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절강행(05)
- 리퍼, 왜선의 정박지를 찾았습니다.
농꾼의 보고가 날아들었다. 가흥부 흑도를 감시한 것이 아니라 응4, 응5를 띄워 사포와 금산 해안선 일대를 훑어 왜선을 찾게 했던 것이다.
- 사포 동남쪽 10.8km에 위치한 섬에서 왜선을 발견했습니다.
= 몇 척인데?
- 전장 20m 이상인 배만 아홉 척입니다.
그 정도 배에 100명은 탄다고 그랬으니, 900명가량의 왜구가 득실거린다는 소리다.
= 여기서 거리는?
총타의 쾌속선을 타고 소흥부에 속해 있는 삼현도의 삼산으로 왔다. 가흥부 금산으로 가려고 배를 갈아타려는 것이 지금 현무대의 상황.
- 동북쪽 50.2km입니다.
= 근처에 대기 중인 응 시리즈는?
- 응1부터 3까지 입니다.
= 내 쪽으로 한 마리 보내.
- 예, 리퍼.
30초쯤 지났을까? 응3이 내 어깨로 내려앉았다.
“찾은 모양인데요?”
내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맙소사!”
“이게 말이 돼!”
아니 놀라다 못해 벙쪄 있는 얼굴들이다.
“아직 가흥부에 도착도 안했고, 흑도 감시도 시작 안했잖아!”
진혜예가 흥분해서 물었다.
“혹시나 싶어 금산, 사포 쪽 해안 일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왜선의 정박지를 찾아보게 했는데, 찾았네요.”
“그렇다 해도 말 나온 지 하루도 안 지났어. 그 사이에 어떻게 찾았다는 거야?”
“백 장 이상의 높이를 나는 게 매들입니다. 눈높이가 백 장만 되어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가 백 리가 넘어요. 그리고 매들의 눈이 보통 좋습니까? 그 정도 높이에서 지들 먹이 구분하는 애들인데.”
응3에게 육포를 먹이며 매의 시력과 그 시력을 활용한 광활한 시야에 대해서 말해 준다.
응3이 재빨리 육포를 받아먹고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방향을 보니 바다 쪽인데요? 분타에 말해 나룻배 한 척 빌릴 수 있을까요?”
진혜예를 보고 물었다.
나야 응4와 응5가 전해주는 정보로 위치와 그들의 인원 등을 알 수 있지만, 그것들을 바로 이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일단 사람 눈으로 확인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냥 쾌속선 타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진혜예가 우리가 내린 쾌속선을 가리켰다.
“왜구들이 멀리서 봤을 때 나룻배는 어부겠지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쾌속선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네.”
내 말에 납득한 진혜예가 바로 분타를 향해 움직였다.
“사공은 필요 없으니 배만 빌려와요!”
진혜예의 뒷모습을 보며 깜빡한 말을 전했다.
“누님이 배 빌려 올 동안 우리는 준비 좀 하자고.”
경철운과 화인천을 끌고 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진혜예가 빌린 나룻배에 물건들을 다 실었다.
“해 떨어지고 나서 움직일 거니깐, 그때까지는 쉬자고.”
“왜구 놈들의 눈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말이야. 내 얼핏 듣기로는 밤눈 어둡다 들었는데?”
경철운이 내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응3을 가리키며 물었다.
매는 야행성 동물이 아니라 확실히 밤눈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응 시리즈는 자연산 매들이 아니다.
“보통 매들은 그렇지. 하지만 저애들은 밤에도 잘 봐.”
나노 머신에 의해 생체 드론으로 개조된 응 시리즈는 밤에도 낮처럼 보는 것이 가능했다.
해 떨어지기 무섭게 나룻배에 올라탔다.
“맨 처음은 내가 하지. 돌아가면서 하자고.”
제일 먼저 노를 잡는다. 절정 무인의 육체로 노질을 하니 배가 쑥쑥 바다를 가른다.
= 포구에서 5km 정도 지나면 말해 줘.
계속 노질할 생각 따위 없기에 농꾼 녀석에게 일러뒀다.
이각 정도 흘렀을까?
