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절강행(27)
쾌속선은 온주부 평양현을 향해 내달렸다. 온주 남부를 아우르는 멸왜단의 분타가 평양현에 있는 탓이다.
멸왜단 총타의 포구에서 평양현 포구까지는 천 리가 넘었다.
정확히 423km.
열두 명의 절정 무인들이 3인 1조로 일각씩 각기 일곱 번 쾌속선의 엔진 역할을 한 다음, 노꾼들이 노를 잡고 나머지 거리를 움직였다.
우리가 평양 포구에 도착한 것은 아직 해도 뜨기 전이다.
“평양 분타를 책임지고 있는 무양호네.”
포구에 도착하기 무섭게 평양 분타주가 우리를 맞이했다. 포구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뇌응대주 이도연입니다. 그런데, 금향현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금향현의 왜구들이 멸왜단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미끼일 가능성도 있기에 평양 분타는 방비를 든든히 하는 쪽으로 철검화가와 합의를 했네.”
뭐 총타에서 온 우리도 있으니 평양 분타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기도 했다.
“금향현 어디로 가면 됩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내 말에 무양호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속부터 채우는 것이 어떤가?”
밤새 달려왔으니 좀 먹고 쉬라는 말이다.
“육포를 챙겨 다닙니다.”
쉬어도 금향현에서 쉬어야 했다. 평양 분타에서 쉬고 있는데 또 다른 마을이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애들 독촉해서 빨리 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뭐 자네가 괜찮다면야. 그런데 다 데리고 갈 생각인가?”
무양호가 쾌속선에서 내려 대열을 이루고 있는 뇌응대를 보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번 일은 철검화가에서 주도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서 말이야.”
뇌응대 전력이 다 몰려가면 멸왜단이 일을 주도한 꼴이 된다는 말이다.
“거기다 만약 왜구 놈들이 성동격서의 수작을 부린 것이라면, 분타에 예비 전력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해서 그러네.”
내륙에 들어온 왜구 일백 정도는 철검화가의 무력으로 충분했다.
솔직히 분타에서 요청한 것도 놈들을 찾을 눈이지 박살낼 전력이 아니니 말이다.
허, 진우탁 이 양반 그냥 무공이 강해 단주 자리 앉아 있는 게 아니다. 총타에 앉아서 분타의 상황을 읽고 뇌응대 전원을 다 보낸 듯하다.
- 인천아, 네가 남을래?
화인천은 철검화가의 적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밖으로 내돌릴 이유가 없다. 그러니 혹시 집안과 무슨 문제가 있나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 형님이 생각하는 그런 문제 없거든요?
인천이 놈이 뚱하니 전음으로 답했다.
“경 부대주가 분타에 남아 대원들을 지휘하도록.”
그럼 경철운을 남길 수밖에 없다.
매 다루는 법을 전수해야 된다는 핑계 때문에 진혜예는 달고 다녀야 하니 말이다.
= 응5, 감시 모드. 평양 일대의 무인들 출입을 감시해.
- 예, 리퍼.
손가락을 움직여 농꾼에게 명을 내린다. 혹시나 평양 분타를 왜구들이 후려칠 수 있다니 응5를 띄워 놓는 것이다. 바다 쪽으로 온다면 다른 매들에게 걸릴 것이니 육로로 다가올 공격을 대비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금향현 현도로 가면 되네. 철검화가의 분가가 거기에 있거든.”
내 물음에 평양 분타주가 답했다.
“화 부대주, 자네 철검화가의 금향현 분가가 어딘지 알지? 자네가 앞장서게.”
“예, 대주.”
철검화가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니 화인천을 내세우는 것이 좋았다. 뭐 자기 입으로 집안과 문제없다니 말이다.
그렇게 부대주 둘과 함께 금향현으로 향했다.
금향현 현도는 대강 팔십 리 길이었다. 평양 분타에서 내준 말을 타고 관도를 달리니 한 시진 좀 넘게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숙부가 계신다는 것은 자철검대(玆撤劍隊)가 이번 일을 맡은 겁니까?”
화인천이 우리를 맞이하는 중년인을 보며 물었다.
“쯧, 꼴을 보니 아무 진전도 없구나.”
“일 년 좀 넘었거든요? 일 년 만에 해결될 일이었으면 그냥 집안 어르신들이 해결했겠지요.”
“너무 느긋한 거 아니냐? 십 년 세월이 길다 하지만 금방 간다.”
