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절강행(04)
현무대의 면면은 화려했다.
먼저 거한인 경철운, 절강 처주부의 패자인 철산맹의 맹주 경구전의 서자로 처주부에서는 ‘웅면호리(熊面狐狸)’로 불린 절정 무인이다. 별호에 호리가 붙은 걸 보면 생긴 것 답지 않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양이다. 나이는 나와 동갑인 스물다섯.
화인천은 절강 온주부에 자리 잡은 세가인 철검화가의 장자로, 온주부에서는 혈적검(穴積劍)의 별호를 휘날렸던 절정 무인이다. 세가의 장자가 외부로 나도는 것을 보니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하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스물넷.
그리고 마지막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무대의 누님인 진혜예다.
자신들의 터전에서만 유명한 경철운과 화인천과는 급이 다른 유명인이다.
무림에서 간간히 여 중 제일인을 배출하는 보타문 혜제사의 속가제자로, 3년 전부터 왜구를 쫓아다니며 칼부림을 해 절강 전역에 추왜검랑의 명성을 떨친 스물일곱 살의 여류 무인이다. 무위는 물론 절정이다.
게다가 절강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인 멸왜단주의 딸이다.
멸왜단주 진우탁, 보타문 법우사의 속가제자로 나노 머신을 보유한 내 목표 중 하나 말이다.
개개인이 절정 무인이요, 뒷배로는 다들 절강에서 이름난 초극 고수가 버티고 있다.
“내가 익힌 것은 용악부(龍握斧). 이름 그대로 용이 쥐고 휘두르는 듯한 강맹무비의 도끼질이지.”
현무대에 배정된 연무장에서 경철운이 도끼를 쥐고 말했다.
도끼머리가 두툼하고 날 길이만 한 자는 될듯한데, 석 자 길이의 자루마저 쇠로 된 도끼였다.
못해도 열 관은 되어 보이는 그야말로 용이나 쥐고 흔들 그런 도끼 아닌가.
“사부께서 낭인이셨던 터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쓰지만 주로 쓰는 것은 탄궁과 도다.”
경철운과 내가 서로에게 말을 놓게 된 것은 현무대의 누님인 진혜예의 한 마디 때문이다.
‘너도 네 동생 되었으니 너희 셋은 형제나 다름없지.’
나이도 동갑. 그래서 서로 말 편하게 하기로 한 것이다.
경철운과 나의 비무도 마찬가지.
‘서로 실력은 알아야지?’
현무대의 업무를 생각하면 서로 의지하며 다수의 적과 싸워야 했다. 서로의 실력과 무공 성향을 파악해야 빈틈없는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탄궁은 투사본기(投射本伎)의 사법을 응용해서 사용하는 것이고, 도법은 예도총서(乂刀悤㥠)의 변형인 벽무뇌정도(碧霧雷霆刀)다.”
벽무뇌정도. 내가 이때껏 익힌 벽운섬전도를 바탕으로 농꾼 녀석의 데이터베이스 안의 도법들의 초식들을 적절히 가져다 붙여 짜깁기한 무공이다.
군부의 대표 무공인 예도총서를 들먹인 것은 예도총서가 중원의 가장 대표적인 짜깁기 무공인 탓이다. 누가 초식의 원형을 알아본다 해도 예도총서에서 가져왔다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정도니 써먹지 않을 수 없다.
“비무인데, 탄궁?”
내가 탄궁을 뽑아 들자 경철운이 슬쩍 인상을 쓰며 물었다.
“거리가 있으면 탄궁으로 공격하고 근접하면 칼을 쓰는 것이 내 방식이기는 한데, 네 손에 들린 걸 봐라. 접근해서 싸우고 싶겠냐?”
“어이, 동생들 왜구들이랑 입으로 싸울 거야?”
진혜예가 재촉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공력은 무기 보호하는 정도만 쓰고, 이거 떨어지면 시작하는 거다.”
진혜예가 동전 하나를 내보이고는 엄지로 튕겨 올렸다.
땅!
동전이 땅을 때리는 순간, 나는 뒤로 누우며 바닥을 박찼다.
피피핑!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날며 손에 쥐고 있던 세 개의 철탄을 연사로 쏘아낸다.
“허엇”
부웅!
타타탕!
호쾌한 도끼질이 그리는 궤적에 세 개의 철탄이 모조리 튕겨 났다.
“이 정도는 가벼워!”
경철운이 호쾌하게 외치며 나와의 거리를 단번에 줄인다.
