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절강행(23)
응4를 감시 모드로 전환해 새로운 표적에게 붙였다. 염가동에게는 며칠 응4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다음 놈이 살마제일도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우리 쪽에서 먼저 치는 것이 좋지 않나?”
공범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초극 고수의 등장에 공청완이 말했다.
“저 놈 잡자고 항주 부도에서 난리를 피우자고? 살마제일도와 투닥거렸다는 소문이 나면 진범인 저것들을 놔 줘야 해.”
평현이 고개를 저었다. 공범을 잡자고 진범들을 풀어 주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며칠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 세 놈도 우리 손에서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조구흥이 평현의 말에 동조했다. 살마제일도로 항주 흑도의 근거지로 숨어든다면 거기서 조용히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놈은 탁발수행 중인 승려 흉내를 내고 있었다. 놈을 제외하고 항주 부도에서 탁발수행을 핑계로 떠도는 초극 고수가 다섯이 더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그들도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승려 셋은 보타삼문의 승려들임이 확인됐네.”
거상의 호위로 있던 보제사 속가제자가 확인해 준 것이다.
“황산파의 진인들이더군.”
왕자의 호위 무관 중 하나가 황산파의 속가제자라 그쪽을 통해 도사 둘의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항주는 소주와 더불어 중원 최대의 향락 도시라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초극 고수들도 마찬가지.
“천목노괴의 제자들이군. 신경 쓸 필요 없네. 매년 찻잎 팔러 온 김에 조용히 놀다가는 치들이네.”
그렇게 좋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당구마(錢塘口魔) 미어(黴魚)라고? 쫓아내! 그 작자 귀에 이번일 들어가면 무슨 소리 하고 다닐지 몰라!”
“뭐하는 작자인데 그렇게 기겁을 합니까?”
“전당강에서 노니는 노괴네. 식견이 제법 뛰어나긴 한데…. 자기 맘에 안 들면 조그만 일도 확대 해석하고는 거기에 온갖 말을 다 갖다 붙여서 세력 간의 명분 싸움을 만들어 즐기는 자이지.”
질겁하며 쫓아내야 할 자도 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 리퍼, 표적이 움직입니다.
야행복을 입고 객방을 나서는 모습이 응4의 눈을 통해 전해졌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세 노인들을 불러 모으고 바로 놈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밤이 깊었지만 항주의 밤거리는 휘황찬란했다.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밤은 밤이다. 낮보다 사람이 없고 불빛이 닿지 않는 곳곳은 어둠이었다.
놈은 그런 어둠 속으로 몸을 움직였다. 빛이 닿지 않는 지붕 위로 가볍게 움직인다.
땅에 발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의 눈에는 너무나 잘 보였다.
사람이 북적이는 밤거리를 뚫고 쫓아가기에는 무리라, 우리도 지붕 위로 올라설 수밖에 없다.
지붕 위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조용히 움직이는 놈과 그런 놈을 쫓는 우리뿐이다.
상대는 초극 고수. 기감이 예리하기에 조심해야 했다. 그러니 백 장 정도의 거리를 둔다.
“너무 먼 것 아닌가?”
조구흥이 조용히 묻는다. 지붕의 높낮이가 다르고 그 때문에 곳곳에 만들어지는 사각이 많았기에 잠시만 방심해도 놈을 시야에서 놓치기 일쑤라 그러는 것이다.
“놈에게 들켜 여기서 난리를 피우는 것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지요.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눈에서 벗어난다 해도 벗어난 게 아니니까요.”
내가 하늘 위를 가리키자 조구흥이 입을 닫았다. 그가 요 며칠간 보아온 응 시리즈의 능력은 충분히 믿을 만한 것이니 말이다.
놈은 항주 부도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도박장이 늘어선 패선방의 구역이었다. 잠시 구역의 외곽 부분을 돌아다니다 발걸음을 옮겼던 다른 방파의 구역과 달리 패선방 구역에서는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 우리 패선방이 그리 만만해 보였던가?”