- 삼산 포구에서 5.03km 떨어졌습니다. 목표까지는 45.2km 남았습니다.
농꾼의 말에 나는 노를 내려놓았다.
“이제 제가 잡지요.”
화인천이 일어나서 노를 잡으려했다.
“놔둬.”
“형님이 계속 하시게요?”
내 말에 화인천이 물었다.
“아니, 언제 도착할지 알고 노질로 가냐는 거지.”
해도 떨어진 상황. 망망대해라 주위에 보는 눈 따위도 없다. 그러니 쓸 수 있는 수단을 안 쓸 이유가 없다.
포구에서 산 나막신, 목혜(木鞋)를 꺼내 들었다.
“자, 다들 이거나 신읍시다.”
셋에게 각기 던져 주고 신발 위로 목혜를 신는다.
“신발 위에 신으시고 이렇게 단단히 묶으세요.”
그리고 벗겨지지 않게 끈으로 목혜와 발등, 발목을 묶었다.
“비도 안 오는데 왜 목혜를 신으라는 거야?”
진혜예가 목혜를 살피며 물었다.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하기 위해 두개의 굽이 있는 목혜도 아니다. 그저 바닥이 두툼하기만 한 목혜였다.
“절강 사람이니 다들 수영은 할 것이고, 등평도수(登萍渡水) 못하는 사람?”
대답 대신 전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할 수는 있죠. 얼마나 가느냐의 문제지. 전 백 걸음 정도 가능해요. 그 이상은 잘 안되더라고요.”
화인천의 대답.
“나도 그 정도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철운의 대답이다.
“이 누님은 백오십 걸음까지 해봤다.”
진혜예가 목혜를 신으며 말했다.
한 걸음에 일이 장씩은 뛰니 다들 어지간한 강은 건널 수준은 된다는 소리다.
“다들 등평도수로 한 바퀴 돌고 오시죠. 그럼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내 말에 경철운이 먼저 바다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팟, 파팟, 팟!
수면을 박차 등평도수를 펼치며 나룻배 주위를 돈다.
“허, 허허. 허허허!”
그리고 걸음이 더해질수록 경철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커졌다.
달리던 그가 갑자기 발을 멈춘다. 그리고 스윽 하고 수면 위로 미끄러지듯 발을 옮긴다.
“와, 저런 사기꾼 곰탱이를 봤나? 백 걸음이 한계라더니!”
화인천이 그런 경철운을 보고 투덜댔다. 백 걸음 따위 진작 넘어갔는데 경철운이 물에 빠질 기미가 안 보이니 그러는 것이다.
경철운이 나룻배로 돌아왔다.
“기가 차는군. 도대체 왜 이런 간단한 걸 아무도 생각 못한 거지.”
경철운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도는 아니지.”
내 말에 경철운이 피식 웃었다.
“핫!”
“탓!”
그런 경철운의 모습에 뭔가 깨닫는 것이 있는지 진혜예와 화인천이 바로 나룻배를 박찼다.
둘은 순식간에 바다 위를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도 그냥 펼치는 등평도수와 목혜를 신고 펼치는 등평도수의 차이점을 한껏 실감하는 듯 했다.
먼저 돌아온 것은 진혜예다.
“사소하지만 굉장한 방법이네. 그런데, 이런 것은 필시 비전(秘傳)일 텐데?”
진혜예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구 잡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배 타고 도망가는 왜구들 멍하게 쳐다보는 일은 없어지는 거지.”
진혜예가 입꼬리를 씨익 하고 말아 올리는 모습이 어째 좀 위험해 보인다.
“이걸 멸왜단의 고수들에게 공개하는 대가로 단주님께 부탁을 하나 해볼까 하는데, 누님이 주선해 주실 수 있나요?”
“공개해도 되는 거야?”
진혜예가 놀란 눈이 되어 물었다. 비전이 왜 비전인가? 함부로 전하지 않아 비전이다. 하지만 부력을 활용하는 방법 따위야 내게 큰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좀 더 쉽게 물 위를 달리게 하는 방법일 뿐이다.
“이미 형제들에게 공개했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약속을 할 수도 있어.”
진혜예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약속하지.”