허리를 튕겨 누인 몸을 일으키며 발을 놀린다. 그리고 철탄을 뽑아 들며 다시 연사.
타타탕!
“내 걱정 말고 시위를 힘껏 당기라고 친구!”
이번에는 도끼를 짧게 끊어 쳐서 철탄을 가볍게 튕겨 낸 후 도끼를 크게 휘두른다.
부웅!
순식간에 거리가 줄어들며 도끼날이 나를 양단할 기세로 덮쳐든다.
허공으로 뛰어올라 피한다.
“호오!”
신난 기합성과 함께 몸을 회전시키며 경철운이 나를 따라 솟구친다. 당연히 도끼날도 함께다.
탕!
금속성과 함께 쇳가루를 휘날리며 내 몸이 허공으로 한층 더 치솟았다.
땅 위에 내려선 경철운이 멀쩡하게 연무장 끝에 내려서는 나를 보며 놀랐다.
“자루를 찼다지만 이것도 둔기나 마찬가지인데? 발바닥에 철판이라도 덧 댄 건가?”
경력이 파고드는 느낌이 없었으니 내가 내공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비슷해.”
발바닥을 순간적으로 코팅해서 받아냈으니 말이다. 공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맨발로 받았으면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겠지만 금속 코팅 덕에 타격은 없다.
= 저 녀석 근력이 어느 정도야?
탄궁을 옆으로 던지면서 문자질을 한다. 같은 덩치보다 백 근은 무거운 게 내 몸이다. 그런데 허공에서 올려치는 힘으로 내려 차는 나를 밀어 버렸다.
- 단순 근력만 따지면 현재 리퍼의 80% 수준입니다.
스테로이드 빨고 단련한 내 근력의 80%! 그리고 방금 그 일격은 전력도 아닐 것이다.
“방금 그 일격. 자네 힘의 몇 할쯤인가?”
혹시나 해서 확인한다.
“대강 칠에서 팔 할 정도?”
씨발! 욕 나온다.
힘이 슈퍼 약쟁이인 나와 비등하거나 좀 더 세다는 소리다. 나보다 좀 덩치가 크다지만, 체중을 따지면 나보다 무거울 리 없지 않은가.
“접근 전을 할 생각인가?”
내가 칼을 뽑아 들자 경철운이 물었다.
“백 관 탄궁 같은 무기를 들고 다니는 거 보면 모르나? 나도 힘은 자신 있다고!”
약까지 빨면서 근력을 키웠는데, 초극 고수도 아닌 절정 무인에게 질 수는 없다.
- 리퍼, 실력을 적당히 위장하실 생각이라 하셨습니다만?
= 무공을 이루는 요소는 많다. 내 밑천이 근력 하나만은 아니잖아!
“간다!”
경철운이 도끼를 앞세우고 달려든다. 나 역시 내 칼을 앞세우고 맞달렸다.
캉!
쇠와 쇠가 충돌하고, 힘과 힘이 어우러진다.
카카카카카캉!
경철운의 도끼질이 자체의 중량으로 무겁기는 하지만 내 칼질 또한 가벼운 게 아니다.
매 일격에 체중을 온전히 싣는다. 덩치는 경철운이 크지만 무기 포함 총 중량을 따지면 금속 코팅 된 뼈를 가진 내 쪽이 위다!
그렇게 서로 치고받기를 일각여.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공방이 이어졌다.
“잠깐, 너 공력 쓰는 거 아냐?”
경철운이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그 무식한 도끼로부터 칼 분질러 먹지 않을 정도만 쓰고 있지.”
내 말에 경철운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위아래를 살폈다.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았으니….”
경철운이 도끼를 내린다.
“그만두자는 건가?”
내 물음에 경철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칼질과 도끼질은 그만두고 손씨름으로 겨뤄 보자고.”
도끼를 한쪽으로 치운 경철운이 비스듬히 서서 오른손과 오른발을 내민다.
“좋지.”
나도 칼을 치우고 앞으로 내민 경철운의 발에 오른발을 내밀어 붙이고 오른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뭐 결과는 상식의 승리였다.
내추럴이 어디 현대 의학의 집대성인 약쟁이를 이기려 들어!
***
“팔 냥 철탄 백 개면 그 무게만도 여덟 관인데? 그걸 매고 다니는 거야?”
내가 묵직한 팔 냥 철탄을 챙기는 것을 보고 경철운이 하는 소리다.
