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절강행(07)
요상한 기합들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도기를 머금은 십수 개의 칼날들이 파도처럼 덮쳐든다.
이에 내 대응은 간단하다. 놈들이 달려오는 만큼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손으로는 시위를 당겼다.
핑, 피핑, 핑!
팍, 파팍, 팍!
시위를 당기면 당기는 대로 왜구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카핫!”
카앙!
도기로 철탄을 막아내는 왜구도 있지만 그 한 번뿐이다.
파학!
다음 날아오는 철탄은 칼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죽는다.
온전한 일류 고수도 지근거리에서 백 관 탄궁으로 쏘아낸 팔 냥 철탄을 쳐내면 손아귀를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류의 몸으로 꼼수를 써서 도기를 사용하는 왜구들이 그걸 연속으로 막는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계속 시위를 당기니 남은 것들은 넷의 한 무리.
“끼요옷!”
캉!
어림없다니깐? 웃으면서 다시 한 번 같은 표적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끼요옷!”
캉!
허? 막아! 철탄 두 개를 연달아 쏜다.
“끼요옷!”
깡, 깡!
한 놈이 막고 그 옆의 놈이 칼을 휘둘러 대신 막는다. 이 새끼들 버거워하는 얼굴이 아니다.
“끼요오오오올!”
그리고 넷이 한입이 되어 끊임없이 요상한 소리를 내며 덮쳐들었다.
도격을 피해 뒤로 물러서는데 코앞을 퍼런 도기가 훑고 지나갔다.
도격의 범위를 충분히 벗어났는데도 도기가 들이닥친다는 소리. 도기가 칼날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뻗치고 있는 것이다.
“이류의 몸을 한 주제에 일류의 경지를 넘어서 절정에 치닫고 있다고?”
어이가 없다.
“끼요오오오올!”
네 자루의 칼날이 도기를 뿜어내며 덮쳐들었다. 절정 넷의 합공이라 상정하고 대응한다.
탄궁을 던지고 칼을 뽑아 들기 무섭게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카카카캉!
칼과 칼이 격하게 부딪친다.
텅, 터텅, 텅, 텅.
그리고 네 자루의 왜도가 절벽 바닥을 구른다.
“어?”
왜구 네 놈 다 칼을 놓치고 빈손이다. 일단 빈틈을 봤으니 쑤시고 본다.
“커헉!”
“칵!”
두 놈이 허무하게 쓰러지고, 남은 둘은 옆구리에 찬 소태도를 뽑아 저항했다.
하지만 도기를 뿜기는커녕, 맺히게도 못하고 내 공격을 받으니.
“뭐야?”
휘두르는 대로 쪼개져 나가 피바다에 누워 버리는 왜구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졌다.
“뭐, 몸이 이류 무인이니 그렇다 치고….”
지금 중요한 것은 한순간 절정으로 자신을 위장한 왜구가 아니다.
절벽 위를 굴러다니는 왜도 스무 자루와 시체들이 차고 있는 소태도 열여덟 자루를 챙겼다.
세 척의 왜선을 박살내고 왜구들을 죽이느라 비어 버린 철탄 꾸러미 하나에 왜도와 소태도를 쑤셔놓고 탄궁과 철탄 꾸러미 두 개를 챙겨 자리를 옮긴다.
절벽 밑에서 몇 번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왜구들과 격전을 벌였던 근처로 화살이 쏟아진다.
이십여 장쯤 거리를 벌린 탓에 내 근처로 떨어지는 화살은 없다.
“화면 띄워.”
시야 한쪽으로 작게 줄어들었던 화면이 커지며 절벽 아래의 상황들이 펼쳐졌다.
절벽으로 몰려든 나룻배는 세 배로 늘어 총 서른한 척. 그 중 열두 척의 나룻배가 절벽에 붙어 왜구들을 내리고 있었다. 창을 든 왜구들이다.
그 중 여섯 척의 나룻배는 칼잡이들이 올라왔던 절벽에 붙어 있고, 여섯 척은 반대쪽 절벽에 붙어서 왜구들을 내리고 있었다.
양쪽으로 올라와 나를 포위하겠다는 속셈이다.
“몇 명이야?”
- 창수 100명과 왜구 무사 10명입니다. 그리고 왼쪽은 왜구로 보이지 않는 도객 10명이 100명의 창수를 이끌고 있습니다.
옷차림도 그렇고, 들고 있는 칼도 왜도가 아니다. 왜구와 손잡은 가흥부 흑도 놈들일 가능성이 크다.
