꾼의 인도를 따라 공력을 움직였다.

사자후의 내공 경로를 몸에 확연히 새긴다.

- 리퍼,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

- 사자후의 무공 성향상, 다른 무공과 병행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누님은? 당장 눈앞에서 경공 쓰고 검기 날리고 있잖아?”

농꾼의 말과 달리 진혜예는 사자후를 내지르며 장군검을 든 왜구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물론 검기를 날려 공격까지 하고 있었다.

농꾼은 대답 대신 사자후와 호거술에 대한 데이터들을 늘어 놨다.

그 데이터들을 보자 대강 이해가 되었다. 호거술과는 태생 자체가 다른 것이 사자후였다. 호거술은 애초 칼질에 힘을 더하기 위해 만든 보조 무공. 그렇기에 다른 무공과 함께 펼치는데 무리가 없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자후는 아니었다. 파사(破邪)의 기운을 담은 음공(音功)으로, 원래는 불문 수행자들의 심신(心身)에 충격을 주어 번뇌와 잡념, 사기(邪氣)를 몰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애초에 싸움이 아닌 제자들의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었기에 싸움판의 격렬한 움직임에 맞춰 펼칠 만한 무공이 아니라는 것.

진혜예가 저렇게 활발히 움직이며 사자후를 펼치는 것은 각고한 노력의 결과로, 내가 당장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사자후에 대한 데이터를 살피고 있자니 쉰하나의 왜구들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멀쩡한 초극 고수들의 싸움은 무서워서 못 끼어들어도 상처를 입은 나는 만만하다 그거지.

서른셋으로 대강의 포위망을 형성한 뒤 18놈들이 가짜 강기를 사용하는 네 놈을 앞세워 나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솔직히 내가 누님처럼 사자후를 쓸 필요는 없잖아.”

피식하고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진혜예의 사자후는 초극이 발휘하는 호거술을 파훼하는 데 중점을 둔 운용이다. 내가 당장 따라 할 수도 없고, 따라 할 필요도 없다.

칼을 거둬 들여 허리춤에 찬다.

“양손에 스피커!”

내 말에 오른손도 검게 물들었다.

“오올!”

큰 칼 놀림으로 정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왜놈을 향해 왼손을 들이밀고 오른손은 반대편을 향해 뻗는다.

“볼륨 최대!”

어차피 울부짖는 것은 내 성대가 아닌 스피커. 나는 사자후의 심법으로 만들어 낸 공력을 스피커에 힘껏 때려 박을 뿐이다.

어헝!

사람의 목청이 낼 수 있는 한계 따위는 애초에 넘어선 음파가 공간을 후려쳤다.

초극 고수의 온전한 내공이 만들어 내는 사자후 효과가 막대한 음향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턱!

강기는 물론 도기마저 사라진 왜도가 내 어깨에 떨어졌지만 초극 고수의 트레이드마크인 호신강기가 있다. 그저 휘둘러지는 기세를 타고 떨어진 왜도는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그냥 미끄러져 내렸다.

왜도의 주인은 멍한 눈동자로 그런 왜도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자후의 진정한 효과. 한순간이나마 사람을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만든다. 나에게 한 칼 먹이겠다는 왜구의 살의마저도 잡념처럼 날려 버린 것이다.

명백히 틈을 보이고 있는 상태인데도 나에게 달려드는 왜구가 없다. 쉰하나의 왜구 전원이 사자후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탓이다.

“이러니 불문의 고수들이 머릿수만 믿는 하수들을 상대할 때 자주 써먹는구나.”

그야말로 광역 스턴기 아닌가.

퍽!

철 이온으로 코팅되어 흉기나 다름없는 손으로 눈앞의 왜구를 후려쳤다.

순식간에 골이 빠개져 바닥에 쓰러졌다.

터터텅!

양손을 휘둘러 장력을 토해낸다. 장력이 바닥을 후려치고 그 반발력이 내 몸을 메인보컬 잃은 코러스 쪽으로 내던진다.

나와 그들 사이의 공간이 사라지자 검게 물들어 흉기가 된 양손이 낭파조의 초식을 토해냈다.

“크아악!”

“카악!”

두 놈은 목이 뜯겼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렇게 코러스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마흔여섯 왜구가 무념무상에서 깨어났다.

휘릭, 휙, 휙!

그리고 포위망을 이룬 서른셋 왜구 중 정면의 여섯 왜구는 무념무상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왜도와 소태도에 의해 더 이상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코러스들이 차고 있던 왜도와 소태도로 여섯 명의 왜구들을 처리했다. 사면의 포위망을 이룬 왜구 중 내 정면에 배치된 왜구들을 그렇게 몰살시키기 무섭게 다시 양손을 흔들었다.

터터텅!

다리 근력에 양손이 내뿜는 장력까지 더한 힘이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목표는 좌측, 세 명의 코러스를 둔 메인보컬과 그 뒤를 받치는 아홉의 왜구들이다.

“오올!”

덮쳐드는 나를 향해 강기를 앞세운 칼질을 구사한다. 정면에서 받아내면 다리에 공력을 보낼 수 없는 나는 뒤로 밀려나야 하는 처지.

그러니 지면과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피풍의를 펼쳤다.

피풍의로 펼치는 공기 브레이크에 달려들던 내 몸이 급감속 했다.

감속하지 않은 나를 상정하고 횡으로 그은 왜도는 당연히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한 발 늦게 당도한 나는 왜도가 제자리를 찾기 전에 양손을 휘둘렀다.

촤악!

낭파조의 날카로운 기운이 강기를 다루는 메인보컬의 목을 날렸다.

“끼요옷!”

“끼앗!”

“크하앗!”

셋이 한 무더기가 된 왜구 아홉이 코러스들을 지나쳐 벼락처럼 덮쳐들었다.

아홉 자루의 왜도가 파도가 되어 나를 휘감는다.

차차차차차창!

하지만 내 두 손이 만들어 내는 변화를 뚫을 수 없다. 당연했다. 내가 펼치는 것은 낭파조!

이름 그대로 파도조차 움켜쥘 수 있다는 해남의 수공이다. 호거술의 도움을 받아 봐야 절정인 것들이 초극의 내가 펼치는 낭파조를 압도할 수는 없다.

챙강!

힘의 격차에 왜도가 부러진다.

촤악!

부러진 왜도가 흉기가 되어 누군가의 몸에 박혀서 피를 뿌린다.

펑!

흉기나 다름없는 손에 얻어맞은 왜구가 날아가고.

빠드득!

흉악한 손길에 사로잡힌 왜구의 어깨가 박살났다.

그렇게 순식간에 아홉 왜구들이 허물어졌다.

퍼퍼펑!

그렇게 되면 보컬 잃은 코러스들 때려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남은 왜구는 스물여섯.

어헝!

깨달음을 얻을 방편으로 만들어진 불문의 사자후가 살육을 여는 울부짖음이 되어 다시 한 번 왜구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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