공청완이 인상을 썼다.
“놈이 패선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응4를 통해 놈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초극 고수답게 일 장이 넘는 담벼락 따위 가볍게 뛰어넘는다. 담벼락과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짙은 그림자들 사이로 몸을 옮기며 번초들의 눈을 피한다. 그리고 창고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섰다.
“창고에 불 지르는 모양인데요?”
응4의 적외선 시야에 창고 안에서 사람 이외의 열원이 감지되었다.
“빨리 움직이세.”
공청완이 앞장섰다. 패선방의 전대 방주가 있는데 담벼락을 넘을 필요 없다.
“놈이 숨어들었다.”
수문장에게 정보를 전했다.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지 번을 서던 무사들이 어딘가로 조용히들 움직인다.
패선방의 중진들에게 연락이 가고, 조용히 하지만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이 응4의 시야에 잡혔다.
가짜 살마제일도의 목표가 될 만한 자들을 빼돌리는 것이다.
패선방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때, 나는 노친네 셋을 놈이 숨은 창고 앞으로 이끌었다.
현 패선방 방주와 부방주가 합류했다. 세 노친네가 창고의 좌우와 뒤쪽으로 흩어져서 포위망이 형성되자 방주와 부방주가 움직였다.
콰직!
문을 박살내며 두 초극 고수가 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파팍!
동시에 하나의 인영이 창고 지붕을 뚫고 치솟았다.
놈이다!
세 방향을 점하고 있는 노친네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허연 연기가 창고 지붕 위를 뒤덮었다.
응4의 적외선 시야에 네 개의 인영이 박투를 벌이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하다. 셋이 하나를 상대하고 있는데, 어째 셋이 서로 뭉쳐 하나에게 간신히 저항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게 뭔 일이야? 설마 저 승려인척 하던 대머리가 천문위라도 되는 건가?
내 기감은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영상을 봐도 천문위와 같은 압도적인 강력함은 없다.
다만 이상스레 셋이 빌빌거리고 있다.
- 리퍼, 독입니다.
농꾼이 답을 내놓았다.
- 마*카*투 베타의 숙주가 중독되었습니다.
조구흥이 중독되었다는 것은 다른 공 노인과 평 노인은 물론, 창고 안으로 뛰어든 둘도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
“마*카*투 베타 제독 기능 가동하고, 독에 대한 방어는?”
- 마*카*투 베타를 통해 독 성분을 분석 제독 필터 구성 중입니다.
이대로 두면 세 노친네는 물론 패선방의 방주와 부방주도 죽는다.
“5등분한다. 마*카*투 감마, 네 곳으로 몰아. 투입 즉시 제독 작업 시작해.”
농꾼에게 명령을 내리고 박살난 창고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도 연기가 가득했다. 몸 주위에 기막을 형성해 독연을 들이키지 않도록 한다.
예상대로 공청완의 제자 둘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낑낑대고 있는 것이 둘 다 독연을 들이마시고 한 대씩 맞은 듯했다.
준비된 단약, 마*카*투 감마를 꺼내니 증강현실이 덧씌워져 5등분으로 표시가 된다. 표시대로 다섯 조각낸다. 한 조각만 색깔이 다르다.
색깔 다른 한 조각은 따로 챙기고 둘에게 한 조각씩 먹였다.
“삼키세요. 해독에 도움 되는 것입니다.”
내 말에 둘이 단약을 날름 삼킨다. 나는 둘을 들쳐 메고 밖으로 나왔다.
창고 위에서는 여전히 싸움이 한창이다.
- 제독 필터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농꾼의 대답이 들려왔다.
칼을 뽑아 들고 도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왼손을 검게 물들인다.
오올!
칼자루를 감싸는 왼손에 생성된 스피커가 호거술을 발하니 도기가 순식간에 강화된다.