“저쪽은?”
활을 든 왜구들을 태우고 물 위에 늘어서 있는 열아홉 척을 보며 물었다.
- 한 척당 10명씩 왜구 궁수 190명입니다.
“절벽 아래의 궁수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왜도를 한 손에 하나씩 뽑아 들었다.
- 왜도를 투척하실 겁니까?
“그래.”
철탄을 쓰는 것이 편하지만 시선을 끌기에는 이쪽이 좋다.
“저쪽이다.”
“저기에 있다!”
“저쪽으로 쏴!”
절벽 위로 올라온 왜구 아닌 것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질 하며 외친다.
그 근처의 왜구들이 그들을 따라 뭐라 외치자 절벽 아래 열아홉 척이 거기에 맞춰 움직인다.
- 적합한 투척….
“이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어.”
농꾼 녀석이 왜도 투척에 대한 계산을 하려는 것을 막는다. 잡병들 쓸어버리는 것까지 농꾼 녀석의 보조를 받을 필요 없다.
절벽 가장자리를 향해 달린다. 나룻배와 왜구들이 눈에 들어오는 즉시 사이드 암 투수가 공을 뿌리 듯 왜도를 횡으로 던졌다.
휘잉!
내 손을 떠난 왜도가 푸르른 도기를 머금고 횡으로 맹렬히 회전한다.
도기를 품은 왜도가 내 의지를 품고 나룻배 위를 훑었다.
휭!
나룻배 위에 선 궁수들 사이를 지나,
퍽!
나룻배 끝에 선 궁수의 가슴에 틀어 박혔다.
파파팟!
그리고 그 광경을 멍하니 보던 다른 궁수들의 신체가 왜도가 지나간 궤적을 따라 쩌억 하고 벌어지며 피를 뿜는다.
“크아악!”
“카악!”
비명이 터지며 나룻배 위가 피바다로 변한다.
또 다른 왜도가 내 손을 떠나 나룻배를 훑었다. 이번에는 왜구의 머리통에 박히며 비행을 마친다.
그리고 나룻배 위로 떨어지는 왜구의 머리통들. 그렇게 나룻배 두 척이 쓸려 나가자 나룻배 위의 왜구들은 기겁을 할 수밖에 없다.
나룻배 위의 궁수들이 미친 듯 활을 쐈다. 하지만 나는 절벽 위에 있고, 그들은 절벽 아래에 있다. 직사로 날아오는 화살들은 그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다.
내가 사각으로 숨어들자 화살의 직사가 멈췄다. 다시 몇 걸음 앞으로 움직여 왜도를 던진다.
순차적으로 던져진 두 자루의 왜도가 두 개의 원반이 되어 활쏘기에 열중하던 두 척의 나룻배를 휩쓸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열아홉 척의 나룻배가 피투성이 빈 배가 되어 버렸다.
190명의 궁수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다. 절반 이상은 왜도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해안으로 헤엄쳐 가는 중이다.
- 리퍼, 절벽 위로 다 올라왔습니다.
한숨 돌리고 있자니 농꾼 녀석의 경고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열 명의 흑도 칼잡이가 이끄는 창수들이 진을 짜고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쪽도 같은 형태. 저쪽은 왜구 무사들이 정면에 버티고 섰다.
“왜선 세 척에 탄 왜구 놈들이 삼백쯤 됐을 테고….”
못해도 절반은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든 자들 수십 명을 탄궁으로 쏘아 죽였다.
“나룻배 위의 왜구 궁수들이 190명.”
절반은 왜도를 던져 죽였고, 절반은 빈손으로 헤엄치는 중이다.
“그리고 절벽 위로 올라온 것들이 한쪽에 110명씩, 220명.”
대충 잡아 700명 이상을 내가 묶어 두고 있는 상태다.
“하아, 불 한 번 지르는데 무슨 한 세월이야.”
내 투덜거림에 기다렸다는 듯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왜선들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절벽 위 양 방향에서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던 왜구들이 동요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왜선을 잃으면 돌아갈 길이 막히니 당연하다.
“절벽 위에서 불구경 잘 하셔.”
놈들에게 웃어 주며 철탄 꾸러미를 챙겨 절벽 가장자리를 향해 달렸다.
절벽 끝을 박차고 몸을 날린다. 동시에 피풍의를 펼쳤다. 짧은 활공으로 가장 가까운 나룻배에 내려앉았다.
철탄 꾸러미를 놓고 탄궁을 쥔다.