“흠흠.”
두 숙질의 대화가 슬그머니 길어질 기미가 보이기에 헛기침으로 나와 진혜예가 여기 있음을 알린다.
“숙부, 나중에 이야기하지요. 일단 인사부터. 이쪽은 멸왜단 뇌응대주입니다. 대주, 이쪽은 제 숙부이자 철검화가의 자철검대 대주시고요.”
“뇌응대를 맡고 있는 이도연입니다.”
“벽력응주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화가의 자철검대를 맡고 있는 화지철이오.”
“후배, 아직 철비연(徹飛燕)의 이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날아가는 제비를 꿰뚫는다 하여 철비연이다. 화지철은 철검화가가 자랑하는 세 명의 초극 고수 중 하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인천의 숙부시면 저에게도 숙부와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그럼 편하게 대하겠네. 그리고 진 소저는 반년만인가?”
“그쯤 됐지요? 화 대협.”
진혜예가 웃으며 인사를 한다.
“밤새 달려온 듯 하니, 일단 쉬는 게 어떻겠나? 배도 좀 채우고 말일세.”
거부할 이유가 없다.
***
금향현에 도착한지 이틀째.
그동안 왜구들에게 습격 받은 마을들을 차례로 돌았다.
세 번째 마을까지 뒤졌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농꾼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시간만 잔뜩 잡아먹었다.
산중 마을이라 해는 또 빨리 떨어져서 철검화가의 금향현 분가로 돌아가는 지금은 횃불로 길을 밝히고 있는 상태다.
= 개 한 마리 키울까?
- 공방의 모든 라인이 안테나와 중계기 생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장은 사냥개 만들 여유 따위 없다는 소리다.
= 그놈의 안테나와 중계기들은 언제까지 완성되는데?
- 지금 속도라면….
내 질문에 대답을 하려던 농꾼의 어투가 갑자기 바뀐다.
- 리퍼, 서북쪽 15km 지점에서 화광이 관측되었습니다.
눈앞으로 지도가 뜨면서 내 위치와 화광이 관측된 위치가 표시되었다.
= 응4를 보내 정찰해.
손가락을 까닥여 명을 내린 다음 발을 멈추었다.
“잠시 멈추지요.”
내 말에 세 번째 마을을 둘러보고 현도로 돌아가던 일행들이 발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자철검대를 이끌고 있는 화지철이 물었다.
“이쪽으로 사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화광이 관측되었습니다.”
화지철이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중의 숲속인지라 화광은커녕 나무들 사이로 어둠에 물든 하늘이 보일뿐이다.
“그쯤에 마을이 있습니까?”
“놈들인가?”
내 물음에 화지철이 되물었다.
“그냥 산불일 수도 있습니다만?”
산중이라 관측 각이 안 나오는 탓인지 농꾼에게서 아직 다른 말이 없기에 하는 소리다.
“저쪽에 장원이, 무가로 볼 수 있는 곳이 하나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예, 대주 말씀대로입니다. 이쪽으로 산 세 개를 넘으면 검원장이 지주로 있는 마을이 나옵니다.”
화지철의 말에 자철검대의 무사가 말을 보탰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왜구 놈들이라면 매를 통해 바로 확인하고 추적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 리퍼, 왜구들입니다.
농꾼의 보고에 손을 들어 화지철의 입을 막았다.
“후우, 후.”
호흡을 조절하고 내기를 억누른다. 호신강기를 제어한 다음 손가락을 움직였다.
= 연결해.
호신강기로 인한 전파 차단이 사라지자 음파 통신의 간략화 된 화면이 아닌 생생한 화면들이 눈앞으로 떠오른다.
왜구들의 칼질에 마을의 장정들이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화면에 마을에서 날뛰고 있는 왜구들이 표시된다.
“왜구 확인됐습니다. 일단 눈에 띄는 자들은 쉰넷.”
“허, 듣기는 했지만 진짜 신기한 재줄세.”
화지철이 탄성을 터트렸다.
“너희 오(伍)는 분가로 돌아가 뒷수습할 인원들을 데려와라.”
화지철이 자철검대의 오 하나를 보냈다.
“불 꺼!”
화지철의 말에 길을 밝히고 있던 횃불이 꺼졌다. 왜구들에게 우리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 없는 것이다.
불이 없어 좀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인원 중 안법을 단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검원장까지 길을 연다.”
