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33화 (33/175)

33화

절강행(14)

데이터를 바꿔 가며 실험을 계속한다. 도기에 공력을 더 밀어 넣어보기도 하고, 호거술의 공력에 힘을 더 줘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가장 강한 위력을 내는 조합을 찾아낸다.

연공실에 들어온지 3일 만에 그 조합을, 최적화 지점을 찾아냈다.

올!

왼손이 소리를 토해내면 도기가 흩날리며 빛을 토해 강기로 변한다.

“흐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꼼수지만 강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원판 호거술이 순간적으로 도기나 강기의 위력을 강화한다면, 내가 사용하는 호거술은 계속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이게 다 성대를 통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동판,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내는 덕이다.

저장된 전력을 소모하면 배터리가 찰 때까지 도망가는 짓도 이제 끝인 것이다.

“뭐, 상대가 초극 고수일 경우에나 통용되는 일이긴 하지만….”

수확 대상자 중 나이가 좀 있으면 천문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니 고양되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는다.

절정 주제에 초극 고수와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된 것이 어딘가.

생각을 긍정적으로 키우며 실험을 재개한다.

“그럼, 한 걸음 더 나가 볼까?”

호거술로 만들어진 강기에 전압을 걸어 보는 것이다.

- 반응 없습니다.

도기에 걸었던 만큼의 전압을 걸었지만 호거술로 만들어낸 강기는 변화가 없었다. 아니 도기와 달리 그냥 전류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압을 높여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때려 박아!”

단번에 배터리를 비울 정도로 출력을 높였음에도 강기는 요지부동이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다. 현 배터리의 최대 출력이 호신강기를 뚫고 초극 고수의 신체를 2분 정도 경직시키는 것이 다이지 않은가.

“역으로 해볼까?”

배터리가 충전되기를 기다렸다.

충전되기 무섭게 도기를 일으키고 전압을 건다. 강화된 도기가 빛을 뿌리고 거기에 호거술을 적용한다.

오올!

파화핫!

순간 빛이 터지며 세상이 순식간에 백색으로 물든다.

“뭐야?”

안법으로 단련된 눈이 순간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시력을 상실할 정도다.

- 시력 정상화 합니다.

농꾼의 적절한 조치로 바로 시력이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들고 있는 칼은 지금 강기로 덮여 있다.

- 배터리 잔량 0입니다. 호거술이 발동되는 순간 배터리의 전류가 단번에 방출됐습니다.

“제어가 안됐다는 소리네?”

- 예, 리퍼.

“방금 같은 경우는 대비 못하냐?”

- 가능합니다. 배터리 충전 후 바로 실험 재개하면 됩니다.

그 사이에 조처가 가능하다는 소리다. 배터리 충전은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다.

- 배터리 충전 완료.

바로 실험을 다시 한다. 도기를 일으키고 전압을 건다. 그리고 호거술을 사용한다.

오올!

빛이 터진다. 하지만 이미 농꾼에 의해 대비가 된 상태. 방금과 같은 시력 상실은 일어나지 않는다.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일그러지지 않은 감각이, 단련된 절정 무인의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호거술로 만들어낸 강기의 위력을 뛰어넘는 그런 힘이 내 칼에 머물렀다고.

“그런데, 배터리 전력을 다 끌어 쓰는데 스피커는 작동되네?”

- 스피커는 인체 전류를 활용하는 겁니다.

“이거 장풍에도 써먹을 수 있으려나?”

그렇게 연공실에서 호거술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서 궁리하고 있자니 화인천이 찾아왔다.

“형님, 뇌응대 구성원에 대한 신상명세(身上明細)가 나왔습니다.”

화인천이 내게 문서를 건넸다.

“이제 노는 시간 끝이라는 거네?”

“예, 뇌응대주로 일하셔야 됩니다.”

“철운이랑 누님은?”

“이미 보셨고, 집무실에서 형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화인천의 뒤를 따라 걸으며 대충 문서를 훑었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어디서 절정 무인들을 끌어올 건가 했더니….