목표는 주위의 주인 잃은 나룻배들.
핑!
공력을 머금은 철탄이 공간을 가른다.
쾅!
나룻배에 구멍을 뚫고 바닷물을 채운다. 그렇게 서른 발의 철탄으로 서른 척의 나룻배를 침몰시켰다.
절벽 위의 왜구들이 그 광경을 보고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철궁을 슬쩍 겨누자 기겁을 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210명의 왜구와 10명의 흑도 칼잡이를 절벽 위에 묶어 놓고 유유히 노를 저어 섬 밖으로 통하는 동굴로 들어갔다.
수상 동굴의 정중앙에 배를 세우고 탄궁을 들었다.
“왜선들의 상태는?”
- 돛과 방향타 등, 왜선 운용의 핵심 부분에서 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왜구들이 배의 불길을 당장 잡는다 해도 수리에 2~3일은 소요될 듯합니다.
뭐 그렇게 왜선을 고쳐도 동굴 입구에 겹치듯 침몰한 세 척의 왜선들 때문에 큰 배가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다.
“놈들에게 남은 나룻배는?”
- 네 척입니다.
그걸 타고 빠져나가려는 놈들은 여기서 막으면 그만이다.
해 뜰 때까지 몇 시간만 막으면 된다. 그쯤 되면 총타에서 출발한 지원이 도착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탄궁을 들고 대기한지 일각쯤 지났을까?
팟, 팟, 팟!
물차는 소리와 함께 세 인영이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진혜예를 비롯한 현무대의 삼 인이 등평도수의 재간으로 달려오는 것이다.
“누님 수고하셨습니다. 철운이도, 인천이도 수고했다.”
나룻배 위에서 모두를 맞이했다.
“왜구 아닌 놈들을 몇 봤다. 필시 가흥부 흑도 놈들이겠지.”
진혜예의 말이다.
“제 쪽으로도 열 명 정도 왔습니다.”
“태호 주변에서 놀던 놈들이라 자맥질에 능숙한 놈들이 있을 수 있어.”
나룻배 위에서 물 위만 감시하다가는 물 아래로 접근하는 놈들에게 기습당할 수 있다는 소리다.
= 응 시리즈로 수중 탐지 가능해?
농꾼에게 문자질로 묻는다.
- 초음파로 수중 탐지가 가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수중에 신체 일부를 접속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중 탐지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매가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다. 물론, 야밤이고 동굴 안이라 그냥 강행해도 될 것 같기도 하지만….
- 응 시리즈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여분의 활줄을 이용하여 간이 탐지기를 제작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물 밑도 살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진혜예에게는 그렇게 말한 다음 농꾼의 지시대로 여분으로 준비한 활줄을 꺼냈다.
뭉친 줄을 길게 풀어서 입에 물고 살살 당긴다. 일 장 넘게 풀어진 활줄에 골고루 침을 바르는 걸로 보이지만, 실상은 체내에서 생성된 나노 머신을 투입하는 거다.
-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한쪽을 잡으시고 나머지는 수면 위에 늘여 놓으면 됩니다.
농꾼 녀석이 시키는 대로 활줄을 물 위로 던져 놓았다.
잠시 후 초음파가 그려내는 수면 아래의 상황들이 내 눈앞에 낱낱이 펼쳐졌다.
- 탐지 범위는 동굴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입니다.
동굴의 물에 잠긴 부분 전체라는 소리다.
= 생각보다 물고기들이 많은데?
동굴을 통해 절벽 안으로 몰려드는 물고기 떼들이 상당했다.
노를 이용해서 몇 마리 건져 볼까 하는데….
- 리퍼께서 안쪽에 먹이를 잔뜩 뿌린 탓입니다.
내가 죽인 왜구 녀석들 뜯어먹으러 온 놈들이라는 소리에 그럴 마음이 깡그리 사라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 리퍼, 쾌속선 한 척이 섬으로 접근 중입니다.
응 시리즈의 시야로 전환되며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쾌속선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 응5는?
멸왜단 총타에서 벌써 올 리가 없기에 응5의 위치를 확인했다.
- 남서쪽으로 38km 해상입니다. 쾌속선은 사포 쪽에서 온 배입니다.
농꾼의 대답. 가흥부 흑도 놈들이다.
전서구는 응 시리즈가 죄다 차단했다. 그리고 달랑 배 한 척이니 이쪽의 사정을 눈치 챈 것도 아니다.
= 초극 고수 탐지!
초극 고수만 없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 초극 고수 1인 확인.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