“예.”
화지철의 명에 자철검대의 무사 둘이 검을 뽑아 들고 휘둘렀다.
삭뚝! 뚝!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울창한 숲에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길을 따라 우리들은 빠르게 발을 놀렸다.
화면을 보니, 지주로 보이는 장원을 거점으로 무인들이 왜구들을 어떻게 막아 보려 하고 있었다.
시골 장원답지 않게 절정 무인도 하나 보이고, 검기를 다루는 일류 무인들도 열쯤 있었다.
그 정도 전력이면 쉰이 좀 넘는 왜구들 상대로 해볼 만한 전력이었다.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왜구들을 상대한다면, 착실하게 왜구들에게 피해를 강요할 법도 하다.
젠장, 내가 하는 생각을 왜구 놈들도 했는지 왜구 무사 셋이 한데 뭉쳐서 들입다 돌격한다.
도기를 내뿜으며 한몸처럼 움직이는 셋의 공격에 열 명의 일류 무인들이 맥을 못 춘다.
패싸움 안 해본 티가 팍팍 나는 무인들이다. 왜구 무사 셋의 돌격에 별다른 대응도 못하고 팍팍 꼬꾸라지고 있다.
순식간에 넷이 쓰러진다. 그 광경에 절정 무인이 나섰다.
검으로 검기를 내뿜으며 절정의 무위를 뽐내지만, 왜구 무사 셋은 만만하지 않았다.
한 자루 왜도가 검기에 저항하면 남은 두 자루 왜도가 절정 무인을 노린다. 절정 무인이 뒤로 빠지며 왜도를 튕겨 내면 셋은 잠시 뒤로 물러나 하나가 된다.
셋이 돌아가며 펼치는 공방에 하나는 말려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왜구 무사 셋이 그렇게 절정 무인을 묶어 두고 있을 때 살아남은 일류 무사 여섯을 향해 쉰이 넘는 왜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한 명에 서넛씩 달려들자 장원의 무인들은 공격을 막기 급급한 꼴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절반도 가기 전에 다 죽을 듯 했다.
= 왜구들 죄다 등록해서 추적해.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을 박찼다.
내공의 격한 움직임에 제어되고 있던 호신강기가 활성화 되며 눈앞의 화면이 지도로 바뀐다. 왜구들과 무인들이 지도 위의 단순한 점으로 표시된다.
“대주!”
“같이 가자고요!”
화인천과 진혜예가 내 뒤를 쫓아왔지만, 작정하고 내달리는 내 뒤를 따르기는 무리다.
순식간에 숲을 뚫고 나온 몸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놈들이 이쪽을 발견해서 몸을 빼도 응4가 추격하면 될 일이다. 피풍의를 펼치며 발을 움직였다.
발에 나무가 걸리는 족족 후려 차며 전진한다.
“같이 가세!”
외침과 동시에 화지철의 몸이 숲을 뚫고 튀어나왔다.
내가 피풍의를 통해 얻은 양력으로 굴곡 없이 뻗어 나간다면, 화지철은 포물선을 그리며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치솟아 올라 허공을 날다 몸이 떨어지면 나무 위의 굵은 가지를 밟고 다시 치솟아 오른다.
그렇게 화지철을 뒤에 달고 치달려 직선거리 15km, 산 세 개를 뛰어넘는다.
대놓고 달려오는데 왜구들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다.
산기슭을 단숨에 돌파해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크아악!”
“칵!”
장원 앞에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왜구들을 상대하고 있던 검원장 무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재빨리 장원 앞에 당도했지만 살아남은 무사들은 없었다. 짜기라도 한 듯 전원이 쓰러져 있었다. 검원장주로 보이는 절정 무인 역시 마찬가지.
“뭐야?”
그리고 하나 같이 나를 향해 왜도를 겨눈다. 세 명의 왜구 무사들은 물론 쉰하나 왜구들까지.
그리고 그 쉰넷 왜구들의 왜도에서는 빠짐없이 도기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전원 일류?”
아니 본신 무력이 일류나 되는 왜구가 호거술을 사용할 수 없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그 무력은….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등골을 달린다. 그리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세. 바로 칼을 뽑아 몸을 돌린다.
- 리퍼! 초극 고수입니다.
“끼악!”
농꾼의 경고와 동시에 귀를 때리는 요란한 기합과 함께 이글거리는 강기에 휩싸인 대감도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나를 내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