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절강행(13)
진우탁과 함께 총타로 복귀했다. 응3으로 소식을 전해 현무대의 다른 인원들도 총타로 복귀하게 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다친 곳은 없지?”
진혜예가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고는 말했다.
“예.”
“어디서 나온 작자들인지 확인은 했어?”
진혜예가 물었다.
“초극 고수 일곱을 동원할 정도면 육가장 말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화인천이 이를 갈았다.
“한 군데 더 있던데?”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제3의 세력인가?”
화인천과 진혜예가 안색을 굳혔다.
“설마 멸왜단 사람들이었어?”
경철운이 물었다. 과연 현무대에서 머리 회전이 제일 빠른 친구답다.
“아군이었다고요?”
“멸왜단 사람들이었다고? 이 양반들이 미쳤나! 왜구들이 들이칠 시기인데 근무지를 이탈해!”
화인천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진혜예가 분노를 터트렸다.
“분타나 총타의 분들이 아니라 항주 흑도분들이라더군요.”
“아, 그럼 문제없지.”
내 말에 진혜예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기를 거둔다.
이 누나 좀 이상해.
“매들 때문인가?”
“그렇지.”
경철운의 핵심을 짚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초극 고수 일곱 분들이 죄다 항주의 흑도 분들이었다고?”
“어.”
경철운의 확인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너 도대체 뭐를 얼마나 요구했기에 항주 흑도의 초극 고수 일곱이 움직여!”
경철운이 기겁을 했다.
“무슨 소리야?”
뜨끔했지만 경철운이 어떻게 저기까지 파악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멸왜단의 운용 자금은 절강 전역의 유지들이 내는 기부금으로 충당된다고. 예정 외의 상황이 발생해서 추가 자금이 필요하면 일단 항주 흑도에게 요청한단 말이야. 나중에 다시 절강 전역의 유지들에게 돈을 더 걷어 갚지만 무이자로 빌리는 거라고.”
아아 멸왜단의 재정에 항주 흑도가 깊이 관여하고 있었구나. 그러니 절강 정파인들은 항주 흑도에 대해서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가?
“그쪽 사람들 손이 커서 몇 만 냥 정도의 추가 자금은 묻지도 않고 내어 준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요구했기에….”
경철운의 말에 나를 바라보는 진혜예와 화인천의 눈빛이 바뀌었다. 무슨 도둑놈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말이다.
“다들 모여 있구나.”
외당의 부당주 정천성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진혜예가 물었다.
“현무대는 오늘 부로 해체다.”
“무슨 소리죠?”
진혜예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물었다.
“전직 현무대원들은 외당 소속에서 단주 직속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나머지는 직속상관에게 듣도록 하고, 외당 소속 전각에서 방이나 빼.”
정천성이 뚱하니 말했다.
“따라와!”
진혜예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누님, 어쩌려고요?”
화인천이 물었다.
“부당주 말대로 직속상관에게 물으러 가야지.”
멸왜단주에게 따지러 간다는 말이다. 진혜예가 앞장서고 그 뒤를 화인천과 나, 경철운이 따랐다.
“아는 거 없냐?”
경철운이 나에게 물었다.
“가보면 알겠지.”
멸왜단주와 이야기 된 부분이다. 나를 주축으로 조직을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단주! 현무대를 해체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요!”
진혜예가 기세 좋게 멸왜단주 집무실에 쳐들어갔다.
“해체한다가 아니라 이미 해체된 거지. 넌 오늘부터 뇌응대(雷鷹隊) 부대주야.”
“아버….”
“하는 일 바뀌는 거 없다. 따지고 보면 많이 바뀌는 건가? 현무대 때는 어디 있는지 모르는 왜구 찾아다녔던 것이고, 이번에는 어디 있는지 알고 잡아 죽이기 위해 가는 것이니깐.”
그렇게 딸의 입을 막은 진우탁이 진혜예 뒤에 서 있는 우리들을 보고 말을 이었다.
“경철운, 자네도 부대주네. 화인천 자네도. 저 녀석과 함께 자네들 대주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봐 두라고.”
“단주, 시간이 필요하다 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조직 개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했으면서 돌아오기 무섭게 이게 뭔 짓이란 말인가.
“멸왜단 곳곳에서 자네가 원하는 수준의 인원들을 추려냈다가는 조직의 허리가 박살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그냥 신규 인원을 들여오기로 했네. 절정인 녀석들로만 보내 줄 테니 알아서 잘 해보게. 이도연 뇌응대주.”
***
뇌응대 편성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현 뇌응대, 전 현무대의 인원들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뒤로 다른 짓을 해야 하는 나는 전혀 한가하지 않았다.
“염가동은?”