“네 녀석 도끼는 열 관 넘지 않냐? 철탄처럼 분산 보관할 수도 없잖아?”
나보다 더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녀석에게 저딴 소리 들을 필요 없다.
“왜구에게 팔 냥 철탄은 좀 과한 것 같기는 한데요?”
화인천도 끼어들었다.
“일반적인 왜구라면 그냥 돌을 날려도 그만이고, 무사들이라 해도….”
“배 박살내는 데 좋다.”
내가 화인천의 말을 끊었다.
“예?”
화인천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력 몰아넣고 쏘면 돛대를 부술 수도 있고, 조타(操舵) 장치를 박살내서 왜선을 묶어 둘 수 있다.”
내 말에 진혜예가 눈을 빛냈다.
“인천아, 뭐 하냐? 팔 냥 철탄 안 챙기고! 힘 좋은 경철운, 너도 한 꾸러미 챙겨 들어! 도연이가 철탄 모자라면 어쩌려고!”
현무대의 누님인 진혜예가 직접 한 꾸러미 챙겨 드는 마당이다. 다른 둘도 어쩔 수 없이 챙길 수밖에 없다.
“가흥부로 올라가서 위에서부터 쭉 훑고 내려온다. 사포, 금산, 삼산, 자계, 정해, 상산, 창국 순이다.”
진혜예가 지도를 꺼내 절강 북부 해안선을 따라 손을 주욱 그었다.
“가흥부에 또 가는 겁니까?”
화인천이 인상을 썼다.
“화인천, 넌 저번처럼 가흥부 흑도와 문제 일으키지 말고.”
진혜예가 화인천에게 주의를 줬다.
“한 번 경험한 저보다는 이번이 처음인 도연 형님을 걱정해야지요?”
근데 이 녀석 나에게 화살을 넘긴다.
“흑도가 멸왜단 사람들에게 시비라도 겁니까?”
절강성 흑도들은 항왜 문제에서는 상당히 협조적이라 들었기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흥부 흑도는 절강 흑도라기보다는 태호 육가장의 세력권이라서 말이야.”
“왜구들과 밀무역이라도 하는 모양이군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따로 이권 사업이 없는 멸왜단에게 가흥부 흑도가 시비 걸 이유가 없다.
“잘 아네.”
진혜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파. 가흥부 흑도와 거래하는 왜구들이 밀무역만 하다 가는 게 아니잖아.”
가흥부에서는 밀무역만 해도 다른 곳에서 약탈을 할 수도 있었다. 아니 다른 곳에서 약탈한 물품들을 가흥부에서 처리하고 떠나는 것이다.
절강 전체를 살펴야 하는 멸왜단 입장에서는 가흥부에서만 얌전떨며 다른 지역을 약탈하는 이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가흥 부도 왜구 피해는 있지요?”
“왜구는 통일된 세력이 아니니깐. 당연히 있지. 그 때문에 손을 뗄 수도 없어.”
내 물음에 진혜예가 답했다.
“간단하네요.”
“뭐?”
내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왜구를 찾아 때려잡으면 끝 아닙니까? 가흥부 흑도 놈들이 아무리 밀무역을 위해 왜구들을 비호한다 해도 대놓고 하지는 못할 것 아닙니까? 지역 민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리 쉬운 게 아니야.”
경철운이 나섰다.
“일단 가흥부에서는 약탈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놈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어. 다른 지역 같으면 흑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가흥부는 도리어 방해를 받으니….”
“우리에게 시비 건 전적이 있는 흑도를 감시하면 될 일 아냐?”
“그런 일을 할 만한 인원들이 없어. 가흥부 흑도가 도리어 멸왜단 가흥부 분타의 인원들을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멸왜단 분타가 움직이면 가흥부 흑도가 안다는 소리다.
“총타에서 인원을 파견한 적도 있어. 하지만 외지인이잖아. 가흥부 전역에 깔린 흑도 놈들의 눈과 귀를 피하는 건 무리라고. 항주 흑도에서 한 번 나서 준 적도 있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항주 흑도들과 가흥부 흑도 사이에 전쟁 날 뻔 했다.”
이 정도면 수가 없다 생각할 수도 있었다.
“멸왜단의 은신처, 그곳으로 연결되는 입구인 사당. 내가 어떻게 찾았는지 잊은 거야?”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외지인이 뭔가 조사를 하면 의심을 받겠지. 그런데 말이야. 감시를 하는 게, 추적을 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겠어?”
가흥부 흑도들이 과연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매를 신경 쓸까?