뇌응대의 대원으로 삼으라고 보내온 녀석들 대다수가 스물 초반의 녀석들이다. 실력은 어떻게든 다 절정에 들어선 녀석들. 각자의 문파에서 나름 힘들여 키운 후기지수들이라는 소리다.

“아니 애들을 냅다 밀어 넣으면 어쩌라고.”

진혜예의 노성이 집무실 밖에서도 들렸다.

“저 왔습니다.”

“대주, 봤어?”

진혜예가 물었다. 누님 동생 하기로 했던 사이기에 전 현무대원끼리 있을 때는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봤지요.”

내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 중에 제대로 피 맛을 본 녀석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네.”

진혜예가 고개를 흔들며 인상을 썼다.

“후, 실전을 경험해 본 녀석들이 있을까를 걱정할 게 아니라 긍정단련의 부작용이나 벗어났을까를 걱정해야 할 나이 아닙니까.”

경철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긍정단련이요?”

화인천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물었다.

“너 영약 먹었냐?”

진혜예가 물었다.

“아니요.”

“이 녀석 나름 천재로 소문났었습니다.”

화인천의 대답에 경철운이 말을 보탰다.

“그럼 모를 수 있겠군. 이 대주도 긍정단련에 대해 몰라?”

진혜예가 나를 보며 물었다.

“긍정단련이라면 무공 상승 속도와 예의범절을 교환한다는 그 훈육 방법 말하는 겁니까?”

긍정효과의 극대화, 21세기 초반에 화제가 됐던 교육 모토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거랑 비슷한 방법이다.

거듭된 칭찬으로 제자의 자신감을 높이고, 긍정적 사고를 기르게 하여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의지와 집중력을 심어 내공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단련법이다. 많은 방파에서 이걸 활용할 정도로 효과는 좋다.

단점이 있다면 이게 “나는 특별해. 나는 범인들과 달라!”로 발전해서 싸가지와 버르장머리의 상실로 이어지고, 심할 경우 “내가 최고고 내가 무조건 옳다!”로 까지 발전해 인성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림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 무력 아닌가. 그래서 영약을 퍼 먹일 사정이 안 되고, 천재를 제자로 거두지 못하고, 제자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할 역량이 없어 딱 죽기 직전의 한계까지 굴리지 못하는 중소 문파에서 핵심 인재를 양성할 때 많이 사용되고 있다더라.

“이 대주도 천재였어?”

들어본 적 있다는 내 말투에 진혜예가 물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농꾼 녀석이 어릴 때부터 작동했다면 나도 초극 고수였겠지.

“사부님이 제자 관리를 잘하시는 편이라.”

“스승께서 살려만 놓으신 쪽이네?”

진혜예의 말에 사부 밑에서 죽도록 구른 시절이 기억나 몸이 절로 떨렸다.

“일단 저는 단주께 다녀오겠습니다.”

“확답을 받아 오라고.”

진혜예의 말을 뒤로 하고 멸왜단주 집무실로 향했다.

“단주, 뇌응대주입니다.”

“들어오게.”

집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바로 들어갔다.

“신입들 때문에 왔나?”

진우탁이 내가 찾아온 이유를 눈치 채고 물었다.

“예.”

“자네도 봤으면 알겠지만, 죄다 절강 중소 방파의 차세대들이야.”

“제대로 된 강호행을 해본 적이 없어들 보였습니다만?”

“저 나이대면 대개 그렇지.”

“저들로 뇌응대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봅니까?”

“육체적 역량은 충분하지.”

육체적 역량이 문제가 아니잖아! 이 양반아!

“중소 방파의 차세대들이면 긍정단련으로 키워낸 인재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가능성이 아니라 그걸로 키운 애들 맞아. 그래서 이때쯤이면 슬슬 수련 방식을 바꿔야 할 때지. 인성 교육도 시키고, 무림에서 자기 위치도 돌아보게 만들고 말이야.”

“그 말씀은?”

“각 소속 문파의 수장들로부터 죽거나 병신만 되지 않는다면 뭘 해도 좋다는 확답을 받았다네.”

긍정 단련의 부작용으로 자존심이 자만심으로 변질되었으니 그걸 깨야 했다.