- 가흥부를 빠져나와 항주로 이동 중입니다.
칠 일 동안 펼쳐진 습격으로 염가동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금선방의 핵심 인사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었다.
응 시리즈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초극 고수의 습격을 살펴본 감상은 ‘저걸 어떻게 막아?’였다.
금선방은 태호 육가장의 지원까지 받았지만 염가동을 잡지 못했다.
“이 녀석 돈 필요하다 했지?”
염가동이 신분을 숨기고 금선방에 가담한 이유가 돈이다. 몰락한 태산파와 그 속가들의 부흥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것이다.
- 염가동이 지닌 재산은 현재 리퍼가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의 수십 배입니다만?
염가동은 금선방 총타를 턴 탓에 수만 냥의 전표를 가지고 있는 상태다. 사제와 사부에게 매달 은자 천 냥을 지원 받는 나보다 부자라는 소리.
“오래 가야 할 사이이니….”
10년은 부려먹어야 하니, 내가 시키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태산파에 돈 되는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마*카*투 알파를 통해 조선어 번역 지원을 해주고 조선에서 인삼이나 수입하라 할까?
태산 속가 몇 명만 끌어들이면 돈 벌기 쉽다. 나룻배에 면포를 가득 싣고 황해를 건너 인삼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시대의 인삼은 확실히 돈이 되는 귀물이다. 산동에서 팔면 황보세가가 눈치 챌 수 있으니 절강에서 팔면 된다.
항주부 흑도에는 마*카*투 베타를 품고 있는 조 노인도 있잖은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마*카*투 알파의 번역 지원이 필수가 되니 염가동이 내가 시키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염가동에게 조 노인을 찾아가도록 하게 해. 아니 그 전에 조 노인 생체 리듬을 조작 가능한지 간부터 봐야 하나?”
- 정확한 지령을 내려 주십시오, 리퍼.
“조 노인의 생체 리듬을 조작해서 염가동에게 호감이나 신뢰가 가도록 할 수 있나?”
-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있습니까? 그냥 염가동에게 했듯 조 노인도 굴복시키면 간단합니다만?
“염가동과 조 노인은 경우가 다르지.”
염가동은 나를 천문위의 고수이자 멸왜단의 숨겨진 칼쯤으로 여기고 있다. 마*카*투 알파를 통한 증강현실로 홀로 칼춤 추게 만든 탓이다. 그가 상대한 겉모습은 나였지만 실상은 진우탁의, 천문위의 데이터. 어쨌든 그렇기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 노인은 내가 멸왜단과 서로 원하는 것을 거래하는 외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다가 내 진짜 실력도 대충 짐작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조 노인에게 나는 뭔가 신기한 꼼수를 써서 초극을 잡을 수 있는 절정 무인일 뿐이다.
그 차이는 크다. 내가 조 노인의 목숨을 쥐고 압박한다? 살만큼 살은 노인이고 자존심도 강할 게 분명한 흑도의 인사다. 자기 목숨을 버려서 나를 엿 먹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염가동이 조 노인을 통해 항주의 비단을 사들이게 해.”
항주 비단을 북경에 가져다 팔게 하면 제법 큰돈을 벌 수 있다. 당연히 해로를 통한 밀수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통로로 운반한다면 중간에 뜯기는 것이 많다.
항주에서 사들인 가격의 열 배 이상으로 팔아야 간신히 두 배 장사가 될 정도다.
아니 그것도 장사를 할 수 있을 때나 그렇다. 보통의 경우에는 장사 자체를 할 수 없다. 기존의 비단 상인들이 새로운 경쟁자를 용납할 리 없지 않은가.
대대로 비단 장사를 해온 거상들이 동원할 수 있는 무력은 상당하다. 흑도 제일세가라는 태호의 육가장도 오대 세가 중 하나인 신창양가도 움직일 수 있는 게 그들이다.
오대 세가에 들지도 못하는 황보세가를 두려워하는 것이 현 태산파의 실상 아닌가.
그러니 적당하게 밀거래를 하게 하는 것이 좋다.
- 예, 리퍼. 그렇게 유도하겠습니다.
염가동에 대한 지시는 그렇게 일단락 했다.
무공을 수련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연공실 하나를 얻었다.
“천문위의 데이터를 한번 보도록 할까?”
나는 아직 초극 고수가 되지 못했지만, 도기에 전압 걸어서 초극 고수와 싸울 수 있다.
그게 다 초극 고수인 사부님의 데이터를 통해 초극 고수의 전투 감각을 몸에 익혔기 때문이다.
천문위인 진우탁의 데이터를 통해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몸에 익히면 초극 고수를 수월하게 때려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진우탁의 데이터 몸에 적용하고, 상대는 염가동으로 해볼까? 시작해.”