“하앗!”
그렇게 준비가 끝나자 바닥을 박찼다.
순식간에 창고 위로 올라선다. 독연 속에서 적외선 시야가 적용된다. 정상 체온을 가진 신형은 하나뿐이다. 셋은 신형 곳곳에서 체온 이상의 열을 뿜고 있었다.
정상 체온을 가진 놈에게 칼을 휘둘렀다.
“죽고 싶은 놈이 또 있구나!”
놈이 호통을 내지르며 내 공격을 받아냈다.
독연 속에서 그렇게 잠시 도격을 교환하며 놈을 붙들고 있자니.
“맙소사, 네가 왜 나서!”
“벽력응주! 자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네놈 죽으면 우탁이 놈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내가 끼어든 것을 눈치 챈 세 노친네가 그렇게 외치며 놈을 공격한다.
“다 죽어 가는 것들이!”
놈은 입으로는 호기롭게 외쳤지만 발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중독되었더라도 초극 고수가 셋이다. 나와 노친네들에게 포위되면 좋을 것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녀석이 한쪽으로 물러서자 재빨리 노친네들에게 다가갔다.
“닥치고 이거나 먹어요.”
색깔 다른 하나, 아무런 효능 없는 것은 조구흥에게 건네고 다른 두 조각을 공청완과 평현에게 줬다. 마*카*투 베타의 숙주인 조구흥에게 딱히 뭘 더 먹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이건?”
“어지간한 독은 해독할 수 있는 거예요. 먹고 뒤로 물러나요.”
평헌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며 칼로 놈을 겨눴다.
내 칼에 이글거리는 기운, 호거술이 만들어낸 유사 강기를 본 노친네들은 조각난 단약을 받아 삼키고 뒤로 물러났다.
“질 좋은 피독주를 가졌나 보군.”
놈은 독에 어지간한 자신을 가진 듯했다. 당장 물러나지 않는 꼴만 봐도 그렇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나를 중독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중독된 다섯도 해치울 수 있다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본좌의 독 앞에서는 시간벌기에 불과하다.”
낯부끄러운 대사를 지껄이며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캉, 카캉!
도격과 도격이 부딪치는 와중에 놈이 손을 흔들었다.
펑! 펑!
그럴 때마다 음습한 장력이 공간을 터트린다. 위력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아니 독장(毒掌)임을 감안하면 위험해야 마땅하지만 내게는 농꾼이 있다.
- 새로운 독이 검출되었습니다. 해독 패턴에 추가됩니다.
농꾼은 놈이 독장을 사용할 때마다 독을 분석하고 걸러냈다.
그렇게 독이 봉쇄되니 녀석은 도강을 다루는 평범한 초극 고수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독장이 있다면 나에게는 이게 있다.
번쩍, 파지지직!
배터리에 가득 찬 전류를 한 방에 내쏟는 전격에.
쿠당탕!
놈의 신형이 뻣뻣하게 굳어 붙으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내가 당할 뻔한 수법이 그것이었군.”
공청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파리하게 질려 있는 안색은 중독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나도 저렇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던 거요?”
조구흥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놈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가흥부 부도로 연결되는 가도에서 나에게 한 방 맞은 기억을 떠올린듯하다.
“과연 벽력응주. 부리는 매는 초극 고수를 찾고, 내뿜는 벼락은 초극 고수를 단번에 제압하는군.”
평현이 그렇게 감탄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요?”
“몸이 좀 안 좋아도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내 걱정에 평현이 그렇게 답하며 쓰러진 놈을 향해 발을 옮겼다.
우두둑!
놈의 허리춤을 밟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
“공가 너는 애들 입단속 시켜라. 오늘 아무 일 없었던 거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공청완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답했다.
“이제 놈들을 처리해야지?”
평현이 척추가 으스러진 놈을 짊어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살기를 풀풀 날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