이 인간 그걸 대신해 주겠다고 중소 방파의 후기지수들을 끌고 온듯하다.

생각해 보니 각 문파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파의 존장이 그걸 깰 수는 없다. 같은 방법으로 배워 왔고, 같은 무공을 수련했다. 세월의 차이가 있으니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존장들에게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인근 중소 방파의 후기지수끼리 비무를 할 수도 없다. 이웃이자 경쟁자인데 자기들의 차세대가 깨지면 그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들이 깨기를 원하는 것은 자만심이지 자존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문파의 존장이 데리고 강호행을 한다. 시간을 들여서 세상 넓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뇌응대는 실로 최고의 선택이다. 애송이들의 자만심을 깨 줄 절정 무인이 넷이나 있다.

그뿐이랴? 응 시리즈의 정찰로 찾아낸 왜구를 작살내는 것이 뇌응대의 임무다. 뇌응대에 착실히 붙어 있으면 뇌응대의 성과를 통해 절강 어디에서나 통할 항왜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만심이 깨지고 같이 쪼그라드는 자존심에 충분히 펌프질을 할 수 있는 자리다.

“고생은 제가 하는데 어째 득은 단주께서 보십니다.”

멸왜단주씩이나 되는 위인이 이런 기회를 공짜로 베풀 리 있나? 대가로 뭔가를 받아냈을 것이 분명하다.

“억울하면 자네가 단주하게. 원하기만 한다면 내 기꺼이 내 줄 용의 있네.”

단주 자리를 내미는 것이 아직도 내 신상을 털려고 하는 듯하다.

사부가 매들을 내게 물려 준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건가?

그래서 결국 가상의 사부 천랑 석무제까지 멸왜단으로 모셔오겠다는 속셈? 어쨌든 내 신상은 소중한 것이다. 멸왜단에 온 이유가 신상을 숨기기 위해서인데, 멸왜단에 털리면 안 되지.

“됐습니다. 어쨌든 죽거나 병신만 만들지 않으면 뭘 하든 된다 하셨지요?”

“분명히 그랬네.”

내 확인에 진우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진우탁의 집무실을 나와 뇌응대가 자리 잡은 전각으로 향했다.

“대주, 단주께서 애송이들 말고 다른 전력으로 교체해 준데?”

진혜예가 물었다.

“사지랑 목숨만 붙여 놓으면 된다는 확답을 받고 들여왔답니다.”

“대주에서 부대주로 굴러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이제 애송이들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해?”

내 대답에 진혜예의 입이 어디까지 튀어나왔다.

“육체적으로는 어쨌든 절정 무인이니 조금만 굴리면 써먹을 만해질 겁니다.”

“절정이니 굴리기 힘들어서 그렇지. 한두 놈도 아니고 열둘이야. 열둘. 우리 넷이 공평히 나눈다 해도 한 명당 셋이라고 셋. 내가 보타본산에서 긍정 단련 받은 작자를 겪어 봐서 아는데, 어설프게 밟으면 통하지도 않아. 하나씩 신경 써서 잘근잘근 밟아 줘야 한다고. 말이 좋아 사지육신 멀쩡하고 목숨만 붙어 놓으면 된다지만, 우리가 애송이들 교육을 시키려고 불러들인 게 아니잖아.”

진혜예의 말대로다. 왜구를 상대로 하는 전력으로 삼기 위해 불러들였다.

그러니 자만심을 깬다고 전력에서 제외될 정도로 두들겨 팰 수 없는 것이다.

“적당히 팬다고 깨질 자만심도 아니고. 게다가 왜구 놈들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하아.”

진혜예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말 대로네. 나도 겪어 보긴 했는데, 한 번 깨졌다고 포기할 놈들이 아니야. 심한 놈은 야밤에 처소로 습격하러 오는 놈도 있어.”

“진짜 그런 미친놈이 있어요?”

경철운의 말에 화인천의 눈이 커졌다.

“열둘이나 되니 적어도 하나 정도는 있을 걸?”

경철운의 얼굴을 보니 직접 겪은 일인 듯하다.

뭐 그렇다면 흑도의 방식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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