- 예, 리퍼.
두근거리는 감각과 함께 진우탁의 데이터가 몸에 적용된다.
그리고….
- 리퍼, 정신이 드십니까?
농꾼의 목소리에 눈을 뜨니 나는 연공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데이터를 적용하는 순간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왜?”
내 물음에 뭔가 요란한 그래프들이 내 눈앞으로 떠올랐다.
- 데이터 적용 당시 리퍼의 신체 반응들입니다.
기맥과 혈도 손상에 대한 데이터가 있기에 얼른 몸을 살폈다.
몸 여기저기에 공력을 돌려 봐도 별 이상이 없었다.
“농꾼, 네가 치료한 거야?”
- 예, 바로 데이터 적용을 멈추고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내 신체 데이터를 살피니 계속 데이터를 적용했더라면 기맥이고 혈도고 죄다 박살났을 수도 있었다.
“천문위의 평시 내력 운용도 절정 몸으로는 못 따라간다는 소리잖아.”
지금 몸으로는 전투 감각도 건지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라는 소리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염가동의 데이터로 수련을 해볼까?”
왜구의 요란한 기합술, 염가동이 ‘호거술’이라 불리는 그 기술이 대상이다. 강기마저 강화시키는 수법이니 그 수법을 통해 내 무공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상태 재현합니다.
농꾼의 말과 함께 몸 곳곳에서 자극이 시작되었다. 호거술을 펼칠 때 염가동의 신체 반응을 재현해서 그 운기 경로를 알아내는 것이다.
자극을 따라 정신이 흐르고, 정신을 따라 공력이 움직인다.
뽑아 든 칼에 도기가 생성되고, 내 성대가 기합을 토해냈다.
“끼요옷!”
뭔가 공간이 일렁이기는 하는데, 도기에는 큰 변화가 없다.
“역시, 단번에 안 되네.”
당연하다. 나는 염가동이 아니다. 칼에 담긴 힘이 다르고, 목소리에 담긴 공력이 다르다.
“도기에 전압 걸었을 때처럼 변화를 줘 가며 반복 작업을 해줘야 하나? 성대 결절 일어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소리를 계속 내야 하니 저번보다 더 힘겨운 작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한가? 다른 꼼수는 없는 건가?
“농꾼.”
- 예, 리퍼.
“코팅 구조를 변형시켜서 진동판, 그러니깐 스피커 만들 수 있지?”
- 가능합니다.
“왼손, 손바닥에 하나 만들어.”
- 예, 리퍼.
대답과 동시에 손이 시커멓게 철 이온으로 코팅된다. 평소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만든 거 맞아?”
끼요옷!
내 물음에 농꾼의 대답 대신 손바닥이 떨리며 기합을 토해냈다.
피식하고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럼, 시작한다.”
오른손으로 칼을 바로 쥐고 도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왼손으로 도기에 휩싸인 칼날을 겨눈다. 그리고 호거술의 요령에 따라 기운을 움직여 왼손으로 몰아넣는다.
끼요옷!, 끼욧!
공력이 가해진 진동이 공간을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도기를 유지하고 호거술의 공력을 왼손으로 밀어 넣고만 있으면 되는 상황. 스피커의 음역대를 농꾼이 조작하며 공력과 반응하여 도기를 증폭시킬 주파수를 찾는 것이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진전이 없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절애도에서 기록한 전투 데이터 중 왜구 놈들 것들도 있지 않나? 그때 호거술 쓴 놈들 있잖아.”
- 검색 중, 찾았습니다. 적용하겠습니다.
카앗, 캇, 카핫!
왼손이 연신 기합을 토해냈다. 그렇게 잠시 진행된다 싶더니.
- 실험을 잠시 중지합니다.
“왜?”
농꾼의 요청에 도기와 호거술의 공력 공급을 중단하고 물었다.
- 대조군이 생성되었으니 추정 연산이 가능합니다. 계산에 시간이 소모되니 리퍼의 휴식을 권장합니다.
뭐, 내 목소리 써 가며 질러대는 것이 아니라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도기를 유지하고 스피커의 진동판에 공력을 불어넣는 것은 내 몫. 쉴 수 있을 때 쉬어 소모된 공력을 회복하는 것이 좋다.
“후우, 후.”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운기를 한다. 그렇게 소모된 공력을 채웠다.
- 리퍼, 실험을 재개하겠습니다.
농꾼의 목소리에 다시 칼을 쥐고 도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왼손으로 공력을 몰아넣으니.
오로로롤!
손바닥이 이때까지와는 다른 소리를 토해냈다.
우우웅!
그리고 그에 맞춰 도기가 빛을 더하며 도신을 완전히 감싼다.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