가만히 듣고 있던 경철운도 끼어들었다.
“단주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 협조나 해주세요.”
“그래.”
진혜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이야기 잘 될 때까지만 모르는 척 해줘.”
“알았다. 인천이 입단속도 내가 하지.”
경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그렇게 마무리 되자 화인천이 나룻배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백 걸음이 아니라 기력이 다할 때까지 물 위를 달릴 수 있겠는데요?”
화인천이 신이 나서 말했다.
목혜가 가진 부력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 크지 않은 부력이라도 있기에 물속에 처박으려면 힘이 들어가고 시간이 걸린다. 그 힘이 발아래의 안정감을 만들고 그 시간이 편하게 힘을 쓸 여유를 준다.
그러니 등평도수를 어느 정도 펼칠 수 있는 절정 무인이 목혜를 신으면 물 위를 걸음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잘 됐네. 그럼 이제 달려.”
나는 뱃전에 밧줄을 묶고 화인천에게 그 끝을 넘겼다.
“형님, 이건?”
“매고 달리라고. 노 젓는 것보다 등평도수로 끌고 가는 게 훨씬 빨라. 걱정은 하지 마. 일각마다 교대해 줄 거야.”
절정 고수를 동력 삼아 나룻배가 검은 바닷물을 갈랐다.
***
“잘못 찾은 것 아냐?”
경철운이 나룻배 위에서 고개를 힘껏 들어 위를 올려다보며 의심을 지우지 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높다란 절벽의 아래다. 대강 십삼사 장, 40m에서 오가는 듯한 높이의 절벽이다.
100명이 탈 큰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은커녕 나룻배 한 척 대기도 힘든 곳 아닌가.
“누님, 아무래도 여기 사포 앞바다에서 보이는 그 절애도 같은데요? 저쪽이 사포 같고.”
화인천이 희미한 빛이 보이는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사포 앞바다에서 보이는 절애도라면 잘못 짚은 것 같은데? 절애도는 사방이 절벽이라….”
“일단, 배부터 올리죠.”
내가 진혜예의 말을 끊었다.
“그래, 어차피 온 거 확실히 살펴야지.”
진혜예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였다.
절정 무인이 넷이다. 적당한 암초 위에 나룻배를 올려다 놓는 것은 일도 아니다. 파도에 쓸려가지 않도록 밧줄로 나룻배를 암초에 고정시켰다.
“나룻배 안의 것들 챙겨서 일단 올라가지요. 이야기는 올라가서 살핀 다음 합시다.”
나는 제일 무거운 철탄을 죄다 짊어졌다. 팔 냥 철탄이 400개. 120kg의 묵직함이 어깨를 누른다.
절벽에 달라붙어 사지를 놀린다. 사지에 걸리는 무게가 내 체중 포함 300kg에 가깝지만 단련되고 강화된 육체로 무난하게 절벽을 오른다.
일반인이 평지를 걷는 것보다 빠르게 절벽 위로 올라왔다.
“아무것도 없네. 여기가 놈들의 거점이라면 번초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오?”
화인천이 막 절벽에 올라서며 투덜거렸다.
“괜히 절벽 위에 번초를 세우고 불을 밝혔다가는 사포 쪽에서 불빛을 발견할 위험이 있으니 안 세웠을 수도 있기는 한데….”
뒤이어 올라온 경철운이 화인천의 말에 반박은 하지만 아직도 미심쩍다는 투다.
나는 절벽 맞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밖에서 보면 두텁고 기다란 절벽이 바다 위에 솟아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넓적 대대한 원통과 같은 지형이다. 절벽 아래로 분지가 있고, 절벽이 마치 성벽처럼 원을 그리듯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그런 지형.
어둠에 물든 숲이 보이고 해안이 보인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건물들과, 정박해 있는 왜선들만 열한 척이다.
그새 두 척 늘었군.
“잘못 찾아왔다고?”
히죽 웃으며 옆에 엎드린 경철운에게 묻는다. 우리 넷은 아래에 있는 왜구들에게 관측당하지 않기 위해 절벽 가장자리에서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아니, 제대로 찾았네.”
경철운이 얼굴을 굳히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